웨어러블 컴퓨터의 연구동향

웨어러블 컴퓨터의 연구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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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셔널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 개발
카테고리 컴퓨터/IT
지은이 리토 마이어 (제이펍,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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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ndroid

작성자 : 김지헌

안드로이드의 역사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구글_안드로이드

- 20057, 구글이 안드로이드 사를 인수

- 200711, 다국적 모바일 제조사가 모여 오픈 핸드셋 얼라이언스(OHA) 컨소시엄 결성

- 200810, 안드로이드 오픈소스 선언, Apache 2.0 GNU 라이센스로 공개

- 2009년 하반기, 모토로라의 드로이드 발표 이후 아이폰와의 대결구도 형성



모바일 플랫폼 비교

출처 : http://blog.daum.net/effortless/7864583

1.우리팀이 모바일 개발을 할 때,아이폰으로 갈까?

구분

설명

장점

단일 사용자 인터페이스-해상도/UI가 거의 동일하다.해상도가 달라서 생기는UI개발상의 어려움이 거의 없다.

단일H/W서포트-하드웨어 제작사가Apple한 회사여서,하드웨어 때문에 말썽 피우는 일이 없다.

개발 툴킷 통합성- XCode/Objective-C/Apple/iTunes로 대변되는 툴킷 및 환경은 매우 훌륭하다.

마켓의 성숙성-활발하고 거래가 잦은 앱스토어가 있다.대박의 가능성이 있다.

단점

개발자 진입 장벽-국내의 대부분의 개발자들은AppleXCode상의 개발을 해 본적이 없다.완전히 새로 배워야 한다.일단 개발하려면 비싼 맥북부터 구입해야 한다.

애플사의 정책-애플사는 앱스토어에 올릴 때,엄격한 검사를 하는데,애플의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앱스토어에 올리지 못한다.이것에 대해서 불평이 상당하다.앱스토어에 올리는 비용도 제법(?)든다.

치열한 경쟁-이미 레드오션이나 다름없다.개인들이 취미로 개발할 것이 아니고,팀 단위 이상의 수익성을 바란다면,상당한 개발력을 투입하여야(적어도3~4M/M)하며,그게 수익을 가져다 줄지는 아무도 보장해 주지 못한다.이미 완성도가 높은 애플릿들로 넘친다.

국내시장의 낮은 점유율-국내에서는 잘나가도50만대,무지 크게 잡아도100만대 수준에서 멈출 것이다.전체 시장의5%미만이라는 뜻이다.기업이 기대할 수준의 수익을 가져다 주기에는 너무 작은 시장이다.개인이 취미로 하자면,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대응방안

개발할 대상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낮은 국시장 점유율에서라도 수익을 낼 수 있을 것 같으면,아이폰이 적당하다.국내용이 아니고,세계 시장에 팔 수 있는 것이라면,아이폰은 환상적인 플랫폼이다.

좀 럭셔리하고(?),여유있는(?)개인 개발자라면,아이폰 만큼 좋은 취미생활이 따로 없다.단 돈은 바라지 않는 게 좋다.아마 개발하면서 먹은 햄버거와 콜라 값 정도나 간신히 나올 것이다.어쩌다 운 좋아서2~30만원을 넘겨도 그걸로 끝이다.세계에 팔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한번 테스트해 보기 바란다.아마 그럴 수 있다면,굳이 아이폰에서 개발 않고,자기 블로그만 으로도 비슷한 수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솔루션 개발사라면, 5%도 안되는 아이폰 고객들의 등쌀에 못 이겨,어떤 식으로든 자사 솔루션에 대한 아이폰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안그러면 솔루션 자체가 안 팔릴 테니까이때는 수익보다는 개발비용 감소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최소한으로 아이폰 인터페이스를 만들라치면,모바일 웹(아이폰 크기에 맞는 웹인터페이스)를 고려해 볼 수 있다.그것은 폰특화된 것이 아니니까,기존의 웹개발자가 대응할 수 있다.

2.우리팀이 모바일 개발을 할 때,안드로이드폰으로 갈까?

구분

설명

장점

낮은 진입 장벽가장 많은 개발인구인 자바 개발자들이 타겟이다.이클립스에 포함되는 개발 툴킷을 가지면 쉽게 개발에 뛰어들 수 있다.

구글 후광구글 후광으로 추종자들이 제법 많다.폰 개발사라면,너도나도 안드로이드 폰 한종 정도는 만들 것이고,국내에서는SKTelecom이 안드로이드를 밀고갈 것 같다.전략적으로 안드로이드를 미는 데 편승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쉬운 마켓 접근성안드로이드 마켓은 등록이 매우 자유롭다.진입 장벽이 더욱 낮다.

낮은 경쟁현재의 안드로이드 마켓의 앱들은 매우 품질이 낮고 조잡하다.품질에 좀 손을 쓰면 돋보일 가능성이 높다.

단점

더 낮은 국내 시장점유율아마도 아이폰의5%보다 더 낮은 국내시장 점유율을 보일 것이다.국내용 앱으로는 수익성 맞추는 것이 불가능하겠다.

좀더 다양한 폰 환경-애플의 단일한 개발환경에 비해서,폰들이 더 다양하다.해상도,터치 방식 등에서 상당히 다양한 환경이므로,사용자Experience를 구현하는데 좀더 어려울 것이다.

낮은 폰 성숙도안드로이드2.0이 최근에야 나왔고,그게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는 폰은 거의 없다.내년3분기 이후에야 주변에서 겨우 안드로이드2.0폰 구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구글의 우울한 판매정책구글은 애플과 달리 적극적으로 앱을 판매하려고 하지 않는다.안드로이드 시장에서 구글은 직접적인 수익이 제로이므로당연하다.유명한 게임 개발사는,안드로이드 마켓이 전혀 판매유도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수익성이 낮으므로),애플에만 집중하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대응방안

개발자 훈련에 좋은 플랫폼이다.모바일 개발 경험이 없는 개발자들을 모바일로 이행시키는 제일 좋은 방법이다.

오픈/자유 소프트웨어 추종자라면,안드로이드 폰을 취미로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하지만,애써서 만든 앱을,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줘서 폼내지는 못할 것이다.당최 안드로이드 폰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그래도 실망 말라,온라인에 테키들이 제법 있으니

팀수준이라면,만약 구글추종 사업자(SKT, HTC,삼성전자)등과 어떤 제휴관계를 형성해서 기업형 비즈모델을 만들었다면,이 폰에 집중해도 상관없겠다.그런 수준의 보장이 없이는 아마도 안드로이드 폰으로 수익만들기 힘들 것이다.

솔루션 개발사라면, 5%미만의 안드로이드 폰 고객들은 대부분 얼리어댑터형 테키일 가능성 크므로,싸악 무시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구글 추종 사업자들과 관계를 만들 정도의 역량이 있는 회사라면,안드로이드 폰에 사업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가능하겠다.

전세계(주로 유럽)에 판매 가능한 앱을 만들 수 있다면,안드로이드를 주 타겟으로 삼아도 되겠다.

이외에도 최근 Ms에서 윈도우 모바일 6.5를 발표한 이후 이를 바탕으로 하는 일명 윈도폰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미비한 몸부림일 뿐이다. 국내에서 굴지의 핸드폰 생산업체라 할 수 있는 삼성전자에서 Bada’라고 하는 독자적인 모바일 운영체제와 개발툴킷을 선보였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아직 지켜보자는 정도의 수준이다.

안드로이드 SDK 구성

1. 안드로이 API
SDK의 핵심은 개발자에게 안드로이드 스택에 대한 접근을 제공하는 안드로이드 API 라이브러리다. 이는 구글이 네이티브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것과 동일한 라이브러리다. ,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는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기본적인 기능 : 다이얼, 알람, 메시지 송신 등)에 대한 직접적인 조작 및 구현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2. 개발도구
안드로이드 소스 코드를 실행 가능한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으로 바꾸기 위해, SDK는 애플리케이션을 컴파일하고 디버그하도록 해주는 몇 가지 개념도구를 포함하고 있다.

3. 안드로이드 에뮬레이터
안드로이드 에뮬레이터는 변경 가능한 여러 스킨을 가지고 있는 완전히 인터랙티브한 안드로이드 장치에서 어떻게 보여지고 또 동작하게 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모든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은 Dalvik 가상머신에서 실행된다. 이 에뮬레이터는 하드웨어 중립적이기 떄문에, 그 어떤 단일한 하드웨어 구현보다도 더 나은 독립적인 테스트 환경을 제공한다. 특정 하드웨어를 목표로 할 경우에는 그 하드웨어에 포팅(Porting)을 통해 테스트 해보아야 한다.

4. 풍부한 문서
http://developer.android.com/reference/packages.html
SDK는 각 패키지와 클래스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지 그리고 이들의 사용법은 어떻게 되는지를 자세히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광범위한 코드 수준의 레퍼런스 정보를 가지고 있다.

5. 샘플코드
참조 : http://developer.android.com/guide/index.html → Best Practices
안드로이드 SDK는 각 API 기능의 사용법을 알려주는 엄선된 샘플 애플리케이션을 포함하고 있다.

6. 온라인 지원

http://groups.google.com/android-developers

구글 그룹을 통해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 스택의 이해

1. 리눅스 커널
하드웨어 드라이버, 프로세스와 메모리 관련, 보안, 네트워크, 전력관리 등의 핵심 서비스는 리눅스 2.6 커널이 담당한다. 또한 커널은 하드웨어와 스택의 나머지 부분 사이에 추상 계층을 제공한다.

2. 라이브러리
라이브러리는 커널 바로 위에서 동작한다. 안드로이드는 libcSSL 같은 다양한 C/C++ 코어 라이브러리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겉들을 포함하고 있다.

1. 안드로이드 런타임
안드로이드 폰을 리눅스 구현이 아닌 안드로이드 폰이게끔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안드로이드 런타임이다. 코어 라이브러리와 Dalvik 가상머신을 포함하고 있는 안드로이드 런타임은 라이브러리와 함께 애플리케이션을 움직이게 하는 엔진으로서, 애플리케이션 프레임워크의 기본을 형성한다.

2. 코어 라이브러리
안드로이드의 개발은 자바로 이루어지지만 Dalvik은 자바 VM 이 아니다. 코어 안드로이드 라이브러리는 코어 자바 라이브러리에서 사용 가능한 대부분의 기능뿐만 아니라 안드로이드 전용 라이브러리도 제공한다.

3. Dalvik 가상머신
Dalvik은 장치가 복수의 인스턴스를 효율적을 실행(멀티태스킹, 아직까지 아이폰은 싱글태스킹)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최적화된 레지스터 기반의 가상머신이다. Dalvik은 스레딩과 하위 수준의 메모리 관리를 위해 리눅스 커널에 의존한다.

3. 애플리케이션 프레임워크

애플리케이션 프레임워크는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클래스를 제공하며, 하드웨어 접근 및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애플리케이션 리소스 관리를 위한 일반적 추상을 제공한다.

4. 애플리케이션 계층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과 서드파티 애플리케이션은 모두 동일한 API 라이브러리를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 계층위에 구축된다. 애플리케이션 계층은 애플리케이션 프레임워크를 통해 사용가능한 클래스와 서비스를 사용함으로써 안드로이드 런타임 내에서 실행된다.

Dalvik 가상머신

안드로이드의 핵심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Dalvik 가상머신이다. 안드로이드는 자바 ME 같은 전통적인 자바 가상 머신을 사용하지 않고, 단일 장치상에서 복수의 인스턴스가 효율적으로 실행되게끔 보장하도록 설계된 자신만의 고유한 커스텀 VM 을 사용한다.

Dalvik VM 은 장치 하부에 놓인 리눅스 커널을 사용해 보안, 스레딩, 그리고 프로세스와 메모리 관리 등의 하위 수준 기능을 처리한다. 하부에 있는 리눅스 OS 상에서 직접 실행되는 C/C++ 애플리케이션을 작성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음.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 아키텍쳐

안드로이드 아키텍처는 컴포넌트 재사용 개념을 장려하며, 액티비티와 서비스 그리고 데이터를 발행해, 설정한 보안 제한에 의해 관리되는 접근을 통해 다른 애플리케이션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1. 액티비티 관리자
액티비티 스택 관리를 포함하여 액티비티의 수명 주기를 제어한다.

2.
액티비티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구성하는 데 사용된다.

3. 알림 관리자
사용자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 일관되면서도 간섭적이지 않은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4. 콘텐츠 공급자
애플리케이션이 다른 애플리케이션과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5. 리소스 관리자
문자열과 그래픽스 같은 외부화되는 비코드 리소스를 지원한다.

안드로이드 개발환경 구축하기

1. 이클립스 다운로드
Galileo : http://www.eclipse.org/downloads/
Ganymade : http://www.eclipse.org/ganymede/

2. 안드로이드 SDK 다운로드
http://developer.android.com/sdk/index.html

3. 이클립스 ADT 다운로드
eclipse – installing ADT
http://dl-ssl.google.com/android/eclipse

4. AVM 생성하기
{Android-SDK}/tools/ 에서 생성하는 방법
android create avd --target 2 --name my_avd

Eclipse – Android SDK and AVD Manager 에서 생성하기

5. Hello, Android 띄우기

이클립스 내에서 새로운 Android 프로젝트 생성 후 실행하면 뜸.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의 종류

1. 포그라운드 액티비티(Foreground Activity)
활성화 되어 화면에 있을 때만 쓸모 있는 애플리케이션으로서, 화면에 보이지 않을 때는 사실상 중단된다. 게임과 맵 매시업이 이 부류에 속하는 대표적인 예다.

2. 백그라운드 액티비티(Background Activity)
구성이 변경되고 있는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화면에 보이지 않은 채로 실행되는 상호작용이 제한된 애플리케이션, 전화 차단 애플리케이션이나 SMS 자동응답기가 이 부류에 속한다.

3. 인터미턴트 액티비티(Intermittent Activity)
드문드문 상호작용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작업을 백그라운드에서 수행한다. 이런 류의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면 보통 소리소문 없이 동작하다가 적절한 때에 사용자에게 통지한다. 미디어 플레이어가 대표적인 예다.

하드웨어 설계시 고려사항

- 느린 처리 속도 : 효율적일 것

- 제한된 RAM : 제한된 저장 공간을 예측할 것

- 제한된 영구 저장공간 : “”

- 저해상도의 작은 화면 : 작은 화면을 위해 디자인할 것
참조 : http://uxfactory.com/787

- 비싼 데이터 전송 비용 : 국내의 모바일 웹 데이터 요금은 무척 비싸다.

- 다소 신뢰성이 떨어지는 데이터 연결 : 느린 속도와 긴 지연 시간을 예측할 것

- 제한된 배터리 수명 : 데이터 송수신, 사용시간에 따라서 배터리 수명이 달라진다.

사용자 환경 고려하기

- 상황에 따라 효율적으로 동작해야 한다.

- 백그라운드에서 포그라운드로 매끄럽게 전환되어야 한다.

- 품위 있어야 한다.

- 일관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보여줘야 한다.

- 반응성이 좋아야 한다.

빠르고 효율적일 것

반응성이 좋을 것

안전한 애플리케이션 개발하기

미래 네트워크 연구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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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H대학교 강간경영과 변태경제의 영웅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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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큐정전(阿Q正傳)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제1장 서(序)

내가 아큐(阿Q)의 전기를 써야겠다고 작정한 것은 한두 해 전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줄곧 망설였던 것은, 나 자신이 후세에 길이 전해 줄 만한 글을 쓸 위인이 못 되는 까닭도 있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가 문장의 제목이다. 열전(列傳), 자전(自傳), 별전(別傳), 가전(家傳), 본전(本傳) 등 전기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지만, 애석하게도 여기에 적합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큐가 역사에 기록될 만한 위인은 아니었으니 열전이라 할 수는 없다. 또 내가 아큐 자신이 아니니 자전이랄 수도 없다. 또 내가 아큐하고 종씨인지 아닌지도 모를 뿐더러 그의 자손에게서 부탁받은 일도 없으니 가전도 아니었다. 결국 이 문장은 '본전'으로밖에는 분류할 수 없겠지만, 내 문장을 생각해 보면 ‘손수레꾼이나 장돌뱅이 따위’가 쓰는 비천한 말씨여서 감히 ‘본전입네’ 하고 내세울 수도 없다. 그렇다면 소설가들이 흔히 쓰는‘잡담은 그만두고 정전(正傳)으로 돌아가서(본론으로 들어가서)’라는 말에서‘정전’두 자를 빌려다가 제목으로 삼는 것이 어떨까?

둘째는 전기를 쓰자면 대체로 첫머리에 ‘이름은 무엇이며 어느 지방 사람이다.’라고 써야 하는데, 나는 아큐의 성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셋째로, 나는 아큐의 이름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른다. 그가 살아 있을 적에는 사람들이 그를 아큐라고 불렀지만, 죽은 다음에는 두 번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전에 나는 자오 영감의 아들인 수재(秀才, 원래는 과거 시험 과목 중의 하나인 과학의 명칭이지만, 여기서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일컬음) 선생에게 여쭈어 본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박학 다식한 사람조차 그의 이름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아큐의 이름을 쓰기 위해 ‘서양 글자’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에서 유행하는 철자법을 따라 아Quei라 하고, 쓸 때는 줄여서 아Q로 하려는 것이다.

넷째로, 아큐의 본적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비록 웨이좡에서 오래 살았다고는 하지만, 이따금 다른 곳에서도 살았으니 반드시 웨이좡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제2장 승리의 기록

아큐는 이름이나 본적만 모호한 게 아니라, 웨이좡에 오기 전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은 일손이 필요할 때나 곯려 줄 때만 아큐를 생각할 뿐 다른 때는 관심도 없었다. 아큐는 집도 없이 마을에 있는 투구츠〔土谷祠, 지신과 곡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시골의 사당〕 안에서 살았다. 게다가 고정된 일거리도 없이, 남의 집에서 품팔이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 나갔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쁠 때면 아큐를 생각하지만, 한가해지면 까맣게 잊어버리곤 하였다.

그런데 아큐 또한 자존심이 매우 강해서 웨이좡 사람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심지어 웨이좡에 딱 두 사람밖에 없는 문동(文童, 과거 공부를 하고 있지만 아직 수재에 급제하지 못한 사람)에게까지도 웃어 줄 가치조차 없다고 여기는 형편이었다. 아큐의 말대로 하면, 옛날에 그는 ‘잘 살았고 학식도 높았으며 못 하는 게 없는’ 거의 완벽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쨌든 지금 그에게는 체질상으로 약간의 흠이 있었다. 그의 머리 몇 군데가 부스럼 자국으로 꽤 크게 벗겨져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벗겨지다’라는 말을 몹시 싫어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점점 확대되어 나중에는 ‘빛나다’라는 말도, ‘밝다’라는 말도 싫어하게 되었다. 급기야는 ‘등불’이나 ‘촛불’ 같은 말까지도 금기(꺼리어서 싫어하거나 금함)로 했다. 그리하여 그 금기를 어기는 자가 있으면, 아큐는 그 부스럼 자국이 시뻘개지도록 화를 냈다. 상대에게 욕을 퍼부으며 때리려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아큐는 혼을 내주려고 덤벼들었다가 되레 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래서 아큐는 그에 대한 대응 방법을 바꾸기로 하였다.

동네 건달들은 아큐를 볼 때마다 “야아, 반짝반짝해졌는걸! 이제 보니 등잔이 여기 있었군.” 하고, 그의 머리를 쿵쿵 쥐어박곤 했다. 그들은 아큐가 단단히 혼쭐이 났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아큐는 십 초도 안 되어서 승리감으로 의기 양양해졌다. 자신을 짐짓 벌레처럼 하찮은 존재로 생각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건달들은 결국 벌레를 곯려 준 꼴이 되는 것이니까.

‘네놈 따위가 뭐야. 나는 버러지야, 버러지라구.’

아큐는 자신을 경멸할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서 자신을 경멸한다는 말을 빼 버린다면 남는 것은 ‘첫 번째 사람’이라는 것뿐이었다. 어디에서든 ‘첫 번째’는 좋은 것이었다. 이렇게 묘한 방법으로 승리를 하고 나면 아큐는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제 2 장 우승(優勝)의 기록(記錄)

아큐(阿Q)는 성명과 본적이 분명치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행적(行跡) 또한 분명치 않다. 왜냐 하면 미장 사람들의 아큐에 대한 관심은 다만 그에게 일을 부탁할 때나, 그를 두고 농담할 때에만 국한되어 있었으므로 지금까지 그의 '행적'엔 유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큐 자신도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남과 말다툼할 때 이따금 눈을 부릅뜨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도 그전에는……네까짓 놈보다는 훨씬 더 잘 살았어! 네 따위가 무어야!"

아큐는 집도 없이 미장(未莊)의 사당(祠堂) 안에 살고 있었으며 일정한 직업도 없었다. 다만 날품팔이를 하면서, 보리를 베라면 보리를 베고, 쌀을 찧으라면 쌀을 찧고, 배를 저으라면 배를 젓기도 했다. 일이 좀 오래 걸릴 때는 임시로 주인집에서 묵기도 했으나 끝나면 곧 돌아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바쁠 때에는 아큐를 생각해 내나, 그것도 시킬 일이 있을 때뿐이지 그의 '행적'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한가해지면 아큐라는 존재조차도 잊어버리는 판국이니 '행적'은 더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꼭 한 번 어느 노인이, "아큐는 정말 일꾼이야!"하며 칭찬한 적이 있었다. 이 때 아큐는 온통 옷을 벗은 채로 멋적은 듯이 말라빠진 풍채로 그 노인 앞에 서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 말이 진심인지 빈정거림인지 잘 짐작이 가지 않았으나, 아큐는 대단히 기뻐했다.

아큐는 또한 자존심이 강했다. 미장 주민들은 하나같이 눈에 차지 않았고 심지어 두 분의 '글방 도련님'에 대해서까지도 일소(一笑)의 가치조차 없다고 여기는 표정을 지었다. 무릇 '글방 도련님'이란 장래 수재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조(趙) 나으리와 전(錢) 나으리가 주민들로부터 크게 존경을 받고 있는 이유도, 돈이 많다는 것 이외에 두 사람 모두 '글방 도련님'의 아버지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독 아큐는 마음 속으로 특별히 존경한다는 표시를 하지 않았다. '내 아들이었다면 더 훌륭했을 거야!'하고 그는 생각했다. 게다가 몇 번 성 안으로 들락거렸던 일은 자연 그의 자부심을 더욱 강하게 했다.

그러나 한편 그는 성 안 사람들까지도 퍽 경멸하였다. 예컨대, 길이 석 자, 폭 세 치의 널빤지로 만든 걸상을 미장에서는 '장등(長 )'이라고 부르며, 그도 '장등'이라고 불렀는데 성 안의 사람들은 '조등(條 )'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것은 틀린 것이며 가소로운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도미를 튀길 때 미장에서는 모두 반 치 길이의 파를 얹는데 성 안에서는 잘게 썬 파를 얹는다. 이것도 틀린 것이며 가소롭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미장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모르는 가소로운 시골뜨기들로 그들은 성 안의 생선 튀김은 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아큐가 '옛날에는 잘 살았고', 견식도 높고, 게다가 '정말 일꾼'이니 본래 '완벽한 인간'이라고 할 만하지만, 가련하게도 그에겐 약간의 체질상의 결점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가장 놀림을 받는 것은, 그의 머리에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는 부스럼 자국이 몇 군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큐의 생각에도 비록 그의 몸에 있는 것이기는 하나 자랑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곧 '부스럼'이라는 말뿐 아니라, '부스럼 자국'과 비슷한 발음의 말조차 꺼려했으며, 그것이 점점 더 확대되어 '빛나다[光]'라는 말도, '밝다[亮]'라는 말도 금기로 삼았고 더 나아가서 '등불'이라던가 '촛불'이라는 말까지 금기시하는 것이었다. 그 금기를 범하는 자가 있으면 고의든 아니든 아큐는 부스럼 자국까지 벌겋게 하며 화를 내었다. 상대를 어림쳐 봐서 말솜씨가 좋지 않은 놈이면 매도(罵倒)하고, 기운이 약한 놈이면 두들겨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대체로 아큐가 당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는 차츰 방침을 바꾸어 대개는 화난 눈으로 노려보기로 했다.

아큐가 '노려보기주의(主義)'를 채택한 뒤로 미장의 건달들은 더욱더 그를 놀려대는 것이었다. 만나기만 하면 짐짓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이구, 밝아졌다!"

아큐는 틀림없이 성을 내고 노려본다.

"여기 원래 보안등이 있었군 그래."

그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큐는 할 수 없이, 따로 보복할 말을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네깐 놈들과는 상대도 안 돼……."

이 때 그는 마치 자신의 머리에 있는 것은 고상하고 영광스러운 부스럼 자국이지, 평범한 부스럼 자국이 아닌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아큐는 견식이 높은 사람이므로 '금기(禁忌)'에 조금 저촉된다는 걸 알고서 그만 말을 잇지 않는 것이었다.

건달들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를 계속 놀려대어 마침내 치고 받는 싸움이 된다. 그러나 아큐는 형식상으로는 패배한다. 놈들에게 노란 변발을 나꿔채이고, 벽에 퍽퍽 너댓 번 머리를 처박힌다. 건달들은 그러고 나서야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돌아간다. 아큐는 잠시 동안 우두커니 서서 '내가 자식놈에게 얻어맞은 걸로 치지. 요즘 세상은 돼먹지 않았어…….'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는 그도 만족해서 의기양양해 가버린다.

아큐는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나중에 하나하나 말해 버린다. 그래서 아큐를 곯려 주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이러한 일종의 정신적 승리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놈들이 그의 노란 변발을 나꿔챌 때는 먼저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큐! 이것은 자식이 애비를 때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야. 네 입으로 말해 봐!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라고."

아큐는 양손으로 변발한 머리채를 잡고, 머리를 꼬며 말하는 것이었다.

"벌레를 치는 거야! 됐어? 나는 벌레야. ― 이래도 놓지 않겠어?"

벌레라고 했건만 건달들은 결코 놓아주지 않는다. 늘 하던 대로 가까운 데를 골라 퍽퍽 대여섯 번 머리를 처박고 나서야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돌아가는 것이었다. 놈들은 이번에야말로 아큐도 혼이 났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10초도 지나지 않아 아큐도 역시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자신을 경멸할 수 있는 제1인자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경멸할 수 있다.'는 말을 생략하면 남는 것은 '제1인자'라는 말이다. 장원(壯元)이라면 '제1인자'가 아닌가?

"네 까짓 것들이 다 뭐냐?"

아큐는 이러한 갖가지 묘수로 원수들을 굴복시킨 다음 유쾌하게 술집으로 달려가서 술을 몇 잔 마시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 한바탕 놀림을 당하거나, 입씨름을 하다가, 또 이기고 나서, 유쾌하게 사당으로 돌아가면 머리를 쑤셔박고 자 버리는 것이었다.

만약 돈이 있으면 그는 도박을 하러 간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땅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아큐도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며 그 가운데 끼어드는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내기를 거는 소리 중에서도 가장 컸다.

"청룡(靑龍)에 사백!"

"자…… 엽니다. ……엇차!"

물주가 상자 뚜껑을 연다. 그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읊어대는 것이었다.

"천문(天門)이로다……. 각(角)은 비기고, 인(人)과 천당(穿堂)은 졌다. ……아큐의 돈은 내가 먹었어……."

"천당에 백……백 오십!"

아큐의 돈은 이런 노랫가락을 타고 땀을 뻘뻘 흘리는 다른 사람의 허리춤으로 점점 흘러들어가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사람들에게서 밀려나고 만다. 그러나 뒷전에 서서 남들의 승부에 마음을 졸이며 끝까지 노름판을 지켜본다. 그리고 판이 끝나면 아쉬운 듯 사당으로 돌아간다. 다음날은 눈이 퉁퉁 부어 일하러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참으로 '인간 만사(人間萬事)는 새옹지마(塞翁之馬)'다. 아큐는 불행히도 딱 한 번 이기고는, 계속해서 실패했던 것이다.

그 날은 미장에서 마을 축제를 지내던 날 밤이었다. 이 날만은 관례대로 무대를 차리고, 무대 주위엔 으레 많은 도박판이 벌어졌다. 연극 무대의 꽹과리 소리와 북 소리도 아큐의 귀에는 십 리 밖 먼 데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레겐 물주의 노랫가락 소리만이 들렸다. 그는 따고 또 땄다. 동전이 은전이 되고 작은 은전이 큰 은전이 되었다. 큰 은전이 쌓이고 쌓였다. 그는 매우 신바람이 났다.

"천문(天門)에 두 냥!"

누가 누구와 무엇 때문에 싸우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욕하는 소리 때리는 소리, 발자국 소리,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혼란이 한바탕 벌어졌다. 그가 간신히 기어 나왔을 땐 노름판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몸의 몇 군데가 아픈 것 같았다. 아무래도 얻어맞기도 하고 발길질을 당한 것 같기도 했다. 몇 사람이 그를 이상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넋 잃은 사람처럼 사당으로 돌아와 마음을 가라앉히고서야 그의 은화 무더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축제날에 벌어지는 노름판의 대부분 사람들은 이 마을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 어디 가서 그것을 찾겠는가?

새하얗게 번쩍번쩍 빛나는 은화 더미! 더구나 그의 것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것이다. 자식놈이 가져간 셈 쳐 보아도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그도 이번만은 실패의 고통을 조금 느꼈다.

그러나 그는 곧 패배를 승리로 전환시켰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힘껏 자기 뺨을 두세 차례 연거푸 때렸다. 얼얼하게 아팠다. 때린 후에 그는 마음이 평안해지기 시작했는데, 마치 때린 것은 자신이고, 얻어맞은 것은 또 다른 자신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는 자기가 남을 때린 것 같이…… 비록 아직도 얼얼하지만…… 몹시 만족하여 의기 양양해 드러누웠다.

그는 푹 잠들었다. <김시준 옮김>

제3장 속(續) 승리의 기록

어느 해 봄날, 아큐는 술에 취해 건들거리며 길을 가고 있었다. 이 때 담장 밑에서 왕털보가 벌거벗은 채 이를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왕털보는 부스럼 자국으로 머리가 벗겨진 데다 털북숭이여서 모두 왕대머리 털보라고 불렀다. 왕털보는 이를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계속 잡아서 입에다 넣고 툭툭 소리를 내며 깨물었다.

아큐는 왕털보가 이 잡는 것을 보자, 갑자기 온 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다 떨어진 겹저고리를 벗어들고 들춰보았다. 새로 빤 옷이라 그런지, 아니면 재주가 없어서 그런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서너 마리 잡을 수 있었다. 아큐는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나중에는 부아가 치밀었다. 자기가 깔보는 왕털보는 저렇게 많이 잡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적게 잡다니, 이것은 얼마나 체통을 잃는 일인가. 아큐는 잡은 이를 입에 넣어 용을 쓰며 깨물었다. 그러자 픽 하고 소리가 났다. 깨무는 소리조차 왕털보 소리에 미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자 아큐의 부스럼 자국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옷을 땅바닥에 냅다 팽개치면서 침을 바닥에다 탁 뱉었다.

“이 털버러지 같은 놈.”

“문둥이 개 같은 놈, 누구한테 욕이야!”

왕털보가 눈을 치뜨고 말했다. 이런 털북숭이가 감히 함부로 지껄여? 아큐는 상대가 항상 얻어맞는 건달패들이라면 겁을 집어먹었겠지만, 왕털보쯤이야 못 당할까 싶어 용감하게 덤벼들었다.

“누구긴 누구야! 바로 네놈한테지.”

“너, 몸뚱이가 근질거리나 보구나?”

왕털보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주워 입으면서 말했다. 아큐는 그가 꽁무니를 빼려는 줄 알고 잽싸게 달려들어 한 대 치려 했다. 그런데 아큐의 주먹이 미처 왕털보에게 닿기도 전에 그에게 잡혀 버리고 말았다. 아큐는 곧 왕털보에게 변발(만주인의 풍습으로, 남자가 12∼13세가 되면 머리 뒷부분만 남겨 놓고 나머지 부분을 깎아 뒤로 길게 땋아 늘인 머리)을 낚아채인 채 담장 앞으로 끌려가 머리를 처박히고 말았다.

아큐의 기억으론 아마도 이것이 평생에 있어 가장 큰 굴욕 같았다. 왕털보는 털북숭이라 자신이 늘 비웃어 주었는데, 도리어 그에게 손찌검을 당했으니 말이다. 아큐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때 멀리서 아큐가 제일 미워하는 첸 영감의 큰아들이 걸어왔다. 그는 도시에 있는 서양 학교에 들어갔다가 반 년 뒤에 돌아왔는데, 어찌 된 일인지 걸음걸이도 변하고 변발도 없어져 버렸다. 그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열 번도 더 통곡을 했고, 여편네는 세 차례나 우물에 뛰어들었다. 그를 볼 때마다 아큐는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변발이 없으니 사람 노릇할 자격도 없으며, 그의 여편네도 네 번째로 우물에 뛰어들지 않았으니 정숙한 여자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중대가리, 나귀…….”

아큐는 그 동안 속으로만 이렇게 욕을 했지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화가 끓어 누구라도 붙들고 앙갚음을 해야 하던 참이라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지껄이고 말았다. 그러자 이 중대가리가 노랗게 칠한 지팡이를 손에 쥔 채 아큐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 잠시 후에 아큐는 딱 하는 소리가 자기 머리에서 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저 애한테 말했는데!”

아큐는 곁에 있던 한 아이를 가리키며 변명했다. 아큐의 생애에 있어 두 번째로 큰 굴욕이었다. 아큐는 천천히 걸었다. 선술집 문턱에 당도하니 망각이라는 보물이 효력을 발휘하여 제법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앞쪽에서 정수암에 있는 젊은 여승이 걸어왔다. 평소에도 아큐는 여승을 보면 욕을 해댔는데, 하물며 굴욕을 당한 지금이야! 그는 굴욕의 기억이 되살아나자 마음속에서 적개심이 일었다.

‘오늘은 왜 이리 재수가 없나 했더니 너를 보려고 그랬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큐는 앞으로 나서며 큰 소리가 나게 침을 뱉었다. 젊은 여승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걷기만 했다. 아큐는 여승 옆으로 다가가서 새로 깎은 여승의 머리를 손으로 더듬으며 헤벌쭉 웃었다.

“아이고머니나, 이런 무례가…….”

여승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종종걸음을 쳤다. 선술집 안에서 사람들이 와 하고 웃어 댔다. 아큐는 더욱더 신이 났다. 그래서 그 구경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번에는 힘을 주어 꼬집어 버렸다. 이 한 판의 승리로 아큐는 왕털보 일도, 가짜 양놈 일도 깨끗이 잊어버렸다. 오늘 생겼던 재수 없는 일이 모두 앙갚음된 것 같았다.

“이 씨도 못 받을 아큐 놈아!”

멀리서 젊은 여승이 울먹이며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4장 사랑의 비극

아큐는 하늘이라도 날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투구츠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날 밤, 밤새도록 눈도 붙이지 못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는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보통 때보다 매끄러운 것 같았다. 젊은 여승의 얼굴의 매끄러움이 그의 손가락에 달라붙었는지도 몰랐다.

“씨도 못 받을 아큐 놈!”

하던 젊은 여승의 목소리가 아큐의 귓속에서 다시 울렸다. 그는 생각했다.

‘그래, 여자가 있어야 한다. 자식이 없으면 밥 한 그릇도 공양받지 못할 테니까. 이것은 사람으로 태어난 자의 가장 큰 비애다. 여자, 여자, 여자!’

그는 젊은 여승의 모습을 떠올리자 마음이 적잖이 달떴다. 누가 알았으랴! 바야흐로 이립(30세)의 나이에 젊은 여승 때문에 마음이 달떠 버릴 줄이야. 그는 ‘남자를 유혹하려는’ 여자, 즉 자신에게 말을 거는 여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승은 자기를 보고 웃지도 않았고, 수상한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아큐는 여승에게 유혹당하고 말았다. 아, 이것은 여자가 나쁘다는 증거 중 하나가 분명했다.

다음날 아큐는 자오 영감 댁에서 하루 종일 방아를 찧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부엌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웠다. 그 때, 설거지를 끝낸 자오 댁의 하녀 우 씨 아줌마가 아큐에게 말을 걸었다.

“마님이 이틀째 아무것도 드시지 않아. 영감님이 첩을 사 오신 뒤로…….”

‘여자……, 우 씨 아줌마……, 청상 과부……, 여자…….’

아큐는 담뱃대를 팽개치고 벌떡 일어섰다.

“나하고 자자! 나하고 자자!”

하고 아큐는 별안간 우씨 아줌마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우씨 아줌마는 ‘어머나!’ 하고 질겁을 하더니,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아큐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꿇어앉아 있었다. 바로 그 때, 딱 소리가 나더니 머리가 어찔해져 왔다. 뒤를 돌아보니, 수재가 굵은 대나무 막대기를 들고 서 있었다.

“이 못된 놈! 감히…….”

수재는 굵은 대막대기로 아큐의 머리를 사정 없이 내리쳤다. 아큐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쥔 채 문 밖으로 달아났다.

“염치 없는 놈!”

하고, 수재가 뒤에서 욕을 했다. 아큐는 방앗간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몹시 욱신거렸다. ‘염치 없는 놈’이라고 하던 수재의 말이 귀에 쟁쟁했다. 아큐는 마음이 꺼림칙했지만 곧 쌀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그런데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그 소리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 소리는 안뜰에서 나는 것이었다. 그 곳에는 자오 씨 댁 집안 식구들이 모여 있었는데, 이틀 동안 식사도 안 했다는 마님까지 끼어 있었다. 게다가 이웃의 쩌우치 댁과 자오바이옌, 자오쓰천도 있었다. 마침 작은 마님이 우 씨 아줌마를 끌고 나오면서 말했다.

“밖으로 나와. 네가 정숙하다는 걸 누가 몰라. 절대로 소견 좁은 짓을 하면 안 돼.”

우씨 아줌마는 손을 잡힌 채 끌려 나와서는 울기만 했다.

‘흥, 재미있는걸. 이 청상 과부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아큐는 이런 생각을 하며 그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수재가 아까처럼 대막대기를 든 채 그에게로 달려왔다. 아무래도 자기와 관계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몸을 휙 돌려 재빨리 도망쳐 버렸다.

뒷문으로 빠져 나와 단숨에 투구츠로 돌아왔다. 잠시 앉아 있으려니 온 몸에 오싹오싹 한기가 들었다. 봄이라 해도 밤에는 아직 꽤 쌀쌀했다. 그제서야 저고리를 자오 씨 댁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그렇지만 가지러 가자니 수재의 대막대기가 너무 무서웠다.

“아큐, 개 같은 자식! 자오 씨 댁 하녀까지 희롱하다니! 나까지 잠도 못 자게 됐잖아.”

하며, 그 때 자오씨 댁 하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하인은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았으나 아큐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결국은 밤에 폐를 끼쳤다는 이유로 하인에게 술값을 물어야 했다. 아큐에게는 현금이 없었으므로 털모자를 전당포에 잡혔다. 그러고도 다섯 가지 조항에 서약까지 했다.

1. 내일 붉은 초 한 쌍, 향 한 봉을 가지고 자오 씨 댁에 가서 사죄해야 한다.

2. 자오 씨 댁에서 무당을 불러, 목을 매어 죽게 하는 귀신을 쫓는 굿을 하는데 그 비용은 아큐가 전담한다.

3. 이후로 아큐는 자오 씨 댁 문턱도 밟을 수 없다.

4. 이후에 우 씨 아줌마에게 다른 일이 생기면 책임을 아큐에게 묻는다.

5. 아큐는 품삯과 저고리를 찾아갈 수 없다.

제5장 생계 문제

아큐는 사죄 절차를 끝낸 뒤, 예전처럼 거리를 쏘다녔다. 이 날부터 마을 여자들은 아큐를 보기만 하면 문 안으로 숨어 버렸다. 심지어는 쉰 살에 가까운 쩌우치 댁까지도 남들을 따라서 숨어 버렸다. 게다가 열한 살밖에 안 된 계집애까지 불러들이는 게 아닌가. 아큐는 기이하게 생각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술집에서는 외상 술을 주려 하지 않았다. 또 며칠 동안 품을 팔아 달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외상 술을 주지 않는 것은 참으면 그만이지만, 품을 팔아 달라는 사람이 없게 되면 아큐는 배를 곯아야 했다. 이것은 확실히 ‘개 같은 놈’의 일이었다.

자오 씨 댁에서는 샤오디를 데려다가 일을 시키고 있었다. 이 샤오디란 놈은 말라 빠져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놈이 자기 밥줄을 끊으려 한다고 생각하니, 아큐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며칠 후, 아큐는 첸 영감 댁 담장 앞에서 우연히 샤오디를 만났다. 아큐는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짐승 같은 놈!”

아큐는 눈을 부릅뜨고 으르렁거렸다. 입에서 침이 튀어나왔다.

“나는 버러지야. 이러면 됐지.”

샤오디가 말했다. 아큐는 샤오디의 이러한 겸손이 도리어 비위가 상했다. 당장에 덤벼들어 샤오디의 변발을 잡아채었다. 샤오디는 한 손으로는 자기 머리채 밑을 감아 쥐고, 또 한 손으로는 아큐의 변발을 잡아채었다. 옛날에는 샤오디 같은 것은 어림도 없는 상대였다. 그런데 요즈음 잔뜩 굶주린 아큐는 샤오디 못지않게 말라 있었다. 그래서 힘도 엇비슷해져 버렸다.

한 삼십 분쯤 흘렀을까. 그들의 머리에서 김이 올랐다. 이마에서도 땀이 흘렀다. 아큐의 손이 늦추어지자 샤오디의 손도 늦추어졌다.

“두고 보자, 개새끼…….”

이 싸움은 이렇게 무승부로 끝났지만, 아큐에게는 여전히 삯일을 해 달라는 사람이 없었다.

꽤 따스해진 어느 날이었다. 그렇지만 아큐에게는 산들바람까지도 써늘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그나마 견딜 만했는데, 배가 고픈 것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아큐는 어쩔 도리가 없이 밖에 나가 먹을 것을 구해 보기로 했다.

새로 모를 낸 연푸른 논들이 눈에 들어왔다. 간간이 밭을 가는 농부들의 모습도 보였다. 아큐는 ‘먹을 것을 구하려고’ 무작정 걷다 보니, 어느덧 정수암까지 와 버렸다. 나지막한 담 안에 드넓은 무밭이 펼쳐져 있었다. 아큐는 잠깐 주저주저하다가 사방을 돌아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큐는 담을 기어 올라갔다. 그러자 흙덩이가 우르르르 떨어져 내렸다. 아큐는 다리가 덜덜 떨렸다. 가까스로 뽕나무 가지를 붙잡고 뒤뜰 쪽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무를 뽑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둥그런 머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늙은 여승이었다. 아큐는 재빨리 무 네 뿌리를 뽑아 품 속에 싸 안았다.

“나무 아미타불. 아큐, 왜 남의 채소밭에 뛰어들어 무를 훔치는 거냐?”

“내가 언제 채소밭에 뛰어들어 무를 훔쳤다는 거냐?”

아큐는 도망을 치다가 뒤를 흘낏거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건 뭐지?”

“이게 당신 거야? 그럼 무더러 당신 거라고 말을 시킬 수 있어, 있어?”

이렇게 말하면서 아큐는 곧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커다란 검정개 한 마리가 쫓아와 아큐의 다리를 물어뜯으려 하였다. 이 때 다행히 옷섶에서 무 하나가 떨어지는 바람에 그 검정개가 놀라 멈칫하였다. 그 틈에 아큐는 담장 위로 기어 올라가 밖으로 뛰어내렸다.

제6장 중흥에서 말로까지

그 후 한동안 보이지 않던 아큐가 웨이좡에 다시 나타난 것은 그 해 추석이 막 지난 무렵이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아큐는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주막에 나타났다. 계산대로 다가가더니 허리춤에서 은전과 동전을 한 움큼 꺼내어 계산대 위에 뿌렸다.

“현금이다, 술 가져와!”

입고 있는 옷은 새로 맞춘 겹옷이었다. 보아하니, 허리춤에 큰 전대(돈이나 물건을 넣고 허리에 차거나 어깨에 메도록 만든, 폭이 좁고 긴 자루)를 찼는데, 묵직하게 늘어져서 허리띠를 바짝 졸라 매고 있었다. 그러자 심부름꾼, 주인, 술 손님, 행인 할 것 없이 모두가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마음속에서 존경심이 일어나는 사람도 있었다.

“호, 아큐! 돌아왔군! 돈을 많이 벌었나 본데!”

“응, 돌아왔어. 문 안에 들어갔다 왔지!”

아큐에 대한 소문은 당장 온 마을에 퍼졌다. 사람들은 새옷을 입고 나타난 아큐가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 알고 싶어했다. 주막에서, 찻집에서, 사당 처마 밑에서 사람들은 아큐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어느 틈에 아큐는 그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아큐의 말로는 문 안 거인(擧人, 과거에 급제한 선비) 영감 댁에서 일을 거들었다고 했다. 이 한 마디만으로도 듣는 사람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거인은 사방 일백 리를 통틀어서 그 사람 하나뿐이었다. 그 댁에서 일을 거들었다는 것은 당연히 존경을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큐는 거인 영감이 실제로는 ‘개 같은 놈’이기 때문에 다시는 일을 거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람들은 아큐의 말을 들으며 통쾌해 하기도 하고 탄식을 하기도 했다. 아큐가 거인 영감 댁에서 일을 거든다는 것은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거들러 가지 않는다고 하니 아깝기도 했던 것이다.

“자네들, 사람 목 자르는 본 적이 있나? 허, 볼 만해. 혁명당을 죽이는데, 굉장했다구!”

아큐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몸을 흠칫했다. 그러자 아큐는 느닷없이 왕털보의 뒷덜미를 내려치며 “싹둑!” 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왕털보는 깜짝 놀라 재빨리 목을 움츠렸다.

하여간 얼마 안 가서 아큐의 명성은 안방에 있는 여자들한테까지 좍 퍼졌다.

“쩌우치 댁은 아큐에게 남색 비단 치마를 샀대.”

“자오바이옌 어머니도 애들에게 주려고 빨간 모슬린 저고리를 샀다는군. 단돈 30전에 말이야.”

여자들은 마주 앉아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아큐가 나타나길 눈 빠지게 기다렸다. 아큐에게 비단 치마를 산 쩌우치 댁은 너무 기쁜 나머지, 자오 마님에게 들고 가 자랑을 하였다. 자오 마님은 싸고 좋은 털배자를 사고 싶다며, 쩌우치 댁에게 즉시 아큐를 찾아 데려오라고 하였다. 자오 씨 댁 식구들은 초조하게 아큐를 기다렸다. 한참 만에야 아큐가 쩌우치 댁을 따라 들어왔다.

“아큐, 문 안에 가서 돈을 벌었다지? 다름 아니라 내가 좀 필요한 것이 있어 그러는데…….”

“다 팔고 남은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 팔았어? 그럼, 이 다음에라도 물건이 생기면 먼저 우리 집으로 가져오게나.”

아큐는 내키지 않다는 듯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 자오 영감과 수재는 아큐의 불손한 태도에 몹시 화가 났다. 그래서 이 염치 없는 놈을 마을에서 아예 쫓아내 버릴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 심한 것 같아 그만두었다.

한편 건달패들은 아큐에게 돈을 벌게 된 내막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큐는 숨기려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우쭐거리며 자기 경험을 털어놓았다. 사실은 거인 영감 댁에서 일을 한 게 아니라 도둑질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큐가 직접 담을 넘은 것은 아니고, 자기는 단지 밖에서 물건만 받아 냈다고 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아큐가 좀도둑에 불과하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이로 해서 마을 사람들은 ‘역시 아큐는 두려워할 만한 존재’가 못 된다고 생각하였다.

제7장 혁명

아큐가 전대를 자오바이옌에게 팔아 넘긴 그 날, 커다란 배 한 척이 자오 씨 댁 나루터에 닿았다. 그것은 바로 거인 영감의 배였다. 그 배는 웨이좡에 굉장한 불안을 실어다 주었다. 정오도 못 되어 온 마을이 술렁거렸다. 혁명당 때문에 거인 영감이 우리 마을로 피난 왔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아큐는 문 안에 갔을 때 혁명당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또 자기 눈으로 혁명 당원이 참수(목을 벰)당하는 것을 실제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선가 혁명당은 반역이며, 반역은 그에게 고난을 가져온다는 말을 주워 들은 적이 있어서, 그들을 막연히 증오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이 백 리 사방으로 이름을 떨치는 거인 영감까지 두렵게 하다니, 아큐로서는 신명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혁명이란 것도 괜찮은데……. 개 같은 놈의 세상을 뒤집어 엎어라. 빌어먹을……, 나도 혁명당이 돼야지. 혁명이다, 혁명! 좋았어! 내가 갖고 싶은 건 모두 내 것이다. 어떤 계집이든 모두!’

자오 씨 댁 두 나리와 자오바이옌도 대문간에 나와 혁명 이야기를 주 고받고 있었다. 아큐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노래를 부르며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자오 영감이 아큐를 불러 세웠다.

“아큐 군! 아큐 군, 저어…… 요새 돈 잘 벌리나?”

“돈? 물론, 갖고 싶은 건 모두…….”

“아……큐 형, 우리네처럼 가난뱅이야 괜찮겠지?”

자오바이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짐짓 혁명당의 속셈을 떠보려는 듯이.

“가난뱅이라고? 너야 나보다 부자잖아.”

아큐는 그렇게 말하고는 계속해서 길을 걸어갔다. 그는 마음이 들떠서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다가 밤이 이슥해서야 투구츠로 돌아왔다.

‘혁명? 재미있는데……. 웨이좡의 촌놈들은 아마 볼 만할 거야. 무릎을 꿇고 애걸하겠지. 아큐, 목숨만 살려 줘. 누가 들어 준대? 첫 번째로 죽어야 할 놈은 자오 영감, 수재, 또 가짜 양놈……. 그러고 나서 수재 여편네의 침대를 우선 투구츠로 옮겨 놓고, 그리고 첸 가(哥)네 탁자와 의자를 늘어놓고……. 그 다음엔 여자를 데려와야지. 쩌우치네 딸년은 아직 애송이고, 그리고 가짜 양놈 여편네는 변발도 없는 녀석과 잤으니, 흥 좋은 물건은 못 되지.”

아큐는 이런저런 공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거리로 나가 보니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배도 고팠다. 아큐는 천천히 걸어 어느덧 정수암에 이르렀다.

암자는 지난 번처럼 조용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문을 두드려 댔다. 검은색 대문에 흠집이 났을 때에야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늙은 여승이 고개를 내밀었다.

“뭐하러 또 왔지?”

“혁명이다. 알고 있지?”

“혁명, 혁명이라고? 혁명은 벌써 했어. 도대체 네놈들이 혁명한다고 우리더러 어쩌란 말이냐?”

늙은 여승은 핏대를 올리며 말했다.

“뭐?”

“몰랐어? 그놈들이 벌써 혁명했어.”

“누가?”

“수재하고 양놈하고!”

아큐는 너무나 뜻밖이었으므로 얼떨떨해졌다. 늙은 여승은 아큐가 풀이 꺾이는 것을 보고 재빨리 문을 잠가 버렸다.

한편 자오 씨 댁의 수재는 혁명당이 밤 사이에 입성했다는 것을 알자, 잽싸게 변발을 머리 꼭대기에 틀어 얹었다. 그리고 여태껏 상대도 하지 않던 가짜 양놈 첸 가를 아침 일찍 방문했다. 그들은 곧 동지가 되어서 혁명에 나서기로 약속했다. 그들은 머리를 짜낸 끝에 정수암에 ‘황제 만세 만만세’라고 적힌 용패가 있다는 걸 생각해 냈다. 그래서 즉시 암자로 달려가서 혁명을 한 것이다. 늙은 여승이 막아서서 잔소리를 했으나, 그들은 여승을 만주 정부와 한 패로 몰아 몽둥이 세례를 주었다. 그들이 가 버린 뒤에 여승이 정신을 차려 보니, 용패는 벌써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아큐는 이러한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었다. 그는 오늘 아침에 늦잠을 잤던 것이 무척 후회스러웠다. 그런데 괘씸한 일은 그들이 자기를 부르러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8장 혁명 금지

웨이좡의 인심은 조금씩 진정되어 갔다. 다만 변발을 머리 꼭대기에 틀어 얹은 사람이 점차 늘어 갔다. 여름이라면 변발을 머리 꼭대기에 틀어 얹거나 잡아 매는 일이 조금도 신기할 것이 없겠지만, 지금은 늦가을이었다. 그렇게 뒤통수를 훵하게 비운 채로 거리를 나다니면, 사람들은 “와, 혁명당이 온다.” 하고 소리 쳤다. 아큐는 그 소리가 그지없이 부러웠다. 게다가 아큐는 수재가 머리를 그렇게 틀어 얹었다는 말을 듣자, 자신도 흉내를 내고 싶었다. 그는 대젓가락으로 변발을 머리 꼭대기에 틀어 얹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큐는 기분이 나빠 아무에게나 짜증을 부렸다.

수재는 가짜 양놈에게 부탁하여 자유당에 가입하고 복숭아 은배지를 달게 되었다. 자오 영감은 이것 때문에 갑자기 더 훌륭해져서는 아들이 처음 수재가 되었을 때보다도 더 오만해졌다. 아큐를 봐도 본 체도 하지 않았다. 아큐는 매우 못마땅하였다. 혁명을 하려면 그저 변발만 틀어 얹는 것만으로는 안 되며, 일단 혁명당과 연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가짜 양놈을 찾아가 의논을 해 보기로 했다.

가짜 양놈네 집 대문은 열려 있었다. 가짜 양놈은 뜰 한가운데 서 있었는데, 새까만 서양 옷에다 복숭아 은배지를 달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자오바이옌과 건달패 세 놈이 공손한 자세로 그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아큐는 슬그머니 걸어가 자오바이옌 뒤에 섰다. 가짜 양놈은 그를 보지 못했다. 그는 눈이 뒤집힐 정도로 연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큐는 그가 잠시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에…… 저…….”

“뭐야?”

“저도…….”

“나가!”

“저도 혁명을…….”

“썩 꺼져!”

가짜 양놈은 지팡이를 높이 쳐들었다. 자오바이옌과 건달패들도 덩달아 소리 쳤다.

“선생께서 나가라시잖아. 말이 안 들려!”

아큐는 할 수 없이 물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거리로 나오자 속에서 서글픔이 끓어 올랐다. 아큐는 여태까지 이렇듯 진한 쓸쓸함을 맛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모욕감까지 생겼다. 앙갚음을 하기 위해 당장 변발을 풀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한밤중까지 쏘다니다가 선술집이 문을 닫을 때쯤 해서야 터벅터벅 투구츠로 돌아왔다.

딱, 펑!

그 때,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왔다. 아큐는 쓸데없이 참견하기를 좋아했다. 곧 어둠 속을 내달았다. 그러자 맞은편에서도 사람 하나가 이리로 달려오는 게 아닌가. 아큐는 덩달아서 급히 몸을 돌려 그 사람을 뒤따라 도망쳤다. 그 사람이 골목을 돌면 자기도 돌고, 그 사람이 서면 자기도 섰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샤오디였다.

“자…… 자오 씨 댁이 약탈당했어!”

샤오디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달려가 버렸다. 아큐는 살금살금 길 모퉁이를 돌아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자세히 보니, 흰 투구에 흰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연달아 궤짝과 가구를 메고 나왔다. 아큐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는 싫증이 나도록 지켜 본 후에야 투구츠로 돌아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몹시 불쾌했다. 웨이좡에 드디어 흰 투구에 흰 갑옷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를 부르러 오지 않았다. 좋은 물건을 무수히 들어냈는데도 내 몫은 없었다. 이건 전부 그 빌어먹을 가짜 양놈 때문이다. 내가 혁명하는 것을 그놈이 금지시켰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번에 내 몫이 없을 리가 없지. 아큐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내가 혁명하는 것을 막다니, 네놈만 혁명하냐? 좋아, 혁명해라. 혁명은 목이 잘리는 죄목이니까. 내가 고발해야지. 네놈이 문 안에 끌려가 목이 잘리는 꼴을 보아야겠다. 싹둑, 싹둑!”

제9장 대단원

자오 씨 댁이 약탈당하자 웨이좡 사람들은 매우 통쾌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서워했다. 아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나흘 뒤, 아큐는 한밤중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사람들에게 붙잡혀 문 안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아큐는 목책(말뚝 같은 것을 죽 늘여 박은 울타리)이 둘러쳐진 어느 집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넓은 대청 앞에는 머리를 빡빡 민 늙은이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병정들이 늘어서 있었다. 양옆에는 또 두루마기를 걸친 사람들이 십여 명 서 있었다. 그들도 늙은이처럼 머리를 빡빡 깎고 있었는데, 등에는 가짜 양놈처럼 한 자쯤 자란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모두가 험악한 얼굴로 아큐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큐는 무릎에서 힘이 빠져 나가 바닥에 털썩 꿇어앉고 말았다.

“서서 말해! 꿇어앉지 마!”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소리 쳤다. 하지만 아큐는 몸이 저절로 쭈그러 들어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노예 근성!”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경멸하듯 말했다.

“사실대로 말해 봐. 나는 다 알고 있으니까. 바른 대로 말한다면 놓아 줄 수도 있어.”

“저는 원래…… 혁명을 하려고…….”

아큐는 멍하게 앉아 있다가 겨우 떠듬떠듬 말했다.

“그럼 어째서 여기에 오지 않았지?”

“가짜 양놈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해도 늦었어. 지금 너의 패거리는 어디 있지?”

“네, 뭐라고요?”

“그 날 밤, 자오 씨네 집을 턴 패거리 말이야.”

“그놈들은 저를 부르러 오지 않았습니다. 자기들끼리만 들고 가 버렸습니다요.”

“어디로 갔지? 말하면 놓아 주지.”

“저는 모릅니다. 그놈들은 저를 부르러 오지 않았습니다.”

“달리 할 말은 없나?”

늙은이가 부드럽게 물어 왔다. 아큐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할 말이 없었다.

“없습니다.”

그러자 두루마기 입은 사람 하나가 종이 한 장과 붓 한 자루를 아큐 눈앞에 가져오더니 붓을 쥐어 주려고 하였다. 아큐는 깜짝 놀랐다. 그는 한 번도 붓을 쥐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큐가 어쩔 줄을 몰라 머뭇거리자, 그는 손가락으로 한 군데를 가리키며 서명하라고 하였다.

“저……, 저는…… 글자를 모릅니다.”

아큐는 붓을 움켜잡은 채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그럼, 너 좋을 대로 동그라미나 하나 그려 넣어!”

아큐는 동그라미를 그리려고 했지만 손만 부들부들 떨릴 뿐이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아큐를 위해 종이를 땅바닥에 펴 주었다. 아큐는 엎드려서 젖 먹던 힘까지 내어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런데 빌어먹을, 붓이 말을 듣지 않았다. 부들부들 떨면서 간신히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붓이 자꾸만 삐져나갔다. 그려 놓고 보니 수박씨 모양이었다. 이윽고 사람들은 그를 집 모퉁이에 있는 자그마한 방에 가두었다.

아큐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살다 보면 어떤 때는 끌려 나가기도 하고 끌려 나오기도 하는 것이며, 동그라미를 그려야 할 때도 있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다만 동그라미가 제대로 안 그려진 것이 하나의 오점으로 마음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다음날 아큐는 다시 대청 앞으로 끌려 나왔다. 늙은이는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할 말 없나?”

“없습니다.”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과 짧은 웃옷을 입은 사람들이 갑자기 달려들어 그에게 까만 글씨가 씌어 있는 흰 무명 등거리(조끼처럼 등에 걸쳐 입는 홑옷)를 입혔다. 아큐는 매우 기분이 나빴다. 이건 상복 같은데, 상복을 입으면 재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두 손이 등뒤로 묶이어 목책 밖으로 끌려 나갔다.

아큐는 포장이 없는 수레에 올려졌다. 수레는 곧 움직였다. 앞에는 총을 멘 병정과 자위 대원이 있었고, 양 옆에는 구경꾼들이 쑤군거리고 있었다. 그제서야 아큐는 깨달았다. 이거 목 잘리러 가는 게 아닌가. 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살다 보면 목이 잘리는 수도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왜 형장 쪽으로 가지 않는 것일까? 그는 죄인을 이렇게 조리돌린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알았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살다 보면, 어느 때는 조리돌리는 일도 있으려니 하고 생각했을 테니까. 아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따라오고 있었다. 뜻밖에도 길 옆 구경꾼 속에 우 씨 아줌마가 있었다.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아큐는 자신이 배짱도 없이 노래도 한 마디 부르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머릿속에서 그가 아는 노래 제목이 바람개비처럼 휘돌았다. 그래, ‘쇠채찍을 손에 잡고 네놈을 칠 테다’를 부르자. 그는 손을 들어 올리려고 하다가, 자신의 두 손이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래 부르기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 속에서 승냥이가 울부짖는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수레는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아큐는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구경꾼들을 바라보았다. 그 때, 그의 머릿속에 4년 전에 산기슭에서 만났던 굶주린 이리 한 마리가 떠올랐다. 그는 어찌나 무서웠던지 거의 죽어 나자빠질 지경이었다. 다행히 손에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있었기에, 마음을 다져 먹고 무사히 웨이좡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이리의 눈은 잊혀지지 않았다. 불길하고도 무서웠다. 그 두 눈은 도깨비불처럼 번쩍거렸다. 멀리서 쫓아와 자기 살을 꿰뚫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 그는 또다시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무서운 눈알을 보았다. 그 눈은 이미 자기 살을 씹어 삼켜 버렸으며, 이제는 자기 살 외에 다른 것까지 씹어 삼키려 하고 있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오면서, 이 눈알들은 하나로 합쳐져 벌써 그의 영혼을 물어뜯고 있었다.

“사람 살려!”

그러나 아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눈앞이 캄캄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났다. 온 몸이 먼지처럼 풀썩 흩어지는 것 같았다.

여론을 들어 보면, 웨이좡에서는 별로 이의가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아큐가 나쁘다고 말했다. 그가 총살당한 것은 그가 나쁘다는 증거라는 것이었다. 나쁘지 않았다면 왜 총살당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문 안에서는 대부분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총살은 목 자르는 것만큼 볼 만한 것이 못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건 얼마나 시시한 사형수인가. 그토록 오래 조리를 돌렸는데도 노래 한 마디 듣지 못하다니! 그들은 헛걸음만 쳤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허세욱 옮김)


제 2 장 우승의 기록

아큐는 성명이나 본적만 애매한 게 아니라 그의 이전 행장(行狀 : 평생 동안 지내 온 일) 역시 모호하다. 왜냐 하면, 웨이좡 사람들이 아큐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라고는 그들에게 일손이 딸릴 때나 아큐를 곯려 줄 때뿐이므로, 여태 그의 행장 같은 것에는 유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큐 자신도 또한 말하려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말다툼할 때나 가끔 눈을 부릅뜨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예전엔…… 네놈보다도 훨씬 잘 살았어. 네까짓게 뭐야!"

아큐는 집도 없이 웨이좡에 있는 토곡사(土谷祠 : 지신에게 제사지내는 사람)에서 살았다. 또 고정된 직업이 없이 여러 사람들 집에서 품팔이를 하였다. 보리를 베라면 보리를 베고, 방아를 찧으라면 방아를 찧고, 배를 저으라면 배를 저었다. 오래 걸릴 일이 있을 때는 임시로 주인 집에 머무르기도 했지만, 일이 끝나면 가 버리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쁠 때나 아큐를 생각했다. 그것도 날품팔이로서 기억하지, 행장 따위로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가할 때는 아큐 자체마저 모두 잊어 버리는 판국이니 행장 같은 것은 더 말할 나위 없었다. 한번은 어떤 늙은이가 "아큐는 일을 정말 잘 하는데!" 하고 칭찬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아큐는 웃옷을 벗어 붙인 채, 비쩍 말라서 볼품없는 꼴로 그 늙은이 앞에 버티고 서 있던 참이었다. 다른 사람은 이 말이 진심인지 비꼬는 건지 분간할 수가 없었는데, 아큐만은 매우 좋아했다.

아큐는 또 자존심이 강해서 웨이좡에 살고 있는 사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심지어 문동(文童 : 서당에서 함께 글공부하는 아이) 두 분에 대해서도 일말의 가치조차 없다고 여기는 터였다. 문동이라고 하면, 장래에 수지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자오 나리와 첸[錢]나리가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그들이 돈이 많다는 것 외에도, 바로 문동의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큐는 정신적으로 특별히 숭배한다는 것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는 "내 아들이라면 더 훌륭했을 거야." 하고 생각했다. 더욱이 그는 성(城)에 몇 번씩이나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아큐는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큰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성 안 사람들도 얕보았다. 예를 들어, 길이가 석 자에 넓이가 세 치 되는 나무 판자로 만든 걸상을 웨이좡에서는 '장등(長 )'이라고 부르며 그도 또한 그렇게 부르는데, 성 안 사람들은 '조등(條 )'이라고 불렀다. 그는 그건 틀린 것이며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기름에 지진 도미에 웨이좡 사람들은 파를 반 치 길이로 썰어 넣는데, 문 안에서는 가늘게 채 쳐서 넣는다. 그의 생각에는 이것도 틀려 먹고, 웃기는 일이었다. 그러나 웨이좡 사람들은 그야말로 세상 구경도 못 해 본 촌뜨기들이라, 성 안의 생선 튀김마저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아큐는 '예전에 잘 살았고' 견식(見識 : 견문과 학식)도 높을 뿐만 아니라, '못하는 게 없고' 거의 '완벽한 인간'이었지만 아깝게도 신체상 결점이 있는 게 흠이었다. 가장 사람을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은, 그의 머리에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는 라이창빠(부스럼으로 생긴 대머리)였다. 이것도 비록 그의 몸에 있는 것이지만, 아큐의 생각에도 이것만은 별반 자랑스러운 것이 못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라이란 말을 꺼렸다. 라이에 가까운 발음도 일체 하려 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점점 범위를 넓혀, '빛나다[光]'나 '밝다[亮]'도 꺼려했다. 그러다가 '등불[燈]'이나 '촛불[燭]'이란 말까지도 하려 하지 않았다. 만약 꺼려하는 짓을 범했다 하면, 그것이 고의로 한 짓이거나 무심코 한 짓이거나 간에 아큐는 곧 대머리 흉터가 온통 시뻘겋게 변해 가지고 상대방을 어림쳐 본다. 상대가 말을 더듬으면 욕을 해대고, 힘이 약하면 때리려고 덤벼들었다. 그렇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당하는 쪽은 항상 아큐였다. 그래서 그는 점점 방침을 바꾸어 대개 흘겨보기로만 했다.

누가 미처 생각이나 했을까? 아큐가 눈흘겨보기주의를 채택한 후에 웨이좡의 한량패들은 더욱 재미있어 하며 그를 놀려 댈 줄이야! 그들은 아큐를 만나기만 하면 일부러 놀란 척하며 말했다.

"하, 밝아졌다."

아큐는 으레 화를 내며 눈을 흘긴다.

"이제 보니 등잔이 여기 있었군!"

그들은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아큐는 달리 보복할 말을 생각해 내려고 하였다.

"네 놈들은 상대도 안 돼……."

이런 때 그는 자기 머리에 있는 대머리 흉터는 고상하고 영광스러운 흔적이지 결코 평범한 흔적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아큐는 식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곧 금기(禁忌)에 저촉된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았다.

한량패들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지 그를 약올리다가 드디어는 때리기까지 했다. 아큐는 형식상으로는 패했다. 한량패들은 그의 누런 변발을 쳐들어 벽에 너댓 번을 쿵쿵 박아 주고는 그제서야 만족해서 승리를 자랑하며 가 버렸다. 아큐는 한참 동안 서서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이 놈들에게 맞은 거로 치자. 요즈음 세상은 정말 돼먹지 않았거든…….' 그러는 그도 만족하게 승리를 얻은 양 가 버렸다. (허세욱 옮김)

(중략)

제 9장 대단원

조씨 댁이 약탈을 당한 뒤 미장 사람들은 되게 통쾌해 하면서도 또 두려워했다. 아큐 역시 그것은 마찬가지였었다. 그러나 나흘 뒤 아큐는 밤중에 갑자기 체포되어 현성으로 연행되었다. 그 때는 마침 캄캄한 밤이었다. 일대의 병사, 일대의 자경단원, 일대의 경찰, 그리고 다섯 사람의 탐정이 몰래 미장에 들어와 야음을 이용하여 사당을 포위하고 문 정면에 기관총을 걸어놓았다. 그러나 아큐는 튀어나오지 않았다. 한참 동안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대장이 조급해져 이십 냥의 상금을 걸었더니 자경단원 두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담을 넘어 들어갔다. 내외 호응하여 일거에 쳐들어가 아큐를 잡아 냈다. 사당밖에 걸어 놓은 기관총 곁으로 잡혀 나왔을 때에야 그는 겨우 정신이 좀 들었다.

성내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오정 때였다. 아큐는 자기가 어느 허름한 관청으로 끌려 들어가 대여섯 번 모퉁이를 돌고 나서 조그만 방에 처박혀졌음을 알았다. 그가 비틀비틀 하는 찰나에 통나무로 만든 목책의 문이 그의 발꿈치를 따라오듯 닫혔다. 목책 이외의 삼면은 모두 벽인데 자세히 보니 방 귀퉁이에도 또 두 사람이 있었다.

아큐는 좀 불안했으나 결코 그렇게 괴롭히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사당 침실이라야 이 방보다 더 편안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 두 사람도 시골뜨기인 모양인데, 차차 그들과 사귀게 되었다. 한 사람은 그의 조부 대에 체납한 묵은 소작료를 지불하라고 거인 나으리에게 고소당했다는 것이며, 또 한 사람은 무슨 일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들은 아큐에게도 물었다.

"나는 모반하려 했기 때문이오."

하고 아큐는 분명하게 대답하였다.

그는 오후에 또 목책문 밖으로 끌려 나갔다. 대청에 가 보니 상좌에는 머리를 빡빡 깎은 노인이 한 사람 앉아 있었다. 아큐는 그가 중인가 의심했다. 아래쪽을 보니 한 소대의 병사들이 서 있고 책상 옆에도 긴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10여 명 서 있는데 노인처럼 머리를 빡빡 깎은 사람도 있고, 한 자 남짓한 긴 머리를 가짜 양놈처럼 뒤로 늘어뜨린 사람도 있었다. 모두 무서운 얼굴에 성난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다. 그는 이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무슨 내력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자 별안간 무릎의 힘이 저절로 빠져 곧 끓어앉고 말았다.

"서서 말씀 드려라! 꿇어 앉으면 안돼!"

긴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들이 모두 꾸짖었다.

아큐는 그 말뜻을 알아듣기는 했으나 암만해도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어 그만 꿇어 엎드리고 말았다.

"노예 근성 ……!"

긴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경멸하듯 말했으나, 또 일어서라고는 하지 않았다.

"너 사실대로 불어라, 경치지 않게. 내 다 알고 있으니까. 불면 널 석방해 줄 테니!"

까까머리 노인이 아큐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며 침착하게 똑똑히 말했다.

"불어라!"

긴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도 큰 소리로 말했다.

"사실, 전 여기 와서 가담하려고 ………"

아큐는 멍하니 생각하다가 겨우 떠듬거리며 말했다.

"그러면 왜 오지 않았는가!"

하고 노인은 부드럽게 물었다.

"가짜 양놈이 허락하질 않았습죠!"

"허튼 소리마! 이제 와서 말해도 늦었어. 지금 너희패는 어디 있는가?"

"무슨 말씀인지?

"그날 밤 조씨 댁을 약탈했던 놈들 말야."

"그 놈들은 저를 부르러 오지 않았었습죠. 제 놈들끼리 멋대로 운반했습죠."

아큐는 이렇게 말하고는 툴툴댔다.

"어디로 달아났지? 말하면 너는 석방해 준다. "

노인은 더욱 부드럽게 물었다.

"너 무슨 더 할 말은 없는가?"

아큐는 생각해 보았으나 별로 할 말도 없으므로,

"없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긴 두루마기를 입은 한 사람이 종이 한 장과 붓 한 자루를 가지고와 아큐 앞에 놓고 붓을 그의 손에 쥐어 주려고 했다. 아큐는 이 때 거의 흔비 백산하도록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의 손이 붓과 상관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떻게 쥐는 것인지 정말 몰랐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또 한군데를 가리키며 그에게 서명하라고 했다.

"저는 ……글을 쓸 줄 모르는뎁쇼."

아큐는 붓을 덥석 움켜잡고는 황송하고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그러면 너 좋은 대로 동그라밀 하나 그려라!"

아큐는 동그라미를 그리려고 했으나 붓을 잡고 있는 손이 떨리기만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를 위해 종이를 위해 땅 위에 펴 주었다. 아큐는 엎드려 평생의 힘을 다 들여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는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될까 두려워 동그랗게 그리려고 마음먹었으나 이 밉살스러운 붓이 지나치게 무거운 데다 또 말을 듣지 않아 떨면서 간신히 그려 거의 마무리하려 할 때 붓이 위로 솟구쳐 수박씨 모양이 되고 말았다.

아큐는 자기가 동그랗게 그리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으나 그 사람은 문제삼지도 않고 재빨리 종이와 붓을 가지고 가 버렸다. 여러 사람이 또 그를 재차 목책문 안에 처넣었다. 그는 다시 목책문 안에 들어갔어도 그리 고민하지도 않았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 상 때로는 감옥에 들어가는 일도 있을 게고, 또 때로는 종이 위에 동그라미를 그려야 할 때도 있으려니 생각했다. 다만 동그라미가 동그랗게 그려지지 않은 것만은 그의 행장상의 하나의 오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곧 석연해졌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라야만 동그란 동그라미를 그릴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잠들고 말았다.

그러나 이날 밤 거인 나으린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는 대장과 시비를 했다. 거인 나으리는 장물의 반환이 급선무라고 주장했고, 대장은 요사이 거인 나으리를 그다지 안중에 두지 않게 되었으므로 책상을 두드리고 걸상을 치면서 말했다.

“일벌백계입니다. 보십쇼! 내가 혁명당이 된 지 20일도 안 되는데 약탈 사건은 10여 건인데다 범인은 모두 미궁에 빠졌으니, 내 체면은 무엇이 된단 말이오? 기껏 잡아 놓으면 당신은 또 엉뚱한 소릴하고, 안돼요! 이건 내 권한이닌까!”

거인 나으린 난처했으나 그래도 자기 주장을 견지하고 만약 장물을 돌려 주지 않으면 자기는 즉각 민정 협조의 직무를 사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장은

“마음대로 하슈!”

하고 말했다. 그래서 거인 나으리는 그날 밤 한잠도 못 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는 다음날도 사임하지는 않았다.

아큐가 세 번째로 목책문에서 끌려 나온 것은 거인 나으리가 한잠도 못 잔 그 밤의 다음날 오전이었다. 그가 대청에 와 보니까 상좌에는 역시 예의 그 까까머리 노인이 와 앉아 있었다. 아큐도 역시 전처럼 꿇어 앉았다.

노인은 부드럽게 물었다.

“너, 무슨 할 말이 없는가?”

아큐는 생각해 보았으나 별로 할 말도 없었으므로 곧, “없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긴 두루마기를 입은 여러 사람과 짧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별안간 그에게 무명으로 된 흰 둥거리를 입혔다. 거기에는 무슨 검은 글자가 씌어 있었다. 아큐는 대단히 기분이 나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치 상복을 입은 것 같았으며, 상복을 입는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양손을 뒤로 묶인 채 곧장 관청 밖으로 끌려 나왔다.

아큐는 포장 없는 차에 매어 올려졌다. 짧은 옷을 입은 사람이 몇 사람 그와 함께 같은 자리에 탔다. 이 차는 곧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엔 총을 멘 병대와 자경단원이 있고, 양쪽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많은 구경꾼이 있었다. 뒤는 어떤가? 아큐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때로는 조급해지기는 했으나 때로는 도리어 태연해졌다. 그의 심중으로는 사람이 천지간에 태어난 바에야 때에 따라서는 목을 잘리는 일도 없으란 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직도 길만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좀 이상했다. 어째서 형장쪽으로 가지 않는 것일까? 그는 이것이 조리돌림임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알았다 해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천지간에 태어난 이상 때로는 조리돌림을 당할 수도 있다고 그는 생각했을 것이니까.

그는 깨달았다. 이것은 멀리 돌아서 형장으로 가는 길이다. 필연코 댕강 목을 잘리우는 것이다. 그가 경황없이 좌우를 둘러보았다. 인파가 개미떼처럼 따르고 있었다. 뜻밖에도 길가의 구경꾼들 속에서 오마의 모습을 발견했다. 정말 오래간 만이었다. 그녀는 성내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큐는 갑자기 자기가 배짱이 없어 결국 창 한 수도 못하는 것이 퍽 부끄러워졌다. 그의 생각은 마치 선풍처럼 뇌리를 선회했다. ‘청상과부의 성묘’는 당당치가 못하고, ‘용호상쟁’ 중의 ‘후회해도 소용없다 …’도 힘차지 않다. 역시 ‘손에 잡은 고들개 철편, 네 놈을 치리’로 하자. 그는 동시에 손을 쳐들려고 했으나 비로소 손이 묶이어 있음을 상기했다. 그래서 ‘손에 잡은 고들개 철편’도 부르지 않았다.

“20년만 지나면 다시 태어나……”

아큐는 이것 저것 생각하던 중 이제까지 한 번도 입에 담아 본 적이 없는 틀에 박힌 사형수의 문구가 절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잘한다!”

군중 속에서 이리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차는 쉬지 않고 전진했다. 아큐는 갈채 소리 가운데서 눈알을 굴려 오마를 보았으나, 그녀는 조금도 그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같이 그저 병정들이 메고 있는 총만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큐는 그래서 재차 갈채하는 사람들을 주욱 휘둘러 보았다.

이 찰나 그의 사념은 또 선풍처럼 뇌리를 선회했다. 4년 전, 그는 산기슭에서 주린 이리 한 마리를 만났었다. 이리는 가까이 오지도 않 멀리 떨어지지도 않은 채 어디까지고 그의 뒤를 따라와 그의 고기를 먹으려 했다.

그는 그때 무서워서 거의 죽을 것 같았다. 다행히 손에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믿고 담이 세어져 간신히 미장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이리의 눈알은 영원히 기억에 남았다. 그것은 불길하고도 무서웠으며, 빤짝빤짝 도깨비불처럼 빛나는 두 눈이 멀리서 그의 육체를 꿰뚫 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 또 그는 여태껏 보지 못했던 더욱 두려운 눈을 본 것이다. 그것은 둔하고 또 날카로워 벌써 그의 말을 씹어 먹으려는 듯 언제까지도 멀지도 않게 그의 뒤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이런 눈알들이 하나로 합해졌다 싶더니 벌써 그곳에서 그의 영혼을 물어뜯고 있었다.

‘사람 살류…“

그러나 아큐는 입밖에 내서 말하지는 않았다. 그는 벌써부터 두 눈이 깜깜해지고 귓속은 멍해져 마치 전신이 작은 티끌같이 날아서 흩어지는 듯함을 느꼈다.

당시의 영향으로 말하면 가장 큰 영향을 입은 사람은 오히려 거인 나으리였다. 끝내 장물이 반환되지 않았으므로 그의 온 집안은 울음 바다가 되었다.

그 다음이 조씨 댁이었다. 수재가 성내로 고소하러 갔다가 악질혁명당에게 머리채를 잘렸을 뿐 아니라 또 20냥의 포상금을 뜯겼기 때문이었다.

이날부터 그들은 점점 전조의 유신다운 냄새를 풍겼다.

여론으로 말하면 미장에서는 별로 이의도 없었고, 자연 모두를 아큐를 나쁘다고 말했다. ‘총살당한 것은 곧 그가 나쁜 증거야! 나쁘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총살을 당한단 말인가?’

그러나 성내의 여론은 반대로 좋지 않았다. 그들의 대부분은 불만이었다. 총살은 참수만큼 볼 만하지도 못하군. 더구나 그렇게 변변찮은 사형수가 어딨겠는가! 그렇게 오래도록 거리를 끌려 돌아다니면서 그예 창 한 수 안 부르다니! 그들은 한 바퀴 헛걸음만 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지은이 : 루쉰(魯迅)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갈래 : 장편 소설. 백화 소설. 풍자 소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성격 : 비판적. 풍자적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배경 : 시간(청조 말기 신해 혁명 당시). 공간(중국의 미장이라는 조그만 마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구성 : 아큐라는 인물의 일대기적인 성격을 지닌 소설이기 때문에 전기적인 구성을 보이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제재 : 아큐의 비극적 일생, 혁명기의 중국 사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주제 : 권력과 술수에 희생되는 아큐의 비극적 일생. 변화 무쌍한 인정 세태에 따른 아큐의 비극적 죽음, 현실을 바로 인식하지 않고 자기 기만을 하는 인물과 사회의 운명, 열강 침략기 중국 민족의 노예 근성을 비판함(아큐라는 인물에 대한 탐색을 통해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과거의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지 못한 중국 사회의 몰락 과정을 고발하는 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아큐는 과거 중국의 병의 근원을 총체적으로 안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특징 : 서술의 특성은 반어적인데, 아큐라는 하찮은 인물의 이야기에 거룩한 위인에게나 어울릴 '정전'이라는 제목을 썼다는 것부터가 그 예이다. 또한 평가나 판단을 자제하고 엄격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냉정하게 서술하고 있어 더욱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하여 자가는 구시대의 모순 속에서 싹트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의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전환기 중국 사회의 모습을 풍자함으로써, 중국 사실주의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의의 : 한문학의 전통적인 전(傳)의 형식으로 쓰여진 중국의 대표적인 근대 소설로 혁명기의 중국 사회를 풍자하였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줄거리 : 중국 작가 루쉰〔魯迅〕의 소설. 1921년 12월 4일부터 22년 2월 12일까지 《신보부간(晨報副刊)》에 매주 또는 격주로 게재되었다. 발표할 때의 서명은 파인(巴人)이었다. 뒤에 작자의 첫번째 창작집 《눌함》에 수록되었다. 정확한 이름도 모르는 고용농민 아큐〔阿Q〕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 무렵 중국 민족의 약점인 <정신승리법>, 즉 노예근성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함과 동시에 신해혁명(辛亥革命)에 끌리면서 오히려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되는 아큐의 운명을 그려 신해혁명의 본질을 비판하고, 중국혁명에서 참으로 구제되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등을 그려냈다. 중국 근대문학의 대표작이다.

1장은 작가가 아큐의 전기를 쓰기 어려운 점 등에 대해서 서술된다. 아큐의 이름 등 정체가 불확실한 점이 이야기된다. - 서 - 액자 외부

2장은 미장 마을에서 날품팔이를 하는 아큐의 사는 모습과 주위 사람들의 그에 대한 평판이나 대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등이 이야기된다. 아큐가 허드렛일을 하고 건달들에게 맞으면서도 정신 승리법으로 사태에 진지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양태를 묘사한다. - 승리의 기록

3장은 아큐가 대갓집과 관계 있는 듯이 이야기하여 쫓겨나고 비구니를 희롱하는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 속 승리의 기록

4장은 대갓집 하녀에게 동침을 요구했다가 얻어맞고 벌금을 무는 이야기이다. - 사랑의 비극

5장은 하녀와의 사건 이후 일거리를 잃은 아큐가 일으킨 소란과 성 안으로 돌아온 아큐가 돈을 벌었다고 떠벌리지만 점차 그것이 도둑질한 것임이 드러나는 이야기이다. - 생계 문제

6장 중흥에서 말로까지

7장은 신해 혁명이 일어나 혁명당이 입성하자 공연히 으시대는 아큐의 모습이 묘사된다. - 혁명

8장은 혁명 이후에도 큰 변화가 없는 속에서 대갓집이 폭도에게 약탈되는 이야기이다. - 혁명 금지

9장은 아큐가 폭도의 한 사람으로 오인되어 사형당하는 이야기이다. - 대단원

아큐는 날품팔이꾼으로 지극히 무능하고 우매하지만 자존심은 강한 성격이다. 그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모욕을 소위 정신적 승리법이라는 것으로 이겨 나간다. 근대화 과정의 혼란 속에서 제법 약삭빠르게 처신하려 하지만, 그의 무지와 급한 성격으로 인해 파멸에 이를 뿐이다. 웨이좡에까지 밀어닥친 신해 혁명의 물결을 보고, 그 혁명의 이념이며 구체적인 전개 과정에는 전혀 무지한 채 단지 힘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만 결국 총살당하고 만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출전 : <아큐정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제 2 장 우승(優勝)의 기록(記錄)

아큐(阿Q)는 성명과 본적이 분명치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행적(行跡 : 지내온 내력, 그것을 적은 글) 또한 분명치 않다. 왜냐 하면 미장 사람들의 아큐에 대한 관심은 다만 그에게 일을 부탁할 때나, 그를 두고 농담할 때에만 국한되어 있었으므로(아큐가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사람임을 말해 주고 있다. 이런 사람이 혁명의 와중에서 주요 반동으로 몰려 처형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비판하는 것이 이 소설의 의도이다.)지금까지 그의 '행적'엔 유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를 부리는 데는 관심이 있지만 그의 삶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말). 게다가 아큐 자신도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남과 말다툼할 때 이따금 눈을 부릅뜨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도 그전에는……네까짓 놈보다는 훨씬 더 잘 살았어! 네 따위가 무어야!"

아큐는 집도 없이 미장(未莊)의 사당(祠堂) 안에 살고 있었으며 일정한 직업도 없었다. 다만 날품팔이를 하면서, 보리를 베라면 보리를 베고, 쌀을 찧으라면 쌀을 찧고, 배를 저으라면 배를 젓기도 했다. 일이 좀 오래 걸릴 때는 임시로 주인집에서 묵기도 했으나 끝나면 곧 돌아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바쁠 때에는 아큐를 생각해 내나, 그것도 시킬 일이 있을 때뿐이지 그의 '행적'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한가해지면 아큐라는 존재조차도 잊어버리는 판국이니 '행적'은 더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꼭 한 번 어느 노인이, "아큐는 정말 일꾼이야!"하며 칭찬한 적이 있었다. 이 때 아큐는 온통 옷을 벗은 채로 멋적은 듯이 말라빠진 풍채로 그 노인 앞에 서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 말이 진심인지 빈정거림인지 잘 짐작이 가지 않았으나, 아큐는 대단히 기뻐했다.

아큐는 또한 자존심이 강했다. 미장 주민들은 하나같이 눈에 차지 않았고(주민들은 아큐의 존경이나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 않고 미흡하게 느껴지고) 심지어 두 분의 '글방 도련님'에 대해서까지도 일소(一笑 : 업신여기거나 깔보아 웃음)의 가치조차 없다고 여기는 표정을 지었다. 무릇 '글방 도련님'이란 장래 수재로 변할 수도 있는 사람이다. 조(趙 : 짜오) 나으리와 전(錢 : 치엔) 나으리가 주민들로부터 크게 존경을 받고 있는 이유도, 돈이 많다는 것 이외에 두 사람 모두 '글방 도련님'의 아버지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독 아큐는 마음 속으로 특별히 존경한다는 표시를 하지 않았다. '내 아들이었다면 더 훌륭했을 거야!'하고 그는 생각했다. 게다가 몇 번 성 안으로 들락거렸던 일은 자연 그의 자부심을 더욱 강하게 했다.(당시에 성내에 들어간다는 것은 자랑거리가 되지만, 아큐가 성내에 들어간 것은 허드렛일을 하기 위한 것이므로 자랑거리가 될 수 없는데도 자만심을 느낀다는 점에서 그의 인간 됨됨이가 허세적이고 형편없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 그는 성 안 사람들까지도 퍽 경멸하였다(앞에서는 성 안을 들락거렸던 일에 자부심을 가진다고 해 놓고 여기서는 다시 성 안 사람들을 경멸한다고 했다. 모든 사람을 아무런 이유 없이 경멸한다는 것을 풍자한 표현이다.). 예컨대, 길이 석 자, 폭 세 치의 널빤지로 만든 걸상을 미장에서는 '긴 걸상'[장등(長 )]'이라고 부르며, 그도 '긴 걸상'[장등]'이라고 불렀는데 성 안의 사람들은 '긴 의자[조등(條 )]'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것은 틀린 일이며 가소로운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도미를 튀길 때 미장에서는 모두 반 치 길이의 파를 얹는데 성 안에서는 잘게 썬 파를 얹는다. 이것도 틀린 것이며 가소롭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미장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모르는 가소로운 시골뜨기들로 그들은 성 안의 생선 튀김은 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아큐의 편벽한 사고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 당시 중국인들을 풍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큐가 '옛날에는 잘 살았고', 견식도 높고, 게다가 '정말 일꾼'이니 본래 '완벽한 인간'이라고 할 만하지만, 가련하게도 그에겐 약간의 신체상(체질상)의 결점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가장 놀림을 받는 것은, 그의 머리에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는 부스럼 자국이 몇 군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큐의 생각에도 비록 그의 몸에 있는 것이기는 하나 자랑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곧 '부스럼'이라는 말뿐 아니라, '부스럼 자국'과 비슷한 발음의 말조차 꺼려했으며, 그것이 점점 더 확대되어 '빛나다[光]'라는 말도, '밝다[亮]'라는 말도 금기로 삼았고 더 나아가서 '등불'이라던가 '촛불'이라는 말까지 금기시하는 것이었다. 그 금기를 범하는 자가 있으면 고의든 아니든 아큐는 부스럼 자국까지 벌겋게 하며 화를 내었다. 상대를 어림쳐 봐서(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대강 살펴보고 짐작해서) 말솜씨가 좋지 않은 놈이면 매도(罵倒)하고, 기운이 약한 놈이면 두들겨 주는 것이었다(인간 됨됨이의 비열함이 보임).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대체로 아큐가 당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는 차츰 방침을 바꾸어 대개는 화난 눈으로 노려보기로 했다.

아큐가 '노려보기주의(主義)( 다른 사람들에게 당하는 일이 많아서)'를 채택한 뒤로 미장의 건달들은 더욱더 그를 놀려대는 것이었다. 만나기만 하면 짐짓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이구, 밝아졌다!"

아큐는 틀림없이 성을 내고 노려본다.

"여기 원래 보안등이 있었군 그래."

그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아큐를 무시하고, 업신 여겼다)

아큐는 할 수 없이, 따로 보복할 말을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네깐 놈들과는 상대도 안 돼……."

이 때 그는 마치 자신의 머리에 있는 것은 고상하고 영광스러운 부스럼 자국이지, 평범한 부스럼 자국이 아닌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아큐는 견식이 높은 사람이므로 '금기(禁忌)'에 조금 저촉된다는 걸 알고서 그만 말을 잇지 않는 것이었다.

건달들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를 계속 놀려대어 마침내 치고 받는 싸움이 된다. 그러나 아큐는 형식상으로는 패배한다. 놈들에게 노란 변발을 나꿔채이고, 벽에 퍽퍽 그의 머리를 너댓 번 짓찧는다. 건달들은 그러고 나서야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돌아간다. 아큐는 잠시 동안 우두커니 서서 '내가 자식놈에게 얻어맞은 걸로 치지. 요즘 세상은 돼먹지 않았어…….'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아큐는 물리적인 힘으로 대응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 합리화를 통해 자신만의 승리를 구가한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본격적으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자아 도취는 현실에 대한 대응 의지를 꺾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그도 만족해서 의기양양[意氣揚揚으로 비슷한 말로 의기충천(意氣衝天), 득의양양(得意揚揚), 득의만만(得意滿滿)이 있고, 반대말로 의기소침(意氣銷沈)이 있다]해 가버린다.

아큐는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나중에 하나하나 말해 버린다. 그래서 아큐를 곯려 주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이러한 일종의 정신적 승리법(문제점은 세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데 어렵게 하고,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아큐가 현실에서 패배하였으면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생각 속에는 승리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방식을 정신적 승리법이라고 했다.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로서 중국인들의 정신주의를 풍자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욕과 폭력을 당해도 그냥 무시해 버리고 자신이 승리했노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당시 중국 정부와 국민들의 자세를 풍자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 후로는 놈들이 그의 노란 변발을 나꿔챌 때는 먼저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큐! 이것은 자식이 애비를 때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야. 네 입으로 말해 봐! 사람이 짐승을 때리는 거라고."

아큐는 양손으로 변발한 머리채를 잡고, 머리를 꼬며 말하는 것이었다.

"벌레를 치는 거야! 됐어? 나는 벌레야. ― 이래도 놓지 않겠어?"

벌레라고 했건만 건달들은 결코 놓아주지 않는다. 늘 하던 대로 가까운 데를 골라 퍽퍽 대여섯 번 머리를 처박고 나서야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돌아가는 것이었다. 놈들은 이번에야말로 아큐도 혼이 났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10초도 지나지 않아 아큐도 역시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자신을 경멸할 수 있는 제1인자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경멸할 수 있다.'는 말을 생략하면 남는 것은 '제1인자'라는 말이다.(아큐는 참을 수 없는 치욕을 당하면서도,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자기 합리화를 통해 만족해하고 있다.)장원(壯元) 급제한 사람도 '제1인자'가 아닌가?

"네 까짓 것들이 다 뭐냐?"

아큐는 이러한 갖가지 묘수로 원수들을 굴복시킨 다음 유쾌하게 술집으로 달려가서 술을 몇 잔 마시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 한바탕 놀림을 당하거나, 입씨름을 하다가, 또 이기고 나서, 유쾌하게 사당으로 돌아가면 머리를 쑤셔박고 자 버리면 그만이다.

만약 돈이 있으면 그는 도박을 하러 간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땅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아큐도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며 그 가운데 끼어드는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내기를 거는 소리 중에서도 가장 컸다.

"청룡(靑龍 : 도박판에서 돈을 거는 곳.)에 사백!"

"자…… 엽니다. ……엇차!"

물주가 상자 뚜껑을 연다. 그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읊어대는 것이었다.

"천문(天門)이로다……. 각(角)은 비기고, 인(人)과 천당(穿堂)은 졌다. ……아큐의 돈은 내가 먹었어……."

"천당에 백……백 오십!"

아큐의 돈은 이런 노랫가락을 타고 땀을 뻘뻘 흘리는 다른 사람의 허리춤으로 점점 흘러들어가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사람들에게서 밀려나고 만다. 그러나 뒷전에 서서 남들의 승부에 마음을 졸이며 끝까지 노름판을 지켜본다. 그리고 판이 끝나면 아쉬운 듯 사당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음날은 눈이 퉁퉁 부어 일하러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참으로 '인간 만사(人間萬事)는 새옹지마(塞翁之馬 : 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서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말. 옛날에 새옹이 기르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나서 노인이 낙심하였는데, 그 후에 달아났던 말이 준마를 한 필 끌고 와서 그 덕분에 훌륭한 말을 얻게 되었으나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으므로 노인이 다시 낙심하였는데, 그로 인하여 아들이 전쟁에 끌려 나가지 아니하고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중국 '회남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그 의미가 유사한 것은 '전화위복(轉禍爲福)이다.'다. 아큐는 불행히도 딱 한 번 이기고는, 도리어 낭패를 보게 되었다.

그 날은 미장에서 마을 축제를 지내던 날 밤이었다. 이 날만은 관례대로 무대를 차리고, 무대 주위엔 으레 많은 도박판이 벌어졌다. 연극 무대의 꽹과리 소리와 북 소리도 아큐의 귀에는 십 리 밖 먼 데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에겐 물주의 노랫가락 소리만이 들렸다. 그는 따고 또 땄다. 동전이 은전이 되고 작은 은전이 큰 은전이 되었다. 큰 은전이 쌓이고 쌓였다. 그는 매우 신바람이 났다.

"천문(天門)에 두 냥!"

누가 누구와 무엇 때문에 싸우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욕하는 소리 때리는 소리, 발자국 소리,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혼란이 한바탕 벌어졌다. 그가 간신히 기어 나왔을 땐 노름판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몸의 몇 군데가 아픈 것 같았다. 아무래도 얻어맞기도 하고 발길질을 당한 것 같기도 했다. 몇 사람이 그를 이상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넋 잃은 사람처럼 사당으로 돌아와 마음을 가라앉히고서야 그의 은화 무더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축제날에 벌어지는 노름판의 대부분 사람들은 이 마을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 어디 가서 그것을 찾겠는가?

새하얗게 번쩍번쩍 빛나는 은화 더미! 더구나 그의 것이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것이다. 자식놈이 가져간 셈 쳐 보아도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그도 이번만은 실패의 고통을 조금 느꼈다.

그러나 그는 곧 패배를 승리로 전환시켰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힘껏 자기 뺨을 두세 차례 연거푸 때렸다. 얼얼하게 아팠다. 때린 후에 그는 마음이 평안해지기 시작했는데, 마치 때린 것은 자신이고, 얻어맞은 것은 또 다른 자신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는 자기가 남을 때린 것 같이…… 비록 아직도 얼얼하지만…… 몹시 만족하여 의기 양양해 드러누웠다.

그는 푹 잠들었다.(김학주 옮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아큐'라는 인물의 형상이다. 작가는 사회적 기반도 없는 날품팔이인 인물을 내세워 공허한 영웅주의와 그것의 표리를 이루는 패배주의를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자기 자신의 현실적인 위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 만족에 취해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신해 혁명 직후 민족의 위기 속에서도 대국 의식에만 사로잡혀 있던 낡은 중국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출처 : 권영민 저 지학사 문학)

이해와 감상2

이 작품은 신해 혁명 전후의 무기력한 중국인을 희화화한 작품으로 루쉰의 작가적 지위를 문학사에 자리잡게 해 준 대표작이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매우 싱거운 이야기에 불과하나, 이 작품이 그려 내는 이른바 '정신 승리법' 이라는 독특한 인간 심성과 작품의 바탕이 된 시대성 때문이다. 신해 혁명의 쓰디 쓴 좌절을 맛본 중국인들은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저항할 줄 모르고 오히려 머릿속에서 자신의 정신적 승리로 소화해 버리는(소화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 아큐를 보고, 모두 자기 자신을 모델로 한 얘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청조말기의 침체된 봉건사회를 아큐라는 날품팔이 노무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은 아큐가 살고 있는 지방의 권력가와 그 가족. 연고자들의 권세를 둘러싸고 있는 이면에 대한 문제까지 희극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여기서 루쉰은 등장 인물들의 혁명에 대한 불안한 모습과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되는 아큐의 허무한 인생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여기에서 아큐에게서 볼 수 있는 공허한 영웅주의와, 그것과 표리를 이루는 불쌍한 패배주의의 민족적인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즉,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을 직시하지 못한 채 항상 자기 기만으로 현실을 호도하면서 살아가는 아큐의 이른바 '정신 승리법'을, 민족적인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대국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낡은 지식인과 중국민들에게서 발견하고 이를 형상화한 작품인 것이다. 신해혁명에 관한 희망과 혁명의 기회에 편승하는 건달들의 모습을 조명하면서 자신의 심경을 기탄 없이 드러내 보이는 작가는 아큐의 죽음을 구경거리로밖에 보지 않는 군중들에 대한 노여움을 아큐에 대한 동정으로써 질책하고 있다. 이러한 풍자적이고 야유적인 비판 속에는 중국민들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식이 결여된 슬픔을 담고 있으며, 이러한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 민족 결의를 촉구하는 주제가 강하게 흐르고 있다.

"아큐정전"은 작가의 이러한 구국혼이 가장 깊이 농축된 작품이 다. 따라서 어리석고 불쌍한 아큐, 그를 통해 근대화 과정에 소용돌이치는 중국 민중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그려 보였다. 그런 아큐의 모습이 그때도 그랬지만 중국 민중들에게는 '각성'보다 '위안'을 더 많이 주고 있어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가 없다. 루쉰이 입버릇처럼 내뱉던 푸념이 아직도 메아리치는 여운으로 남아 있다.

"중국인은 누군가가 나서서 말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해와 감상3

아큐라는 인물은 타성에 젖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명감도 목적 의식도 없이 무기력하고 비겁한 인간상을 상징하고 있다. 다혈질적이고 자존심이 강할 뿐만 아니라 무지 몽매한 아큐는 아무리 경멸을 당하고 희롱을 당해도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하지만, 마음 속에는 자신이 이겼다고 합리화하는 일명 '정신 승리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아큐의 성격은 심각한 현실적 의의와 역사적 의의를 내포하고 있다. 즉, 공허한 영웅주의와 무력한 패배주의에 젖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기 만족에 살아가고 있는 청나라 정부와 한(漢)민족에 대한 조소와 비난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고도의 상징과 날카로운 통찰력, 문학의 힘을 통해 대중의 의식을 각성시키고자 한 작품이다.

소설적인 기교도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의 서술 특성은 반어적 태도에 있다. '아큐 정전'이라는 제목부터가 그러하다. 이 작품의 머리말은 아큐가 그 이름조차 분명치 않은 인물임을 열심히 밝힌다. '아큐'라는 괴상한 이름이 그래서 생겨난 것이다. 이처럼 하찮은 인물의 이야기를 거룩한 위인에게나 어울릴 '정전(正傳)'으로 썼다는 것부터가 희화적(戱畵的)이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평가나 판단을 자제한 채로 엄격하게 객관적인 때로는 냉정하기조차 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큐의 억울한 죽음을 보면서도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서술한다. "총살은 목을 자르는 것만큼 볼 만하지 못하다." - 냉정의 극치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중국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바로 아큐가 아닌가 생각했다고 한다. 그만한 공감의 원천은 이 작품의 함축적인 형상과 반어적 문체의 효과가 어우러져 이루어 낸 것이다. (출처 : 김대행·김동환 저 교학사 문학)

이해와 감상4

노신이 1921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중국 한문학의 전통적 장르인 전(傳) 형식을 변형시켜 신해 혁명이 일어나던 무렵의 중국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아큐는 서구 열강의 침략 앞에 속수무책으로 남아 있던 중국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아큐는 30여 년의 생애를 통해 온갖 세상 풍파를 겪었으면서도 마지막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까지 자신의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고 근거 없는 우월감이나 자기 비하로 일관함으로써 생애를 비참하게 마감한다.

그가 건달들의 행패에 대해서 노려보기주의나 정신승리법을 사용하는 것은 상황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가 책임지지 못하고 남의 손아귀에 맡기거나 혼돈된 상태로 방치하는 존재가 곧 아큐인 것이다. 이것은 당시 반식민지가 되어 있던 중국의 사회적 상태에 대한 준렬한 비판이다. 민족적 위기 속에서도 근거 없는 우월 의식을 갖거나 단순히 패배감에 빠져 아무런 대비책도 마련하지 못하는 중국 민족의 상황이 아큐라는 인물의 형상 속에 적나라하게 제시되어 있다.

노신은 의사가 되려고 일본 유학을 갔다가 동족의 처형 장면을 보고도 희희낙낙하는 중국인의 사진을 보고 소설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서 자신의 처형에 대해 무감각한 아큐와 처형 장면을 구경거리로만 인식하는 군중들은 노신이 유학 시절에 가졌던 중국인에 대한 인상을 형상으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자는 아큐에 대해서 분개할 뿐만 아니라 아무런 비판 의식도 가지지 않은 군중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5

혁명 후 아큐가 재물을 약탈한 누명을 쓰고 죽음을 당하는 '결말' 부분으로 이 작품은 한문학 전통적인 장르인 전 형식의 변형을 통해, 봉건 사회 해체기인 청조 말기에 조그만 마을을 배경으로 주인공을 둘러싼 지방 권력자와 그 가족, 마을 사람들의 변화무쌍한 인정 세태와, 혁명의 그림자가 드리운 충격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무하게 처형된 아큐의 생애를 그리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아큐라는 인물의 전형성이다. 그는 30여 년의 짧은 생애 동안 세상사의 쓴맛 단맛을 다 보면서 여러 차례에 걸친 굴욕과 실패를 겪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승리감에 젖어 득의 양양한다.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맹목적인 망상이나 턱없는 자기 비하, 치욕과 실패에 대한 필요 이상의 건망증과 합리화, 욕을 먹거나 낭패를 당한 후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행하는 분풀이 등이 아큐의 생활방식이다. 작가 루쉰은 당시 반식민지 상태의 민족적 위기 속에서도 패배감에 젖어 현실에 안주하려는 중국인들의 자화상으로 아큐라는 희극적 전형을 그린 것이다. 아큐는 총살당하는 마지막 장면의 극한 상황에서조차 놀랄 만큼 무감각한 '마비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주인공과, 그저 구경거리로만 처형장면만을 바라보는 군중에 대한 작가의 노여움이 날카로운 풍자 속에 번득인다.

이해와 감상6

청조 말기의 침체된 봉건 사회를 아큐라는 날품팔이 노무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은 아큐가 살고 있는 지방의 권력가와 그 가족, 연고자들의 권세를 둘러싸고 있는 이면에 대한 문제까지 희극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여기서 루쉰은 등장인물들의 혁명에 대한 불안한 모습과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되는 아큐의 허무한 인생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여기에서 아큐에게서 볼 수 있는 공허한 영웅주의와, 그것과 표리를 이루는 불쌍한 패배주의의 민족적인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즉,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을 직시하지 못한 채 항상 자기 기만으로 현실을 호도하면서 살아가는 아큐의 이른바 '정신 승리법'을, 민족적인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대국 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낡은 지식인과 중국인들에게서 발견하고 이를 형상화 한 작품인 것이다. 신해혁명에 관한 희망과 혁명의 기회에 편승하는 건달들의 모습을 조명하면서 자신의 심경을 기탄 없이 드러내 보이는 작가는 아큐의 죽음을 구경거리로밖에 보지 않는 군중들에 대한 노여움을 아큐에 대한 동정으로써 질책하고 있다. 이러한 풍자적이고 야유적인 비판 속에는 중국인들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식이 결여된 슬픔을 담고 있으며, 이러한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 민족 결의를 촉구하는 주제가 강하게 흐르고 있다. '아쿠 정전'은 작가의 이러한 구국혼이 가장 깊이 농축된 작품이다. 따라서 어리석고 불쌍한 아큐, 그를 통해 근대화 과정에 소용돌이치는 중국 민중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확인할 수 있다.(출처 : 김병국 외 4인 공저 한국교육미디어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심화 자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등장 인물의 성격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아큐'라는 인물의 형상이다. 작가는 사회적 기반도 없는 날품팔이인 인물을 내세워 공허한 영웅(英雄)주의와 그것의 표리를 이루는 패배주의를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자기 자신의 현실적인 위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 만족에 취해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신해 혁명 직후 민족의 위기 속에서도 대국 의식에만 사로잡혀 있던 낡은 중국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아큐형' 인물의 특징 : 부정확한 현실 인식, 자기 기만의 태도, 강자에게 굴종하고 약자에게 으스대고 고통을 떠 넘기는 노예 정신, 자신만을 염려하여 이기적인 행동을 일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아큐의 전형성 : 당시 반식민지 상태의 민족적 위기 속에서도 패배감에 젖어 현재에 안주하려는 중국인들의 자화상을 희극적으로 전형화함

(1) 수차례 실패와 굴욕을 겪지만 정신적으로 오히려 승리감에 젖어 득의양양함

(2) 현실에 근거하니 않는 맹목적인 망상이나 턱없는 자기 비하에 젖음

(3) 치욕과 실패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자기를 합리화함

(4) 욕을 먹거나 낭패를 당한 후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분풀이를 행함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아큐 정신과 시대적 배경

아큐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부정확한 현실 인식, 자기 기만의 태도, 강자에게 굴종하고 약자에게 으시대고 고통을 전가하는 노예 근성 등을 묶어 아큐 정신이라고 한다. 루쉰은 '신해 혁명(1911년)' 이 전 국민적 혁명으로 발전되지 못한 이유를 중국 국민의 이 아큐 정신에서 찾고자 했다.(출처 : 김윤식 김종철 저 한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노신의 문학 정신

노신(루쉰)의 위대성은 혁명을 위한 문학일지라도 안이한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삼지 않고자 한 점에 있다. 루쉰은 '현재의 우리들의 문학 운동에 대하여'란 기록에서 "작가란 그 어떤 인물을 그리든, 그 어떤 소재를 사용하든 자유로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작품에 '민족혁명 전쟁'이란 꼬리를 달고 그것을 기치로 삼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있는 것은, 작품 뒤에 붙인 슬로건이 아니라, 그 작품 속에 깃들여 있는 진실한 생활, 눈부신 투쟁, 약동하는 맥박, 사상과 정열이기 때문이다."라고 술회했다. 인간이 바뀌지 않고는 사회도 바뀌지 않는다는 이 작가 의식이 중국 국민의 전형으로서 '아큐정전'을 쓰게 하고 '고독자'를 쓰게 한 것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노신의 작품 세계

노신의 문학 세계는 어두운 느낌을 준다. 작가를 둘러싼 현실이 모두 생명력을 잃어버린 절망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절망 속에 갇히지 않고, 오히려 어두운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자기 확인을 통해 발전적인 의지로 승화시키고 있다. '고향'이라는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은 작가의 생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희망이라는 것은 원래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없다. 실상 땅 위에 본래부터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희망은 이처럼 묵묵히 다져진 좌절감 위에서 비로소 싹틀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희망은 자각을 필요로 한다. 이 자각을 통해서만 중국 민족이 회생할 수 있다고 믿는 작가의 의식은, 중국 민족에 대한 진정한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출처 : 김대행·김동환 저 교학사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루쉰의 문학 세계

루쉰은 몸소 체험한 실생활을 바탕으로 우매하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확대하여 국민 이익에 상반되는 일제를 부정의 빛으로 묘사함으로써 미래의 긍정과 이상의 동경을 배출해 내려고 노력하였다.

루쉰이 주로 다룬 세계는 어두운 과거, 즉 신해혁명 전후의 중국 사회로서 특이 낙후된 농촌의 실정을 풍자적 수법을 통해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그 상상력이 인간 현실과 사회 현실을 넘어서고 있다. 즉 그의 작품은 상상력의 재현과 비밀스러운 것을 표현해 내는 언어 감각이 뛰어나고, 문제 의식이 뚜렷한 데다가 이를 더욱 예리한 필치로 심각하고 신랄하게 묘사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는 중국 민족의 병근(病根)을 노출시켜 치유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고자 했던 것이다.(출처 : 김병국 외 4인 공저 한국교육미디어 문학)

전기 시대(단편시대)

후기 시대(잡감문 시대)

계몽적, 사실적 인생 문학

사회 비판, 문학 비평을 전제로 한 정치 문학

전통적 애수, 낭만, 풍자

정공적인 표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아큐정전'의 사회적 의미

이 작품은 노신의 작가적 지위를 문학사에 자리잡게 하여 준 대표작이다. 청조 말기의 침체된 봉건 사회를 아큐라는 날품팔이 노무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가 사는 한 지방을 중심으로 그 지방의 권력가와 그 가족, 연고자들의 권세를 둘러싸고 있는 이면에 대한 문제까지 희극적으로 그려 내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인물들의 혁명에 대한 불안한 모습과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희생되는 아큐의 허무한 인생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여기에서 아큐에게서 볼 수 있는 공허한 영웅주의와, 그것과 표리를 이루는 불쌍한 패배주의의 민족적인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즉,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지 못하고 항상 자기 만족으로 속이면서 살아가는 아큐의 이른바 '정신 승리법'을, 민족적인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대국 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낡은 지식인과 중국민들에게서 발견하고, 이를 형상화한 작품인 것이다.

신해 혁명에 관한 희망과 혁명의 기회에 편승하는 건달들의 모습을 조명하면서 작가의 심경을 기탄없이 서술하고 있다. 또한, 작가는 아큐의 죽음을 구경거리로밖에 보지 않는 군중들에 대한 노여움을 아큐에 대한 동정으로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풍자적이고 야유적인 비판 속에는 중국민들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의식이 결여된 슬픔을 담고 있으며, 심한 힐책이 담겨져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출처 : 권영민 저 지학사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루쉰과 유교 비판

5·4운동 이후 중국에서는 천두슈, 후스, 루쉰 등에 의하여 전통적인 중국 유교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천두슈는 민주주의와 과학의 개념으로 삼강오륜(三綱五倫)이라는 봉건 윤리를 타도하려했고, 후스는 입센의 '인형의 집'에 감명을 받아 남녀 관계의 대등성을 주장했다.

루쉰은 소설을 통하여 유교 윤리를 풍자 비판한 작가로, 1918년 '신청년'에 발표한 백화소설 '광인 일기' 이후 많은 작품을 통하여 유교를 비판했다. 그는 "중국의 문화는 모두 주인을 받드는 문화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희생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중국인이고 외국인이고 중국 문화를 칭찬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주인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따라서 루쉰은 "중국의 공자는 처음부터 권세 있는, 또는 권세를 갖고자 하는, 즉 관리로 출세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학문이지 일반 민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말하자면 공자는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낮은 민중을 위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민중을 우민화시키기 고탄압의 수단이 되는 적이다." 이것이 루쉰의 유교 비판의 논리였다.

루쉰의 이러한 유교비판 사상을 담은 소설이 '광인 일기'와 '아큐정전'이다. (출처 : 남미영 외 4인 공저 동아서적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아큐 정신과 그 시대적 배경

아큐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부정확한 현실 인식, 자기 기만의 태도, 강자에게 굴종하고 약자에게 으시대고 고통을 전가하는 노예 근성 등을 묶어 아큐정신이라 한다. 노신은 당시 중국인들이 타기되어야 할 부정적 모습을 아큐를 통해 그린 것이다. 노신은 신해 혁명(1911)이 전국민적 혁명으로 발전되지 못한 이유를 중국 국민들 속에 있는 바로 이 아큐 정신에서 찾고자 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신해 혁명(辛亥革命) :

1911년에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운 혁명. 10월에 무창(武昌)에서 봉기하여, 그 이듬해 1월에 쑨원(孫文)을 임시 대총통으로 하는 임시 정부를 수립하였으나, 혁명 세력이 약한 탓에 위안스카이(袁世凱)가 대총통에 취임하여 군벌 정치를 펴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백화소설(白話小說)

중국에서 구어체(口語體)로 쓰인 소설을 이르는 호칭. 문언문(文言文), 즉 고문(古文)으로 쓰인 문언(文言) 소설의 대칭이다. 당(唐)나라 이전의 소설이란 지식인들이 문어로 써서 수록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당나라 말기부터 송나라에 걸쳐서 귀족계급의 몰락과 서민계층의 세력 증대로 민간에 구전되는 이야기의 필사본이나 그 대본에서 발달하여 점차 읽기 쉬운 구어체의 소설을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중국에서는 국가 통치의 수단이었고 지식인의 무기이기도 했던 문어체가 중시되어, 구어문장에 의한 작품이 문학의 주류로 등장한 것은 1917년의 천두슈[陳獨秀]·후스[胡適] 등의 문학혁명 제창 이후이며, 18년에는 루쉰[魯迅]의 백화소설 《광인일기(狂人日記)》가 발표되었다.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노신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

"가령 철로 밀폐된 방이 있다고 치세. 전연 창문도 없고, 절대로 부술 수도 없는 방일세. 그리고 그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곤히 잠들고 있으니 오래 지나지 않아 모두가 다 질식해 죽을 것일세. 그러나 그들은 혼수 상태에서 막바로 사멸 속에 드는 것이라 전연 죽음의 비애를 느끼지 못하네. 그런데 자네가 지금 큰 소리를 쳐 아직도 약간 의식이 맑은 몇 사람들을 놀라 깨게 함으로써 그들 불행한 사람들에게 도저히 구원의 길이 없는 임종의 고통을 맛보게 한다면 도리어 자네는 그들에게 못할 짓을 저지른 꼴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미 눈뜬 사람이 몇이라도 있다면 그 철로 된 방을 때려 부술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세."

그렇다. 내 비록 내 나름대로의 주견을 굳게 가졌다 해도 희망을 드러냈을 때 그것을 말살할 도리는 없었다. 희망은 미래에 속해 있는 것이니까, 절대로 오늘의 나의 부정을 가지고 그가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꺾어 넘길 수도 없었다. 나는 마침내 글을 쓰겠다고 승낙했다. (출처 : '납함' 서문에서)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해하기

1. 이 작품에서 '정신적 승리법'의 예가 제시되어 있는 부분을 찾아보고, '아큐'의 '정신적 승리법'이 무엇인지 설명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아큐의 정신적 승리법이란 이는 형식상의 패배에 대비되는 아큐의 자기 정당화하는 합리화로 이것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을 찾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아큐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부분(교과서 228쪽 11행~229쪽 1행)

이 작품에서는 아큐의 정신적 승리법을 두고 벌어지는 아큐와 마을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희화적으로 그려져 있다. 아큐는 마을 사람들의 놀림을 정신적 승리법으로 물리치는데 이는 비굴한 자신의 태도를 두고 자신을 경멸할 수 있는 제 1인자의 행동으로 합리화하는 그의 기만적인 처세술을 말한다.

2.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행동이나 대사를 찾아보고, '아큐'의 성격이 어떠한지 이야기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아큐는 당시 중국인의 모습, 중국 정부의 모습을 희화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대국이라는 자존심이 강하지만 자기 기만적이고 강자에게 비굴하며, 상황에 쉽고 단순하게 적응해 버리고 마는 당시 중국과 중국인의 모습이 드러나는 행동과 대사를 찾아보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자존심이 강한 것 - "우리 집도 그 전에는······ 네까짓 놈보다 훨씬 더 잘살았어!"

·자기 기만성 - "내가 자식놈에게 얻어맞은 걸로 치지. 요즘 세상은 돼먹지 않았어·····."

·비굴함 - "벌레를 치는 거야! 됐어? 나는 벌레야. - 이래도 놓지 않겠어?

·단순함 - "네까짓 것들이 다 뭐냐?"하고는 술집으로 가서 술을 마시고 잊는 행위

3. 이 작품에서 '아큐'는 자기 이름도 정확히 모르는 최하층 날품팔이 농민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작가가 어떠한 의도로 이러한 인물을 주인공을 설정했는지 말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작가가 아큐의 행위와 말을 통해 비판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음을 주지시키고 이러한 의도 속에서 아큐의 모습이 형상화되었음을 이해시킨다. 이러한 아큐의 모습이 풍자하고 있는 대상과 의도를 찾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날품팔이꾼이고 무지하지만 자존심은 강하고, 상황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아큐를 통해 작가는 당시 일본과 서양 세력에 당하면서도 허세를 부리고 상황에 대처하려 하지 않는 중국인과 중국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작가는 자존심은 강하지만 실제로 실속 없는 자인 아큐를 통해 허상뿐이며, 허세만 부리는 중국인과 정부를 풍자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4. 이 작품은 '아큐'라는 인물의 전기(傳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작품이 전기의 형식을 빌려 옴으로써 얻을 수 있는 표현 효과에 대하여 설명해 보자.

교수 학습 방법 :

전기문 형식이 가지는 특징을 중심으로 아큐의 성격을 고찰하고 이러한 형식이 주제를 드러냄에 있어서 어떠한 효과를 지니는지를 논의하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한 인물을 중심으로 그의 일대기를 기리는 이 소설은 한문학의 전통적인 양식인 '전' 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전' 양식은 한 개인의 일생을 통해 독자에게 교훈을 준다. 보통 '전'의 인물이 훌륭한 자질과 성품을 지니고 있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데에 비해 아큐는 그렇지 못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반어적인 제목을 통해 작가는 인물과 사회에 대한 풍자 효과를 배가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확장하기

1. '아큐 정전'은 신해혁명을 전후한 중국의 농촌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중국 근대사에서 신해혁명이 어떠한 사건이었는지 조사해 보고,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당대의 중국인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리해 보자.

교수 학습 방법 :

신해혁명의 배경과 전개 과정,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 학생들이 자료를 찾아 정리해 보도록 하고 이 소설에서 배경인 신해혁명이 어떻게 그려지는지를 찾아보고, 이를 통해 당대인들의 어떤 모습을 비판하려 했는지 이해하도록 지도한다.

2. 근대 초창기 현실 인식이라는 관점에서, '아큐 정전'의 '아큐'와 앞서 나온 채만식의 '치숙'의 '나'를 비교하여 말해 보자.

교수 학습 방법 :

'나'와 '아큐'가 모두 무식하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인물임을 중심으로 공통점을 찾게 하고, 이들이 현실에 대응하는 방법을 통해 그들의 현실 대응의 차이점을 판단하도록 지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아큐 정전'의 '아큐'와 '치숙'의 '나'는 모두 무지한 인물이다. 근대라는 전환기에 대응하기에는 두 사람 다 무지하며 자부심이 강하고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근대 전환기에서 '아큐'가 기존의 가치 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혁명이라는 상황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것과 달리 '치숙'의 '나'는 시대 상황에 무지하고 가치관이 부재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찾아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면서 시류를 타는 영악함을 보인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확장하기1

1. 이 소설에서 아큐가 말하는 소위 ‘정신적 승리’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고 이것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말해보자.

이끌어주기 : 아큐라는 인물이 자신의 약점이나 부족한 점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대목을 찾아 읽고,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이 어떠한지를 밝히도록 한다. 학생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경우에는 적절한 방법으로 교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시답안 : 아큐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예전에 잘 살았다는 점을 들어 현재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합리화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신체적인 약점인 대머리를 감추려 한다. 이러한 아큐는 웨이좡의 한량패들에서 자주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자 아큐는 눈을 흘겨보는 것으로 대응하지만, 한량패들은 그를 더욱 괴롭힌다. 이에 아큐는 요즘 세상은 돼먹지 않았다는 말을 하며 스스로 승리한 것인 양 만족해한다. 이러한 아큐의 태도는 소위 ‘정신적 승리’라는 말로 규정할 수 있는데, 자신의 약점과 약함을 인정하고, 남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지혜를 갖기보다는 상대방을 무시함으로써 자신의 지혜 있음을 자랑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큐의 ‘정신적 승리’는 그의 허위의식을 보여줄 뿐, 그것이 그의 삶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면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2. 작자가 이 소설을 통해 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이끌어주기 : 아큐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이끈다. 아큐의 인물됨에서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을 파악해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시답안 : 작자는 아큐라는 비정상적인 인물을 형상화함으로써 당시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중국인들을 경계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 시대를 맞아 중국은 서구 열강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있었지만 중국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과거 지향적, 자기중심적, 안하무인격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중국인들의 왜곡된 삶의 태도를 비판하고 몽매에서 깨어나기를 바라는 것에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3. 토의 토론 아큐와 같은 인물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존재하는지에 대해 모둠별로 토론해보자.

이끌어주기 : 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점은 아큐라는 인물의 전형성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아큐의 성격을 분석해 보고, 이러한 인간이 지금 우리 사회를 살아간다면 어떤 유형의 인간일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가능하다면 전편을 읽고 아큐의 모습을 오늘날의 현대인에 견주어 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 토의 토론을 할 때에는 아큐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들을 적절하게 제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언뜻 읽으면 아큐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작자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므로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시답안 : 아큐가 가지고 있는 성격의 특징을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아큐는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매우 강하다. 직접 경험해 본 적도 없으면서 다 아는 척하며,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진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우리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모습이다.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태도는 아큐의 성격과 유사한 것이다.

또한 아큐는 과거 지향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현재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과거엔 너희들보다 잘 살았다는 말로 극복하려 하는데, 이것은 또한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독선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지향적인 태도는 우리나라 어른들의 모습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어떤 문제에 부딪쳤을 때 그 문제에 대해 미래 지향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과거의 향수에 젖어 바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모습에서 아큐의 성격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아큐는 체면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자신의 머리에 난 대머리 흉터를 감추기 위해 그와 관련된 말조차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은 지나친 체면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 약점을 감추기보다는 이것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태도가 더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해서 외모를 꾸미고, 자신의 약점을 감추는 모습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아큐의 비극

주인공 아큐는 신해혁명 전후 시기 농촌 고용 노동자의 전형이다. 그렇지만 그 성격을 한 마디로 단순화시킬 수 있을 만큼 체계적인 인물은 아니다. 실제 인간이 그렇듯이 아큐는 여러 인물의 합성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성격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작가는 성격의 변화 과정을 일정한 흐름에 따라 배열함으로써 민중이 각성하는 순간을 잘 포착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반적인 민중이 가질 수 있는 온갖 열악한 근성을 두루 지닌 아큐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거치면서 때로는 부분적이나마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 반성은 그리 길게 지속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잘못된 생활과 사회적 모순을 어느 정도 깨닫는 순간 그는 이미 최후를 맞이했으니, 이것이 아큐의 본질적인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아큐의 비극’ 은 사실 보통의 중국인, 혹은 더 크게는 근대 동아시아 민중의 비극일 수 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이 작품이 많이 읽히고 연구되었으며 문학 작품에도 영향을 준 것은 어느 정도 그들 자신의 자화상을 이 작품에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큐가 겪는 비극의 원인은 그래서 더 관심을 가질 만한데, 이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지배계급 인물들에 의한 직접적인 가해이다. 자오 어른, 가짜 양놈으로 대표되는 지배계급 인물들은 시대의 변화에 잘 적응하면서 언제나 아큐의 삶을 방해하는 존재가 된다. 둘째는 민중적 자해이다. 같은 사회적 위치에 있으면서도 아큐를 박해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현실에 대한 가장 적절한 풍자이다. 물론 아큐 역시 다른 민중들을 박해하는 가해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러한 박해 관계는 상호적이며 일종의 자해라고 할 수 있다. 생존 문제와 연관된 샤오디와의 싸움은 그래서 가장 극적인 박해 장면이 된다. 셋째 원인은 아큐 자신의 어리석음이다. 다소의 풍자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자기에게 어떤 고난이 닥쳐오는지를 감지하지 못하는 등의 어리석음은 마지막 장면의 비극을 가능하게 한 원인일 수 있다.(출처 : 김윤식,‘김윤식 교수의 동양 고전 특강’)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신해혁명(辛亥革命/ Chinese Revolution)

중국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동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인 중화민국을 건립한 혁명(1911~12).

혁명봉기가 일어난 해인 1911년이 간지(干支)로 신해년이어서 신해혁명이라 불리고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민국혁명(民國革命)이 더 타당하다. 1913년의 위안스카이[袁世凱] 토벌전쟁을 제2혁명, 1915~16년의 반제제(反帝制) 투쟁을 제3혁명으로 지칭하면서 신해혁명을 미완의 혁명인 제1혁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또한 우창[武昌]에서 최초로 신해혁명의 봉기가 일어난 10월 10일을 쌍십절(雙十節)이라 하여 타이완에서는 중요한 경축일로 지키고 있다 (→ 색인 : 중국사).

혁명운동의 전개

이민족 정권인 청조를 타도하고 한족(漢族)의 공화정을 수립하자는 혁명운동의 상징적인 지도자 쑨원[孫文]은 오늘날까지도 중국의 국부(國父)로 추앙받고 있다 (→ 색인 : 쑨원). 1894년 6월 쑨원이 당시 실력자였던 이홍장(李鴻章)에게 서구적 모델에 따른 개혁안을 제시하는 글을 올렸다가 무시당한 후, 하와이에 가서 조직한 하와이 흥중회(興中會)가 최초의 혁명단체로 알려져 있다 (→ 색인 : 이홍장). 이어 홍콩 흥중회를 조직하고 이를 통해 광저우[廣州] 봉기를 계획했다. 이 최초의 반청(反淸) 봉기가 실패한 뒤 망명길에 나선 쑨원은 런던에서 중국 공사관에 억류되는 사건을 통해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억류에서 풀려난 후 대영박물관에 출입하면서 서구의 새로운 사회사조를 접하여 삼민주의(三民主義) 사상의 기초를 닦을 기회를 가졌다 (→ 색인 : 삼민주의). 다시 일본으로 간 그는 변법자강운동의 실패 후 망명한 캉유웨이[康有爲] 등의 개혁파와 연합을 모색하기도 하고, 의화단운동(義和團運動)을 전후해 양광총독(兩廣總督) 이홍장을 황제로 추대하여 양광(광둥[廣東]·광시[廣西]) 지방을 독립시키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쑨원은 다시 홍콩 흥중회의 조직을 통해 후이저우[惠州] 봉기를 조직했으나 실패했다.

한편 의화단운동에서의 충격적인 패배가 반청 혁명사조를 급속히 확산시켜가는 가운데 혁명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청 정부가 자구책으로 근대적 개혁을 추진하는 가운데 교육제도의 개혁을 지향함으로써 신식학교와 학생, 일본 유학생이 늘어났다. 일본 유학생들 중 일부 급진파가 제국주의의 침략과 그에 대한 청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에 자극되어 반청혁명의 길로 나서게 되었다. 이들이 일본에서 펴낸 혁명을 고취하는 잡지나 번역서들은 중국 내로 유입되어 혁명사조의 흥기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 1903년 황싱[黃興] 등의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후난 성[湖南省] 창사[長沙]에서 화흥회(華興會)라는 혁명조직이 설립되었다. 1904년에는 상하이[上海]에서 차이위안페이[蔡元培]·장빙린[章炳麟] 등의 광복회(光復會)가 조직되었다. 이들 각지의 혁명단체가 통합되어 1905년 8월 도쿄[東京]에서 전국적인 혁명조직인 중국동맹회가 성립되었다. 동맹회는 쑨원을 총리로 추대했고, "오랑캐를 몰아내고 중화(中華)를 회복하여 민국을 건립하며 지권(地權)을 고르게 한다"는 강령을 채택했다. 또한 기관지 〈민바오 民報〉를 창간하여 혁명선전을 본격화했다. 이어 1906년 쑨원·황싱·장빙린 등이 '중국동맹회혁명방략'을 제정했다. 이즈음에 쑨원의 삼민주의가 보다 명확한 체계를 갖춘 형태로 제시되어 혁명파의 지도이론으로 등장했다. 그 내용은 청나라 정권의 타도와 한(漢)민족국가의 회복을 지향하는 민족주의, 민주국가의 수립을 지향하는 민권주의, 사회경제조직을 개혁함으로써 미래의 사회혁명을 방지하고자 하는 민생주의로 구성되었다.

동맹회의 성립 후 혁명파는 조직의 확대와 선전활동 외에도 본격적인 반청무장봉기를 준비했다. 그러나 몇 차례에 걸친 서남 변경지역에서의 회당(會黨) 중심의 봉기와 광저우에서의 신군(新軍) 중심의 봉기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원래 사상이나 조직 면에서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던 동맹회가 거듭된 봉기의 실패와 더불어 조직상의 분열이 가속화되자, 광복회가 독자적인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고, 1911년 7월에는 상하이에서 동맹회 중부총회가 성립되어 '장강(長江)혁명'을 준비했다. 쑨원도 1910년 이후에는 독자적인 행동을 취했다. 이와 같은 동맹회 내부의 분열로 인하여 막상 신해혁명의 봉기가 시작될 즈음 혁명파는 국내에서 결집된 역량을 갖추지 못했고, 따라서 혁명 전개과정을 주도할 통일적인 역량이 없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혁명파 내부의 역량 분산과는 상반되게 국내에서의 혁명정세는 날로 발전해가고 있었다. 의화단운동 이후 청나라가 새 정책을 추진하면서 정치개혁의 핵심인 입헌제 실시를 위한 준비를 하지 않자, 제도적인 정치참여를 요구해오던 신사층은 헌법제정, 국회와 지방의회 개설 등을 요구하는 입헌운동을 추진했다. 이들 입헌파 신사층은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비결이 입헌정치에 있었다고 보고 러일전쟁 이후 한층 활발한 입헌운동을 벌였으며, 청나라도 이들의 요구를 억누를 수만은 없어서 형식적으로나마 입헌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각각 지방의회·국회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자의국(諮議局)·자정원(資政院)이 1909, 1910년에 개설되면서, 입헌파 신사층은 이들 기관을 거점으로 하여 국회의 신속한 개설을 청원하는 등 입헌운동을 가속화했다. 그러나 청나라는 이들의 청원운동을 엄격히 탄압했는데,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입헌파 중 급진적인 일부로 하여금 혁명으로 기울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각자의 성(省)을 중심으로 한 국민적 대중운동으로 활발해진 이권회수문제에서도 입헌파 신사층은 청나라와 첨예하게 대립했다. 대표적인 것이 철도부설권에 관한 문제였는데, 1911년 5월 청나라가 철도의 국유화를 선포하여 지방의 이권을 무시하자 이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다. 쓰촨 성[四川省]에서의 보로운동(保路運動)은 무장봉기로까지 발전했고, 이것은 우창 봉기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신해혁명의 전개

1911년 10월 10일의 우창 신군에 의한 우창 봉기는 심각한 통치의 위기에 처해 있던 청나라에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신군병사가 중심이 되어 봉기한 혁명군은 그날 밤 호광총독아문(湖廣總督衙門)을 점령하고, 이어 11, 12일에는 한커우[漢口]·한양[漢陽] 신군의 호응을 얻어 우한[武漢] 3진(鎭)을 완전히 통제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전국적인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들 봉기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후베이[湖北]의 혁명파가 일반 지식인, 학생, 회당 외에 신군에 대한 혁명공작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 11일 혁명군은 후베이 자의국에서 도독(都督)의 선출과 군정부의 수립을 위한 회의를 가지고, 입헌파의 제의에 따라 신군장교 리위안훙[黎元洪]을 도독으로 추대하여 혁명군정부를 건립했다. 군정부 수립 후 즉시 국호를 중화민국으로 개칭하는 동시에 전국에 봉기의 정당성과 이에 대한 호응을 요청하는 전보를 냈으며, 대내외적인 방침을 발표했다. 이런 조치는 대개 동맹회의 '혁명방략'에 기초한 것이었으므로, 이 점에서는 동맹회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인정된다. 이 정책들은 이후 혁명군에 호응하여 청나라로부터 독립한 각 성에서도 거의 그대로 답습되었다.

우창 봉기의 성공은 곧바로 전국을 급격한 혁명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봉기 후 1개월 사이에 산시[陝西]·산시[山西]의 북방 2성과 후난·윈난[雲南]·장난[江南]·구이저우[貴州]·장쑤[江蘇]·저장[浙江]·광시[廣西]·푸젠[福建]·안후이[安徽]·광둥[廣東] 등 남방 대부분의 성과 상하이가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고 혁명군에 가담했다. 이들의 독립과정을 유형별로 보면, 신군병사가 봉기했으나 봉기 후 권력이 입헌파와 구(舊)세력에게 넘어간 경우와, 혁명파 지도하에 대중적 봉기로 권력을 장악했지만 입헌파와 구세력의 반격으로 정권을 탈취당한 경우가 있었다. 이외에도 대중적 봉기 이전에 입헌파가 청나라 관리에게 강요하여 독립을 선포함으로써 권력을 장악한 경우, 전쟁의 폭발에 의해 신군이 구세력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한 경우, 혁명파와 입헌파의 군정부가 병립·대치하다 구세력에게 정권이 돌아간 경우 등이 있었다. 결국 독립한 각 성의 정권은 대체로 혁명파보다는 입헌파나 구세력에 의해 장악되었다. 이는 동맹회를 중심으로 하는 혁명파가 우창봉기나 그 이후에 통일적인 지도능력을 상실하고 있었던 데다가 청조에 반대하고 공화혁명에 찬성하기만 하면 구세력이건 입헌파이건 모두 받아들여 합작을 한 반면, 입헌파는 국내에서 안정된 기반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일단 혁명으로 전환하면 새로운 권력을 장악하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독립한 각 성은 통일적인 임시중앙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각성도독부대표연합회(各省都督府代表聯合會)·각성대표회의 등을 소집했다. 그러나 혁명군측은 11월 2, 27일에 한커우와 한양을 청나라측에 내주는 큰 패배를 당했고, 북벌(北伐)에 의한 청나라의 타도라는 전망이 어두워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혁명군측은 청나라측의 전권을 위임받고 있던 한인관료 위안스카이와 협상하는 방향을 택했다. 이로써 신해혁명은 무장투쟁으로부터 남북의화(南北議和)라는 정치적 협상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혁명군이 정치적 타협을 택한 원인으로는 혁명군 자체의 단결력 결여, 위안스카이에 대한 열강의 지지 및 호의적인 여론과 그를 이용하여 청조를 타도하려는 전략적인 고려 등을 들 수 있다.

남북의화와 중화민국의 수립

우한 3진이 혁명파에 의해 장악되고 청조의 군대가 혁명군에 대한 초기의 진압에서 실패하자, 청조는 은퇴해 있던 한인관료 위안스카이에게 내정과 군정의 전권을 위임하여 그를 총리로 기용함으로써 혁명군을 진압하고자 했다. 위안스카이는 초기에 한커우·한양을 수복하기까지 무장진압정책을 써서 혁명군의 위력에 타격을 입혔으나 그후 타협을 모색했다. 이는 위안스카이가 청나라 타도 쪽으로 돌아선다면 그를 임시대총통으로 선출하겠다는 혁명군측의 결의가 이루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그로서는 굳이 승산이 불투명한 내전을 확대하여 청나라를 보위할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남북의 양군은 12월 3일 이후 계속 정전상태로 들어갔고, 18일부터 상하이에서 정식으로 남북의화가 개시되었다. 양측 대표의 담판과정에서 남방의 혁명군측이 29일 난징[南京]에서 쑨원을 임시대총통으로 하는 임시정부를 세우자 담판은 일시 중지되었다. 그러나 쑨원이 위안스카이에게 조건부로 총통직을 양보하겠다는 제안을 한 후 양자 간의 담판은 계속되었다. 위안스카이는 청나라의 퇴위를 실현시켰고, 1912년 2월 12일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宣統帝]는 퇴위조를 내림으로써 268년에 걸친 통치는 종말을 고했다. 다음날 쑨원은 사직했고 위안스카이가 임시대총통으로 선출되었다. 쑨원은 사직의 조건으로 난징에 임시정부를 설치할 것을 내세워 위안스카이를 견제하고자 했으나, 2월말에 베이징 등지에서 일어난 병변(兵變)을 구실로 위안스카이는 베이징에서 3월 10일 임시대총통에 취임했다. 4월 1일 쑨원은 정식으로 임시대총통직에서 해제되었고, 5일 참의원(參議院)이 베이징으로 이전을 결의했다. 이로써 혁명파의 위안스카이 견제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혁명파는 혁명의 궁극적인 목표의 하나인 정권장악에 실패하고, 구세력인 위안스카이가 정권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 신해혁명 이전의 낡은 사회적·경제적 질서나 지배계층, 반(半)식민지적인 중국의 국제적 위치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해혁명은 '실패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실패의 궁극적인 원인으로는 당시 사회적 기반 자체가 미성숙한 단계에 있었던 점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신해혁명을 문제제기 단계로 보고 실질적인 내용은 그 이후의 단계에서 갖추어진다고 보아, 신해혁명을 '민국혁명'의 제1단계로 파악하는 견해도 있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신해혁명 요점 정리

신해혁명은 제 1혁명이라고도 한다. 이 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함으로써 2000년간 계속된 전제 정치(專制政治)가 끝나고, 중화민국(中華民國)이 탄생하여 새로운 정치 체제인 공화 정치의 기초가 이루어졌다. 당시 재일본 유학생과 국내의 지식 청년층을 참가시킨 혁명파는 중국 동맹회를 결성하여 비밀 결사인 회당(會黨)과 손을 잡고 민주 공화제를 지향하는 반청(反淸)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혁명파는 10월 10일 우창에서 봉기하여 중화민국 군정부를 설립함으로써 신해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이 혁명은 순식간에 전국에 파급되어 1개월 이내에 거의 모든 성에서 호응하기에 이르렀다. 1912년 1월 1일 쑨원을 임시 대총통으로 하고 난징 정부가 수립되어 쑨원의 삼민주의(三民主義)를 그 지도 이념으로 한 중화민국이 발족하였다. 그러나 위안스카이는 청나라의 황제를 퇴위시키는 조건으로 쑨원으로부터 대총통의 지위를 탈취, 3월에 정식으로 대총통에 취임하여 베이징 정부를 조직하였다. 이때부터 혁명은 급속하게 반혁명으로 전화(轉化)되었다. 정당이 난립하는 중에 혁명파는 혁명 동맹회를 개조하고 소당파(小黨派)를 합쳐서 국민당(國民黨)을 창립, 의회정치의 실현을 희구하였으나, 열강과 입헌파의 지지를 받은 위안스카이는 혁명파에게 무력 탄압을 가하여 제2혁명을 일으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혁명파는 제2(1913.7), 제3(1915.12)의 혁명을 일으켜 위안스카이 정권과 대결하였으나, 반제(反帝)·반봉건의 과제는 해결되지 않고 5·4운동 이후의 혁명으로 미루어졌다.

작가는 모욕을 받아도 저항할 줄을 모르고 오히려 머릿속에서 '정신적 승리'로 탈바꿈시켜 버리는 아큐의 정신 구조를 희화화(戱畵化)함으로써 중국 구(舊)사회의 병근(病根)을 적나라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노신의 생애와 작품 세계

시대의 어둠을 사르던 불꽃

동양권에서 세계문단의 명성을 얻고 명작의 대열에 낀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에겐 《아Q정전(阿Q正傳)》으로 유명한 중국의 노신은 그 많지 않은 작가 중의 한 명으로, 뛰어난 문학가이자, 위대한 사상가, 교육자로서도 높은 명성을 지니고 있다. 노신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의 격동기를 온 몸으로 살다간 고뇌의 중국인 지성을 대표한다. 구질서가 붕괴하고 새로운 문화가 뿌리를 내리는 역사적인 과도기에 그는 문학혁명을 주도하며 조국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시대의 선각자였다.

노신(魯迅)은 1881년 9월 25일(음력 8월 3일), 절강(浙江省) 소흥현(紹興縣) 성내(城內)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주수인(周樹人), 자(字)는 예재(豫才)로, '노신'은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할 때 처음으로 사용했던 필명이다.

노신 집안의 조상들은 원래 호남성(湖南省) 도주인(道州人)인데 노신의 14대조 때에 농민으로 소흥에 이주했다고 한다. 이 때부터, 점차로 부를 축적했으나 노신이 태어난 당시에는 약간의 논밭과 점포를 소유하고, 조부가 한림편수(翰林編修)로서 북경(北京)에 나아가 관리 생활을 하는 전형적인 봉건 소지주의 가정이었다.

노신은 6세 때부터 가숙(家塾)에 들어가 초보적인 독서를 하며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11세 때는 삼매서옥(三昧書屋)에서 수경오(壽鏡吾)라는 선생에게 사사하였으며, 집에서는 증조부에게서 글을 배웠다. 유년시절의 노신의 성품은 근면한 편에 속했으며, 가숙이나 서당에서의 규정된 공부 외에도 중국의 고서와 야사 등을 즐겨 읽었고, 어린 시절부터 조부나 유모를 통해 듣던 민간전설과 설화 등은 노신의 관심을 끌었다. 이외에도 소년 노신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안고촌(安稿村) 외가에서의 생활이었는데, <사희(社 )>(1922)에는 그 무렵 생활의 일단이 회고되어 있다. 여름철에 외가에 놀러 갔다가 마을 소년들과 천진난만하게 놀던 일이 선명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이 작품 속에서 노신은 "그곳은 내게 있어서는 천국이었다. 모두들 오냐, 오냐 해 주었고 질질사간(秩秩斯干), 유유남산(幽幽南山)(《시경》의 한 구절)을 외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술회하고 있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노신은 마을 어디를 가나 존경받고 사랑받는 명문댁 도련님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유복한 생활은 노신이 12세 되던 해에 조부가 투옥되고, 그로 인해 아버지 백의(伯宜)가 중병으로 앓아 눕게 되자 뒤바뀌고 만다. 주씨 집안은 이 투옥 사건을 계기로 하여 급속도로 몰락하게 되고, 노신은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거의 매일을 전당포와 약방을 출입하게 된다. 전당포는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집안 물건을 저당 잡히기 위해서였고, 약국은 의원이 처방해 주는 약을 사기 위해서였다. 훗날(일본 유학에서 현대의학을 배운 이후) 노신은 그 고생이 속임수 같은 한의 때문이라고 술회하는데, 그 회고담은 그의 첫 작품집인 《납함( 喊)》(1923)의 자서(自序)에 잘 나타나 있으며, 그 창작집 속에 포함되어 있는 <명천(明天)>(1920)은 바로 그 기억을 비판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런 고생에도 불구하고 3년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집안은 완전히 몰락하였고 장남인 노신은 새로운 삶의 출로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때의 타격, 특히 처음부터 곤궁했던 것이 아니고 갑작스레 그리 된 것이기 때문에 노신에겐 낙원의 상실이 굴욕감과 더불어 보다 강하게 의식되었고, 그것이 다시 응어리가 되어서 뒷날의 정신적 성장에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노신의 작품 세계에서 보이는 깊숙한 비애와 어둠은 주로 그의 불행한 소년기에 키워진 비관적인 정서와 의심적인 기질에서 연유한다. 이러한 유년시절의 개인적 환경은 당시 중국의 시대적 상황과 함께 노신을 입신양명을 꿈꾸던 명문댁 도련님에서 열렬한 문학혁명의 전사(戰士)로 변모시키는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게 된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의 근 백년 간의 중국의 역사는 영국을 선두로 하는 서양 제국의 침략을 받아 반식민지로 떨어지는 역사인 동시에 중국민족이 그러한 열강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민족 해방사이고, 열강을 따라 잡으려는 근대사의 역사였다. 특히 노신의 전 생애와 맞물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의 중국사회는 암흑의 구름으로 뒤덮인, 절망으로 충만된 시대였다. 아편전쟁 이후 계속 심화되어 온 정치, 사회적 혼돈과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 중국 사회와 중국 민족은 단말마(斷末魔)의 병상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었던 것은 중국 봉건사회의 유교적인 폐습이었다. 중국의 유교적 전통사회 내의 폐단으로 인한 국민성의 후진성이야말로 근대화의 발전을 저해하고, 중국인들을 더 깊은 나락의 절망 속으로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근대적인 국민정신을 계몽하고, 개선하기 위한 문화운동이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어나게 되고, 1919년 5·4운동이라는 문화혁명(신문화운동)으로 심화, 확산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암흑의 시대에 노신은 다른 진보적인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신문화운동을 주도하며, '문학'이라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 자기 민족의 낡은 사상과 의식을 불태우고, 시대의 어둠과 절망을 넘어서려고 애쓰던 '정신계의 전사'로서 일생을 일관하게 된다.

문학의 길을 향하여

근대 중국 사회가 서구 문명과의 접촉으로 근대화에 눈을 뜰 무렵, 집안의 몰락으로 정통적인 입신의 길이 막혀 버린 노신은 새로운 세계의 경험을 위해 무술변법(戊戌變法)이 나던 해인 1898년 그의 나이 17세 때 남경(南京)으로 가 강남육사학당(江南陸師學堂) 부설의 광로학당( 路學堂)으로 전학을 해 거기서 4년간 노신은 물리, 수학 등 근대 과학의 기초를 배우며 서양 과학의 우월성을 실감하게 된다. 또한 학교에서의 정규교육 외에 당시 중국의 식자들간에 널리 읽히고 있던 헉슬리의 《천연론(天演論)》(《진화와 논리》 번역)을 통해 진화론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이 진화론에의 개안(開眼)은 노신의 정신적 성장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것은 과거의 구습에 얽매여 있는 중국 민족의 낙후된 정신생활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노신은 이 시기에 유신파(維新派)에 의해 간행되던 「시무보(時務報)」와 서구의 정치, 경제, 문화에 관한 것을 널리 소개했던 「역서강편(譯書江編)」 등을 통해 서구의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접하게 된다. 이 잡지는 1899년 일본에 유학중이던 학생들에 의해 편찬된 최초의 신잡지로, 주로 서구의 서적을 번역하여 실었다. 노신은 이 잡지를 통해 서구의 문학과 철학 서적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루소의 《민약론(民約論)》,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뒤마의 《춘희》 등이었다고 한다.

노신은 1901년 말에 광로학당을 졸업하고 바로 다음 해인 21세 때, 일본으로 유학의 길을 떠나 동경의 홍문(弘文)학원 속성과에 입학한다. 그곳에 머무르는 2년 동안 노신은 일본어를 배우며 철학과 문학에 관한 책을 광범위하게 읽으며, 혁명집단인 '광복회(光復會)'에도 출입하게 된다. 이 때에 그는 '국민성'에 관한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중국과 중국인을 구할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 결과 일본의 유신(維新)이 서양의 의학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인식하고 1904년 가을 동경을 떠나 센다이[仙臺] 의학 전문학교에 입학한다. 재학 중 노신은 의학에 관한 전문적 지식의 습득 외에도 정치 모임에 자주 참가하면서 더한층 정치적 의식을 심화시켜 나가며, 서서히 문학의 길로 다가가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유명한 '환등(幻燈)사건'으로 인해 노신은 의학에서 문학으로 방향전환을 하게 된다. 이 환등사건에 관한 일화와 그 충격으로 인한 문학에의 결심은 노신의 첫 작품집인 《(납함)의 자서(自序))에서 그 일면을 잘 엿볼 수 있다. 노신은 환등 사건으로 인해 중국과 같은 낙후된 국민에게는 건강한 체격보다 강한 국민정신이 더 필요하다고 통감한다. 그래서 국민정신을 개조하는 데 문예를 통한 방법이 최선이라고 판단하고 문예운동에 매진할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그 최초의 작업으로 노신은 동인 잡지 발간을 계획한다. 1907년 노신은 동경에 있던 몇 명의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신생(新生)」이라는 문예잡지의 출판을 계획한다. 그러나 이 20대의 젊은 중국 유학생들의 의욕과 패기는 인력과 재력의 부족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무산되고 만다. 노신은 이 문학활동의 실패로 심한 좌절감을 느끼게 되지만 곧 극복하고 <마라시역설(摩羅詩力說)>, <문화편지론(文化偏至論)> 등의 논문과 몇 편의 러시아 문학 작품을 번역하여 자신의 문학생활의 첫장을 열게 된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08년 노신은 혁명적 논객인 장병린(章炳麟)의 《설문해자(說文解字)》의 강의를 듣게 된다. 손문, 황흥과 함께 신해혁명의 삼종(三宗)이라 일컬어지는 장병린은 국학자로서의 성망도 있고 해서 당시 혁명 운동에 대한 영향력은 지식인과 학생들 간에 손문 이상으로 컸다. 노신은 동생인 주작인(周作人), 허수상(許壽裳), 전현동(錢玄同)과 함께 학자로서의 장병린에게 접촉한 셈인데 '전투적인 문자이야말로 선생의 생애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영구적인 업적'이라고 <태염선생(太炎先生-장병린)에 대해서>에서 말할 정도로 그 감화는 지대했다. 노신은 장병린과 사귀면서 그들 조직인 '광복회'에도 자주 출입하게 되는데 그 가입 여부는 관해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이처럼 8년여에 걸친 유학시절은 노신의 최초의 문학활동 시기였으며, 초기 사상의 중요한 형성시기였다.

중국 신(新)문학의 선구

1909년 노신은 귀국해서 항주(杭州)의 양급사범학교에서 화학과 생리학을 가르치다가, 이듬해인 1910년 여름에 고향인 소흥으로 돌아와서 소흥 중학교에서 근무하게 된다. 1911년 이른바 신해혁명이 폭발하고 노신은 소흥사범학교 교장에 취임하여 재직하던 중, 다음해인 1912년 남경에 중화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교육총장이 된 채원배(蔡元培)의 요청에 따라 교육부원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임시정부를 따라 북경으로 이주한다. 그러나 노신은 기대를 걸었던 신해혁명이 역사적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고 원세개(遠世凱)의 제정부활운동, 장훈(張勳)의 복벽(複壁)사건 등을 통해 다시 복고주의적 경향으로 흐르자 크게 실망한다. 1912년에서 <광인일기>를 발표하게 되는 1918년까지는 노신의 생애를 통해 사상적으로 가장 고난에 빠진 시기로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한 사고와 심사의 시기였다. 그는 중국사회와 사상에 관해 깊이 관찰하고, 중국의 역사와 전통문화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며 중국서적에 관한 고증과 수집, 금석비첩(金石碑帖)과 불경의 연구 등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신해혁명의 붕괴로 심한 혼란에 빠진 노신은 새로운 중국 혁명상의 재건을 고대하며 절망과 침묵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노신에게 있어 청년기의 반항 없는 문학활동의 실패와 그 뒤를 이은 어두운 조국의 현실은 심한 정신적 방황과 고뇌를 가져 왔던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내면의 혼란을 극복하고 나아가 다시금 자신이 속한 세계와의 사이에 일정한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단호한 윤리적, 의지적인 자아를 확립하기 위한 정신적 여유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황과 고뇌를 뚫고 나온 작품이 바로 노신의 처녀작이자, 백화체(白話體-구어체) 문장으로 씌어진 중국 최초의 신소설인 <광인일기>였던 것이다.

중국문학이 비록 수천 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소설은 다른 장르에 비해 줄곧 경시되어 왔다. 명청시대(明淸時代)에 백화소설(구어체로 된 소설)이 많기는 하나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창조정신이 결여되었고 새로운 사상도 없이 묘사하는 신변잡기식 이야기였다. 따라서 진정한 신소설은 신문학운동 이후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는다.

당시 중국인들에게 깊은 자극을 준 것은 번역을 통한 서양사상과 문학의 영향이었다. 청일전쟁 후 변법운동(變法運動)이 대두했던 때에 한편으로는 유럽의 사상과 문학이 중국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서양서적의 변역은 그 전부터도 있었지만 종래의 그것은 양무(洋務)운동이나 기독교의 전도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많았고 선택의 범위가 제한되었는데, 이 무렵에 와서는 사상과 문학의 분야까지 넓혀졌던 것이다. 양계초(梁啓超), 엄기도(嚴幾道-嚴復), 임서(林緖), 진독수(陳獨秀), 호적(胡適), 주작인 등은 문학, 사상의 개혁을 주장하며 서양의 문화를 소개하는데 앞장섰다. 당시 이들의 문학혁명과 문체개혁, 서구문학의 번역소개는 새 세대들에게 문학에 흥미를 갖게 했으며, 중국 신문학의 부흥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중국인들로 하여금 서양문학의 특성을 새삼 인식케 하였다. 이로 인하여 중국 지식인들 머릿속에 수입된 합리주의 사상은 중국의 전통적인 봉건사상과 유교사상을 근본적으로 뒤엎어 놓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학개혁에 관한 의기당당한 거센 물결은 곧 5·4운동의 고조를 맞이하면서 전국을 석권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작품을 통한 현대문학의 기원이 된 것은 노신의 소설들이었고 특히, 백화로 씌어진 소설로 1918년 「신청년」지에 발표되었던 <광인일기>였다.

노신은 이 백화체의 문장으로 씌어진 새로운 구성의 소설을 통하여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어온' 중국의 봉건사회를 고발하였으며, 또한 중국의 장래를 위하여 '너희들, 지금 곧 개심하라. 진심으로 개심하라 알겠는가. 머지않아 인간을 먹는 인간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게 된단 말이다.'라고 외쳤던 것이다. 이 뒤에 전국적으로 백화의 신문과 정기 간행물이 출현하였으며, 이에 중국의 오래 전통문학은 종말을 고하고 새로이 현대문학이 그 넓은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된 것이다.

'광인일기'와 문학혁명

노신의 <광인일기>는 당시 신문화운동을 주도하던 진영으로부터의 봉건사회에 대한 최초의 도전서였으며 사상혁명과 문학혁명의 이정표 역할을 했던 중요한 작품이다. 노신의 작품 중 가장 현실에 대한 고발성이 강하게 나타나 있으며, 내용과 형식의 과감한 파격성으로 인해 중국의 젊은 지식인 세대에 큰 충격을 주었던 작품이다. 작품은 13개 부분으로 이루어진 일기체 형식이다. 흘인(吃人-먹는 사람). 피흘인(먹히는 사람), 박해자, 피박해자가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며 예교(禮敎)가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피해망상자의 형상을 통해서 중국의 유교적 전통사회내의 가족제도와 예교의 폐단과 피해를 과감하게 폭로하고 있다.

<광인일기>는 어느 날 밤 달을 보고 '이제까지 30년 이상이나 전혀 제 정신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광인의 이상심리-광인은 각성하였으나 유교이념의 강력한 조직에 묶여 있는 정상인들과는 괴리감을 느낌-를 통하여 암흑 속에 있는 중국사회 전체를 고발한 작품이다. 광인의 눈에 비친 사회는 모든 인간들이 '자신은 남을 잡아먹으려고 하면서 남에게는 잡아먹히지 않으려 하므로 서로 의심을 품고 흘끗흘끗 상대방을 감시하고 있는' 세계이다. 광인은 4천년에 걸친 중국 봉건사회의 역사책 속에서 '식인(食人)'이라는 두 글자를 발견해 내고, '인간을 잡아먹은 일이 없는 아이가 아직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을 구하라'고 호소한다.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물론 하나의 비유이지만, 노신이 광인의 눈을 통하여 본 중국사회는 그처럼 헤어날 길 없는 구조적 병폐에 갇혀진 암흑의 세계였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그 사회의 일원임을 실감한 나머지 '아이들을 구해라……'하고 부르짖기에 이르는 광인의 정신적 변화는 바로 작가인 노신 자신의 정신적 체험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즉, 일본 유학시절 진화론과 니체, 바이런 등을 통해서 접한 서구 근대정신사조의 영향으로 홀로 각성하여(이 때 중국의 현상에 대하여 '잡아먹힌다'는 공포를 자각한다) 개혁의 의지를 품고 스스로가 '팔을 힘차게 흔들며 한 번 외쳐서 이에 응답하는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게 할 수 있는' 정신계의 전사라는 임무를 떠맡아 문예활동을 시도하였으나 모두 헛되이 실패로 끝나고 만다. 더욱이 자신이 무한한 열의를 가지고 지지하였던 신해혁명조차도 무력하게 반동세력에 의해 좌절되는 것을 보고 깊은 절망 속에 빠져서, 탁본(拓本)의 수집, 연구 등에 파묻혀 스스로를 마비시켜 오던 작가 자신이, 광인이 '나도 누이동생의 고기를 먹었다'고 하는 죄의 자각에 도달하였던 것과 마찬가지의 체험을 통하여 '잡아먹힌다'는 피해의식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속해 있는 중국사회의 도피할 길 없는 암흑의 구조를 파악하게 됨으로써 문학자로서의 자각을 얻어 '아이들을 구해라……'고 하는 절망의 부르짖음을 발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현실정치에서 소외되어 있던 이상적, 관념적인 반항과 행동의 정신계의 전사는 그처럼 자신을 시대의 저변에 편입시키는 근원적인 선택에 의해 다시금 실재하는 중국민족과 밀착된 정치적 인간으로서의 문학자로 탄생하게 된다. 이로부터 이어지는 노신의 창작행위는 중국사회의 엄연히 가로놓여 있는 절망의 소재에 대한 현장 검증에 바쳐지게 된다.

중국의 현상에 뿌리깊은 절망감을 느꼈던 노신은 '문학혁명' 에 대한 열정으로 다시 붓을 들게 되고, <광인일기>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인생을 위한', '인생을 개선하기 위한' 작품을 발표한다. 노신은 1918년 <광인일기>로부터 1925년의 <이혼>에 이르는 8년여 동안 많은 소설을 발표하는데, 이 일련의 작품들은, 비평적 선도에 의해 열려진 문학 혁명 이념을 작품상에 나타낸 최초의 작품군이었다. 이 작품들은 시기별로 각각 창작집인 《납함( 喊)》(1923)과 《방황(彷徨)》(1926)에 수록되는데 특히, 첫 창작 소설집인 《납함》(싸움터에서 양쪽 병사들이 지르는 소리, 함성)에 실린 작품들은 문학전사로서의 노신의 투철한 비판정신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구지식인의 몰락과 나태한 근성을 지적하여 경향심을 불러일으켰던 <공을기(孔乙己)>(1919), 미신과 무지로 인한 중국인의 병폐를 일깨워 준 <약>(1919)과 <명천>, 농촌생활의 암담함과 피폐함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고향>(1921) 등의 시대 고발적인 일련의 작품들은 문학혁명가로서의 노신의 열정을 대중에게 알리며, 문학인으로서의 노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해 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노신의 이름을 중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서 후세에까지 길이 남을 수 있게 해 준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아Q정전(阿Q正傳)>일 것이다.

'아Q정전'과 정신승리법

<아Q정전>은1921년 12월에서 다음해 2월에 걸쳐 주간 「신보부간(晨報副刊)」에 파인(巴人)이라는 필명으로 발표된 중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각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노신의 이름을 불후한 것으로 만든 대표작이다.

<아Q정전>은 신해혁명 시기의 농촌생활을 제재로 하여 이 시기의 중국 농촌 생활상을 심각하게 파헤쳐 아Q라는 품팔이꾼의 운명을 비극적으로 묘사함과 동시에 중국민족의 나쁜 근성을 지적하여 국민성을 각성시키려 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노신은 중국과 중국민족을 절망적으로 그리고 있다.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을 예견하고, 희망이 있는 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오히려 궁지에 몰려 소외되고 탈락되고 짓눌린 자의 모습을 집요하게 그려낸 것이다.

아Q는 반식민지, 반봉건적인 사회, 더구나 신해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하는 타성의 사회에서 사명감도 목적의식도 없으면서 부질없이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드디어는 무기력하고 비겁한 노예근성으로 돌아가 그 최후를 공허하게 끝마치는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다. 아Q의 성격은 풍부하고 다양하며 다혈질이다. 그는 자손심이 매우 강할 뿐만 아니라 보수적이며 우매무지하다. 그러나 아Q의 성격을 관통하는 지배적인 관념의 흐름은 '정신승리법'이다. 노신이 아Q를 통하여 예술상의 '정신승리법'을 끌어 낸 것은 심각한 현실적 의의와 깊은 역사적 의의를 내포하고 있다. 즉, 공허한 영웅주의와 무력한 패배주의에 침식되어 자국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며 자기만족에 젖어 있고, 타개치 못하는 민족적 위기에 살면서도 대국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물질생활의 군데군데마다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정신적인 만족에 현실을 외면해 버리는 청나라 정부와 한(漢)민족에 대한 조소와 비난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의 문호를 개방한 청나라 정부는 그들의 실패를 변명하고 감추면서 조정의 위엄을 계속 유지, 봉건 통치를 완고히 함으로써 허영과 거만한 욕구를 채운다. 이러한 상류사회의 기풍이 반봉건성, 반식민지의 중국사회에 만연되어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즉, 실제는 모든 것에 패하였으면서도 정신적인 승리에 만족하는 기풍이 하나의 국민성으로 인정되었고 이러한 국민성에 대한 것을 노신은 철저하게 증오하게 된 나머지 아Q라는 인물을 내세워 심히 채찍질을 한 것이다.

아Q는 비겁하다. 상대를 비교해 보아 더듬거리는 놈에게는 욕을 하고 기운이 약한 놈은 때린다. 그러나 혼나는 때가 더 많다. 왕털보한테 혼이 나고 저항력이 없는 젊은 여승에게 취하는 행동, 힘이 없는 소D에게 우쭐되며 깔보는 것은 그의 비겁한 행동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노신은 중국 민족성의 병폐요, 비겁성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아Q는 정신승리법에 의해 희롱을 당하고 매를 맞아도 반항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 놀림을 받고 있는지도 생각지 않고 도리어 마음속으로는 우월감에 차 있다. 아Q는 자존심이 강하다. 그가 비록 품팔이 일꾼에 지나지 않으나 미장(未莊)의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조대감을 비롯한 지주들에게도 정신적으로 존경의 빛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와 같은 아Q식의 정신승리법을 노신은 일찍 깨닫고 문예를 무기로 삼아 깨닫지 못한 대중을 치료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아Q주의'는 피압박 사회에서 하나의 교활한 대응 방법이다. 민족의 치욕을 건망하고 병을 앓으면서도 의사를 기피하고, 남의 뒤를 따라 공연히 뇌동하고 약자에겐 잔인, 강자에겐 아첨하며 스스로의 책임을 남에게 미루고 지난 날의 영광을 과장해 환상에 젖어 있는 자기 민족에 대한 맹혹한 질책인 것이다. 특히, 마지막 아Q의 처형 장면은 노신의 자기 민족에 대한 노여움, 분노, 쓸쓸한 동정 등의 우울한 물결의 파장을 전해준다. 이 〈아Q정전〉은 발표 당시 보수파로부터는 국민의 나쁜 면만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그리고 급진적인 세력으로부터는 적극적인 생산 농민을 묘사하지 않고, 룸펜 농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데서 각각 비난과 질시를 받았다. 하지만 〈아Q정전〉은 이러한 국수주의와 이데올로기의 논란을 넘어서 문학적 영역으로 승화된, 중국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의 걸작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인 것이다.

암흑(暗黑) 속에서 광명(光明)의 미래를

노신은 1926년 두 번째 소설집인 《방황》을 출판한 이루로는 소설보다는 자신의 사상을 발표하는 수단으로 문예활동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잡문(雜文)을 주로 발표한다. 그리고 1927년 상해(上海)에 와서 1936년 세상을 떠나기 전, 상해에서의 10년 동안, 노신은 두 번 북경을 다녀온 외에는 줄곧 상해에서 보낸다. 상해에서 보낸 생애의 마지막 10년 동안 노신은 9권의 잡문집과 역사소설인 《고사신편(新古事編)》을 출간했고, 문예이론, 장편, 단편소설, 동화 등을 번역했으며, 소련과 독일의 신흥목각(新興木刻)을 소개했고, 신문학운동을 제창했으며 세계 언어의 보급에 힘썼다. 또한 행동적인 면에서는 '중국 자유운동 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 등에서 활동하며 정치적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노신의 문학세계는 이 1927년을 기점으로 크게 두 시대로 분수령을 이룬다. 노신의 전기시대가 단편시대라면 후기는 잡감문(雜感文)의 시대이고, 전기가 계몽적이고 사실적인 인생문학이라면, 후기는 사회비판과 문학비평을 전제로한 정치문학이다. 전기작품에는 전통적인 애수와 낭만 그리고 풍자가 특징이지만 후기작품은 맵고 신 정공적인 표현이 특징이다. 노신은 후기에 정치에 관심을 보이면서 좀더 적극적으로 인간혁명, 제도혁명에 전념하게 되고, 비판문학의 영역으로 사상적 변화를 일으켰던 것이다.

만년의 노신은 중국의 고리키라 일컬어질 정도로 많은 청년 작가들로부터 숭앙을 받았다. 지병으로 병상에 드러누우면서도 집필을 쉬지 않았던 노신은 1936년 10월, 55세의 일기로 삶을 마감했다. 당시 1만여 명의 군중들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으며, 항일 통일전선 조직문제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문인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문단을 통일하기도 했다.

노신의 작품들은 대개 짤막짤막한 단편이지만 그 속에 깃든 사상성과 예술성으로 인해 그 생명력은 어느 작품보다도 길다. 노신의 문학은 혁명을 위한 문학이지만, 안이한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향기롭고 위대한 문학이다. 노신이 작품 속에서 그리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슬로건이나 말뿐인 지식인 작가의 허위가 아닌, 진실한 생활, 눈부신 투쟁, 약동하는 맥박, 뜨거운 정열, 그리고 상승하는 인간의 희망이었다.

노신의 문학세계는 어둡다. 그것은 노신을 둘러싼 현실이 모두 생명력을 잃어버린 절망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신은 그 절망 속에 갇히지 않고, 오히려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비극적인 자기확인을 통해 발전적인 의지로 승화시킨다. 노신의 작품 중 하나인 <고향>의 마지막 장면에 다음과 같은 나레이션이 있다.

'희망이라는 것은 원래 있는 것이라 할 수도 없거니와 없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실상 땅 위에 본래부터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노신에게 있어 희망은 이처럼 묵묵히 다져진 좌절감 위에 비로소 싹틀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대표작인 <아Q정전>에서도 노신은 아Q의 혁명을 비참하게 좌절시킴으로써 아Q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을 해방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자각을 얻도록 했던 것이다. 중국이 희생할 수 있는 진정한 혁명의 길은 바로 아Q의 절망서부터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신이 암흑속에서 광명의 미래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자기 민족에 대한 열렬한 애정에서 기인한다. 노신의 가슴 밑바닥에서 뜨겁게 이글거리던 민족애야말로 그의 문학세계에 희망을 잉태시킬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이었던 것이다.

가장 험난한 시대에 태어나 격동기를 살며 열렬한 민족애로 일관했던 노신. 그는 민족의 병근(病根)을 노출시킴으로써 과거의 어두운 체험으로부터 계몽하는 일을 피부로 느끼고, 앞날의 행복을 드러내 놓기보다는 과거의 고통을 쫓아 현재를 움직이며 미래를 예언하던 시대의 선각자요, 민족혼이었다. (출처 : 혜원출판사 부록)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루쉰(魯迅)

1881. 9. 25 중국 저장 성[浙江省] 사오싱[紹興]~1936. 10. 19 상하이. 20세기 중국문학의 거장.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자는 예재(豫才).

초기생애

루쉰의 어린시절 이름은 장서우[樟壽]였고 수런이라는 이름은 1898년 난징[南京]의 학교에 입학할 때 가지게 되었다. 광서(光緖) 11년에 동생 저우쭤런[周作人:1885~1966]이 태어났다.

루쉰은 어렸을 때 서당 선생에게서 역사서나 유교 경전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림책을 보거나 베끼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나중에 그는 중국 고대의 목판화집 〈북평전보 北平箋譜〉·〈십죽재전보 十竹齋箋譜〉를 정전둬[鄭振鐸:1897~1958]와 공동으로 다시 새겨 출판하는가 하면 독일 메에펠트의 소설 〈시멘트〉의 그림, 소련의 판화집 〈인옥집 引玉集〉, 독일 콜비츠의 판화집 등 외국의 새로운 판화를 복사하여 출판함으로써 중국에서 새로운 판화를 육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같은 그의 회화 지향은 이미 소년시대부터 싹튼 것이었다.

그가 13세 때 가정의 중심이자 경제적 지주였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체포·투옥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친지가 관리시험을 치를 때 평소 알고 지내던 시험관에게 뇌물을 건네주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현지사(縣知事)와 중앙정부 관리까지 지냈던 할아버지가 감옥에 갇히게 되자 그의 일가는 커다란 타격을 입었고 생활은 갑자기 곤궁해졌다. 그의 아버지는 본래 병약하여 당시 폐결핵으로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그는 거의 매일 어머니의 장신구 등을 전당포에 맡기고 받은 돈으로 약을 사왔지만 아버지는 결국 그가 16세 때 사망했다.

그의 첫번째 소설집 〈눌함 喊〉의 자서(自序)에는 당시의 일이 이렇게 씌어 있다. "누구라도 평온한 가정으로부터 곤궁의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세상사람들이 가진 대부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죽은 2년 후 18세가 된 그는 8원의 학비를 어머니로부터 받아 난징으로 갔다. 학교에 입학하여 새로운 학문을 닦기 위해서였다.

학업과 성장기

그는 원래 학비를 면제받는 해군학교에 입학했지만 곧 육군학교 부설 노광학당(路鑛學堂)으로 전입했다. 여기서 그는 독일어를 공부했고 물리·지질·광물·지리·역사·그림·체조 등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서양식 과목에 접하게 되었다.

루쉰이 난징에 있는 동안 읽은 책 중 후일 특히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은 그즈음 출판되어 평판이 좋았던 옌푸[嚴復:1853~1921]의 〈천연론 天演論〉(토머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를 발췌·번역하여 군데군데 역자 자신의 의견을 삽입한 것)으로서 여기에 담긴 진화론학설은 그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동시에 마음 속 깊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것은 '자연선택'이나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의 법칙성이 국제사회 속의 중국에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민족적·국가적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따라서 진화론의 적용을 피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중국을 혁명하여 '신생'(新生)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한 전진의 염원이 청년 루쉰을 다그쳤다. 바로 이 때문에 루쉰은 문필활동을 시작하여 죽는 날까지 중국의 쇠퇴를 상징하는 봉건적·전근대적 의식구조를 집요하게 파헤쳐 비판하고 공격했다.

1902년 22세 때 노광학당을 졸업하자 일본에 유학하여 8년에 걸쳐 도쿄[東京]와 센다이[仙台]에 체류했다. 그는 처음 2년간 중국유학생을 위하여 특별히 설치한 도쿄의 홍문학원(弘文學院)에서 일본어와 교양과정을 배웠고 24세 때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지만 2년째 되던 해 그만두고 도쿄에 돌아와 문학활동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의학교를 그만두게 된 사정에 관해서도 〈눌함〉의 자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 "당시 학교에서는 세균학강의에 영화를 사용했는데 시간이 남을 때에는 풍경이나 시사에 관한 것도 보여주었다. 마침 러일전쟁 때였기 때문에 시사에 관한 것이 많았는데 때로는 그와 같은 영화 속에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동포들과 만나게 되었다. 러시아를 위해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이유로 일본군에 체포되어 참수당하는 동포와 그것을 에워싸고 구경하는 많은 동포들이었다. 모두 당당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덤덤한 얼굴로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대체로 무지한 국민은 체격이 아무리 훌륭하고 건장해도 바보같은 구경꾼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선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의 정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그렇게 하는 데에는 문예가 가장 적당한 수단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의학교를 그만두고 도쿄로 돌아갔다."

루쉰은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웠는데 도쿄로 돌아와서도 '독일협회학교'에 다니면서 독일어 공부를 계속했고 레크럼 문고의 세계문학을 읽었다. 특히 유럽이나 동유럽의 문학, 그 중에서도 폴란드·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그리스 등 당시의 약소·피정복 민족의 문학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의 조국인 중국과 마찬가지로 약소하고 압박받는 민족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추구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즉 다른 약소민족의 문학을 통하여 중국민족은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에 관하여 공감의 계시를 얻고자 한 것이다.

귀국과 공무원 생활

선통(宣統) 1년(1909) 그는 8년 간의 일본유학을 청산하고 귀국하여 항저우[杭州] 사범학교에서 화학과 생리학을 가르쳤으나 다음해에는 사오싱 중학교의 교감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다음해인 1911년 가을 후베이 성[湖北省]의 우창[武昌]에서 혁명이 일어나 곧바로 전국에 파급되어 각지의 청조(淸朝) 지배기구는 속속 무너졌다. 사오싱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새로운 도독(都督:지방군권 장악자)에 의해서 교장에 임명되었지만 그의 학생 중 하나가 도독을 비판하는 신문을 냈기 때문에 기피인물로 지목되어 이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 신문에 루쉰은 하이네의 시를 번역하여 실었다. 또 이즈음 그의 첫 소설인 문어체의 단편 〈회구 懷舊〉(1913년 3월 〈소설월보 小說月報〉에 게재)를 저술했다.

1911년 혁명으로 청조가 쓰러지고 다음해인 1912년 1월 난징에서 중화민국임시정부가 탄생했는데, 그는 고향 선배이자 새 정부의 교육부를 관장하던 차이위안페이[蔡元培:1868~1940]의 초청으로 교육부 관리로 임용되었다. 이해 5월 정부가 베이징으로 옮기면서 그도 베이징으로 이사하여 그후 15년 간 교육부관리로 사회교육국에 근무했다. 1918년부터 집필활동을 시작했지만 그때까지의 베이징 생활 역시 '적막감'의 연속이었다.

베이징 시절 초기 그는 공적으로는 교육부 일을 보면서 틈이 나면 개인적으로 오래된 탁본을 모아 그것을 베껴쓰거나 오래된 소설집을 교정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행동들이 '적막감'에 사로잡힌 영혼의 고통을 마취시키는 방법이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즉 혁명 후의 정치불안과 공포분위기를 잊기 위한 행동들이었다. 외형적으로야 어떻든 실질적으로는 중국이 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혼란과 불안만 가중된 현실이 그를 절망으로 몰아간 것이다. 혁명 후 실권자가 된 것은 청조를 배반한 위안스카이[袁世凱]였다. 그는 중화민국 대총통이 되고서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제정(帝政)을 부활시켜 자신이 황제가 되려 했고 심복을 부려 제정 부활 여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반대자의 입을 막기 위해 암살을 자행하기도 했다. 정부 관리가 잡담중에 반대의견을 흘리기라도 하면 어느 사이엔가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될 정도였다. 그때 루쉰이 탁본을 모으고 그것을 베껴쓰면서 세월을 보낸 것은 암살을 면하기 위해서였다고 동생인 저우쭤런은 쓰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 때때로 어두운 그림자가 깃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당시 그가 받았던 마음의 충격이 마치 후유증처럼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후로 계속된 그의 문필활동을 볼 때 그러한 사건들이 그의 인간적인 민족애를 한층 확고히 해주고 나아가 다음 단계의 싸움을 자극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는 〈자선집 自選集〉(1932)의 서문에서 "절망이 허망하기는 희망과 마찬가지이다"라는 헝가리 시인 베트피산더의 시구를 인용하고 있다.

문인으로서의 출발

1918년 친구 첸셴퉁[錢玄同]이 루쉰을 방문하여 잡지 〈신청년 新靑年〉에 기고할 것을 권했는데 이 잡지의 5월호에 루쉰은 단편소설 〈광인일기 狂人日記〉를 실었다. 이것이 루쉰이 작가로서 출발한 첫번째 작품이다.

〈신청년〉은 본래 〈청년잡지 靑年雜誌〉라는 이름으로 1915년 9월에 창간되었다가 1916년부터 〈신청년〉으로 이름을 바꾸어 베이징대학의 문과학장 천두슈[陳獨秀:1879~1942]가 주재하고 베이징대학 교수 몇 명이 동인으로 편집에 참여했던 종합적 계몽잡지로서 '문학혁명'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정식 문장에는 문어체가 사용되었고 정통 문학용어 또한 문어였다. 그러나 문어는 고어(古語)로서 현대인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1917년 1월 미국 유학중에 있던 후스[胡適]는 〈신청년〉에 기고한 〈문학개량추의 文學改良芻議〉라는 글에서 구어(口語)가 아니면 오늘날의 문학은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다음해 같은 잡지에 천두슈는 후스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용어는 물론 내용의 측면에서도 옛 문학의 무사상성(無思想性)을 통렬하게 공격하고 앞으로의 문학은 평이한 표현을 사용하여 사회성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문학혁명론 文學革命論〉을 발표했다. 그후로 〈신청년〉은 '문학혁명'의 본산이 되어 다른 동인들도 구어문학의 역사적 정통성을 강조하는 논문을 이 잡지에 속속 발표했다. 일반적으로 〈신청년〉의 주요주제는 봉건적 국민의식의 변혁을 지향하는 것으로, 중국에서 막 성립된 민주공화제를 다시 군주제로 되돌리자는 낙오된 의식의 비근대성을 비판·시정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천두슈는 문학혁명을 이끄는 것은 '민주'와 '과학'의 양대 지주였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이같은 목표와 관련하여 중국 봉건사회를 2,000년 이상이나 윤리·사상적으로 구속해오던 '유교'의 권위는 새로운 민주 중국의 앞길을 방해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따라서 〈신청년〉은 국민의식 속에서 민주와 과학을 추진하기 위해 유교주의를 격렬하게 비판·공격했다. 예로부터 확고부동한 권위를 누리고 있던 문어를 부정하고 구어문학을 정통으로 하는 '문학혁명론' 역시 봉건사회에 뿌리깊이 자리잡은 기성의 권위를 부정하는 주장이었기 때문에 〈신청년〉은 후스의 구어문학 주장을 곧바로 받아들였고, 나아가 그것을 '문학혁명'이라는 한층 정치적인 표어로 바꾸어 제기한 것이었다.

루쉰의 〈광인일기〉는 후스와 천두슈의 구어문학이나 '문학혁명' 주장을 최초로 실천한 작품이다. 구어적 표현을 채택한 이 작품은 유교의 억압적인 도덕이 '사람이 사람을 먹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암시하고 이것을 미친 사람의 입을 통해 대담하게 말한 내용으로, 결말은 "어린이를 구하라"는 말로 맺고 있다. 중국의 장래를 위해 이제부터 새로운 사람은 유교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루쉰은 〈광인일기〉에 이어 〈공을기 孔乙己〉·〈약 藥〉·〈풍파 風波〉·〈고향 故鄕〉 등의 단편소설을 〈신청년〉에 계속 발표하여 '문학혁명'이 제창하는 작품의 가능성을 실천했다. 특히 1921년 베이징의 신문 〈천바오 晨報〉 부록판에 연재된 〈아Q정전 阿Q正傳〉은 신문학의 승리를 확인하고 또한 작가 루쉰의 지위를 확립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소설은 '아Q'라는 날품팔이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봉건적인 중국사회가 만들어낸 민족적 비극을 풍자하여 전형화(典型化)한 것인데, 독자들은 자기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아Q 기질에 충격을 받았고 이 작품은 곧바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루쉰은 수필 〈나는 왜 소설을 쓰게 되었는가〉(1933) 속에서 "나는 병든 사회의 수많은 불행한 사람들로부터 소재를 찾았다. 그 의도는 질병과 고통을 거론하여 치료의 필요성을 환기하는 데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루쉰 소설의 일반적 특징을 스스로 서술한 것이라 하겠다.

루쉰은 소설과 병행하여 평론성을 지닌 짧은 수필을 계속 집필했다. 그중에는 날카로운 풍자와 격렬한 공격을 통해 전근대적인 병든 사회의 여러 가지 측면을 파헤친 것이 많았다. "지상에는 본래 길이 없고 그곳을 걷는 사람이 많으면 길이 된다"는 사고방식에 입각하여 새로운 길을 찾아 현실의 보수적 습속을 통렬하게 비판·공격한 것이다. 이러한 평론성을 띤 수필을 그는 '비수' 혹은 '투창'에 비유하고 있다.

1926년 3월 18일 외교문제에 관해 정부에 청원하려는 학생들의 시위행진이 있었는데 호위병이 이 행렬에 발포하고 다수의 사상자를 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루쉰은 그 날을 '민국 이래의 가장 어두운 날'이라 하여 사망자에 대한 애도와 학살자에 대한 분노를 글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군벌정부는 사상탄압을 강화하고 많은 진보적 예술인을 체포하려고 했다. 루쉰은 베이징을 탈출하여 남쪽으로 피신하여 샤먼대학[廈門大學]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그곳에 4개월 간 머물다가 다음해 1월에는 광저우[廣州]의 중산[中山]대학으로 옮겼다. 중산대학에 부임하여 얼마 되지 않아 국민당의 숙청이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국민당과 합작하고 있던 공산당원을 체포하고 그 동조자에 탄압을 가했는데 그가 가르치던 학생도 다수 체포되었을 뿐 아니라 진보파라고 간주되던 그 자신도 감시를 받아 연금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는 그해 10월 비밀리에 상하이로 탈출하여 그곳에 죽 머물면서 신문과 잡지 등에 발표했던 자신의 수필집을 교정·편집하기도 하고 신문과 잡지에 익명으로 반정부적인 단평(短評)을 써나갔다.

루쉰이 상하이에 막 도착했을 때 문학계에서는 '혁명문학'이 널리 제기되는 중이었고 이것이 프롤레타리아문학'의 주장으로 발전하여, 일부 청년문학가들은 소련의 좌익문학론을 받아들여 활발한 논의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또한 국민당 정부의 파쇼정치 강화와 함께 문학계는 대부분 좌익화의 경향으로 치달아 1930년에 ' 중국좌익작가연맹'[左聯]이 출범했는데 루쉰은 그 발기인이 되었다. 그러나 1931년 1월에 좌련에 속한 청년작가 6명이 체포되어 비밀리에 살해되었고 루쉰 또한 그들과 교류했다 하여 위험에 처하자 그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아파트에 일시적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1932년말 국민당 정치의 민중탄압 격화에 항의하여 '민권보장동맹'(民權保障同盟)이 성립하자 루쉰은 집행위원의 한 사람으로 참가했다. 1933년 6월 동맹의 간사장(幹事長)이 대낮에 저격당하여 죽고 루쉰도 또한 암살명단에 올라 있다는 소문이 도는 가운데 그는 아파트 방에 틀어박혀 예전과 마찬가지로 집필활동을 계속하다가 결국에는 폐병에 걸렸다. 그는 1936년 10월 19일 56세의 나이로 병사했으며 이때 학생과 시민 조문객은 1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시 그의 관을 덮은 것은 '민족혼'이라는 검정 글씨가 쓰여진 흰 천으로서 상하이 시민대표가 증정한 것이었다. 그는 '만국공묘'(萬國公墓)의 한 구석에 안치되었다.

작품

루쉰은 본래 단편작가로서 그의 단편은 제1소설집 〈눌함〉(15편, 1923 초판)과 제2소설집 〈방황 彷徨〉(11편, 1926)에 담겨 있다. 그러나 그는 소설활동을 개시함과 동시에 평론적인 수필을 썼으며 소설활동을 그만둔 뒤에도 죽기 직전까지 단평·수필을 계속 집필했다. 그러므로 양적으로는 소설보다 수필이 훨씬 많다. 수필집으로는 〈열풍 熱風〉(1925)·〈화개집 華蓋集〉(1926)·〈화개집 속편〉(1927)·〈이이집 而已集〉(1928)·〈삼한집 三閒集〉(1932)·〈이심집 二心集〉(1932)·〈남강북조집 南腔北調集〉(1934)·〈위자유서 僞自由書〉(일명 〈불삼불사집 不三不四集〉, 1933)·〈준풍월담 准風月談〉(1934)·〈화변문학 花邊文學〉(1936)·〈차개정잡문 且介停雜文〉(1937)·〈차개정잡문 2집〉(1937)·〈차개정잡문말편(末編)〉(1937) 등이 있다. 뒤에 열거된 3권은 사후에 출판된 것으로 부인 쉬광핑[許廣平]이 편집한 것이다.

이외에 초기 일본 유학중에 쓴 것을 포함하면 논문집 〈분 憤〉(1927), 산문시집 〈야초 野草〉(1927), 회고문집 〈조화석습 朝花夕拾〉(1928), 역사소설집 〈고사신편 故事新編〉(1936)이 있고 베이징대학에서의 강의를 정리한 〈중국소설사략 中國小說史略〉(처음에는 상·하권으로 나누어 출판되었음. 1925 합정조판, 1930 개정판)과 소설사 관계자료집 〈소설구문초 小說舊聞〉(1926) 등이 있다.

또 이상에 열거한 수필집에서 빠진 단문과 시(구체시와 신체시)를 묶은 〈집외집 集外集〉(1935)과 역서의 서문이나 부기(附記), 서간 등을 모은 〈집외집습유 集外集拾遺〉(죽은 후 1938년 〈루쉰전집 魯迅全集〉에 수록)가 있다. 루쉰의 서간집으로는 부인 쉬광핑과 결혼 전에 주고받은 서간집 〈양지서 兩地書〉(1933)가 있고 루쉰 자신이 친지에게 보낸 것은 쉬광핑 편 〈루쉰 서간 魯迅書簡〉(1946)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루쉰은 1912년 5월 5일 최초로 베이징에 온 날부터 죽기 전 날인 1936년 10월 18일까지 25년에 걸쳐서 메모 형식의 일기를 썼는데, 자신이 직접 쓴 원고의 사진판(1951)과 그것에 의거한 활자본(1958)이 있다. 단 1922년분이 분실되어 완전하지는 않다.

루쉰에게는 외국문학의 번역서도 많다. 일본 유학중에 일본어와 독일어를 공부했는데 이 두 외국어 역서는 〈루쉰역문집 魯迅譯文集〉(10권, 1958)에 수록되어 있다. (출처 : 增田涉 글 / 廉丁三 참조집필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朝花夕拾), 창(1991) /노신 산문집/ 이욱연 옮김,

짧은 글 속에 고통받는 중국 민중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그 사랑을 실천하는 지식인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그대들에게는

넘치는 활력이 있다.

밀림을 만나면 밀림을 개척하고

광야를 만나면 광야를 개간하고,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 우물을 파라.

이미 가시덤불로 막혀 있는 낡은 길을 찾아 무엇할 것이며

너절한 스승을 찾아 무엇할 것인가!

희망이란 무엇이더냐? 탕녀로다. 그녀는 아무에게나 웃음을 팔고 모든 것을 바친다.

그대가 고귀한 보물 - 그대의 청춘을 바쳤을 때 그녀는 그대를 버린다.

- 폐퇴피 샹돌(Petofi Sandor 1823-1849. 헝가리 시인)

절망은 허망하다. 희망이 그러하듯.

우승자를 존경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뒤떨어졌으되 기어이 결승점까지 달려가는 주자와 그런 주자를 진지하게 보는 관객, 그들이야말로 중국 미래의 대들보이다. p44

어린 아이가 어느 일에서든 자신을 남만 못하다면서 주눅이 들어 굽신거리거나 얼굴에는 언제나 알랑거리는 웃음을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음모를 꾸미는 그런 아이들보다야 차라리 대놓고 <이게 무슨 아빠야>라며 대드는 아이가 나는 더 좋다.

'내<반동>자식을 보며'에서 p48

꼴찌를 부끄러워 않는 사람이 많은 민족은 어떤 일에서건 흙이 무너지고 기와가 깨지듯 그렇게 일시에 무너지지는 않는다. '선등과 꼴찌'에서 p53

<힘으로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자는 결코 마음을 복종시키지는 못한다> p56

<일을 한 차례 겪고 나면 그만큼 지혜로워진다.> p58

사람들은 사교의 필요 때문에 한 곳에 모여 살고, 또한 각기 싫어하는 많은 성격과 흉한 결함 때문에 떨어져 산다. p59

우리는 많은 죄인들을 <누군가에게 밉게 보인 사람들>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p62

<지상의 천당은 성인의 경전과 말잔등, 그리고 여인의 가슴에 있다.> p68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갈 길이 없는 것입니다. p73

독이 없으면 대장부가 아니다. 그러나 글로 나타내는 독은 단지 小毒일 뿐, 최고의 경멸은 無言이다. 그것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채로의 무언 '독이 없으면 대장부가 아니다.' p84

울분은 어쨌든 변혁의 방아쇠다. 그러나 먼저 자신부터 변혁한 다음 사회를 변혁하고 세계를 변혁해야 한다. 그저 울분만 품고 있어서는 안된다.

'분에 못이겨 죽다.' p91

한밤중에 문득 부끄러움을 느끼고 새벽녘에 뉘우쳐 본 적은 있는가? p90

이전에 잘 살았던 사람들은 복고를 주장하고 현재 잘 사는 사람들은 현상유지를 주장하며, 아직 잘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혁신을 주장한다. p96

인류의 슬픔과 기쁨은 상대방에게 통하지 않는 법이다. 내게는 단지 그들이 법석을 떨고 있다고 느껴질 뿐이다. p97

사람이 적막을 느낄 때 창작은 탄생한다. 마음속이 깨끗할 때 창작은 탄생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창작의 뿌리는 사랑이다. pp88~99

중국인들이 사서 고생하는 근본원인은, 받들어 올리기만 좋아하는데 있다. 복이 저절로 굴러들게 하는 길은 내려 파는 방법이다. 사실 어느 쪽이나 드는 힘은 비슷하다. 그런데도 타성에 젖은 사람은 역시 받들어 올리는 쪽이 힘이 덜 든다고 생각하고 있다.

- '받들어 올리기와 내려 파기' p106

용감한 자는 분노하면 칼을 빼어들고서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 달려든다. 비겁한 자는 분노하면 칼을 들고서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달려든다. 구원의 가망이 없는 민족에게는 아이들한테만 눈을 부라리는 영웅들이 수두룩하다. p125

빛이 어둠과 단호히 투쟁하지 않으며 순진한 사람들이 악에 대한 방임을 관용이라 잘못 생각하며 계속 고지식한 태도를 유지한다면, 오늘날과 같은 혼돈 상태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p147

먹으로 쓴 거짓이 피로 쓴 사실을 가릴 수는 없다. 피의 빚은 반드시 같은 것으로 갚아야 한다. 그 빚은 갚음이 늦으면 늦을수록 이자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 '꽃 없는 장미' p153

총에 맞아 청년의 피가 쏟아졌다. 피는 먹으로 쓴 거짓으로는 가릴 수 없으며, 먹으로 쓴 만가(輓歌)로도 취하게 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위력으로도 짓누를 수 없다. 그것은 더 이상 속지도, 죽지도 않기 때문에! p154

만일 인민 대중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고, 그들의 풍속과 습관을 연구, 해부하지 않으며, 그 좋고 나쁨을 분별하여 존폐의 기준을 세우지 않는다면, 어떤 개혁이든 습관의 바위돌에 눌려 으깨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표면에서 부유하는데 머물 뿐이든지. 서재에서 책을 떠받들면서 종교를 논하고, 법률을 논하고, 문학과 예술을 이야기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논한다 해도 민중의 습관과 풍속을 알아야하며, 아들의 어두운 측면을 직시할 용기와 강인함이 있어야 한다.

개혁의 길은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저 미래의 광명만을 외치는 것은 , 게으른 자신과 게으른 청중을 기만하는 일일 뿐이다. '민중속으로' p181

천재가 나오기를 요구하기 전에 천재를 기를 수 있는 민중이 있기를 요구해야 한다. 튼튼한 나무를 얻거나 고운 꽃을 보려면 반드시 좋은 흙이 있어야 한다. 흙이 없으면 꽃도 나무도 있을 수 없다. 그러기에 꽃이나 나무보다 흙이 더 중요하다. p194

배부른 사람들은 배고픈 사람을 사랑할지 몰라도 배고픈 사람은 배부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p207

노동자. 농민이 해방되지 않는 한 노동자. 농민의 사상은 여전히 지식인의 사상 그대로입니다. 노동자. 농민이 진정한 해방을 획득한 후에야 진정한 민중문학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진정한 민중문학을 위하여'p217

추억이란, 사람을 즐겁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쓸쓸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나가버린 쓸쓸한 시간을 마음속의 실 한 올로 매어둔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오히려 그것들을 완전히 잊어버리지 못한데서 고통을 느낀다. p223

정신을 개혁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문예다. p225

한 사람의 주장이 남의 찬성을 얻으면 전진이 촉진되고, 반대를 얻으면 분발이 촉진된다.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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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inabang.co.kr/renwu/daji.htm

http://www.chinabang.co.kr/renwu/daji.htm

고서에서는 달기(妲己)의 미모를 이렇게 형용하고 있다.

구름처럼 검게 늘어진 머리카락, 살구 같은 얼굴 복숭아 같은 뺨, 봄 산처럼 옅고 가는 눈썹, 가을 파도처럼 둥근 눈동자, 풍만한 가슴 갸냘픈 허리, 풍성한 엉덩이 널씬한 다리, 햇빛에 취한 해당화나 비에 젖은 배꽃보다도 아름다워라.

달기는 상(商)나라 유소(有蘇: 지금의 해남<海南> 온현<溫縣>) 부락 출신으로 후에 악명 높은 폭군 주왕(紂王)의 비가 되었으며, 우리에게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로 잘 알려진 여인이다. 달기는 중국역사상 가장 섹시한 여인 중의 한 사람이며 음탕한 여인의 대명사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녀의 악명은 중국인들의 언어생활을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중국 속어로 "달기정(妲己精: da ji jing)"이라 하면, 그것은 "달기같은 년", "여우같은 년(狐狸精)"이란 뜻으로 음흉하고 음탕한 여인을 욕하는 말이 된다.

달기는 상(商)의 주왕(紂王)을 유혹하여 잔혹한 형벌로 생사람을 다 죽게 만들어 놓고 그러한 장면을 보면서 자신의 성욕을 자극시켰다. 그녀의 이러한 흉악하면서도 음탕한 행위는 바로 변태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달기와 주왕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한 역사연의(歷史演義) 소설 ≪봉신방(封神榜)≫에 상세하게 전해오고 있다.

기원전 11세기에 있었던 그들의 이야기는 그보다 수백년 이전에 있었던 하(夏) 걸왕(桀王)과 말희(喜)의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하다. 달기와 주왕이 상(商)나라를 패망의 길로 이끌었다고 한다면 걸왕과 말희는 하(夏)나라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주왕은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아홉 마리 소를 뒤로 잡아당길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장사였으며, 그의 눈과 귀도 매우 예민하여 상당한 분별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고 성격이 포악하였다. 특히 그는 달기를 왕비로 맞은 후부터 그러한 성격이 더욱 심하게 드러나 마침내 자신의 손으로 상왕조를 파멸시키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달기는 주왕의 제후 소호(蘇護)의 딸로 빼어난 용모와 몸매를 갖춘 천하절색의 미인이었다. 소호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주왕이 막강한 병력을 파견하여 진압하자, 소호는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자기의 딸 달기를 주왕에게 바치고 목숨을 구걸하였다.

그러나 야사에서는 단지 그녀의 미모와 몸매 때문에 주왕이 그토록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그녀에게 푹 빠질 수는 없었다고 전하고 있다. 즉, 그녀에게는 자신의 외형적인 미모를 훨씬 능가하는 다른 어떤 성적 매력이 있었으며, 그 성적 매력의 비밀은 바로 그녀의 성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즉, 그녀의 성기는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고 질은 겹겹의 주름으로 이루어져 있어, 남자의 성기가 그 안에 들어오면 움직이지 않아도 저절로 액체를 분비하여 꿈틀거리면서 빨아들이고, 성기를 천천히 빨아들이면서 부드럽게 꽉 죄기 때문에 주왕은 쾌감이 극에 달하여 세상의 일을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야사의 기록에 따른다면 달기의 성기는 그야말로 보기드문 '명기(名器)' 중의 명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봉신방≫의 작자는 달기가 단지 미모만으로 그렇게 간단히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않았을 것이고, 반드시 그녀만의 특수한 침실에서의 섹스 비법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주왕이 여와궁(女宮)에서 참배를 하면서 여와의 뛰어난 풍채를 보고 음탕한 마음이 일어 신을 모독하는 시를 지었다. 이에 여와는 크게 노하여 구미호를 내려보내 주왕을 현혹시켜 그의 조정을 파멸시키고자 하였다. 구미호는 소호가 딸 달기를 주왕에게 바치기 위해 경성 조가(朝歌)로 가는 도중에 달기의 영혼에 들어갔다. 이리하여 달기는 비로소 사람을 유혹하는 비법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주왕은 달기를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하여 기다릴 것도 없이 그녀를 침대로 데려갔으며, 달기의 특수한 신체적 구조는 주왕을 극도로 흥분시켰다. 이날 이후부터 주왕은 다른 궁녀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정사도 팽개친 채 오직 달기에게만 정신이 빠져 있었다. 달기는 왕비에 책봉된 후에 주왕이 자기의 미색에 현혹되어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서서히 그녀의 황음무도한 본색을 드러내었다. 그녀는 먼저 주왕에게 웅장하고 화려한 궁궐을 새로 지어달라고 요구하고, 모든 난간과 기둥은 아름다운 마노와 옥으로 장식하게 하였다.

주왕은 달기의 환심을 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백성들을 가혹하게 착취하여 경비를 조달하고, 10만여명의 장인들을 불러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사를 계속하도록 하였다. 7년이란 세월이 걸려 길이 3리(里) 높이 1천 척(尺), 대궁전 100여개, 소궁전 72개에 이르는 호화로운 궁궐이 완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녹대(鹿台)'이다. 주왕과 달기는 밤낮으로 이 '녹대'에서 꿈같은 세월을 보내며 마음껏 유희를 즐겼다. 심지어 그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연월일을 잊어 버릴 정도였기에 사관은 그것을 "장야음(長夜飮: 밤새 술마시며 논다는 뜻)"이라 일컬었다. 이러한 상황을 본 대신 기자(箕子)는 "대왕의 측근들 조차 모두 왕조의 멸망을 모르지만 나만은 그것을 안다. 나의 처지가 실로 너무 위태롭구나!"라고 한탄하였다.

달기는 음욕을 즐기는 것 외에도 잔혹한 형벌로써 생사람을 학살하는 장면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했다. 그녀는 주왕과 함께 여러 가지 새로운 무시무시한 형벌들을 고안해내었다.

처음에 상나라의 창시자 탕왕(湯王)은 하(夏)나라 걸왕(桀王)의 형법이 너무도 잔혹하여 그것을 폐지하고 비교적 경미한 형벌로써 죄인들을 처벌했다.

그러나 주왕은 선왕들의 법제가 너무 가볍다고 여기고 특별히 대형 청동 인두를 제조하였다. 그리고는 형을 받은 죄수들에게 자신의 손으로 붉게 달아오른 인두를 자신의 벌거벗은 몸위에 놓고 지지게 했다.

이렇게 잔혹한 형벌도 달기는 너무 시시하다 여기고 주왕에게 대형 청동 기둥을 주조하도록 건의하였다. 그리고는 시뻘겋게 타오르는 숯불을 그 안에 넣고 죄수를 벌거벗은 채로 숯불 위에 서서 붉게 달아오른 청동 기둥을 꽉 붙잡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그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포락(炮烙: 통째로 굽는다는 뜻)'이란 형이다. 이러한 처참한 상황을 보고 달기는 오히려 그것을 즐기면서 그녀의 변태적 성욕을 자극시켰다.

한 사람의 죄수가 '포락'의 형을 받고 팔딱팔딱 뛰면서 재로 변할 때마다 그녀는 성에 굶주린 듯한 신음을 토해내며 주왕의 품에 달라붙어 몸부림쳤다. 그녀는 일종의 사디슴(sadism: 이성을 학대함으로써 성적 만족과 쾌감을 얻는 변태증)적 변태 성욕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본 후에 섹스를 하면 그녀의 천부적인 성기능은 평소보다 몇 배나 더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여 주왕에게 더욱 강렬한 만족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주왕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이 형벌로써 자주 달기의 성욕을 자극하였다. 짧은 1~2년 사이에 이 형벌로 죽어간 사람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이 '포락'의 형을 즐기는 것도 점차 지겨워지자 달기는 다시 고심 끝에 '돈분(躉盆)'이란 형을 고안해냈다. 그녀는 먼저 주왕에게 녹대 부근에 넓고 깊은 구덩이를 하나 파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수많은 독사와 전갈을 그 안에 집어넣은 다음 죄수들을 발가벗겨서 안으로 밀어넣게 하였다. 달기는 주왕과 함께 녹대 위에서 잔치상을 차려놓고 그 구덩이 안에서 독사와 전갈에 잡아먹히면서 몸부림치는 장면을 구경하면서 그것을 즐겼다. 주왕은 잔치상 바로 옆에 침실을 마련해두었다가 일단 달기의 성욕이 발동하면 언제든지 그녀를 침실로 데려가서 무한한 환락에 빠져들곤 하였다.

얼마후 달기는 다시 '돈분' 좌우로 연못을 하나 파달라고 한 다음, 연못을 피하여 왼쪽에는 술지게미를 쌓은 작은 언덕을 만들고 거기에 나무를 심게 했다. 그 나무 위에 고기덩어리를 매달아두고 그것을 '육림(肉林)'이라 하였으며, 오른쪽 연못에는 술을 가득 채워놓고 그것을 '주해(酒海)'라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궁녀와 환관들을 불러모아서 나체로 씨름을 하게 한 다음, 승자는 '주해육림(酒海肉林)'에 들어가서 마음껏 먹고 마시게 하고, 패자는 주왕의 존엄함을 욕되게 했다고 하여 '돈분'에 집어넣었다.

당시에 구후(九侯), 악후(鄂侯), 서백(西伯: 이후의 주나라 문왕)이라는 삼공(三公)이 있었다. 주왕은 구후의 딸이 달기에 필적할 정도로 그 용모가 아름답다고 들었다. 그리하여 그녀를 강제로 데려와서 후궁에 앉힌 다음 그녀와 달기의 옷을 하나도 남김없이 벗겨놓고 차례로 훑어보면서 비교해 보았다. 그녀의 용모에 흡족한 주왕은 그녀를 비에 책봉했으나 정숙한 구후의 딸은 그처럼 황음무도한 생활에 적응할 수 없었다. 그녀는 결국 주왕의 노여움을 사서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잔인한 달기는 기뻐한 나머지 또다시 독랄한 형벌을 생각해냈다. 미꾸라지를 여러 마리 잡아오게 한 다음, 구후의 딸을 벌거벗겨서 사지를 큰 대자로 침대 기둥에 묶어놓고 미꾸라지를 그녀의 음부에 집어넣게 했다. 미꾸라지는 습하고 따뜻한 구멍을 좋아하는지라 그녀의 음부속으로 다투어 파고들었다. 구후의 딸은 이렇게 처참하게 죽어갔던 것이다. 그래도 주왕은 분노가 가시지 않아 다시 구후를 잡아오게 하여 살을 갈기갈기 토막내어 버렸다.

악후도 몇 번이나 간언을 하다가 결국 처형당했다. 서백 희창(姬昌)은 이 소식을 듣고 하늘을 우러러 세 번 탄식한 다 기산(歧山)에서 비밀리에 군사들을 훈련시키면서 폭군 주왕을 토벌할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달기의 악랄한 위세는 날로 심해져 인명을 파리 목숨보다 가벼이 여겼다. 주왕은 오로지 그녀의 성욕을 자극시키느라 무고한 백성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산사람을 화살 과녁으로 삼거나 호랑이 우리에 집어넣었다. 달기는 심지어 임산부의 배에 들어있는 태아의 성별을 감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하면서 주왕과 내기를 하고, 임산부를 잡아와서 직접 배를 갈라 확인해 보기도 하였다. 이처럼 잔인한 행위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3대에 걸친 공신 비간(比干)이 죽음을 무릅쓰고 주왕에게 간언을 하자, 달기는 주왕에게 자기가 심장병이 들었는데 성현의 심장을 먹어야 나을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주왕은 당장 충직한 신하 비간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냈다.

기원전 1057년 서백 희창의 아들 희발(姬發: 후의 주나라 무왕)과 군사(軍師) 강자아(姜子牙: 강태공)가 대군을 거느리고 상나라의 수도 조가(朝歌)를 공격하였다. 대세가 이미 기울었다고 판단한 주왕은 '녹대'에 올라가서 그 아래에 붙혀둔 불길 속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달기는 강자아의 병사들에게 붙잡혔을 때,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큰소리로, "나에게는 공은 있으되 죄는 없다. 만약 내가 주왕을 유혹하지 않았더라면 너희들이 어찌 상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겠느냐?"라고 외쳤다.

강자아는 달기를 봉신방(封神榜)으로 끌고가서 참수를 명했다. 그런데 망나니가 칼을 뽑아 형을 집행하려고 할 때 달기는 돌연히 머리를 돌려 요염한 웃음을 날리면서 그를 홀렸다. 망나니는 갑자기 넋이 빠져 달기를 멍청히 바라보다 그만 칼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른 망나니들로 바꾸어서 계속 집형을 시도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강자아는 달기의 사람 홀리는 술책이 이미 입신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알고, 부하의 화살을 꺼내어 직접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하여 그녀의 심장을 향하여 연속해서 세 발을 쏘았다. 이로써 달기는 영원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파란만장했던 상나라의 역사도 종말을 고하고 새로 일어난 주나라 무왕(武王)에게 그 지위를 물려주게 되었다.

달기와 주왕에 관한 위의 이야기는 대부분 ≪봉신방≫을 근거로 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봉신방≫은 많은 야사들을 기록한 일종의 신화소설로, 여기에 기록된 내용을 백퍼센트 진실로 간주하기는 다소 곤란하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발견된 은허(殷墟: 지금의 하남성 안양현<安陽縣> 소둔촌<小屯村>)에서는 은(殷) 상(商) 시기의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는데, 여기에서 달기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언급된 곳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상나라 시대에는 국가의 대소사를 모두 거북 껍질에 기록하여 점을 치는 형식을 통해서 결정하였는데, 주왕이 일방적으로 달기의 말에 따라 모든 국가의 대소사를 결정지었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렵다. 또 달기가 주왕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그렇게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다면, 지금까지의 중국역사를 살펴볼 때(물론 우리나라 역사나 세계의 역사도 마찬가지 임), 그녀의 친정 세력이 충분히 권력의 중심에 들어섰을 법도 한데, 어떤 역사서에도 그녀의 일족인 유소씨(有蘇氏)의 권력 장악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 점도 우리에게 많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달기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일부 학자들은 그것을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로 등장한 주(周)나라가 자신들의 명분을 정당화하기 위해 많은 부분 사실을 왜곡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뒤에 권력을 잡은 정권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해서 직전의 역사를 부정하거나 왜곡한 예를 도처에서 보아왔기 때문에 이러한 설도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주왕의 포악성과 달기의 음란함을 어느 정도 인정은 하지만 상상을 불허할 정도의 만행을 저지른 부분이 특히 왜곡된 부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하나의 추측일 뿐 아직까지 반론을 제기할 만한 확증은 나오지 않고 있다.

달기의 죽음에 대해서도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은 주왕이 '녹대'에서 뛰어내려 분신자살한 후에 달기는 주(周) 무왕(武王)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세설신어(世說新語)≫에서는 공융(孔融)의 말을 인용하여 주나라 군대가 조가(朝歌)에 진입한 후에 주공(周公)이 달기를 취하여 그의 시녀로 삼았다고 하였다. 이것은 주나라 군대가 조가에 진입한 이후에 더 이상 달기를 비방하는 말이 없었다는 것을 하나의 방증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어떤 측면에서 보면 달기는 뒤에 일어난 왕조에 의해 역사적으로 희생된 인물일 가능성이 크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악녀와 요녀의 화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함수포인터

설명 #

"함수포인터"는 C언어에서 자주 쓰이는 기본 용법중 하나입니다.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선언된 함수가 저장된 메모리 번지값을 담고 있는 포인터 변수
하지만 이것을 왜 보통의 포인터와는 달리 특별취급하냐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1. 일반 포인터 변수와는 조금 다르게 보이는 문법으로 선언됩니다. 예를 들어 함수 포인터 변수는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functionPtr이 포인터 변수명이 됩니다)
    void (*functionPtr)(const char *s_)
  2. 함수포인터는 실행부분을 가리키는 포인터 변수인탓에 () 연산자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즉, 위의 functionPtr은 아래와 같이 실행가능합니다.
    functionPtr("바보나라~")


주로 함수포인터는 콜백(callback)을 구현하는데 사용됩니다. 어떤 라이브러리를 제작할 때 개발자가 어떤 "경우"에 대한 반응을 함수로 작성하고 이를 다시 라이브러리에서 호출하도록 작성하고자 할 때, 개발자가 작성한 함수의 포인터를 넘겨받아 실행하도록 하면 아주 유용할 때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win32 api에서 윈도우 프로시져를 WNDCLASS의 lpfnWndProc맴버에 등록하는 부분을 들 수 있습니다) 즉, 함수를 마치 변수와 같이 취급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예제 #

아래 예제는 함수포인터를 활용한 간단한 예제입니다.

#include <stdio.h>void testout1(const char *s) {  printf("시험출력1:%s\n", s);}void testout2(const char *s) {  printf("시험출력2:%s\n", s);}// 함수포인터 변수void (*funcPtr)(const char *s);int main() {  // 함수포인터를 testout1, testout2로 각각 대입해보고 실행해본다.  funcPtr = testout1;  funcPtr("테스트");  funcPtr = testout2;  funcPtr("테스트");}
실행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시험출력1:테스트시험출력2:테스트
main()안에서는 funcPtr만 실행했지만 마치 testout1, testout2를 각각 실행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typedef 거는 법 #

함수포인터를 어떤 포인터 변수로서 활용하고 싶을 때 typedef를 활용하면 매우 편리합니다. 실제로 win32 API에서는 윈도우 프로시저 함수포인터형으로 WNDPROC라는 타입이 있습니다. (이부분을 보면 어느정도 사용법에 대한 느낌이 올겁니다) winuser.h 헤더화일에서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이 선언되어있습니다.
typedef LRESULT(CALLBACK *WNDPROC)(HWND,UINT,WPARAM,LPARAM);

실제로 사용될 때에는 다음과 같이 사용됩니다.
LRESULT CALLBACK winproc1(HWND,UINT,WPARAM,LPARAM) { };...WNDPROC winprocPtr = winproc1;...
꽤 유용한 문법이니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주의사항 #

함수포인터는 알아두면 상당히 유용한 기법이지만 사용시에는 다음과 같은 부분을 주의해야합니다.
  1. 대입되지 않은 (NULL값상태의) 함수포인터를 실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합니다. 초기화를 항상 NULL로 해두고 실행전에 검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2. "같은 함수 포인터 타입"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반환값, 매개변수의 타입 및 개수가 모두 일치해야합니다. 보통 하나라도 다른 함수포인터값을 대입하면 컴파일시 오류가 나게 됩니다.

의공학(의용공학)의 현황 및 미래전망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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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넷북 올 하반기 '이렇게 바뀐다'
작성자PC라인 취재부작성일자2009-08-05

지 난 2년간 미니노트북(넷북)은 “미니노트북(넷북) 열풍”이라 할 정도로 급격한 성장률 보였다. 대만의아수스 Eee PC부터 시작된 넷북에 대한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은 전체 PC 시장에 많은 변화와 영향을 줘 2009년 상반기 미니노트북 전세계 PC시장의 20%나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에 대형 PC 제조사들은 물론 유일하게 넷북을 출시하지 않고 있던 애플에서도 9.7인치 넷북을 10월경 800달러에 내놓을 것이라는 루머도 돌고 있어 탄력적인 성장률은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이렇듯 급격한 성장을 이룬 ‘미니노트북(넷북)’의 변화와 2009년 하반기 전망을 정리해 봤다.


미니노트북(넷북) 열풍이 가져온 변화


미 니노트북(넷북)이나 MID(Mobile Internet Device, 모바일 인터넷 디바이스), 스마트폰 등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언제 어디서나 쉽고 빠르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모바일 인터넷’ 기능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터넷이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생활 필수도구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모바일 인터넷’은 필요에 따라 장소의 제한 없이 웹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3세대(3G) 이동통신 기술과 ‘와이파이(WiFi)’ 같은 무선인터넷 기술의 발전으로 사용 용도가 달랐던 IT제품들을 융합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관련제품을 개발하는 업체들의 시장 영역을 허물었다.

따라서 앞으로 출시될 노트북들은 더욱 경량화 및 저전력화 되고 MID와 스마트폰의 기능은 더욱 고성능화 될 전망이다.

이 는 제품을 구현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인 프로세서와 운영체제(OS)의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업계간의 전쟁이 치열해지는 것으로 구글에서 미니노트북(넷북)을 겨냥한 웹 기반 운영체제인 ‘크롬 OS’ 개발을 발표해 MS와 본격적인 전면전을 선포했다.

또 한 인텔 아톰 프로세서를 탑재한 미니노트북(넷북)이 상반기 전체를 차지했다면 하반기부터는 인텔 파인뷰 프로세서(아톰 N450)나 인텔 초저전압(ULV) 코어2듀오 프로세서는 물론 AMD 네오 CPU를 장착한 유콘 플랫폼, VIA Nano, 프리스케일 i.MX515과 같은 저전력 초박형 칩셋을 탑재한 노트북과 미니노트북(넷북)이 출시될 예정이다.

■ 프로세서의 변화


현재 미니노트북에 들어간 프로세서의 대부분은 인텔 “아톰(Atom) N270 1.6Ghz”로 문서작업이나 인터넷, 사진작업 등을 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다.

그 러나 소비자들은 고사양의 저렴한 제품을 사용하거나 구입을 원하기 때문에 하반기에는 N270과 클럭수의 차이는 별로 없지만 FSB(Front Side Bus, 프론트 사이드 버스)가 533Mhz에서 667Mhz로 늘어 좀 더 빨라진 ‘아톰 N280 1.66Ghz’나 그래픽 칩셋과 ICH를 CPU에 통합한 ‘아톰 N450 1.66Ghz’를 탑재한 미니노트북(넷북)이 아수스와 에이서(Acer)에서 출시 예정에 있다.

한편 인텔에서 출시할아톰 N450 1.66Ghz 프로세서를 탑재한 소형 플랫폼 ‘파인트 레일(Pine Trail)’의 파인뷰(Pineview)의 ‘GMA 950’ 그래픽 칩셋이 HD 동영상 가속을 지원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미 10월 제품 출시를 예정으로 개발에 착수한 아수스와 에이서를 제외한 다른 PC 제조사들은 아수스와 에이서 제품의 성공여부를 확인한 후 개발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적 수인 인텔에 비해 2008년 하반기까지 미니노트북(넷북)용 플랫폼이 없었던 AMD는 2009년부터 인텔 넷북을 겨냥한 울트라포터블 라인업을 구성해 올해 초에 열린 ‘CES 2009’에서 미니노트북(넷북)용 ‘애슬론 네오(Athlon NEO)’ 프로세서를 발표했다.


AMD NEO는 울트라포터블 플랫폼 프로세서로 65nm 공정으로 제작돼 35W 전력소모와 ATI Mobility Radeon HD 3410 그래픽 카드와 함께 시스템에 사용된다. 또 6월에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 2009(COMPUTEX 2009)’에서 인텔의 저전력 프로세서인 CULV(Consumer Ultra-Low Voltage, 컨슈머 울트라-로우 볼티지)와 경쟁 제품인 AMD 듀얼 네오 프로세서를 탑재한 ‘HP DV2’를 공개했다.

한편, 업계에서는 인텔의 CULV보다 통합 그래픽 성능과 가격 경쟁력 면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 텔과 AMD보다 상대적으로 저가형 프로세서로 인식되고 있는 대만 비아(VIA)서 발표한 나노(Nano) 프로세서는 2008년 하반기에 발표한 C7보다 높은 처리능력을 가진 후속 프로세서이다. 비아는 CES 2009 기간 동안 외부에서 개최된 별도의 이벤트인 ‘Lunch @piero’s’에 참석해 비아 나노(VIA Nano) 프로세서를 탑재한 미니노트북(넷북)들을 공개했다.

또 한, 비아는 모바일용 시스템 칩셋 VX855를 발표했는데, 2.3W의 낮은 전력에서 동작하고 최대 4GB 메모리의 지원과 192KHz를 지원하는 비닐(Viny)l HD Audio와 1080p HD 동영상 가속을 지원하는 크로모션(Chromotion) 엔진과 DirectX 9를 지원하는 크롬(Chrome) 9 그래픽 코어를 탑재하고 있다.


이 는 NVIDIA의 ION 플랫폼과 AMD의 유콘(Yukon) 플랫폼을 제외하고는 1080p HD 동영상의 재생이 불가능했던 미니노트북(넷북) 시장에 새롭게 등장한 플랫폼으로 성능과 가격적인 측면에서 NVIDIA와 AMD의 플랫폼의 대응마로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다.

‘프리스케일 반도체’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자동차, 가전, 산업, 네트워크 임베디드 반도체 설계 및 제조업체이다.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 2009(COMPUTEX 2009)’에서 미니노트북(넷북)과 스마트폰의 장점만을 통합한 새로운 규격의 ‘스마트북(Smartbook)’과 함께 ARM Cortex-A8코어 기반의 i.MX515 프로세서를 공개했다.

프리스케일 i.MX515 프로세서는 퀄컴의 ‘스냅드래곤(Snapdragon)’과 TI의 ‘OMPA 3’와 다르게 모바일 DDR2와 DDR2(모바일 DDR2의 1/5 가격)메모리 모두를 지원한다.

또 원도 XP을 지원하는 인텔 아톰 평균 가격이 60달러인데 반해 i.MX515는 관련 칩(PMU, 오디오 코덱, 가속도계, 터치 센서)에 Linux를 포함해 20달러밖에 안 된다. 이는 저렴한 MID나 넷북뿐 아니라 휴대폰과 유사한 매력적인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 그래픽과 하드디스크드라이브 변화
현 재 출시된 넷북(NETBOOK)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래픽 성능이다. 앞에서도 잠시 설명한 것과 같이 인텔아톰 프로세서 기반의 소형 플랫폼 ‘파인트 레일(Pine Trail)’의 그래픽은 1080p의 HD 동영상과 고사양의 3D 그래픽을 지원하는 PC 게임과 온라인 게임을 하는데 많은 제한이 따른다.

인텔로써는 새롭게 HD 영상을 지원하는 그래픽 칩셋 개발을 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기도 하겠지만 이미 아수스와 에이서에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생산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또 한 앞서 잠시 언급했듯 AMD Neo 프로세서를 탑재한유콘 플랫폼과비아 나노프로세서 기반의 플랫폼 등 NVIDIA ION 플랫폼과 함께 HD 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플랫폼들의 출시로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긴 했지만, 업계간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로 인해 이번 하반기에서 이들 플랫폼을 탑재한 미니노트북(넷북)들을 많이 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최 근 출시되는 미니노트북(넷북)의 LCD의 크기는 대부분 7~13인치로 해상도의 사이즈는 1,024x600 혹은 1,024x576 화면이다. 이는 문서작업과 인터넷 사용에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빠르게 서브 PC로 자리잡고 있는 현재 동영상과 3D 게임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때문에 해상도 사이즈를 강제로 늘려주는 소프트웨어 등을 이용해 임의로 해상도를 늘려 사용하는 사용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 문제해결은 아니다. 이에 업계에서는 해상도를 높인 모델들을 7월 초부터 출시를 시작해 하반기에는 HD 해상도의 미니노트북(넷북)도 만나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 니노트북(넷북)의 성장으로 하드디스크 업계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가 지금까지 PC 저장 장치로 사용되고 있지만 점차 소형화 되고 있는 가전기기와 PC 시장이 확대되고 있어 HDD의 단점을 보완하고 속도, 신뢰성, 전력소비, 무게 등을 개선한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그 중 차세대 저장장치로 삼성전가가 2005년 세계최초로 개발 성공한 SSD(solid State Drive,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의 등장은 미니노트북(넷북)과 울트라 씬 노트북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SSD(solid State Disk, 솔리드 스테이트 디스크)의 등장과 함께 애플(Apple)에서 울트라 씬 노트북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맥북 에어(MacBook Air)’를 출시해 낸드플래시 시장이 기존의 메모리카드를 사용하던 디지털카메라와 MP3P, 휴대폰, 미니노트북(넷북) 시장까지 확대되고 있다.



또 한, MS Windows Vista 버전부터 레디부스트 기능, 절전모드 기능, 슈퍼패치 기능, 레디드라이브 기능 등 기존 HDD에서 작동하기 어려운 새로운 기능들을 지원했고, 이러한 기능들은 Windows 7에서 쓰기 및 읽기 기능은 좀더 향상됐기 때문에 SSD 판매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성능향상과 안전성 문제가 대폭 강화된 SSD의 가장 큰 단점은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다. 물론 국내 SSD 가격이 10만원대 후반으로 떨어졌고, 인텔이 34nm 기반의 320GB SSD를 100달러로 저렴하게 출시할 예정이나 여전히 HDD의 가격보다는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한 편, Asus에서는 16GB와 20GB를 장착한 ‘EeePC T91’와 ‘EeePC T101H’ 태블릿 넷북 출시 예정 중이고, 삼성에서도 HDMI 단자와 SSD를 탑재한 N510 11.6인치 넷북을 공개했고, TG삼보에서는 SSD를 탑재한 ‘에버라텍 스타’를 7월말부터 출시할 예정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하반기부터 국내 시장에서도 SSD를 탑재한 미니노트북(넷북)과 노트북들이 본격적으로 출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 변화

MS 에서 XP이후 야심작으로 출시한 ‘Windows Vista’는 결론적으로 처참하게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컴퓨터를 모르는 사람들도 Vista의 무거움과 잦은 오류로 인한 불편함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 ‘Windows Me’이후 다시 한번 MS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Windows Me’때와는 달리 발 빠른 대처로 곧바로 ‘Windows 7’의 출시를 알리고 베타버전을 공개해 전문테스터들과 일반 유저들에게 괜찮다는 평가를 얻어낼 수 있었다. 또 미니노트북(넷북)의 성공은 Windows 7에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MS측은 예상하고 있다.

Windows 7은 터치 인식, 음성 인식, 필기 인식, 가상 하드 디스크 지원, 다중 코어 프로세서의 개선된 성능과 개선된 시동 성능, 커널 개선 등의 새로워진 기능들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가상화 지원하는 CPU에서 Windows 7의 가상화 기능인 윈도우 ‘버추얼 피씨(Windows Virtual PC)’를 이용하여 Windows XP를 설치 할 수 있다.


이 는 XP 환경에 익숙한 사용자들과 Windows 7에 호환되지 않는 소프트웨어들을 가상화된 XP모드에서 사용할 수 있고, 아직까지 호환성 문제가 있는 ‘익스플로어 8’ 대신 아래 버전들을 사용할 수 있어 Windows 7 설치를 꺼려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소식이라 하겠다.
또한 Windows 7에는 Direct3D 기반의 문자 표시 기능인 ‘Direct2D’와 2D 표시기능 ‘DirectWrite’가 새로 탑재돼 복잡한 그래프 표현 등 기존 CPU가 처리하던 부분을 GPU에서 처리해 시스템 성능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효과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Windows 7의 정식버전이 당초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영문판이 10월쯤 출시되고, 한국어판의 경우 11월초로 예정되어 있어 10월 출시를 기다리는 미니노트북(넷북)에 아직까지 기능 제한된 ‘Windows 7 Starter’ 버전을 설치한다면 미니노트북(넷북) 사용자들의 불만으로 외면 받을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한편, Windows 7 Starter 버전의 기능제한 사항은 작업표시줄 미리 보기, 에어로 기능과 바탕화면 및 테마, 사운드테마 등을 변경할 수 없고, 로그오프 하지 않고 사용자 전환을 할 수 없고, 미디어센터에서 DVD의 플레이와 TV녹화영상을 볼 수 없고, XP 가상 모드를 사용할 수 없는 등 애플리케이션을 3개 까지만 사용하는 제약은 많은 지적과 논란으로 개선했지만 아직까지 많은 기능의 제약이 있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MS 사의 모든 사업영역에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한 Google에서 오픈소스 기반의 ‘Google Chrome OS’의 개발 발표를 7월초 공식적으로 밝혔다. Google Chrome OS는 넷북을 겨냥해 개발된 운영체제로 속도와 단순함, 보안을 중시한다고, 웹 지향적인 이용형태를 보이는 사용자에게 적합한 운영체제이다.

Google에서 개발 발표한 Chrome OS이 어떤 형태인지 정확한 것은 출시 이후 알겠지만, Google 측이 블로그에 밝힌 내용으로 짐작해 보면 리눅스 기반으로 크롬 브라우저를 새로운 윈도윙 시스템으로 작동할 것이라 말해 온라인 애플리케이션들이 들어간 브라우저 형태의 운영체제의 모습으로 짐작되고 있다.


한 편, Google은 이미 몇몇 제조사와 협력해 내년 중 Chrome OS를 탑재한 미니노트북(넷북)을 출시할 계획이다. MS의 Windows와 Apple의 OS X와는 전혀 다른 운영체제로 MS와 Apple 운영체제를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제조사들이 Google Chrome OS도 지원할지에 따라 Windows나 OS X이외의 또 다른 운영체제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인텔에서 리눅스 기반의 넷북용 OS ‘모블린(Moblin) 2.0’ 베타버전을 공개했고, 국내 기업인 티맥스에서 MS 윈도와 유닉스, 리눅스 등 운영체제와 호환이 가능한 ‘티맥스윈도’ 개발 공개행사를 가졌다.

새 로운 운영체제와 함께 미니노트북(넷북)을 위한 가볍고 실용적인 새로운 소프트웨어 개발이 시급하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소프트웨어들은 일반적인 PC 환경에 맞게 개발된 것으로 미니노트북(넷북)이나 MID 등과 같은 저사양 PC에서 사용이 어렵다.

MS 오피스나 한글과 컴퓨터사의 한글 오피스와 같은 기본적인 문서편집 소프트웨어만 해도 미니노트북(넷북)과 MID 사용환경에 설치 및 작동시 많은 저장용량과 메모리 값을 차지해 컴퓨터가 느려지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 에 그 동안 미니노트북(넷북)과 MID 사용자들은 무설치 소프트웨어나 휴대용 소프트웨어와 같이 프로그램을 가상화 하거나 버추얼박스(VirtualBox) 등의 방법으로 USB메모리와 이동식 하드드라이버를 이용해 저장용량과 메모리 값을 많이 차지하는 일부 프로그램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설치 혹은 휴대용 소프트웨어들은 레지스트리 임시파일에 흔적이 남거나 심한 경우 시스템을 손상시킬 수 있는 문제점과 함께 불법적으로 변경된 프로그램들의 사용이 증가하는 결과를 초례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의 개선을 위해서 소프트웨어 제작사들은 미니노트북(넷북)과 MID 등 저사양 PC 환경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된다.

미니노트북(넷북) 제품과 하반기 전망

■ 다양한 종류의 넷북 출시
미니노트북(넷북) 열풍의 주역인 대만 노트북 전문 업체 Asus는 디자인으로 유명한 제조사답게 사용자의 편의성과 외관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으며, 미니노트북(넷북)의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역 시 대만 노트북 업체인 MIS와 Acer도 국내에 미니노트북(넷북)을 출시하고 있다. 두 회사는 저렴한 가격과 함께 높은 사양으로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지만, 사용자의 편의성을 고려하지 않는 자판배열과 A/S 등 문제를 갖고 있다.

외국 제조사인 HP와 DELL, Toshiba, Sony는 뒤늦게 미니노트북(넷북) 시장에 진출한 만큼 공격적인 마케팅과 자주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HP에서는 50만원 미만의 미니노트북(넷북) ‘HP Mini 110’를 일본에서 출시했고, 델은 7가지 컬러와 사양을 선택할 수 있는 ‘Dell Inspiron Mini 10 & 10v’선보였다.

또 Toshiba는 디자인과 컬러를 강조한 프리미엄 미니노트북 ‘Toshiba NB200 mini’를, Sony는 넷북 열풍 이전부터 다수의 미니노트북과 UMPC 등을 선보여왔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이목을 주목시키며 ‘VAIO Type P13-P15’를 출시했지만 비싼 PMP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이후 Sony는 인텔 Atom N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1366X768(WXGA)의 10.1인치 와이드 액정 디스플레이와 VAIO 특유의 디자인을 살린 ‘VAIO W’를 미국에서 예약판매를 시작했다. 그 밖에도 Fujitsu와 KOHJINSHA, GIGABYTE 등에서도 미니노트북(넷북)을 출시와 출시 예정이다.

삼성과 LG, TG삼보에서도 미니노트북(넷북) 시장에 진출했다. 삼성은 ‘SENS NT’ 시리즈를 출시 ‘SENS NT-N310’은 출시 이후 국내 미니노트북 시장의 30%를 차지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 LG는 ‘XNOTE MINI’ 아이스크림 넷북 시리즈를 출시 시선을 사로잡는 감각적 디자인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고, TG삼보는 국내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Averatec Buddy’ 시리즈와 MID ‘루온 모빗’을 선보이고 있다.

그 밖에도 MP3P 제조사로 알려진 코원시스템도 MID 시장에 합류했고, PMP와 네비게이션 제조사로 알려진 유경테크도 MID ‘빌립 S5’를 출시했다.

■ 넷북 영역의 확장
미 니노트북(넷북)의 성공으로 MID와 스마트폰 시장이 활성화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인텔의 MID용 플래폼 ‘무어스타운(Moorestown)’과 퀄컴 ‘스냅드래곤’ 칩셋을 탑재한 MID와 스마트폰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제품을 개발될 예정이다.

인텔 ‘무어스타운’은 넷북 플랫폼 ‘멘로(Menlow)’를 잇는 차세대 플랫폼으로 인텔 Atom 프로세서를 탑재와 충전된 배터리 하나로 최장 24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등 저전력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다. 또 신용카드 정도의 크기와 이동통신 기능을 지원해 새로운 형태의 휴대전화나 더욱 소형화된 MID 형태의 제품을 구현할 수 있다.



또 한, 6월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COMPUTEX) 2009’에서 인벤텍과 일렉트로빗, 퀀타 등에서 선보인 인텔 ‘무어스타운’ 기반의 새로운 MID를 선보였고, LG전자와 노키아도 인텔 ‘무어스타운’과 리눅스 기반의 운영체제인 인텔 ‘모블린(Mobine) 2.0’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개발 중에 있고, 삼성은 퀄컴 ‘스냅드래곤’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개발하고 있다.

도시 바는 이미 퀄컴 스냅드래곤 1Ghz을 탑재한 윈도 모바일 6.1 스마트폰 ‘TG01’이 하반기에 출시 예정이다. HTC는 듀얼 디스플레이와 Open GL 2.0지원하는 ‘Leo’를 HTC ‘Omin’와 비슷한 디자인으로 나올 예정이고, 소니 에릭슨도 퀄컴 스냅드래곤을 탑재한 안드로이드폰 ‘레이첼’을 개발하고 있다.

인텔 ‘무어스타운’과 퀄컴 ‘스냅드래곤’을 기반으로 개발된 스마트폰은 기존의 윈도 모바일이 아닌 리눅스나 윈도 XP 등의 PC 운영체제 설치 및 실행 할 수 있어 미니노트북(넷북)에 상응하는 제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미니노트북(넷북)의 성능에 대한 한계성을 뛰어 넘는 ‘울트라 씬’ 노트북들이 대거 출시를 기다리고 있어 저가형 노트북 시장에 큰 영향력을 끼칠 전망이다.

‘울트라 씬’ 노트북은 Apple의 ‘맥북 에어’와 같이 종이만큼 얇고 가벼우면서도 해상도와 배터리 지속시간이 길어 미니노트북(넷북) 이후 전 세계 PC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되고 있다.

이미 인텔은 지난 7월 울트라 씬 계열의 CPU를 4종 발표했으며,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완성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울트라 씬 계열의 미니노트북은 넷북과 달리 해상도 제한이 없고 그래픽 성능은 높으면서도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해 넷북 시장의 일정부분을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한 코어투듀오 계열의 고급형 울트라 씬 계열 미니노트북도 출시될 예정이라 넷북 뿐만 아니라 중급/고급형 시장에서도 미니노트북은 대세가 될 전망이며, 기존의 중급/고급형 제품들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전반적인 노트북 시장의 가격하락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아톰 CPU와 직접적으로 경쟁할 것으로 예상되는 저가형의 셀러론급 울트라 씬 계열 미니 노트북과 비교하면 여전히 넷북이 가격적 측면에서 우위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2009년에도 넷북의 인기는 지속될 것이다.




맺음말


지금까지 2009년 미니노트북(넷북)의 변화와 하반기 전망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본 결과 앞으로도 미니노트북(넷북) 시장은 성장세를 계속 유지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울트라 씬 노트북의 출시와 성능이 향상된 MID,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미니노트북 시장이 다소 위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 지만, 올 하반기에는 KT에 이어 SK텔레콤도 와이브로 결합 상품을 통해 넷북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할 예정이기 때문에 넷북의 수요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고, 마니아층이 두터운 Apple에서 800달러 저가형 미니노트북(넷북)을 출시할 것이라는 루머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그 파급효과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만약 아직까지 미니노트북(넷북)의 구매를 고민하고 있는 소비자는 올 하반기를 기대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소프트웨어기술경력증이라....

내가 형사 콜롬보도 아니고

거처온 유령회사 사장들을 찾아다야만 해서 포기한 경력이 6년이라는....

그나마 이거라도 건진다는 느낌...

일부 기업들은 고급이상은 쓰지 않겠다는 방침도 있기에 안심?????

이것들이 머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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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SQL 기초2" 주에서 발최

CHAPTER 3. 주위의 데이터를 테이블로 만든다


3-1. 테이블 설계란 무엇인가?


KEYWORD

* 데이터 정규화

* 비정규화 데이터

* 제1정규화

* 제2정규화

* 제3정규화


테이블 설계란 우리들 주변에 있는 데이터를 어떠한 형식으로 데이터베이스로 보관하면 좋을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설계가 잘 되고 안 됨에 따라, 나중에 데이터의 수정이 간단하게 될지, 복잡하게 될지가 결정됩니다. ‘이렇게 설계를 하면 나중에 수정할 때 이러한 장점이나 단점이 있다’라는 점을 잘 생각하면서 배워 나가도록 합시다.

테이블 설계를 할 때에는 정규화라는 개념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데이터베이스로 원활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잘게 부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여기에서는 신문을 예로 들어 봅니다. 기사를 쓰는 쪽(기자)를 인간으로, 기사를 읽는 쪽(독자)를 데이터베이스로 바꾸어 생각해 봅니다.

신문의 1페이지 전면이 모두 한자로 쓰여 있다고 상상해 봅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것들을 모두 적었다 하더라도, ‘독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자명합니다. 좀 더 알기 쉽게 하려면 한글을 섞어서 쓰도록 합니다. 또 더욱 효과적인 방법으로는 문장 부호를 추가하거나 지면을 여러 틀로 나누어서 각각의 틀 안에 기사를 쓰면 좋을 것입니다. 단락을 나누어서 쓰는 것도 이해하기 쉬워질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지면 전체를 한자로 쓴 것에 비하여 훨씬 알기쉬운 신문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과 데이터베이스 사이에서 진행해 나가는 것을 정규화라고 부릅니다. 앞의 예에서는 ‘전면을 한자로 쓴다’ → ‘한글을 섞어 쓴다’ → ‘문장 부호를 추가한다’ → ‘지면을 분할한다’ → ‘단락을 나눈다’라는 형태로 한자 데이터를 편집해 나감으로써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데이터 구조로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였습니다. 이 내용을 인간이 취급하는 데이터와 데이터베이스의 관계에도 적용시켜 봅니다. 인간이 취급하는 데이터를 ‘비정규화 데이터’라고 부릅니다. 여기에서부터 진행하는 테이블 설계의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비정규화 데이터 → 제1정규화 → 제2정규화 → 제3정규화

실제로는 제4정규화, 제5정규화 등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제3정규화까지 진행합니다. 신문의 예에서는, ‘한글을 섞어서 쓰고 문장 부호가 있으면 이해하기 쉽다’라는 것이 제3정규화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데이터 구조를 RDBMS가 이해하기 쉬운(관리하기 쉬운) 구조로 바꾸어 나가기 위해서 정규화가 필요합니다. 각각의 정규형에 관해서 살펴보도록 합니다.



3-2 테이블 작성 방법과 비정규형


KEYWORD

* 분석

* 비정규형


다음의 예로 테이블을 작성해 봅니다. 여기에서는 학교 성적 관리에 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다음과 같은 시험 성적표가 있습니다.


시험 성적표

이름 : 최문석

학년 : 2

반 : A

교실 : 본관2층

== 시험 결과 ==

과목 점수 교사

국어 80 이경욱

수학 70 최용호

물리 92 배정훈

사회 48 조범식

과목수 : 4

평균점수 : 72.5



이처럼 개인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여 관리한다고 가정합니다.

전교생의 시험 성적표를 각 교사가 기록하고 이것을 학교 컴퓨터에 입력합니다. 물론 이 성적표를 바로 테이블로 만들 수도 있으나, 데이터베이스에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닙니다. 어떠한 형식이 적합할지를 생각해 봅니다. 테이블을 설계하기 전에 시트를 잘 관찰하여 테이블 구조를 확정해야 하는데 이 작업을 분석이라고 부릅니다. 데이터의 분석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이에 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분석 방법을 사용하든지, 테이블 설계의 첫 걸음은 어떠한 열이 있으면 이것에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을까를 고려하는 것입니다. 위의 표를 보고 어떠한 열이 있으면 좋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표를 보면 다음과 같이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습니다.


시험 성적표 → 테이블 이름

최문석 → 이름

2 → 학년

A → 학급

본관2층 → 교실

== 시험 결과 == → 테이블 구분

국어 → 과목

80 → 점수

이경욱 → 교사

4 → 과목수

72.5 → 평균점수


이 정보들을 자세히 보길 바랍니다. 동시에 테이블을 머리 속에 그려 봅니다. 어떠한 열이 필요할까요? 이것을 테이블로 만든다고 생각할 때 다음과 같은 열이 필요합니다.



1. 테이블 이름

2. 이름

3. 학급

4. 교실

5. 테이블 구분

6. 과목

7. 점수

8. 교사

9. 과목수

10. 평균점수


이들 열을 사용하여, 바로 CREATE TABLE문을 사용해도 되지만, 여기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위에 들고 있는 열 후보 중에서 필요 없는 열은 없을까요?

먼저 눈에 띄는 것은 ‘1. 테이블 이름’과 ‘5. 테이블 구분’입니다. 이 항목은 인쇄상 보기 편하기 하기 위한 것이므로 데이터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잘 생각해 보면, 필요 없는 열이 또 있습니다. 다른 값에 의해 계산할 수 있는 항목입니다. SELECT문이 계산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실입니다. (예: SELECT 1+2 FROM DUAL;) 그렇기 때문에 계산에 의해 산출할 수 있는 것은 굳이 데이터로 입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같은 데이터를 여러 개 갖게 되므로 데이터가 중복됩니다. 예를 들어, 과목수는 과목을 세어보면 알 수 있고 평균 점수는 각 점수를 더해서 과목수로 나누면 됩니다. 이처럼 계산할 수 있는 데이터는 필요없는 데이터입니다. RDBMS 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중복 데이터를 가지지 않고 데이터의 모순 없이 쉽게 변경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데이터에서 계산하여 얻을 수 있는 값은 테이블 설계 단계에서 제외합니다. 여기에서는 ‘9.과목수’와 ‘10.평균점수’가 해당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요한 열을 다시 추려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이름

2. 학급

3. 교실

4. 과목

5. 점수

6. 교사



열이 반 정도로 줄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정보가 빠져 있지는 않습니다. 이들 데이터 정도만 알면 본래의 표 데이터는 복원될 수 있습니다. 테이블 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테이블에 보관해야 하는 데이터와 다른 데이터에서 도출 할 수 있는 데이터를 가려내는 것입니다. 표에 씌여 있는 데이터는 하나의 표현에 지나지 않으므로, 그대로 모두 테이블로 가져오면 안 된다는 점을 주의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가려낸 열을 사용하여 다음과 같은 테이블을 작성해 봅니다.



이름

학급

교실

과목

점수

교사

최문석

A

본관2층

국어

80

이경욱

수학

70

최용호

물리

92

배정훈

사회

48

조범식


한 명의 학생에 대한 정보는 이 정도입니다. 다른 학생의 정보도 입력해 봅니다.


? 테이블1: 성적(비정규형)

이름

학급

교실

과목

점수

교사

최문석

A

본관2층

국어

80

이경욱

수학

70

최용호

물리

92

배정훈

사회

48

조범식

이원석

B

별관3층

국어

80

이경욱

수학

55

최용호

가정

96

도희정

문장원

B

본관3층

예술

72

이수정

사회

87

조범식



이렇게 작성된 테이블을 비정규형 테이블이라고 부릅니다. 비정규형 테이블은 인간에게는 보기 편하지만 효율성 있는 데이터 관리를 위해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2번째 행의 데이터는 어느 학생의 성적인가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서 테이블에는 키 열이 존재한다고 설명한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키 열에는 반드시 값이 있어야 합니다. 앞의 테이블은 학생의 성적을 보관하는 테이블이므로 어느 한 행을 특정 짓기 위해서는 학생 이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학생 이름 열에 값이 들어가 있지 않는 행이 여러 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 테이블을 이대로는 RDBMS 안의 테이블에 보관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비정규형 테이블을 제1정규형으로 변환해 봅니다.



3-3 제1정규형


KEYWORD

* 제1정규형


제1정규형으로 변환하는 작업은 테이블 안에서 반복되는 항목을 배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테이블 안에 반복되는 항목이 없는 테이블을 제1정규형 테이블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비정규형 테이블을 제1정규형 테이블로 변환해 봅니다. ‘테이블1’에서 반복하는 항목은 무엇인가? ‘테이블1’의 2행, 3행과 4행에는 아무것도 입력되어 있지 않지만 실제로는 1행의 데이터와 같은 것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이름’열에서 ‘교실’열까지는 반복이 존재하는 열입니다.

테이블1은 아래와 같이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름

학급

교실

과목

점수

교사

최문석

A

본관2층

국어

80

이경욱

최문석

A

본관2층

수학

70

최용호

최문석

A

본관2층

물리

92

배정훈

최문석

A

본관2층

사회

48

조범식

이원석

B

별관3층

국어

80

이경욱

이원석

B

별관3층

수학

55

최용호

이원석

B

별관3층

가정

96

도희정

문장원

B

본관3층

예술

72

이수정

문장원

B

본관3층

사회

87

조범식


그러나 너무 복잡해 보기가 어려우므로 일반적으로 반복되는 항목을 생략하고 ‘테이블1’과 같이 만듭니다.

이러한 이유로 ‘테이블1’에서 반복되는 항목은 ‘이름’열에서 ‘교실’열까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테이블1’을 제1정규형으로 분해해 나가겠습니다. 이때에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분해한 2개의 테이블에서 원래의 테이블을 반드시 복원할 수 있도록 분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계를 분해한 후 다시 조립을 못하면 큰일나듯이 테이블도 마찬가지로 분해한 테이블을 반드시 원래의 테이블로 복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테이블을 분해할 때는 약간의 고려를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어느 열의 값이 있으면, 어느 행을 구분 지을 수 있을까라는 점입니다. 테이블1에서는 ‘이름’열과 ‘과목’열이 해당됩니다. 이 2개의 열이 있으면 특정 행을 식별 할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비정규형 테이블을 2개로 나우어 봅니다.



학생(이름, 학급, 교실)

시험(이름, 과목, 점수, 교사)


여기서 밑줄이 그어져 있는 열은 키 열로 그 항목이 결정되면 행이 구분지어진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방금 ‘테이블1’을 2개의 테이블로 분할하였습니다. 그럼, 상세하게 보기로 합니다.

먼저, ‘테이블2’입니다. ‘이름’이 키로 되어 있어 이름이 구분됨에 따라 특정한 1행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 테이블2: 학생

이름

학급

교실

최문석

A

본관2층

이원석

B

별관3층

문장원

B

별관3층



또 하나는 ‘테이블3’입니다. 밑줄로 나타낸 것처럼 이 테이블은 ‘이름’열과 ‘과목’열의 값을 한 조로 하여 하나의 행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테이블1’을 단지 2개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분해한 것에 키 열을 추가한 후 다시 하나의 테이블로 만드는 것입니다.


? 테이블3: 시험

이름

과목

점수

교사

최문석

국어

80

이경욱

최문석

수학

70

최용호

최문석

물리

92

배정훈

최문석

사회

48

조범식

이원석

국어

80

이경욱

이원석

수학

55

최용호

이원석

가정

96

도희정

문장원

예술

72

이수정

문장원

사회

87

조범식


테이블2와 테이블3을 주의해서 보시길 바랍니다. 양쪽 테이블에 포함되어 있는 열은 ‘이름’열입니다. 이 열이 양쪽에 있기 때문에 ‘테이블2’와 ‘테이블3’에서 ‘테이블1’이 복원될 수 있습니다(이것은 RDBMS의 기본!).

이렇게 제1정규형으로 변환되었습니다.






3-4 제2정규형


KEYWORD

* 제2정규형


제2정규형이란 연결 키가 있는 테이블을 찾아내어 연결 키의 일부 열에만 존재하고 있는 열을 도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연결 키가 없는(하나의 열만으로 기본 키를 만들고 있는) 테이블은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앞의 ‘테이블2’는 기본 키가 하나인 ‘이름’열만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이미 제2정규형의 조건을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테이블2’를 제2정규형으로 바꿔줄 필요가 없습니다.

연결 키의 일부 열에만 존재하고 있는 열이란 어떤 것일까요? 예를 들어, 다음의 ‘소프트 아이스크림’테이블을 살펴봅니다.


? 소프트 아이스크림

용기

주원료

가격

딸기맛

딸기

2,000

딸기맛

딸기

2,500

메론맛

메론

4,000

메론맛

메론

4,500

초콜릿맛

초콜릿

1,000

초콜릿맛

초콜릿

1,500

바나나맛

바나나

1,000

바나나맛

바나나

1,500


‘소프트 아이스크림’ 테이블은 연결 키를 가지고 있어서 용기와 맛이 결정되면 특정행이 도출되는 테이블입니다. 이 테이블을 잘 보면 ‘주원료’열의 값(딸기, 메론, 초콜릿, 바나나)은‘맛’ 열의 값(딸기맛, 메론맛, 초콜릿맛, 바나나맛)에는 존재하고, ‘용기’ 열 (컵, 콘)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연결 키를 구성하는 열(맛, 용기)의 일부인 열(맛)에만 존재하는 열(주원료)을 도출해내는 작업이 제2정규화입니다.

‘가격’열은 연결 키를 구성하는 열(맛,용기) 모두에 존재하므로 도출하려는 열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2정규화로 도출하려는 열은 ‘소프트 아이스크림’ 테이블 열에서 ‘주원료’열이 됩니다.

그러면 ‘테이블3’을 살펴봅니다. ‘테이블3’은 연결 키(‘이름’ 열, ‘과목’ 열)를 가지고 있는 테이블이므로 제2정규형으로 변형할 필요가 있는지를 음미할 대상이 됩니다.

‘점수’ 열은 무엇에 의해 구분되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름’열과 ‘과목’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점수’열은 ‘학생’열과 ‘과목’열의 양쪽(연결 키의 전체 열)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어떠한 작업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음로 ‘교사’열을 생각해 봅니다. 교사가 어디에 종속되어 있는지 생각해 볼 때 과목이 결정되면 대응하는 교사가 자동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학생이 누구인지에는 관계없습니다. 곧 ‘교사’열의 값은 ‘과목’열의 값(연결 키의 일부 열)에만 종속되어 있으므로 분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고 같이 분해해 봅니다.



? 테이블4: 시험2

이름

과목

점수

최문석

국어

80

최문석

수학

70

최문석

물리

92

최문석

사회

48

이원석

국어

80

이원석

수학

55

이원석

가정

96

문장원

예술

72

문장원

사회

87


‘점수’열은 그대로 남김니다.


? 테이블5: 교사

과목

교사

국어

이경욱

수학

최용호

물리

배정훈

사회

조범식

가정

도희정

예술

이수정


이와 같이, 교사는 과목이 결정되면 자동으로 구분됩니다. ‘테이블4’와 ‘테이블5’를 잘 살펴봅니다. ‘과목’열이 양쪽 테이블에 들어 있으므로 ‘테이블4’와 ‘테이블5’에서 ‘테이블3’을 복원할 수 있습니다.















3-5 제3정규형


KEYWORD

* 제3정규형


제3정규형은 기본 키 항목 이외의 열에 종속되어 있는 열을 도출하는 것입니다. 즉, 기본 키 열 이외의 열에 종속되어 있는 열이 없는 테이블입니다.

‘테이블4’의 ‘점수’열을 봅니다. ‘점수’열은 기본 키 열(‘이름’열, ‘과목’열)에 종속(기본 키 열이 결정되면 자동으로 결정됩니다)되므로 이미 제3정규형이 되어 있습니다. 다음으로 ‘테이블5’를 봅니다. 기본 키 이외의 열은 ‘교사’열입니다. 그러나 ‘교사’열은 기본 키 열(과목)에 종속되므로 ‘테이블5’도 이미 제3정규형이 되어 있습니다.

앞의 ‘테이블2’를 다시 살펴봅시다.


? 테이블2: 학생

이름

학급

교실

최문석

A

본관2층

이원석

B

별관3층

문장원

B

별관3층



‘학급’열을 보면, ‘학급’열의 값은 기본 키 열(이름)이 결정됩니다. 그럼 ‘교실’ 열은 어떤가요? ‘교실’열은 학급이 결정되면 자동으로 결정됩니다. 즉, 기본 키 이외의 열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테이블2’를 제3정규형으로 분해해 보면 아래와 같이 됩니다.


? 테이블6: 학생

이름

학급

최문석

A

이원석

B

문장원

B


? 테이블7: 위치

학급

교실

A

본관2층

B

별관3층


이렇게 해서, 기본 키가 아닌 모든 열은 기본 키에만 종속된 형이 되어 제3정규형이 되었습니다. ‘테이블6’, ‘테이블7’은 양쪽에 ‘학급’열이 들어 있으므로 이 2개의 테이블에서 ‘테이블2’를 복원할 수 있습니다.


‘테이블6’, ‘테이블7’은 다음과 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름

교실

최문석

본관2층

이원석

별관3층

문장원

별관3층


교실

학급

본관2층

A

별관3층

B



상호 어느 쪽에도 속해있다고 말할 수 없을 때는 어느 것이든 분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까지의 분해를 정리해 봅시다.



비정규형

제1정규형

제2정규형

제3정규형

‘성적’테이블

‘학생’테이블

‘학급’테이블

‘위치’테이블

‘시험’테이블

‘시험2’테이블

‘교사’테이블



처음으로 비정규형 테이블을 2개로 분해해 보았습니다. 위의 그림은 ‘학생’테이블의 분해와 동시에 제2정규형 조건을 충족하는 테이블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시험’테이블은 제1정규형이므로, 제2정규형 분해를 진행하여 ‘시험2’테이블과 ‘교사’테이블로 분해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시험2’테이블과 ‘교사’테이블은 제2정규형으로 분해됨과 동시에 제3정규형의 조건을 충족하는 테이블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4개의 테이블 정의를 정리해 본 것입니다.


시험2(이름, 과목, 점수)

교사(과목, 교사)

학급(이름, 학급)

위치(학급, 교실)


이들의 테이블 관계를 도식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여기에서 CREATE TABLE문을 작성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CREATE TABLE 시험2

(

이름 VARCHAR2(20) CONSTRAINT PK_NAME PRIMARY KEY,

과목 VARCHAR2(20) CONSTRAINT FK_CLASS REFERENCES 학급(이름),

점수 NUMBER(3) CONSTRAINT NN_POINT NOT NULL

);

CREATE TABLE 학급

(

이름 VARCHAR2(20) CONSTRAINT PK_CLASS PRIMARY KEY,

학급 VARCHAR2(2) CONSTRAINT FK_SITE REFERENCES 위치(학급)

);

CREATE TABLE 위치

(

학급 VARCHAR2(24) CONSTRAINT PK_NAME PRIMARY KEY,

교실 VARCHAR2(100)

);

CREATE TABLE 교사

(

과목 VARCHAR2(20) CONSTRAINT PK_COURSE PRIMARY KEY

교사 VARCHAR2(20)

);



단, 이들 정의는 예제일 뿐이므로 실제로는 애플리케이션에 맞추어 적용하면 됩니다. 애플리케이션의 예로 NOT NULL 제약을 엄밀하게 설정하고, 문자열에 기본 키를 붙이지 않고, 테이블에 'ID'열을 추가하고 테이터에 관리용 ID(학생 번호, 학급 번호, 직원 번호 등)를 부여해 이것을 기본 키 또는 참조 키로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적’테이블을 4개의 제3정규형 테이블로 분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4개의 테이블을 조합하면, ‘성적’테이블로 복원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본 키 열과 기본 키에만 종속되어 있는 열로만 구성되어 있는 테이블로 분해함으로써, 중복되는 데이터가 없는 효율적인 테이블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테이블의 CREATE TABLE문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비정규형으로 정리하여 정규화를 진행시키고 CREATE TABLE문을 작성할 수 있을 때까지 위 과정들을 체험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제4정규형, 제5정규형 등 좀 더 정밀한 정규형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제3정규형까지 정규형화하면 충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시스템의 효율성을 고려하여 제3정규형을 없애고 일부러 제2정규형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좀더 자세한 내용은 다른 책을 참조하도록 하고, 여기서는 다음 내용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1. 우리들 주변에 있는 데이터는 비정규형인 것이 많으므로 바로 테이블화 해서는 안 된다.

2. 꼭 보관할 필요가 있는 데이터가 무엇인지를 생각한다(계산으로 나오는 값은 열로 만들지 않는다 등).

3. 열 상호간의 종속 관계를 충분히 고려한다.

4. 정규형의 조건에 따라서 차근차근 데이터를 제3정규형으로 분해해 나간다.

5. 분해할 때에는 원래의 테이블을 복원할 수 있는지를 고려한다.

6. CREATE TABLE문을 생각할 때에 새로운 열(ID열)을 도입하면 설계가 편하고 보기좋게 될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정규화는 다음과 같은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제3정규형은 제2정규형 조건을 충족하고, 제2정규형은 제1정규형 조건을 충족합니다. 테이블 설계나 작성시에 이들의 관계를 잘 이해하도록 합니다.


" 名 言 錄"(리더스다이제스트 1983.3--1988.1)


@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다고 느낄 때 오는 고독감은 가난 중의 가난. --테레사 수녀

@ 어떤 사람이 자기는 원칙적으로 그 일에 찬성한다고 말할 경우, 그 사람은 그것을 실천에 옮길 의향
이 전혀 없음을 뜻한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프러시아 정치가)

@ 동정과 이해가 따르지 않는 "정직"은 정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敵意이다. --로즈 N.프랜즈블로

@ 무질서하게 사는 이점의 하나는 끊임없이 멋진 발견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A.A.밀른(英 시인)

@ 비눗물 맛을 모르는 사람은 개를 목욕시킨 적이 없는 사람. --프랭클린 P.존스

@ 오래된 규범의 가치에 의심을 품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파기하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
야 한다. --엘리자베드 제인웨이

@ 재능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재능을 실현하기 위해 걸어야 할 어려운 과정을 밟을 용기를 지닌 사
람은 드물다. --에리카 종

@ 아무리 높은 왕좌에 앉아 있을망정, 사람은 궁둥이로 앉게 마련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 유머. --타키

@ 이른 아침의 산책은 그날 하루를 위한 축복. --헨리 데이비드 도로(美 작가, 1817--1862)

@ 산책은 위대한 예술이다. --헨리 도로(美 작가)

@ 아기가 태어날 때 삼신할머니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호기심이다. --엘리노어 루스벨트

@ 부자가 되는 지름길은, 값이 싸고 습관적으로 쓸 수 있는 데다가 세금이 공제될 수 있는 물건을 만
들어 내는 것. --[선샤인 매거진]

@ 인간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남을 속이는 것은 전적으로 신만이 져야 할 책임. --헨리 해스킨스

@ 인간이 추위와 굶주림, 갈증에 대비하는 이외의 모든 것은 오직 허식이며 낭비일 뿐이다. --세네카

@ 전쟁에서 이등상이란 없다. --오마 브레들리

@ 무엇이 이 세상을 움직여 가는지 이해할 나이가 되면 당신은 현기증이 심해서 그것에 대해 신경쓸
겨를이 없게 된다. --C.R.깁슨

@ 무지개는 하늘이 성낸 것을 사과하는 것. --실비아 A.보이롤

@ 자녀들의 교육 내용에 지나치게 간섭한 대가는 부모보다 우둔한 자손이 생겨나는 것. --프랭크 A.클라크

@ 짐스럽다고 육봉을 떼어낸 낙타는 이미 낙타가 아니다. --G.K.체스터튼

@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한 첫 네 시간 동안만큼 헛된 희망을 품는 때도 아마 이 세상에 없
으리라. --댄 베네트

@ 천둥도 그럴싸하고 인상적이지만 정작 그 일을 해내는 것은 번개. --마크 트웨인

@ 한겨울에도 움트는 봄이 있는가 하면 밤의 장막 뒤에는 미소짓는 새벽이 있다. --칼릴 지브란

@ 첫눈에 반하기란 쉽지만 기적이 이루어지는 것은 두 사람이 여러 해 동안 마주 보고난 뒤의 일. --샘 레번슨

@ 30세가 넘으면 사람은 자기 주관을 갖게 된다. --베터 미들러(美 가수)

@ 우리는 자명종 소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새벽에의 무한한 기대감으로 깨어나는 법을 익혀야 하고 또
한 스스로 늘 깨어 있어야만 한다. --헨리 데이비드 도로(美 작가)

@ 예술은 창조자와 감상하는 사람이 서로 만나는 환희의 광장. --도미다 고지로(일본 작가)

@ 생명력은 살아 남는 능력뿐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능력에서도 드러난다. --F.스코트 피츠제럴드(美 소설가)

@ 힘과 인내를 알고자 한다면 나무를 벗으로 삼으라. --할 보런드(美 자연주의자)

@ 봄이란 구두가 온통 진창에 푹푹 빠지더라도 휘파람을 불고 싶은 기분이 저절로 샘솟는 계절. --D.L.

@ 상냥함은 차분한 열정. --J.J.

@ 우리는 정부를 가져야 하지만 매처럼 이를 감시해야만 한다. --M.F.

@ 세상 일로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고 신뢰감 넘치는 어린아이의 눈빛을 바라봄으로써 새
로운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H.H.

@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선택하려 들지 말라. 또는 언제 죽을 것인가도.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을 따름이니까. --존 바에즈(美 가수)

@ 예술 작품 그 자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슨 씨앗을 뿌리게 될까 하는 사실이다. 예술은
죽고 한 장의 그림은 사라질 수 있다. 남는 것은 오직 그것이 뿌린 씨앗. --호안 미로(스페인 화가)

@ 행복한 가정이란 빨리 온 천국과 다름없다. --J.B.

@ 아무 것도 시도할 용기를 갖지 못한다면 인생은 대체 무엇이겠는가? --빈센트 반 고호(네덜란드 화가)

@ 세상의 천재적 작품 속에는 우리의 머리 속에도 한번은 떠올랐으나 우리 스스로 버린 사상이 깃들여
져 있다. 우리 스스로 생각했다가 내버린 생각들이 새삼 위엄을 갖추고 되돌아왔음을 발견한다.
--랠프 월도 에머슨

@ 남을 밑으로 끌어내리려면 자기 자신도 불가불 그와 함께 끌어내려야만 한다. 그러니 남을 끌어내림
으로써 자기 자신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도 놓치고 만다. --매리언 앤더슨(美 흑인 여가수)

@ 과학의 임무는 지구를 떠맡는 노릇이 아니라 도덕적 상상력을 물려받는 일이다. 왜냐하면 도덕적 상상
력이 없으면 인간과 믿음 그리고 과학이 함께 멸망해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 --제이컵 브러노프스키

@ 우습지 않은가? 집시점장이를 비웃는 사람이 경제학자의 말은 진지하게 받아들이니.
--[신시내티 인콰이어러]

@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표정을 나는 미워한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탐구하고, 더 많이 보고,
더 큰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없는 얼굴은 싫다! --마리아 톨치프

@ 땅은 봉사해 준 대가로 나무를 붙들어 두지만 하늘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나무를 자유롭게 내버
려 둔다.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 인생살이를 서로 덜 힘드는 것으로 만들려 애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조지 엘리어트

@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할 일이 없는 것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권태. --헨리 하스킨스

@ 사람을 침묵시켰다고 해서 그의 마음을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존 모리

@ 독창성이란 탐험되지 않은 땅. 카누를 타고는 갈 수 있지만 택시를 타고는 도달할 수 없는 곳. --앨런 앨더

@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이어야 사람이다. --최현배(한글학자)

@ 위대한 사상은 날개와 아울러 착륙장치도 필요로 한다. --C.D.잭슨

@ 만약에 개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사람들과 사귀는 노릇만큼이나 개들과 친하게 지내는 일도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카렐 차펙(체코 극작가)

@ 사람들은 남을 증오하는 데 왜 그렇게도 고집스럽게 집착하는가? 증오를 떨쳐버릴 경우 그들은 고통
과 씨름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제임스 볼드윈(美 흑인작가)

@ 글이란 한번 인쇄되면 스스로의 생명을 지니게 되는 법. --캐롤 버넷(美 배우)

@ 자기가 생전에는 결코 그 밑에 앉아 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늘을 드리워 주는 나무를
심을 때에 그 사람은 적어도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D.E.트루블라드

@ 우리가 지금 당장에 의견의 차이를 해소시킬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 세상이 다양성을 누리도록 함께
노력할 수는 있을 것이다. --존 F.케네디

@ 결정을 내리기 전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고자 고집하는 사람은 결코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앙리 F.아미엘(스위스 시인)

@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을 내걸고 정당한 절차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효율적"인 정부라면 독재정
치를 해도 된단 말인가? --투어굿 마설(美 흑인대법관)

@ 문학을 좋아하고 시를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 속에 사랑이 있다는 증거다. --박목월(시인)

@ 오늘이란 신어야 할 신발과 같은 것. --스티브 올렌

@ 신이 진실로 인간이 날기를 바랐다면 공항까지 가는 일을 더 쉽게 해주었을 것이다. --조지 원터스

@ 그림자를 두려워 말라. 그림자란 빛이 어딘가 가까운 곳에서 비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루스 E.렌컬

@ 나이란 성숙해지기 위해서 치르는 비싼 대가. --톰 스토파드(현대 영국 극작가)

@ 무덤 앞에서 흘리는 가장 가슴 아픈 눈물은 고인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말과 행하지 못한 행위 때문
에 나오는 것. --해리엇 비처 스토우(美 작가, 1811--1896)

@ 한 민족을 가장 진실되게 표현하는 것은 그 민족의 춤과 음악이다. 사람의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다. --애그니스 도 밀(美 무용가, 1906--)

@ 죄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선고하기보다는 차라리 죄인을 풀어주는 위험을 무릅쓰는 편이 낫다. --볼테르

@ 교육이란 이 세상 여기저기에 흔하게 널려 있는 유일한 것이며, 아무나 가지고 싶은 만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조지 호레이스 로리머

@ 낡았으나 편안한 의자가 하나도 없는 집은 혼이 없는 곳. --메이 사턴

@ 아무리 편협한 고집장이라도 한때는 편견에 얽매이지 않았던 어린아이였다. --메어리 드 루르드 修女

@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날이 있다. --도산 안창호

@ 신용카드보다 부모를 더 존경하던 시절의 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간편했다. --로버트 오벤

@ 우리 모두의 심성에는 어린 카우보이, 어린 개척자가 뛰놀고 있다. --루이스 라무어(美 작가)

@ 한 곳의 불의는 모든 곳에서 정의를 위협한다. --마틴 루터 킹(1929--1968)

@ 대체로 인간은 선한 사람이 되고자 하지만 너무 선하거나 언제나 선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조지 오웰(英 작자)
@ 당신이 잠자리에서 일어나든 안 일어나든 하루는 시작된다. --존 차디(美 시인)

@ 우주의 대변동이라도 어린아이가 헛간 한 구석에 죽어 있는 참새의 주검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
는 광경만큼이나 감동스럽지는 못하다. --토마스 새비지

@ 영원이란 생각해 보면 무서운 것이다. 어디에서 끝이 날지 알 수 없으니. --톰 스토파드(체코 태생 英 작가, 1937--)

@ 인생이란 용기에 따라서 펴질 수도 있고 움츠러들 수도 있다. --어네이스 닌(프랑스 태생 美 작가, 1903--1977)

@ 우리는 목구멍을 틔우기 위해서 기침을 하고 가슴을 틔우기 위해서 한숨을 쉰다. --T.S.매슈스

@ 이 급변하는 시대에 한가지만은 변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용서를 비는 일이 유혹을 물리치는 일보
다 더 쉽다는 사실이다. --솔 켄던

@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한용운

@ 정치란 워낙 비싸게 먹히는 것이라서 오늘날엔 선거에서 지는 데도 막대한 돈이 든다.
--윌 로저스(美 배우, 1879--1935)

@ 첫눈이 내려도 가슴이 떨리지 않는 것은 늙어간다는 징조. --버드 존슨 女史(故 린든 B.존슨 美 대통령 미망인, 1912--)

@ 진보란 필요한 것은 가능하다는 신념과 더불어 시작된다. --노만 카즌스

@ 최상의 거울은 친구의 눈이다. --게일족 속담

@ 훌륭한 예술이란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로이 아자크

@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내 일이 바로 나의 왕국이다. --토마스 칼라일(스코틀랜드 수필가, 1795--1881)

@ 꽃을 받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당신이 아직 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동안에는. --리너 혼(美 흑인가수, 1917--)

@ 애정을 낭비했다고 말하지 말라. 애정이란 절대로 낭비되지 않는 것이다. --헨리 W.롱펠로우(美 시인, 1807--1882)

@ 선물을 품위있고 정중하게 받는 것은 보답할 것이 없더라도 보답하는 셈이 된다. --리 헌트(英 수필가, 1784--1859)

@ 행복이 진정 육신의 편안함과 근심으로부터의 해방에 있는 것이라면, 가장 행복한 존재는 어떤 남자
나 어떤 여자가 아니고 미국의 암소일 것이다. --윌리엄 L.펠프스(美 교육자, 1865--1943)

@ 어느 누구의 인생에도 대수롭지 않은 날이란 없다. --알렉산더 울커트(美 저널리스트, 1887--1943)

@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
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고. --마틴 루터 킹

@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의 존재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는 나의 존재를 위해서도.
--로이 크로프트

@ 만일 당신이 비밀을 바람에게 털어 놓았다면 바람이 그것을 나무들에게 털어 놓는다고 원망해서는
안 된다. --칼릴 지브란

@ 누구든지 전에는 젊었을 때가 있지만 누구나 전부터 나이가 든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속담

@ 나의 길을 밝혀 주고, 항상 인생을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하도록 내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친절
과 미, 그리고 진리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집을 사지 말고 이웃을 사라. --유럽 속담

@ 시골 풍경을 감상하면서 걷는 일에 견줄 만한 것은 없다. 멋진 경치는 한 곡의 음악과 같다. 그것은
적절한 박자로 감상되어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도 속도가 너무 빠르다. --폴 스코트 모우러

@ 진보란 단순성을 복잡하게 만드는 인간의 능력. --투르 하이에르달(노르웨이 인류학자, 1914--)

@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라. 그것은 가장 파괴적인 감정이다. 자아라는 다람쥐 쳇바퀴 속에 갇힌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밀리슨트 펜위크(前 美 하원의원, 1910--)

@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매일 무엇인가 하도록 하라. 이것이 당신의 의무를 고통없이 행하는 습관을 얻
는 황금률이다. --마크 트웨인

@ 나는 음악을 메뉴처럼 생각하고 있다. 매일 똑같은 것을 먹을 수는 없다.
--카를로스 산타나(멕시코 출신 기타연주가, 1947--)
@ 역사는 我와 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다. --신채호

@ 남을 심판하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시간이 없다. --테레사 수녀

@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성공이란 사다리를 올라갈 수는 없다. --美 속담

@ 어떤 교향악단도 강아지를 보고 웃는 2살짜리 계집애의 웃음소리와 같은 음악을 연주해내지는 못했
다. --번 윌리엄스

@ 삶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 여자의 최고급 화장품. --로살린드 러셀(美 여배우, 1913--1976)

@ 자녀들에게 독립해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부모들의 가장 중요한 과업. --프랑크 클라크

@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권하지 말라. --스페인 격언

@ 타협은 훌륭한 우산이지만 허술한 지붕. --제임스 러셀 로웰(美 외교관, 1819--1891)

@ "눈에는 눈으로"란 옛 법을 따르면 우리는 모두 장님이 되고 말 것이다. --마틴 루터 킹

@ 행복은 때때로 열어놓은 줄 몰랐던 문으로 몰래 들어온다. --존 배리모어(美 배우, 1882--1942)

@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배운 것과 똑같은 사실을 나는 우리 집 정원에서 배우게 되었다. 하느
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최선이다. --오벤스 코미디 필러스

@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여인은 함께 울 수 있는 여인. --엔조 비아그

@ 어린이는 의문부호의 바다로 둘러싸인 호기심의 섬. --셸 석유회사 광고

@ 지구와 대륙과 대양의 형태를 발견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무지가 아니라 지식의 망상이었
다. --다니엘 J.부어스틴

@ 우정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가끔 계획된 활동 사이의 예상치 못했던 공간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공간이 생기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중요하다. --크리스틴 리펠트와 어니스트 칼렌바흐

@ 버릴 수 있는 조국이 있다면 그것은 애당초 지니지 않았던 조국이다. --김소운

@ 고기를 낚으러 가는 노인의 가슴 속엔 언제나 어린 소년이 들어 있다. --J.콜더 조셉

@ 메아리를 들으며 본디의 소리를 기대하진 말라. --[365개의 인용구가 담긴 달력]에서

@ 건축물에서 가장 견실한 돌은 토대의 맨 밑에 놓인 돌. --칼릴 지브란(시리아 시인, 1883--1931)

@ 이상이란 별과 같아 아무도 거기 이르지 못한다. 하지만 바다의 수부들처럼 우리는 그걸 보고 항해
코스를 그린다. --칼 슈츠(독일 태생 美 정치가, 1829--1906)

@ 한 여자를 자유롭게 할 때마다 우리는 한 남자를 해방시킨다. --마거리트 미드(美 여류 인류학자,
1901--1978)

@ 유머는 한 줄기 시원한 여름 소나기처럼 대지와 대기, 그리고 당신을 모르는 사이에 정화시켜 준다.
--랭스턴 휴스(美 흑인작가, 1902--1967)

@ 하나의 아이디어는 티끌이 될 수도 있고 마법으로 변할 수도 있다. 거기에 적용하는 재능에 따라.
--윌리엄 번배크

@ 여자들의 힘이 점차 증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두뇌의 힘이지 팔뚝의 힘은 아니다.
--비벌리 실스(美 소프라노 가수, 1929--)

@ 우리가 눈감아 버리면 점점 크게 번져가는 것이 범죄의 속성. --배리 파버

@ 행복한 결혼생활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헬렌 거헤이건 더글러스(美 여배우,
1900--1980)

@ 우리가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정부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앤슬 애덤스(美 사진작가, 1902--)

@ 식사 후 식탁에 손을 짚고 일어서려 할 때 테이블이 먼저 밀려나가면 식사조절을 시작해야 할 때.
--[조가비]에서

@ 인생행로에 삼진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들이는 것은 절대 금물. --베이브 루스(美 야구선수, 1894--1948)

@ 애국심이란 선조의 땅을 지키는 마음이라기보다 후손의 땅을 보존하는 마음이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스페인 철학자, 1883--1955)

@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둬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휴 프래더

@ 우리의 마음 속에는 발견되지 않은 성격의 대륙이 있다. 자신의 영혼을 탐험하는 콜룸부스가 되는
사람은 복되도다. --[생명의 말씀]에서

@ 문명이란 개인과 개인을 결합시키고, 그 다음에 가족과 가족, 인종과 인종, 국민과 국민, 국가와 국가
를 결합시켜 하나의 커다란 통일체로, 즉 인류의 통일체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지그문트 프로이드

@ 고위직의 입후보자를 조반용 시리얼을 사고 팔 듯 사고 팔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에 대한 모욕이다. --애들레이 스티븐슨(美 정치가, 1900--1965)

@ 호기심이란 기꺼이, 자랑스럽게, 열심히 자기의 무지를 실토하는 행위. --S.레오나드 루빈슈타인

@ 꿈을 단단히 붙들어라. 꿈을 놓치면 인생은 날개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새.
--랭스턴 휴즈(美 흑인 시인, 1902--1967)

@ 문제란 사람이 최선을 다할 기회. --듀크 엘링턴(美 흑인 작곡가, 1899--1974)

@ 10월의 미류나무는 겨울로 가는 길을 밝히는 횃불. --노바 S.베어

@ 입으로 말하는 사랑은 외면하기 쉬우나, 행동으로 증명하는 사랑은 저항하기 어렵다. --W.스탠리 무니햄

@ 민주주의의 바탕에는 평범한 사람에게 비범한 가능성이 있다는 신념이 깔려 있다.
--해리 에머슨 포스딕(美 성직자, 1878--1969)

@ 빈들빈들 노는 것이 좋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일을 하면 마음이 흡족해진다. --안네 프랑크(1929--1945)

@ 개울 바닥에 돌이 없다면 시냇물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칼 퍼킨스

@ 행운이 들어오거든 의자를 권하라! --유태 격언

@ "무슨 어려운 일을 겪고 계신가요?"하고 물어보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시몬 베유(프랑스 철학가, 1909--1943)

@ 자기 연민은 처음에는 깃털요처럼 따스하고 아늑하지만 딱딱하게 굳으면 거북살스러워진다.
--마여 안젤루(美 흑인 작가, 1928--)

@ 당신도 가끔 속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로렌스 J.피터

@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두 사람 사이에 한순간이라도 시간이 끼어들게 내버려두면, 그것은 자라서 한
달이 되고, 일년이 되고, 한 세기가 된다. 그러면 너무 늦어진다. --장 지로두(프랑스 극작가, 1882--1944)

@ 자유의 기능은 다른 사람을 해방시키는 일. --토니 모리슨(美 흑인 소설가, 1931--)

@ 결혼은 뚜껑을 덮어 놓은 음식. --스위스 속담

@ 나는 여성이 어리석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남자와 어울리게 만드셨기 때문
에. --조지 엘리어트(英 소설가, 1819--1880)

@ 신발이 어디가 끼는지는 신고 있는 사람만이 안다. --서양 속담

@ 소문은 빨리 퍼지지만 진실만큼 오래 가지는 않는다. --윌 로저스(美 배우, 1879--1935)

@ 남을 시궁창에 붙잡아 두려면 자기도 시궁창 속에 있어야 한다. --부커 T.워싱턴(美 흑인 작가, 1856--1915)

@ 가정의 난로가가 가장 좋은 학교. --아놀드 H.글래소

@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가를 말하지 않고, 얼마나 많이 해냈는가를 이야기하라. --제임스 링

@ 사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안다는 것과 크게 다르다. --찰스 케터링(美 실업인, 1876--1958)

@ 인내는 한 번 뛰는 장거리 경주가 아니라, 숱한 단거리 경주의 연속이다. --월터 엘리어트

@ 인생이란 더러 끔찍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매혹적이고 활기에 찬 경험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삶
을 철저하게 누렸다. 한쪽 귀에는 탄식소리가 들려 오더라도, 다른 쪽 귀에는 언제나 노랫소리가 들
렸다. --숀 오케이시(아일랜드 극작가, 1880--1964)

@ 한 사회의 자유는 그 사회의 웃음의 양과 정비례한다. --제로 모스텔(美 코메디언, 1915--1977)

@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배운다는 것. 돈이란 잃거나 도둑맞을 수가 있고 건강과 정력은 약해질
수가 있다. 그러나 머리 속에 넣어둔 것은 영원히 당신의 것. --루이 라무르(美 작가)

@ 이 세상에 친절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 --한 수인

@ 아무도 뒷걸음질을 해서 미래로 갈 수는 없다. --조셉 허거샤이머

@ 사람들은 자아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을 흔히 한다. 그러나 자아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스
스로 창조하는 것. --토마스 사스

@ 일인자가 된다는 것은 일인자의 자리를 지키는 일보다는 쉽다. --빌 브래들리(美 상원의원)

@ 눈을 보고 눈싸움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늙어간다는 증거. --두그 라슨

@ 유머란 깊이있는 관찰 결과를 다정하게 전달하는 방법. --리오 로스튼

@ 사랑이란 두 사람이 놀고 둘이 다 이기는 게임. --에바 가보(여배우)

@ 인내의 참된 비결은 참는 동안 다른 할 일을 찾는 데 있다. --[델 펜슬 퍼즐스 앤드 워드 게임스]에서

@ 실패의 99%는 항상 핑계를 대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조지 W.카버

@ 예의범절이란 마치 수학의 0과 같은 것.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는 것이지만 다른 것에 붙여지면 가
치를 크게 더해 주니까. --프레이어 스타크

@ 말수가 적을수록 남들이 더 귀를 기울이는 법. --애비게일 밴 뷰렌

@ 에티켓이란 졸리는데도 좌중에서 겉으로 나타내지 않는 것. --하이먼 버스튼

@ 사람들은 삶이란 작은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무언가 큰 것만을 성취해
보려고 한다. --프랭크 클라크

@ 민주주의는 투표가 아니라 공정한 개표로 가늠하는 것이다. --톰 스토파드(英 극작가)

@ 한가함이란 아무 것도 할 일이 없게 되었다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여가가 생겼다는 뜻
이다. --플로이드 델

@ 행복한 결혼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계약이다. --O.A.바티스타

@ 지식은 도서관에서 잠을 자고 있지만 지혜는 도처에서 눈을 크게 뜨고 조심스럽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조시 빌링스

@ 웃음소리는 울음소리보다 멀리 간다. --히브리 격언

@ 타고난 성격 탓으로 화를 자초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남까지 못살게 할 필요는 없는 법이다.
--루드야드 키플링(인도 태생의 英 작가)

@ 윙윙거리는 모기의 소리만큼 심술과 적의를 그토록 작은 부피에 응집시킨 것은 없다. --엘스페스 헉슬리

@ 도와달라는 말을 듣고 도와주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도움을 청하기 전에 미리 알아서 도와주는 것
은 더욱 좋은 일이다. --칼릴 지브란(레바논 시인)

@ 사랑하고 일하며, 때로는 쉬면서 별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인생, 그 인생에 감사하자.
--헨리 밴 다이크(美 교역자-작가)
“名 言 錄”(리더스다이제스트 1978.11 1983.2)


진실된 우정이란 느리게 자라나는 나무와 같다. ―조지 워싱턴

사람들은 당신의 말을 의심할지 모르나 당신의 행동은 믿을 것이다.
―L.C.

기회란 횃대에 앉는 일이라곤 없는 새[鳥]와 같은 것. ―C.M.

인내심 없는 인간은 기름 없는 등잔불과 같다. ―앙드레스 세고비아

가장 현명한 사람의 머리 속에도 어리석은 구석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의 결함이 남들한테 나타나면 견딜 수 없이 짜증스러운 법.
―네덜란드 격언

당신이 뭣으로 바쁜지 얘기해 주면 당신이 어떤 인물의 사람인지 나는 곧
알아맞힐 수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아무리 괴로운 시간이라 해도 한 시간은 60분을 넘지 않는다. ―모리스
맨덜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사람은 코미디언,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한 뒤에
웃게 만드는 사람은 유머리스트. ―조지 번즈

읽지 않고 덮어둔 책은 휴지 뭉치에 불과하다. ―중국 격언

우리로 하여금 12월에도 환한 장미꽃을 볼 수 있게 하려고 신은 우리에게
기억력을 주셨다. ―J.M.B.

환상이 없는 곳에 과학이 없고, 사실을 무시하면 예술이 성립되지
않는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산은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오르고 눈은 거기 쌓였기 때문에 치울 뿐.
―N.N.

교양이란 화를 내지 않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은 채 어떤
얘기라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로버트 프로스트(美 시인)

아는 게 많다고 모두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는 게 많으면 어떤
지도자를 따라야 할지 선택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M.D.

전혀 웃지 않는 사람과 잘 웃는 사람을 경계할 것. ―아놀드 H.그라소

우리의 최대의 영광은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것이다. ―골드 스미스

시간은 모든 것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을 막아주는 자연의 섭리. ―S.C.

사람은 꿈이 후회로 바뀔 때 비로소 늙는 법이다. ―존 배리모어

진실의 색은 단연 灰色. ―앙드레 지드

때로 아무 일도 아니할 자유가 없는 사람은 정말 자유를 모르는
사람이다. ―키케로

決定은 깨끗이 곧게 잘라지는 날카로운 칼이고, 未定은 이리 치고 저리
쳐도 자르질 못해서 날만 상하고만 무딘 칼이다. ―C.C.T.

칭찬이란 당신이 믿어본 적이 없는 당신에 관한 말을 남이 하는 것.
―F.F.W.

시장기를 가시게 하면 모두 다 좋은 음식. ―중국 속담

뉴스와 시시한 루머가 다른 점은 큰 소리로 말하는가 작은 소리로
말하는가의 차이일 뿐. ―F.P.J.

충고란 할 때는 말로 주고 싶고, 받을 때는 되로 받고 싶은 법. ―W.A.

민주주의란 지도자들이 어려운 일을 기차게 해낸다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시민들이 예사일을 기차게 잘 해낸다는 것으로서 판가름이 난다. ―존
가드너

추억은 번 돈을 한 잎 두 잎 세듯, 차근차근 소중히 간직하시도록. ―칼
샌드버그

성공은 수만 번의 실패를 감싸준다. ―조지 버나드 쇼

실수는 인간이 하는데, 그 탓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은 더욱 인간적.
―B.G.

형성할 때 매우 조심해야 되지만 바꿀 때는 더욱 조심해야 되는 것이
輿論.
―조쉬 빌림즈(美 유머리스트, 1818 1885)

실수없이 큰 발명을 한 사람은 없다. ―새뮤얼 스마일즈(스코틀랜드
전기작가, 1812 1904)

아버지 한 사람이 백명의 학교 스승보다 낫다. ―조지 허버트(英 시인,
1593 1633)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것이 분노. 노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졸작 중의 拙作人間,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 ―AP

명성이란 영웅적 행동이 풍기는 芳香. ―소크라테스

대화를 잘하는 으뜸가는 비결은 다음 어떤 말이 나올지 아무도 알아
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 ―M.B.

어떤 사람과 유산을 나눠 가질 때까지는 그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요한 카스파르 라바테르(스위스시인, 1741 1801)

다른 사람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행은, 자기의 富를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의 富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벤저민
리즈레일리(英 정치가, 1804 1881)

나는 독서를 못하는 왕이 되기보다는 비록 초라한 골방이지만 책이
가득찬 방이 있는 가난뱅이가 되겠다. ―머코리

사랑할 시간도 충분치 않은데, 증오할 시간이 어디 있으랴! ―B.C.

성패는 시기가 좌우한다. 시기를 맞추는 것은 방법을 아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A.H.G.

가진 것이 망치밖에 없을 땐 세상의 모든 문제가 못대가리로 보이게
마련. ―에이브라함 마즐로

不道德의 근원은 나만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버릇. ―제인 아담즈

傳統이란 불의의 사태를 예방하는 집단적인 노력. ―M. McL.

함께 웃은 사람은 잊혀져도 같이 운 사람의 이름은 못 잊는 법. ―아랍
속담

낮에는 너무 바빠 근심이 없고, 밤에는 너무 졸려 걱정할 겨를이 없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 ―L.A.

사다리란 그 위에서 편히 쉬라고 만든 게 아니라, 한쪽 발이 버틸 동안
다른쪽 발로 더 높이 올라가라고 만든 발판. ―토마스 한슬리

탄식 ― 젊어서 그걸 진작 알았던들
늙어서 그걸 좀 할 수 있었던들 ―H.E.

따분하기는 매한가지야. 하기 싫은 일들을 노상 하고 있거나, 하고 싶은
일들을 아예 못하거나
―에릭 호퍼

뭘 하고 싶은지 잘은 모르겠는데 가슴이 아파 오고, 그래도 좋은
것은―봄의 열병. ―마크 트웨인

상처 입은 굴이 진주를 만든다. ―랠프 월도 에머슨

급진주의자란 두 다리가 모두 허공에 둥둥 뜬 사람. ―프랭클린
D.루즈벨트

행운아란 있는 법. 그러나 그들은 요행을 바라지 않고 힘껏 뛴 사람들.
―바브 잉엄

자연의 순환은 단순한 반복현상이 아니다. 극장에서의 앙코르 와도 같이
열렬한 재청에 의한 것이다. ―G.K.체스터튼(英 언론인 작가, 1876 1936)

다이어먼드도 숯이나 석탄 같은 탄소의 응결체. 다른 점이 있다면 서로
다른 압력 아래 이루어졌다는 것일 뿐. ―「클래식 크로스워드 퍼즐」

매순간을 잘 감시하라. 이는 제가 가져온 것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살금살금 빠져 달아나는 도둑과 같은 것. ―존 업다이크(美 작가, 1932 )

나는 절대로 미래를 생각하는 일이 없다. 미래는 너무도 빨리 닥쳐오기
때문에. ―앨버트 아인슈타인

사노라면 항상 무언가 배우게 마련. 그 대부분은 내가 얼마나 잘못 알고
있었나를 깨우치는 것. ―빌 본

태어난다는 것은 신의 섭리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일 뿐. ―헨리 워드 비처(美 목사, 1813
1887)

두려움은 혼자 간직하되 용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라.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온 세상을 두루 헤매도 스스로의 마음 속에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이 아니면 그것을 찾을 수 없는 법. ―랠프 월도
에머슨

인생은 단 한 번뿐. 그러나 올바르게 일하면 한 번이라도 족한 것.
―F.A.

한 사람의 志願者는 억지로 끌려온 열 사람보다 낫다. ―아프리카 속담

역사는 되풀이된다. 이는 역사가 잘못된 이유의 하나. ―C.D.

책이란 우리 마음 속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로 쓰여지는 것.
―프란츠 카프카

잘못을 정당화하다 보면 잘못이 갑절로 늘어난다. ―프랑스 속담

꾸지람 뒤의 격려는 소나기 뒤에 나오는 태양 같은 것.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인간이 창조하는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없다. 오로지 자연을 표절할 뿐.
―J.B.

대화란 의견이 다르면서도 토론이 계속될 수 있음을 뜻한다. ―D.M.

철학자란 자기가 일찍이 겪지 못한 어려운 문제를 안고 고민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이래라 저래라 충고하는 사람. ―W.R.L.

우연의 일치란, 이름을 밝히기 싫어하는 신이 가져다 준 하나의 작은
기적. ―H.Q.

著者를 고를 때는 친구 고르듯 신중히. ―W.D.

겁이 앞서다 보면 논리는 후퇴하기 마련. ―L.F.

사람들은 직관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규칙을 만든다. ―K.A.F.

거짓말을 해서 속이지 않을 수 없던 그런 사람을 우리는 미워한다.
―빅토르 위고

무식이 환경을 크게 오염시킨다. ―F.F.

검열이란 그 사회의 자신부족을 반영한다. ―포터 스튜어트(P.S.)(美
법관)

약속은 가장 늦게 하는 사람이 가장 잘 지킨다. ―장 자크 루소

말하는 권리는 자유의 시작일진 모르지만, 그 권리를 소중하게 만들려면
반드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월터 리프먼

인간의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압도적 다수는
친절 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케네스 클라크卿
모든 일에 인내심을 가지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St. F.S.

매사를 그리고 모든 사람을 지겨워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지겨운
존재다. ―F.T.

어떤 것을 덮어놓고 希求하기에 앞서, 이미 그것을 획득한 사람의 행복을
주의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L.R.

누구나 화낼 줄은 안다. 그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꼭 화를 내야 할
올바른 대상에게, 올바른 정도껏, 올바른 때에, 올바른 목적을 위해,
올바른 방법으로 화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내를 보고 대양이 존재함을 믿는 것, 그것이 신념이다. ―W.A.W.

나 를 잃으면 나 를 알 수 없다. ―H.D.T.

모든 것은 더이상 단순화할 수 없을 때까지 단순화해야 한다. ―앨버트
아인슈타인

변명을 늘어놓지 않고도 저녁초대를 정중히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자유인이다. ―J.R.

아무도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한다면, 모든 사람이 읽는 책을 읽어라.
그러나 그들보다 딱 1년 뒤에.
―랠프 월도 에머슨
남의 발을 밟고 서지 않은 자만이 굳건히 설 수 있다. ―F.P.J.

생존은 벌어들임으로써 가능하나, 삶은 베풂으로써 가능하다. ―H.I.M.

진보란 만족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법이 없다. ―F.T.

역경은 원칙을 시험하는 기회. 역경없이 자신이 정직한지 아닌지 알 수
없다. ―헨리 필딩(英 소설가)

사색없는 독서는 소화되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에드먼드 버크

어떻게 하는지 아는 사람은 쉽게 일자리를 얻지만, 왜 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을 부리는 윗사람이 된다. ―C.W.

자기 의견을 바꿀 줄 모르는 사람은 괸 물과 같다. 마음 속에 독사만이
우글거리는 사람.
―윌리엄 블레이크(英 시인)

올 여름에도 미국민의 ⅓은 초라한 집에서 옷도 제대로 못입고 밥도
제대로 못먹으며 살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을 휴가라고 부를 것이다.
―J.S.

소문이 퍼지지 않게 하려는 것은 울리는 종을 멈추려는 것과 같다.
―S.A.

사랑할 만한 것은 사랑하고 미워해야 할 것은 미워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인간. 그리고 그 차이를 분간하는 데 쓰는 것은 두뇌. ―로버트
프로스트(美 시인)

치료되기를 바라는 것도 바로 치료의 일부. ―세네카

惡法은 최악의 폭군. ―E.B.

폭력은 무능한 자들의 마지막 피난처. ―아이작 아시모프(美
공상과학소설가)

태풍이나 폭풍우는 피해 갈 수 있어도 서두름이란 악마를 앞서 갈 수는
없다. ―J.B.

깨끗한 양심처럼 더없이 폭신한 베개는 이 세상에 없다. ―프랑스 속담

자기 자신에 대해 웃을 수 있는 사람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다. 매일
웃으면서 살테니.
―하비브 부르기바(튀니지 외교관)

사람이 어릴 적에 보여 준 재주대로 자란다면 이 세상에 천재가 못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어린이가 어두움을 두려워하는 것은 용서하기 쉬우나, 어른이 광명을
두려워 한다면 그것은 인생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플라톤

인류의 나이가 몇 살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지만, 인류가 철이 들
나이는 되었으리라는 것쯤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가이드워드

남에게 손가락질할 때마다 세 개의 손가락은 항상 자기 자신을 가리키고
있음을 잊지 말 것. ―무명씨

하나의 진실을 말살하려고 들 때마다 두 개의 진실이 생겨난다. ―B.C.

나의 취미는 독서, 음악감상, 그리고 침묵. ―에디스 시트웰(英 시인)

반대하는 것이 신성한 것은 아니다. 반대할 권리가 신성한 것이다.
―T.아놀드

회의주의자란 벽에 써놓은 뚜렷한 글씨를 보고도 가짜요, 僞書라고
우기는 사람. ―M.B.

심장이 오늘 깨달은 것, 머리는 내일쯤 가서야 이해한다. ―제임스
스티븐슨

아끼는 사람은 가난해 보이면서 알부자가 되고 헤픈 사람은 부자로
보이면서 가난해지는 사람. ―N.W.

나는 통계숫자로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다.―진실만 빼놓고는. ―G.C.

위인과 만나거든 너의 좋은 인상을 남기도록 하되, 소인과 만나거든 그
사람의 좋은 인상만을 남기도록 하라. ―사뮤엘 테일러 콜리지

그 사람 하나만 보고는 사람 됨됨이를 모르는 법. 그 사람의 친구들을
살필 것. ―H.E.F.

친구와의 견해차이는 참으면서도 낯선 사람과의 견해차이는 異端이요
陰謀로 몰아붙이는 것이 인간.
―B.애트킨슨
본능이란 마음의 코. ―제라당 부인

인기가 없어도 잡아가지 않는 사회. 나는 자유사회를 그렇게 정의한다.
―애들라이 스티븐슨

불로소득은 외상, 언젠가는 청구서가 날아오기 마련. ―F.P.J.

누구나 다 즐겁게 해주려면 결국 아무도 즐겁게 해줄 수 없다. ―이솝

친구를 고르는 데는 천천히, 친구를 바꾸는 데는 더욱더 천천히.
―벤저민 프랭클린

목마르기 전에 미리 우물을 파 두어라. ―중국 속담

과거 없는 聖人, 미래 없는 죄인은 없다. ―고대 페르샤 속담

새에겐 둥지가 있고, 거미에겐 거미줄이 있듯, 사람에겐 우정이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英 시인)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을 빼놓곤 이 나라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세금이 매겨진다. ―마크 트웨인

남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자기가 앞으로 지나가야 할 다리를 파괴하는
사람. ―G.H.

철학이란 정장을 하고 나온 상식. ―O.B.

누구나 거의 다 역경을 견디어 낼 수는 있지만, 한 인간의 됨됨이를 정말
시험해 보려거든 그에게 권력을 줘 보라. ―에이브러햄 링컨

가장 아름다운 세 가지 광경: 꽃이 만발한 감자밭, 순풍을 받고 달리는
범선, 아기를 낳고 난 뒤의 여인. ―에이레 속담

비평가들의 말에 신경을 쓰지 마라. 비평가를 찬양하는 동상이 세워진
적은 없다. ―장 시벨리우스

시간이란 곡마단 같은 것. 늘 보따리를 싸서 다른 데로 옮겨 가버리니까.
―B.H.

고함을 질러 길들인 말이 속삭이는 소리에 복종할 것으로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 ―F.P.

당신 자신이 되어라. 그러면 당신보다 더 나은 적격자가 어디 있겠는가?
―F.G.

나의 관심은 주로 미래에 있다. 여생을 거기서 보낼 것이니. ―C.K.

어른은 누구나 가르칠 아이가 필요하다. 그래야 어른도 배우게 된다.
―F.C.

순간은 눈 깜짝할 사이지만 기억은 영원하다. ―B.M.

마음의 평화란 생의 갈등이 없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갈등을
이겨내는 능력에서 온다. ―무명씨

名望을 잃으면 숨쉬고 있지만 죽은 사람. ―S.S.

우리들 대부분은 초라한 옷차림과 엉터리 가구들을 부끄럽게 여기지만,
그보다는 초라한 생각과 엉터리 철학을 부끄럽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앨버트 아인슈타인

문제에 관해서 잘 알지 못할 때 해결책을 늘어놓기란 참 쉬운 법. ―M.F.

노력하지 않아도 그대로 굴러오는 것은 나이뿐. ―G.P.

말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얘기를 음악이 들려 준다. ―H.C.

비통에 젖어 본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남을 동정할 수 있다. ―J.G.

사람들은 비밀을 알려주기는 꺼리지만, 교환하자면 선뜻 응한다. ―「선
샤인」誌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도 그걸 깨지지 않게 지키는 것은 인간의 의무.
―J.G.

기억이란 우리 모두가 지니고 다니는 일기장. ―M.H.

젊은이들은 밤중에 태어나서 이튿날 아침 해돋이를 처음 보는 갓난애들
같기 때문에, 어제란 으례 없었던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서머셋 모옴

지옥에서 가장 끔찍한 자리는 인생의 중대한 문제에 중립을 취했던
사람들의 차지. ―빌리 그라함

신문이란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도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약을 올려 그 사태에 관해 어떤 행동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어야
한다. ―마크 트웨인

나는 내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그보다는 그 분의 손자가
어떤 사람이 될지에 더 마음을 쓴다. ―에이브러햄 링컨

민주주의는 사랑처럼 외면과 무관심을 제외한 어떠한 공격에도 살아 남을
수 있다. ―P.S.

병원침대란 정지해 있는데도 요금미터기가 마구 돌아가는 택시와 같은
것. ―G.M.

권력과 인내가 겨룰 때에는 인내 쪽에 내기 돈을 걸어라. ―W.B.P.

묻는 걸 겁내는 사람은 배우는 걸 부끄러이 여기는 사람. ―덴마크 속담

자유를 사랑함은 남을 사랑하는 것. 권력을 사랑함은 제 자신을 사랑하는
것. ―윌리엄 해즐리트

바쁘게 움직이는 정신은 굴러가는 눈덩이같이 자꾸 커진다. ―E.G.

위협해서 나쁜 짓을 막는 것보다는 구슬러서 착한 일을 시키기가 더 쉬운
법. ―R.S.S.

가진 것을 깡그리 빼앗아 버렸을 때는, 그 사람을 더 이상 다스릴 수가
없다. 그는 자유민이기 때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우리는 자유롭기 위해서 법에 묶여 사는 것이다. ―키케로

우리가 숨길 수 없는 두 가지 사실: 술에 취한 것과 사랑에 빠진 것.
―안티파네스(희랍 극작가, 前 4 5세기)

성장을 위한 성장은 암세포의 논리에 불과하다. ―H.A.

남자들은 어리석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適時에 바보인 척할 줄
아는 여자를 좋아하는 것. 필요한 때 바보인 척할 줄 아는 것은 슬기로운
여자의 기본적 자질. ―폴 엘드리지(美 작가 교육자)

어린애가 하는 짓을 하기엔 너무 크고 어른들이 하는 일을 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가 10대. 10대들이 아무도 하지 않는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은 이
때문. ―「리드」誌

권태는 도덕가의 가장 큰 문제거리. 인류가 저지르는 범죄의 적어도 절반
이상이 권태에 대한 두려움에서 빚어지기 때문. ―버트런드 러셀

세상에는 놀라는 사람도 많지만 반란을 만난 혁명가보다 더 놀라는
사람은 없다. ―P.G.

남에게 돈을 주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정신건강을 진단할 수 있다. 후한
사람 치고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 ―칼 메닝어 박사(美
정신의학자, 1893 )

과거의 연극은 인생이 송두리째 비쳐진 거울이지만, 오늘의 연극은
인생을 들여다보는 열쇠구멍. ―A.H.G.

미래란 다른 문을 통해 돌아오는 과거. ―A.H.G.

훌륭한 여행자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사람. 완벽한 여행자는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는 사람. ―L.Y.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표현할 권리가 있다. 물론 가끔
미치광이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미치광이 같은
소리를 듣고도 그것을 분간할 줄 모른다면 똑같이 미치광이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해리 S.트루먼

모든 사람이 남보다 잘하는 일 한 가지.―자기 글씨를 알아보는 것.
―J.A.

자유는 정신을 숨쉬게 해주는 산소. ―모세 다얀

꿈을 현실로 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빨리 그 꿈에서 깨어나는 것.
―J.M.P.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사람을 믿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알지
못하는 사람은 우리를 기만한 일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뮤엘
존슨

내 인생은 나를 울화통 터지게 만드는 어떤 바보의 손에 달려 있다.
―J.H.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찾는 가장 쉬운 길은, 지금 당장
그 바보상자(TV)를 끄는 것. ―J.H.S.

자신이 존재한다는 바로 그 사실에 한번도 놀라보지 못한 사람은 가장
위대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 사람. ―J.F.

겸손한 사람에 오만하지 말고, 오만한 자에게 겸손하지 말라. ―제퍼슨
데이비스(19세기 美 정치가)

신사로 태어나는 것은 우연이지만 신사로 죽는 것은 노력의 결정. ―B.G.

강을 다 건널 때까진 절대 악어를 집적대지 말라. ―C.H.

모범이란 남에게 영향을 주는 주된 일이 아니라, 유일한 일. ―알베르트
슈바이처

분노할 때는 천천히. 시간은 충분하니까. ―랠프 월도 에머슨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묶어 두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존 A.셰드(美 교육자)

자유를 지지한다면서도 선동을 두려워하는 자는, 천둥과 번개 없이 비가
내려 주기를 바라는 사람.
―프레드릭 더글러스(18세기 美 노예폐지운동가)

거북은 아무도 몰래 수천 개의 알을 낳지만 암탉이 알을 낳을 때면 온
동네가 다 안다. ―말레이지아 속담

더 많이 알면 더 많이 용서하는 법. ―캐서린 大帝

남을 처벌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을 항상 경계할 것. ―프리드리히
니체

개인이나 국가 모두에 가장 두려운 일은 권력의 상실이 아니고 감각의
상실이다. ―N.C.

날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기어 가라는 말에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헬렌 켈러

약속을 잘하는 사람은 잊기도 잘하는 법. ―토마스 풀러(英 목사)

전문가보다 더 고약한 사람은 제가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 ―A.A.C.

울지 않는 지혜, 웃지 않는 철학, 어린이들 앞에 고개 숙이지 않는
위대함을 멀리하게 해주소서. ―K.G.

교육의 비결은 학생들을 존중하는 데 있지요. ―랠프 월도 에머슨

안정이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메테르니히(19세기
오스트리아 정치가)

명예롭지 못한 권력 다음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유머 없는
권력. ―E.S.

미국의 위대성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개명되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과오를 시정할 능력을 가졌다는 데 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19세기 프랑스 정치가)

논쟁에서 무식한 사람한테 이기다니 어림없는 말씀. ―W.G.M.

임금을 주는 것은 고용주가 아니다. 고용주는 단지 돈을 관리할 따름이고
임금은 노동자들이 만든 생산품에서 나온다. ―헨리 포드

원칙보다 특권을 더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곧 둘 다 잃게 된다.
―드와이트 D.아이젠하워

젊은이들은 타산적일 만큼 많이 알지 못한다. 바로 그러니까 젊은 세대는
노상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며 그것을 이룩한다. ―펄 벅

컴퓨터는 인간이 어림잡아 상상하는 수고를 많이 덜어 주었다. 하지만
비키니수영복도 꼭같은 공헌을 했다. ―「내셔널 업저버」誌

나는 현명한 외면보다는 열정적인 실책을 더 좋아한다. ―아나톨 프랑스

賞에 관해 누구나 알아둬야 할 한 가지 일은, 모차르트가 생전에 아무런
상도 타 본 적이 없다는 사실. ―H.M.

우리를 망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 만약 내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이 장님이라면, 나는 구태여 고래등 같은 집도 번쩍이는 가구도 바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

젊은이들이 평생을 두고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준비해 주는 데 교육의
목적이 있다. ―L.O.

같은 책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맺은 우정처럼 빠르게 뭉치는 우정은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것. ―어빙 스턴

우리는 적어도 매일 한 곡의 노래를 듣고 한 편의 시를 읽고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해야 하며 가능하면 몇 마디 도리에 맞는 말을 해야만 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거짓말을 하기는 쉽다. 그러나 단 한번만 거짓말을 하기는 어렵다.
―「텍사스 뉴스」誌

어떤 사람들은 휴가여행을 떠날 때 온갖 물건들을 다 갖고 가면서도
예절을 빼놓고 간다.
―「타임스 리퍼블릭」誌

연설은 연애와 같다. 어떤 바보라도 시작할 수 있으나 끝마무리를 짓는
데는 꽤 기술이 필요하니까.
―맨로크프트卿

진정으로 매력적인 여성은 젊은이에게 원숙을, 늙은이에게 젊음을 느끼게
하고, 중년남자를 완전히 자신감 있게 만들어 주는 여자. ―B.T.

혁명이란 낡은 사회가 새 사회를 잉태한 결과. ―H.F.S.

완벽한 아내란 완벽한 남편을 기대하지 않는 아내. ―무명씨

통계는 正義를 대신할 수 없다. ―H.C.

내일이란 오늘의 다른 이름일 뿐. ―윌리엄 포크너

복수를 하려고 벼르는 사람은 입는 상처의 치료를 않는 법. ―프란시스
베이컨

수천 그루의 나무로 울창해진 숲도 한 톨의 도토리로부터 비롯된 것.
―랠프 월도 에머슨

친절이란 귀먹은 사람이 들을 수 있고 눈먼 사람이 볼 수 있는 언어.
―마크 트웨인

사람에겐 친구와 고독이 아울러 필요하다. 여름과 겨울, 낮과 밤, 운동과
휴식이 필요하듯. ―P.G.

남몰래 하는 선행은 땅 속을 흐르며 대지를 푸르게 가꾸어 주는 지하수
줄기와 같은 것. ―토머스 칼라일

민주주의는 감정이 아니라 선견지명이 낳은 제도. 긴 안목으로 설계하지
않은 체제는 얼마 못 가 무너질 것이다. ―C.Y.

贖罪羊을 찾는 것은 사냥 중에서 가장 쉬운 사냥. ―드와이트
D.아이젠하워

침묵은 대화의 안전지대. ―A.H.G.

이 세계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자손들한테 빌린 것임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자연보호주의자다. ―「오더븐」誌

모든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다같이 진실에
귀기울이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새뮤얼 존슨

진심으로 기도를 올려 무언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랠프 월도
에머슨

성공하는 사람이란 남들이 자기에게 던지는 벽돌로 든든한 기초를
쌓아가는 사람. ―D.B.

친구에게 돈을 꾸려거든 먼저 친구와 돈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필요한지
결정할 것. ―A.H.H.

우리는 두려움의 홍수에 버티기 위해서 끊임없이 용기의 둑을 쌓아야
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살아간다는 것은 변화함을 뜻하고, 변화한다는 것은 성숙함을 뜻하고,
성숙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자기를 창조해 간다는 뜻. ―H.B.

상식은 본능이요, 그것이 많은 사람은 천재. ―조지 버나드 쇼

떡갈나무가 넘어질 때는 온 숲 속에 그 넘어지는 소리가 메아리치지만
수많은 도토리들은 미풍에 소리없이 떨어져 새로운 씨앗이 된다. ―토머스
칼라일

조숙한 아이보다 더 지겨운 존재는 그 아이의 어머니. ―J.W.M.

아픔 없이 자기 자신을 다시 만들 수는 없는 법. 제 자신이 곧
대리석이자 그걸 쪼는 조각가가 돼야 하기 때문. ―A.C.

세상은 결과만을 알고 싶어 한다. 남에게 産苦를 말하지 말고 거기서
얻은 아기만 보여줘라. ―A.H.G.

때로 푹 쉬도록 하라. 한 해 놀린 밭에서 풍성한 수확이 나는 법.
―오비드(고대 로마 시인)

공직을 맡은 자는 스스로를 공공재산으로 생각해야 한다. ―토머스
제퍼슨

먹는 것에 대한 사랑보다 더 거짓 없는 사랑은 없다. ―조지 버나드 쇼

변혁에 저항하는 보수주의자도 변혁을 주창하는 진보주의자만큼 가치
있다. ―W.D.

오래오래 결실 있는 삶을 살아가는 한 가지 비결은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모든 사람의 모든 일을 용서해 주는 것. ―A.L.

詩란 즐거움으로 시작해서 지혜로 끝나는 것. ―로버트 프로스트(美
시인)

자기 이웃에서 자행되는 탄압과 차별을 외면하면서 세계의 다른 쪽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일에 더 분노하기 쉬운 것이 인간. ―칼 T.로완

노동은 사람에게서 세 가지 큰 악―권태와 非行과 궁핍―을 덜어 준다.
―볼테르

영웅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용감한 것이 아니고 다만 5분 동안만 더
용감할 뿐이다. ―랠프 월도 에머슨

神은 움직씨[動詞]이지 이름씨[名詞]가 아니다. ―R.B.F.

읽지도 않은 사람들이 그것을 읽은 체할 때 그 책은 성공한 것.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면, 불만은 진보의 아버지. ―데이비드 록펠러

모든 사람이 영웅이 될 수는 없다. 영웅이 지나갈 때 박수쳐 줄 사람도
있어야 하니까. ―W.R.

무엇을 증명하려면 논리가 필요하지만 무언가를 발견하자면 직관이
필요한 것. ―H.P.

사람들은 자기 일이나 자기네 정치는 하찮게 여기지만 노름판은 결코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 ―조지 버나드 쇼

칭찬은 샴페인과 같다. 거품이 꺼지지 않았을 때 갖다 바쳐야 된다.
―R.R.

건강을 지닌 사람은 희망을 가지고 있지만 희망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아라비아 속담

사람들은 모두 훌륭한 국회의원을 뽑고 싶다고 하면서도 결국 뛰어난
政商輩에게 표를 찍고 만다. ―O.P.

어떤 사람에게 이미 마음을 열어줬으면 그 사람에게 입을 다물고 있지
말라. ―찰스 디킨스

질투를 느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믿지 말 것. 결코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니까. ―G.B.

충고란 우리가 이미 대답을 알면서도 대답을 몰랐으면 싶을 때 요청하는
것. ―E.M.J.

명예롭지 못한 성공은 양념을 하지 않은 요리와 같은 것. 그건 배고픔을
면하게 해주지만 맛은 없을 것이다. ―조 파테어노(美 풋볼코치)

외교관계는 인간관계와 같이 끝이 없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니까. ―제임스 레스턴(美 시사평론가)

독신으로 지내는 것보다 더 나쁜 게 있다. 독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 ―B.S.

칭찬하기를 포기하면 큰 잘못. 매력적인 것을 매력있다고 말하기를
포기할 때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 ―오스카
와일드(英 시인)

자기는 어떤 활동 분야에서나 자동적으로 대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바보인 사람은 없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은 자기가
결혼생활에 자동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S.H.

일들이 잘못될 경우 사람들은 대통령을 비난하기를 좋아한다. 그건
대통령이 치러야 하는 고역. ―존 F.케네디

한 여자의 이상적인 남성으로 남아 있으려면 독신으로 죽는 길밖에 없다.
―P.P.

우리는 구세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며 첫 반평생을 보내고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며 나머지 반평생을 보낸다. ―E.W.

깊이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늙지 않는 법. 고령으로 죽더라도 젊음을
간직한 채 죽는다. ―A.W.P

기적은 가끔 일어난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나게 하자면 피눈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C.W.

따분한 인간이 되는 비결은 모든 것을 하나에서 열까지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 ―볼테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가장 좋은 도구는 우리의 귀. 즉 상대편 말에 우선
귀를 기울여 듣는 것.
―딘 러스크(前 美국무장관)

공산주의를 믿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라. 그 사람은 자기를 믿지 않는 그
무엇을 믿고 있으니까. ―F.M.

무엇이라도 좋으니 당장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 그것은 많은 엉터리
조치를 낳는 어머니. ―대니얼 웹스터

권태의 치료제는 호기심이지만 호기심을 고치는 약은 아무 것도 없다.
―M.F.A.

가장 좋은 선물은 모두가 서로를 감싸주는 행복한 가정. ―M.M.

황금시절을 헛되게 보내지 말라고들 경고하지만, 어떤 황금시절은 헛되이
지나갔기 때문에 황금시절이라 한다. ―J.R.

영웅들이 없는 민족은 장래가 없는 민족. ―M.M.

일어서서 자기 주장을 펴는 데도, 앉아서 귀기울여 듣는 데도 꼭같이
용기가 필요한 법. ―C.H.V.

재능 가운데 가장 소중한 재능은 한 마디면 될 때 두 마디 말하지 않는
재주. ―토머스 제퍼슨

어느 정도의 반대를 받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연이 바람을
받아야 높이 뜨는 것처럼. ―J.N.

일을 배우는 길은 그 일을 하는 것. ―에스토니아 속담

요리법이 발달되고 나서 사람들은 필요한 것보다 두 배나 더 많은 음식을
먹는다. ―벤저민 프랭클린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상대방이 스스로 알도록 하라. 그러면 그는 당신을
두고두고 잊지 않을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誌

醫術이란 自然이 병을 고쳐 주는 동안 환자가 기분 좋도록 해주는 기술.
―볼테르

아버지가 자녀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아이들을
낳아 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 ―J.H.

그 사람이 함께 어울리기를 피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J.C.

누구나 바보 같은 소리를 할 수 있다. 불행한 것은 그런 말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몽테뉴

富의 재분배보다는 기회의 재분배가 더 중요하다. ―A.H.V.

발견을 위한 참다운 항해는 새 땅을 찾아내는 것보다도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데 의의가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프랑스 작가)
위트는 대화의 양념이지 主食은 아니다. ―윌리엄 해즐리트(英 수필가)

유행은 빛이 바래지지만 멋은 영원한 것. ―이브 생 로랭(프랑스
디자이너)

오래 묵을 수록 좋은 것 네 가지: 오래 말린 땔나무, 오래 묵어 농익은
포도주, 믿을 수 있는 옛친구, 읽을 만한 원로작가의 글. ―프란시스
베이컨(英 작가)

인생에 가장 성공적인 사람은 대체로 가장 훌륭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 ―벤저민 리즈레일리

가장 위대한 에너지源 가운데 하나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긍지.
―스포크 박사(美 소아과의사)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은 공것을 주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관찰하는 것. ―A.L.

친구를 비판하는 것이 마음 아플 때는 비판해도 좋다. 그러나 거기서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느낄 때는 입을 다무는 것이 상책. ―J.R.

나는 총칼을 든 10만 대군보다 한 장의 신문을 더 두려워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공손하기 때문에 잃는 단 한 가지는 만원 버스의 좌석. ―에이레 속담

역사란 피할 수 있었던 일들의 集大成. ―콘라드 아데나워

사춘기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바로 열병 같은 것. ―R.A.

강요된 것이 아닌 윤리가 진정한 윤리. ―C.S.

사람들은 한 잔 술에 귀여운 양이 되고, 두 잔에 질주하는 얼룩말이
되고, 석 잔에 포효하는 사자가 되고, 넉 잔에 어리석은 나귀로
되돌아간다. ―터키 속담

전쟁에서 상처받지 않는 군인은 없는 법. ―J.N.

논란이 분분한 문제에 관해 역성들지 않고 사리 바르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유머감각이 풍부한 사람. ―L.F.

어떤 비밀을 남몰래 지키고 있을 때 그 비밀은 우리 머슴처럼
고분고분하지만, 일단 그것을 발설하고 나면 상전이 되어 우리를 지배하려
드는 법. ―T.P.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 주는 것. ―아나톨 프랑스

눈여겨 볼 때와 눈감아 줄 때를 아는 아내가 良妻. ―A.H.

겁쟁이도 고난을 이겨 낼 수 있지만 용기 있는 사람만이 불안을 이겨 낼
수 있다. ―M.M.

어떤 민족을 이해하고 싶거든 그들의 민속춤을 보고 민요를 들어라. 결코
그들의 정치인들이 떠드는 소리에 귀기울이지 말라. ―아그네스 데 밀(美
무용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마치 2루로 도루하면서 한
발을 1루에 둘 수는 없듯이. ―F.B.W.

우울증을 고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몸을 잊고 남의 몸에 관심을
갖는 것. ―G.A.

자존심은 수양의 결실. 사람의 위엄은 자기 자신에게 노 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성장한다. ―A.J.H.

아이들을 너무 행복하게 해주어 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지 말라.
행복이야말로 모든 건전한 사람이 성장하는 분위기이다. ―토머스
브레이(英 목사)

가장 위대한 기도는 인내. ―석가모니

섬세하고 친절한 마음씨, 섬세하지도 않고 친절하지도 않은 혀, 이 두
가지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배필. ―L.P.S.

우리 시대의 그 숱한 야만적 작태는 그것을 놀랍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더욱 놀라운 일이다. ―M.M.

利己主義는 인간의 천성이요, 無私는 후천적 교양. ―J.G.

긴 논쟁은 쌍방이 다 옳지 않다는 증거. ―볼테르

궂은 날씨는 창 안에서 볼 때 더 우울해 보인다. ―J.K.

전통이란 한 민족의 즐거운 추억. ―J.F.C.

고향이란 예전에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는 듯.
―W.D.T.

나무를 심는 사람은 자기 이외에 남들도 사랑하는 사람. ―영국 속담

독서가들은 책을 읽고서 기억하는 부류와 책을 읽고 잊어버리는 부류로
나눌 수 있다. ―W.L.P.

스포츠팬들이 이름없는 선수에게 야유하는 법은 없다. ―R.J.

음악은 감정의 速記法. ―레프 톨스토이

돈이 많고 건강하면서도 은퇴하는 것은 멋진 일. 그러나 돈이 많고
건강하면서 일을 계속하는 것은 더욱 멋진 일. ―B.V.

저 좋은 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말을 듣게 된다.
―L.L.L.

당신 자신의 부도덕성과 싸우고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라. 그리고 새해를
맞을 때마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라. ―벤저민 프랭클린

자녀에게 관심깊은 부모가 있고 집에 읽을 만한 책이 많은 아이는 가엾은
아이가 아니다. ―S.L.

미리 계획을 세워라―노아가 方舟를 모을 때는 비가 오지 않았다.
―G.F.C.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는 모두 사회에 기여한다. 낙관론자는 비행기를
만들고 비관론자는 낙하산을 만들어 내니까. ―G.S.

증오는 질질 끌면서 하는 자살과 같은 것. ―D.V.S.

과학은 아무리 발달해도 지혜가 아니고 상식이다. 지혜란 지식과
판단력이 조화된 것. ―R.C.

현실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적을 믿어야 한다. ―데이비드 벤구리온

하느님은 우리가 일할 때는 우리를 존중해 주고 우리가 노래할 때는
우리를 사랑한다.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훌륭한 모범은 거만한 법. 그 거만한 모범을 따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별로 없다. ―마크 트웨인

인내란 참을 수 없는 것을 숨기는 기술. ―F.P.J.

시간은 우리 각자가 가진 고유의 재산이요, 유일한 재산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뿐이다. 결코
그 재산을 남이 우리 대신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칼 샌드버그

칭찬하면서도 부러워하지 않고, 뒤좇지만 모방하지 않고, 찬양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지도자로 앞장서지만 남을 속이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에겐 축복이 내릴지어다. ―W.A.W.

아담이 외로울 때 하느님은 그를 위해 열 명의 친구를 만들어 주지 않고
한 아내를 만들어 주었다. ―C.V.

인간은 완전하게 될 순 없으나 점점 나아질 수는 있다. ―E.S.

환경오염문제에 대한 회의를 여는 것은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진 껌
포장지를 줍기보다 더 쉬운 일. ―B.V.

행복이란 손 닿는 데 있는 꽃들로 꽃다발을 만드는 솜씨. ―B.G.

이웃 없이 지낼 만큼 돈 많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덴마크 속담

손해 본 일은 모래 위에 새겨 두고, 은혜 입은 일은 대리석 위에 새겨
두라. ―벤저민 프랭클린

문명이란 상황이 아니라 움직임이고, 항구가 아니라 항해이다. ―아놀드
토인비

진정으로 어떤 논쟁을 매듭짓고 싶으면 당신 말이 옳은 것 같군요 라고
말하도록 노력할 것. ―F.F.W.

정의를 지향하는 인간의 자질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지만, 불의로
기울기 쉬운 인간의 경향은 민주주의를 필수불가결하게 한다. ―R.N.

능력이 적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가장 큰 잘못.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칼 세이건

창조적인 소수가 이끌어 주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는 존속할 수 없다.
―H.F.S.

아이를 성공적으로 다루는 비결은 그 부모가 되지 않는 것. ―M.L.

진정한 성공은 성공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P.S.

남들이 당신 칭찬을 하게 하라. 당신이 제 자랑을 하는 것보다 두 배나
널리 퍼질 테니까. ―W.R.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아이스크림을 숟갈에 듬뿍 뜨다 떨어뜨렸을
때 실망하긴 마찬가지. ―J.F.

결혼하기는 쉽지만 결혼생활을 계속하기는 조금 어렵다. 평생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다는 것은 단연 최고의 예술에 속한다. ―R.F.

서로 나눈 기쁨은 두 배나 더 기쁘고 서로 나눈 슬픔은 절반밖에 슬프지
않다. ―스웨덴 속담

현명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의문을 품고 어리석은 자는 남들만
의심한다. ―H.A.

조용한 군중들 편에 서면 십중팔구 옳은 쪽에 끼게 된다. ―N.W.

어떤 사람이든 당신이 선량한 사람이라고 해주면, 실제로는 그렇게
선량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앞으로는 선량한 사람이 되려고 한층 더
노력할 것이다. ―C.V.M.

인생에서 맨 처음 하는 악수, 아기가 고사리 손으로 부모의 손가락을
감아 쥐는 악수야말로 가장 뜻깊고 훌륭한 악수. ―M.B.

펄펄 끓는 국을 마시다 혀를 데이고도 같이 국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국이
뜨겁다는 것을 알리지 않는 사람은 정직하지 못한 사람. ―유고슬라비아
속담

사교적인 사람이 되려면 남이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가르쳐
주더라도 아무 소리 말고 배울 것. ―T.

믿음이란 아직 어두운 새벽에 노래하는 새와 같은 것. ―라빈드라나드
타고르(1861 1941, 인도 시인)

가을은 모든 잎이 꽃으로 변하는 제2의 봄. ―알베르 까뮤(1913 1960,
프랑스 작가)

가끔 실패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안이하게만 산다는 증거. ―우디 알렌(美
유머작가)

장기가 끝나면 將軍도 士卒도 다시 장기망태기로 들어간다. ―이탈리아
속담

아무도 보고 있는 사람이 없을 때의 당신이 당신의 참다운 모습. ―앤
랜더스(美 칼럼니스트)

사람은 누구나 돈이나 편견이 개재되지 않는 한 쉽사리 문제의 양면을 볼
수 있다. ―C.C.P.

연민이란 내 마음 속의 남의 괴로움. ―J.L.

내가 오늘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내 인생의 하루를 그것과 바꾸고
있으니까. ―H.M.

세상은 사람의 야심과 반드시 완전한 조화를 이루도록 돼 있지 않은 곳.
―칼 세이건(美 천문학자)

자신이 지닌 재주는 무엇이든 십분 발휘하라. 가장 아름답게 노래부르는
새들을 제외하고 다른 새들이 노래하지 않는 숲이 있다 치자. 그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헨리 반 다이크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일찍 일어날 뿐. ―P.P.

같은 1달러라도 교회에 가져 갈 땐 커 보이고 가게에 가져갈 땐 작아
보인다. ―F.C.

사람들을 때려서 지도할 수는 없다. 그것은 폭력행사이지 지도력의
발휘는 아니다. ―D.D.E.

주체의식이 너무 강한 사람은 자기가 어떤 잘못도 저지를 수 없다고
느낀다. 주체의식이 너무 없어도 마찬가지. ―D.B.

아이와 천재에게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으니 탐구심이 바로 그것.
―E.G.B.

언제나 신선한 달걀로 남을 수는 없다. 병아리로 부화되든지 곯든지 해야
한다. ―C.S.L.

역사라는 게임은 최선의 사람과 최악의 사람들이 중간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제쳐놓고 저희들끼리 하는 게임. ―E.H.

정반대가 된다는 것도 모방의 일종. ―G.C.L.

충돌했을 때 더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행자를 개조할 방법은 없는 듯. ―B.V.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발전이 아니라 그 부작용. ―D.F.

이 세상은 돈만 많으면 남들이 보는 눈도 달라진다. 부자가 여러 가지
일에 관여하면 다양한 기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두
군데 직장에 다니면 부업을 가졌다고 눈총을 받는다. ―K.M.

요사이 젊은이들은 머리가 장발이라 해서 취직할 수 없다고 불평하지만,
머리칼이 거의 다 빠지고 허옇게 센 사람이 직장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어다. ―빌 본(美 언론인 기고가)

다른 사람들이 제각기 박사가 되려고 기를 쓴다고 초조해 하지 말 것.
사람들이 모조리 박사가 되면 마지막 남은 청소부는 재벌이 될 테니까.
―월터 커넌(기자 뉴스해설자)

사람들은 슬픈 일이 닥칠 때마다 오, 하필이면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하고 질문을 하지만,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같은 질문을
하지 않는 한 그런 질문을 할 자격이 없다. ―P.S.B.

아이들의 버릇을 고치려면 남들에게 아이들 칭찬을 하되 아이들이 엿듣게
할 것. ―H.G.

학교는 재능을 녹여 능력으로 바꿔 주는 제련소. ―R.L.S.

우주여행을 하고 싶어들 하지만 조심할 것. 인구가 이대로 증가하다가는
우주여행에서 돌아와 보면 다른 사람한테 자리를 뺐겼을지도 모르니까.
―K.M.

눈 감고 무조건 따라오라는 소리를 듣고 눈을 살짝 뜨고 엿보지 않는
사람은 바보. ―J.F.

결혼생활은 한 가지 값진 교훈을 가르쳐 준다. 언제나 말하기에 앞서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생각하면 결국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이 그것. ―J.M.

우리가 후세에게 물려줄 수 있는 한 가지 최선의 것은 우리의 후손들의
수를 대폭 줄여 주는 것. ―O.M.

아무런 장애도 없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은 틀림없이 아무 데로도 뚫리지
않은 길. ―F.A.C.

미래를 어느 정도 현실 속에 도입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
현명한 정부의 비결. ―빅토르 위고

예절이 바르다는 것은 자기의 마음 속에 있는 말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서 해야 할지 아는 기술. ―M.D.S.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인간, 웃음을 참는 것은 인간적. ―L.O.

인간의 조상이 무엇이냐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오로지 인류를
욕되게 하는 짓을 안 하도록 조심하면 된다. ―H.B.

어제는 경험, 내일은 희망, 오늘은 경험을 희망으로 옮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순간. ―B.S.

나는 자기의 스케줄에서 나를 위해 시간을 찾아 주는 친구를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자기의 스케줄을 보지도 않고 나를 위해 시간을 내 주는
친구를 더욱 소중히 여긴다. ―R.B.

수다쟁이란 다른 사람들이 불이 났다고 생각하게끔 연기를 피워 놓는
사람. ―D.B.

할 권리가 있다고 해서 하는 일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 ―F.A.C.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하는 말 뒤에 꼭 그러나 하고
이어지는 이유는 무얼까? ―M.J.

우리 세대는 편할 때가 없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어른을 존경해야
한다더니 이제 와서는 젊은 세대를 존중하라고 하니. ―M.S.

아침과 봄이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 되는가를 보면 당신의 건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H.D.T.

제1급의 인간은 제1급의 인간을 고용한다. 제2급의 인간은 제3급의
인간을 고용한다. ―L.R.

개를 한번 쓰다듬어 주면 계속해서 내내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 ―F.P.J.

누구든지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류머티즘과 사랑을 믿지 않는다.
―M.V.E.E.

용기는 흔히 통찰력의 결핍에서 나오는 한편, 비겁은 대개의 경우 훌륭한
정보에 기초를 두고 있다.
―피터 유스티노프(英 배우)

모든 논쟁에는 양면이 있고 논쟁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흔히 그 양면
때문이다. ―M.M.

마치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는 것이 칭찬인 경우도 있다. 그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의 생활 속에 편안하고 신뢰감을 주는 요소로 자리잡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이스 브라더스(美 여류심리학자 1927년생)

오랫동안 게을리한 의무야말로 나중에 무섭고 두려운 대상이 된다.
―촌시 라이트

당신이 먼저 등을 구부리지만 않으면 남이 당신 등에 올라타지 못할
것이다. ―마틴 루터 킹

코끼리가 싸우면 죽어나는 건 발밑의 풀. ―아프리카 속담

이 행동에 대해 나에게 책임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면
당신에게 책임이 있는 일.
―표드르 도스토예프스키

우리는 흔히 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우리 뜻대로
되기를 바라서 기도를 한다.
―헬가 B.그로스

모욕을 주는 사람은 모래 위에 글을 쓰는 것 같지만, 그 모욕을 받은
사람에게는 청동에 끌로 판 것처럼 새겨진다. ―조반니 과레스키

아무리 좋고 알뜰히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때로는 그들이 옆에 없을 때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평화를 느끼는 법. ―앤 쇼

가장 위대한 예술가도 한때는 초심자였다. ―「파머스 다이제스트」

滿潮에는 모든 배가 떠오른다. ―존 F.케네디

누구에게나 청춘이 지나가 버렸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후, 실제로는 그것이 훨씬 뒤의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미니언 먹로클린

누군가 말하기를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모두 건강한 사람이란 언제
예스 라고 하고, 언제 노 라고 말하며, 언제 히야! 하고 소리질러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W.S.K.

일단 무엇에 빠져 들었다 하면 감기처럼 나을 때가 되어야만 끝나는 법.
―E.J.S.

아직 이 세상에서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위험한 영역이 있다. 그것은
대륙이나 해양이 아닌 사람의 마음. ―A.E.C.

사람이 만약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게 될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친지들과
작별인사를 할 때 우리는 더 다정하게 할 것이다. ―Q.

문화와 번지르르한 겉모양은 서로 다른 것. ―랠프 월도 에머슨

젊은이가 좀 젠체하더라도 비웃지 말 것. 어떤 얼굴이 자기에게 맞는가
찾기 위해서 이 얼굴 저 얼굴을 시험해 보고 있을 따름이니까. ―L.P.S.

근심걱정은 대개는 재상연된 것. ―C.M.

세상은 사람들을 못 살게 구는 못된 심술장이. 그러나 대담한 사람이 이
심술장이에게 대들어 그 수염을 움켜잡으면 놀랍게도 수염이 힘없이
뽑혀진다. 그것은 겁장이들을 쫓아 버리려고 살짝 붙여 놓은
가짜수염이니까. ―올리버 웬델 홈스(1809 94, 美 학자)

누구나 그 가슴 속에는 한때 시인이었다 시들어 버린 혼이 깃들어 있는
법. ―S.K.

권력에 대한 탐욕은 힘이 아니라 약함에 뿌리박고 있다. ―에리히 프롬

환희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 단지 음악처럼 느끼는 것이니까.
―마크 트웨인

시간이라는 모래밭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은 좋은 일.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기왕이면 훌륭한 방향의 발자취를 남기는 것. ―제임스 B.캐블

나는 단순히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다는 것을 잊어 본 적이 없다.
―캐서린 햅번

찾아갈 어머니가 있는 한, 결코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다. ―사라
O.주이트

요즘 흔히 우울증이라고 하는 것은 일을 적게 해 몸에 탈이 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로레인 핸스베리

나는 매일 저녁 모든 근심걱정을 하느님께 넘겨 드린다. 어차피 하느님은
밤에도 안 주무실 테니까.
―메리 C.크라울리

자존심 때문에 바보짓을 삼갈 따름인데, 신중하다거나 얌전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도 많다. ―J.B.프리스틀리

내 아버지가 누구였느냐는 문제가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버지를
어떤 사람이었다고 기억하느냐는 점이다. ―앤 섹스튼

너무 열렬한 사람은 언제나 남들에게는 성가신 존재. ―올번 구디어

노아가 진정 지혜로웠다면 파리 두 마리는 찰싹 때려 잡았어야 할 것
아닌가. ―헬렌 카슬

전쟁을 악하다고 보는 한, 전쟁의 매력은 계속 남을 것이다. 전쟁을 만일
천박하다고 여긴다면 인기가 없어질 테지만. ―오스카 와일드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다면 당신은 어떤 위대한 일을
해보시겠는가? ―로버트 H.슐러

춤출 줄 아는 사람이 제일 유연하게 움직이기 마련. ―알렉산더 포프

언론이 자유롭고 국민 모두가 글 읽을 줄 아는 나라에서라면 만사가
안전할 것이다. ―토마스 제퍼슨

솔직한 것이 동정보다 낫다. 동정이란 위로를 하면서도 무언가 숨기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레텔 에를리히

나는 사람이 지나치게 유능해지는 것이 싫다. 그런 사람은 대부분
인간미가 없기 때문에. ―펠릭스 프랭크퍼터

우리가 사랑을 하는 것은 사랑이야말로 유일하게 진정한 모험이기
때문이다. ―니키 조반니

당신이 하는 거의 모든 일이 별로 의미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런 일들을 한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 ―모한다스 K.간디

때때로 낭비해 보는 것은 대단히 유쾌한 일. 그것은 습관이라는 무감각한
타성에 의해 절제하는 것을 막아 준다. ―서머셋 모옴

사람의 표정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표정은 연륜이 우리 얼굴에
남기는 서명일 뿐. ―도로시 C.피셔

남에게 호감을 주려면 많은 생각과 노력과 철두철미한 결단력이
필요하다. ―레이 D.에버슨

들은 대로만 옮기고 그 이상 보태서 꾸밀 줄 모르는 앵무새에게서 우리
누구나 배울 점이 많다.
―「조크와 수수께끼 책」

언제나 자기는 속기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로 속고 있다―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신뢰한다는 그 흐뭇한 기쁨을 깜빡 모르며 지내니까.
―앤드루 V.메이슨

평범한 날이여, 그대의 귀한 가치를 깨닫게 하여라. ―매리 J.아이리언

아이들이 자라면, 우리는 왜 태어났어요? 라고 묻는 때가 닥쳐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부모 자신이 그때까지 그 이유를 알고 있다면 정말
놀라운 일일 것이다. ―헤이즐 스코트

설사 어리석은 짓을 하더라도 열의를 가지고 하라. ―끌로딘느 꼴레뜨

나는 사나운 폭풍우에 미쳐 날뛰는 바다를 보았고, 조용하고 잔잔한
바다, 그리고 어둡고 침울한 바다도 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변덕 속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마틴 벅스봄

중년이란 한두 주일 뒤면 기분이 전처럼 좋아지겠지 하는 생각을 언제나
하면서 지내는 때. ―돈 마키스

자기 사상의 밑바탕을 바꿀 수 없는 사람은 결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안와르 엘 사다트

중대한 위기에 처한 경우엔, 고비를 넘길 때까지만은 악마와 함께 가도
좋다. ―불가리아 속담

행복 가운데는 두려운 행복도 있다. ―토마스 후드

품위가 깃든 주름살 앞에서는 고개가 숙여진다. 행복한 노년에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새벽의 신선함이 있는 법. ―빅토르 위고

낙관적이어서 해로울 것은 없다. 나중에도 얼마든지 울 수 있으니까.
―L.S.L.

자녀에게 물려 줄 최상의 유산은 자립해서 제 길을 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 ―이사도라 덩컨

친구에게서 나는 제2의 나를 본다. ―I.N.

별로 거론되지 않지만, 인간에게는 간섭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하다. 즉
이해나 비타민, 또는 운동이나 칭찬과 마찬가지로 혼자서 즐길 수 있는
私的인 세계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필리스 먹긴리

참다운 자선은 그것이 면세가 되건 말건 상관하지 않는다. ―댄 베네트

점자를 읽는 데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로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경이, 즉 낱말을 만지면 그 말도 사람을 만지듯 감동시키는 경이로움이
있다. ―짐 피빅

권리는 그것을 지킬 용기가 있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로저 볼드윈

마음은 극히 주관적인 장소이므로, 그 안에서는 지옥도 천국이 될 수
있고 천국이 지옥으로 될 수도 있다. ―존 밀튼

장미의 향기는 그 꽃을 준 손에 항상 머물러 있다. ―아다 베야르

사람은 자기의 꿈―과거에 대한 추억의 꿈과 미래를 향한 열렬한 꿈―을
가져야 한다. 나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를 결코 멈추지 않으련다.
―모리스 슈발리에

지극한 사랑 앞에서는 그 무엇이나 제 비밀을 털어놓는다. ―조지 W.카버

성난 말에 성난 말로 대꾸하지 말 것. 말다툼은 언제나 두번째의 성난 말
때문에 비롯되니까. ―H.I.M

지혜는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경험은 어리석음 속에서 얻어진다. ―사샤
기트리

언제나 문제 해결의 최선책은 남의 돈을 들이는 것인 듯. ―밀튼
프리드먼

다른 운전자들에게서 정중한 대접을 받으려면 경찰차를 모는 수밖에
없다. ―H.C.

건전한 판단력은 정신의 경비원. 수상쩍은 생각이 머리 속으로
들어가는가 나가는가 감시하는 일이 그 임무. ―대니얼 스턴

자수성가한 사람 중 가장 솔직한 이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정말 힘들게
정상에 도달했지요. 한 걸음마다 게을러지려는 자신과 싸웠고, 나의
무지를 깨우쳐야 했거든요. ―J.T.

문제를 직면한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직면하지
않고서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제임스 볼드윈
시대를 변화시킬 만큼 큰 인물이 아니거든 시대를 따라 변하라. ―G.T.

생태계 보호라는 것에도 一長一短이 있다. 마치 공기 중에 어느 정도
불순물이 있어야 더욱 아름다운 노을이 생기듯이. ―B.V.

자기의 말을 그저 들어 주기만 해도 즐거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B.E.

단 한 번의 인생 이니까 함부로 산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변명. ―빌
코플랜드

임금과 물가가 맞물고 반복 인상되는 과정에서 정말 문제는 모두들
올라가려고만 들지 내려서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 ―H.C.

친구나 매일 대하는 여러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에 맞서기란 가장 힘든
영웅적 행위 가운데 하나. ―T.H.W.

자기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을 태만 이라고 한다면, 어느 회사, 정부
관청, 골프클럽, 대학교수진 치고 어느 정도씩 태만 이 없는 데가 없을
것. ―J.W.G.

아이들이 잘 참는 것은 그 외에 딴 방법도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
―마야 안젤루

다수란 때로 바보들이 한쪽에 많이 몰려 있기 때문에 형성되는 것.
―클로드 맥도널드

나는 누구나 다 나를 좋아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개중에는 만일 그들이
나를 좋아하면 지금보다 나 자신이 더 못나게 느껴질 사람들도 있기 때문.
―헨리 제임스

자녀가 태어나기 전부터 자녀를 갖기에 족할 만큼 성숙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결혼의 가치는 어른들이 자식을 만들어 내는 데 있지 않고
아이들이 어른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 ―피터 드브리스(美 작가 언론인)

거울은 사실을 보여 주지 詩를 보여 주지는 않는다. ―메이 사튼(美
시인)

큰 거짓말은 마른 땅 위에 오른 큰 물고기와 마찬가지. 그것은 안달을
하며 날뛰어 몹시 성가시지만 당신을 해칠 수는 없다. 가만히 놓아 두면
제풀에 죽고 마는 법. ―조지 크랩(英 시인)

이제는 세계의 문제들을 피해서 달아날 수 있는 곳이라곤 없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思考도 세계적인 것으로 되어야만 한다. ―시어도
로스잭(美 작가)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만 목발을 빼앗기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도 없다.
―제임스 볼드윈(美 흑인작가)

용서하는 것과 용서 받는 것은 같은 일을 달리 말한 것. 중요한 것은
불화가 해소되었다는 것.
―C.S.루이스(英 작가)

인간은 결코 산을 정복하지 못한다. 우리는 잠시 그 정상에 서 있을 수는
있지만 바람이 이내 우리의 발자국을 지워 버린다. ―알린 블럼

모이가 풍족하면 병아리들은 모이를 놓고 서로 싸우지 않는다. 우리
인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돈 마키스(美 언론인)
모든 것이 허용된다면 나는 끝없는 자유의 심연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소련 작곡가)

새로운 사상을 대했을 때 느끼는 고통의 정도를 가지고 자신의 나이를
판단할 수도 있다. ―존 누빈

어머니가 될 것인지 안될 것인지를 뚜렷한 의식으로 선택할 수 있기 전에
어떤 여성도 스스로 자유로운 여자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마가레트
생거(美 산아제한운동가)

두렵거나 당황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는다면 결코 모험을 할 수
없다. ―줄리어 소렐
" 名 言 錄"(리더스다이제스트 1978.11 -- 1983.2)


@ 진실된 우정이란 느리게 자라나는 나무와 같다. --조지 워싱턴

@ 사람들은 당신의 말을 의심할지 모르나 당신의 행동은 믿을 것이다. --L.C.

@ 기회란 횃대에 앉는 일이라곤 없는 새[鳥]와 같은 것. --C.M.

@ 인내심 없는 인간은 기름 없는 등잔불과 같다. --앙드레스 세고비아

@ 가장 현명한 사람의 머리 속에도 어리석은 구석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 자신의 결함이 남들한테 나타나면 견딜 수 없이 짜증스러운 법. --네덜란드 격언

@ 당신이 뭣으로 바쁜지 얘기해 주면 당신이 어떤 인물의 사람인지 나는 곧 알아맞힐 수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아무리 괴로운 시간이라 해도 한 시간은 60분을 넘지 않는다. --모리스 맨덜

@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사람은 코미디언,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한 뒤에 웃게 만드는 사람은 유머리스
트. --조지 번즈

@ 읽지 않고 덮어둔 책은 휴지 뭉치에 불과하다. --중국 격언

@ 우리로 하여금 12월에도 환한 장미꽃을 볼 수 있게 하려고 신은 우리에게 기억력을 주셨다. --J.M.B.

@ 환상이 없는 곳에 과학이 없고, 사실을 무시하면 예술이 성립되지 않는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산은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오르고 눈은 거기 쌓였기 때문에 치울 뿐. --N.N.

@ 교양이란 화를 내지 않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은 채 어떤 얘기라도 들을 수 있는 능력
을 말한다. --로버트 프로스트(美 시인)

@ 아는 게 많다고 모두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는 게 많으면 어떤 지도자를 따라야 할지 선택
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M.D.

@ 전혀 웃지 않는 사람과 잘 웃는 사람을 경계할 것. --아놀드 H.그라소

@ 우리의 최대의 영광은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것이다. --골드 스미스

@ 시간은 모든 것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을 막아주는 자연의 섭리. --S.C.

@ 사람은 꿈이 후회로 바뀔 때 비로소 늙는 법이다. --존 배리모어

@ 진실의 색은 단연 灰色. --앙드레 지드

@ 때로 아무 일도 아니할 자유가 없는 사람은 정말 자유를 모르는 사람이다. --키케로

@ 決定은 깨끗이 곧게 잘라지는 날카로운 칼이고, 未定은 이리 치고 저리 쳐도 자르질 못해서 날만 상
하고만 무딘 칼이다. --C.C.T.

@ 칭찬이란 당신이 믿어본 적이 없는 당신에 관한 말을 남이 하는 것. --F.F.W.

@ 시장기를 가시게 하면 모두 다 좋은 음식. --중국 속담

@ 뉴스와 시시한 루머가 다른 점은 큰 소리로 말하는가 작은 소리로 말하는가의 차이일 뿐. --F.P.J.

@ 충고란 할 때는 말로 주고 싶고, 받을 때는 되로 받고 싶은 법. --W.A.

@ 민주주의란 지도자들이 어려운 일을 기차게 해낸다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시민들이 예사일을 기차게
잘 해낸다는 것으로서 판가름이 난다. --존 가드너

@ 추억은 번 돈을 한 잎 두 잎 세듯, 차근차근 소중히 간직하시도록. --칼 샌드버그

@ 성공은 수만 번의 실패를 감싸준다. --조지 버나드 쇼

@ 실수는 인간이 하는데, 그 탓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은 더욱 인간적. --B.G.

@ 형성할 때 매우 조심해야 되지만 바꿀 때는 더욱 조심해야 되는 것이 輿論.
--조쉬 빌림즈(美 유머리스트, 1818--1885)

@ 실수없이 큰 발명을 한 사람은 없다. --새뮤얼 스마일즈(스코틀랜드 전기작가, 1812--1904)

@ 아버지 한 사람이 백명의 학교 스승보다 낫다. --조지 허버트(英 시인, 1593--1633)

@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것이 분노. 노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졸작 중의 拙作人間,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 --AP

@ 명성이란 영웅적 행동이 풍기는 芳香. --소크라테스

@ 대화를 잘하는 으뜸가는 비결은 다음 어떤 말이 나올지 아무도 알아 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 --M.B.

@ 어떤 사람과 유산을 나눠 가질 때까지는 그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요한 카스파르 라바테르(스위스시인, 1741--1801)

@ 다른 사람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행은, 자기의 富를 나눠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
의 富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벤저민 리즈레일리(英 정치가, 1804--1881)

@ 나는 독서를 못하는 왕이 되기보다는 비록 초라한 골방이지만 책이 가득찬 방이 있는 가난뱅이가 되
겠다. --머코리

@ 사랑할 시간도 충분치 않은데, 증오할 시간이 어디 있으랴! --B.C.

@ 성패는 시기가 좌우한다. 시기를 맞추는 것은 방법을 아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A.H.G.

@ 가진 것이 망치밖에 없을 땐 세상의 모든 문제가 못대가리로 보이게 마련. --에이브라함 마즐로

@ 不道德의 근원은 나만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버릇. --제인 아담즈

@ 傳統이란 불의의 사태를 예방하는 집단적인 노력. --M. McL.

@ 함께 웃은 사람은 잊혀져도 같이 운 사람의 이름은 못 잊는 법. --아랍 속담

@ 낮에는 너무 바빠 근심이 없고, 밤에는 너무 졸려 걱정할 겨를이 없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 --L.A.

@ 사다리란 그 위에서 편히 쉬라고 만든 게 아니라, 한쪽 발이 버틸 동안 다른쪽 발로 더 높이 올라가
라고 만든 발판. --토마스 한슬리

@ 탄식 -- 젊어서 그걸 진작 알았던들....
늙어서 그걸 좀 할 수 있었던들.... --H.E.

@ 따분하기는 매한가지야. 하기 싫은 일들을 노상 하고 있거나, 하고 싶은 일들을 아예 못하거나....
--에릭 호퍼

@ 뭘 하고 싶은지 잘은 모르겠는데 가슴이 아파 오고, 그래도 좋은 것은--봄의 열병. --마크 트웨인

@ 상처 입은 굴이 진주를 만든다. --랠프 월도 에머슨

@ 급진주의자란 두 다리가 모두 허공에 둥둥 뜬 사람. --프랭클린 D.루즈벨트

@ 행운아란 있는 법. 그러나 그들은 요행을 바라지 않고 힘껏 뛴 사람들. --바브 잉엄

@ 자연의 순환은 단순한 반복현상이 아니다. 극장에서의 [앙코르]와도 같이 열렬한 재청에 의한 것이
다. --G.K.체스터튼(英 언론인 작가, 1876--1936)

@ 다이어먼드도 숯이나 석탄 같은 탄소의 응결체. 다른 점이 있다면 서로 다른 압력 아래 이루어졌다
는 것일 뿐. --<클래식 크로스워드 퍼즐>

@ 매순간을 잘 감시하라. 이는 제가 가져온 것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살금살금 빠져 달아나는 도둑과
같은 것. --존 업다이크(美 작가, 1932-- )

@ 나는 절대로 미래를 생각하는 일이 없다. 미래는 너무도 빨리 닥쳐오기 때문에. --앨버트 아인슈타인

@ 사노라면 항상 무언가 배우게 마련. 그 대부분은 내가 얼마나 잘못 알고 있었나를 깨우치는 것. --빌 본

@ 태어난다는 것은 신의 섭리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어떻게 사느냐 하
는 것일 뿐. --헨리 워드 비처(美 목사, 1813--1887)

@ 두려움은 혼자 간직하되 용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라.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온 세상을 두루 헤매도 스스로의 마음 속에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이 아니면 그
것을 찾을 수 없는 법. --랠프 월도 에머슨

@ 인생은 단 한 번뿐. 그러나 올바르게 일하면 한 번이라도 족한 것. --F.A.

@ 한 사람의 志願者는 억지로 끌려온 열 사람보다 낫다. --아프리카 속담

@ 역사는 되풀이된다. 이는 역사가 잘못된 이유의 하나. --C.D.

@ 책이란 우리 마음 속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로 쓰여지는 것. --프란츠 카프카

@ 잘못을 정당화하다 보면 잘못이 갑절로 늘어난다. --프랑스 속담

@ 꾸지람 뒤의 격려는 소나기 뒤에 나오는 태양 같은 것.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인간이 창조하는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없다. 오로지 자연을 표절할 뿐. --J.B.

@ 대화란 의견이 다르면서도 토론이 계속될 수 있음을 뜻한다. --D.M.

@ 철학자란 자기가 일찍이 겪지 못한 어려운 문제를 안고 고민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이래라 저래
라 충고하는 사람. --W.R.L.

@ 우연의 일치란, 이름을 밝히기 싫어하는 신이 가져다 준 하나의 작은 기적. --H.Q.

@ 著者를 고를 때는 친구 고르듯 신중히. --W.D.

@ 겁이 앞서다 보면 논리는 후퇴하기 마련. --L.F.

@ 사람들은 직관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규칙을 만든다. --K.A.F.

@ 거짓말을 해서 속이지 않을 수 없던 그런 사람을 우리는 미워한다. --빅토르 위고

@ 무식이 환경을 크게 오염시킨다. --F.F.

@ 검열이란 그 사회의 자신부족을 반영한다. --포터 스튜어트(P.S.)(美 법관)

@ 약속은 가장 늦게 하는 사람이 가장 잘 지킨다. --장 자크 루소

@ 말하는 권리는 자유의 시작일진 모르지만, 그 권리를 소중하게 만들려면 반드시 남의 말에 귀를 기
울여야 한다. --월터 리프먼

@ 인간의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압도적 다수는 "친절"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케네스 클라크卿
@ 모든 일에 인내심을 가지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St. F.S.

@ 매사를 그리고 모든 사람을 지겨워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지겨운 존재다. --F.T.

@ 어떤 것을 덮어놓고 希求하기에 앞서, 이미 그것을 획득한 사람의 행복을 주의깊게 들여다 볼 필요
가 있다. --L.R.

@ 누구나 화낼 줄은 안다. 그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꼭 화를 내야 할 올바른 대상에게, 올바른 정도껏,
올바른 때에, 올바른 목적을 위해, 올바른 방법으로 화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

@ 시내를 보고 대양이 존재함을 믿는 것, 그것이 신념이다. --W.A.W.

@ [나]를 잃으면 [나]를 알 수 없다. --H.D.T.

@ 모든 것은 더이상 단순화할 수 없을 때까지 단순화해야 한다. --앨버트 아인슈타인

@ 변명을 늘어놓지 않고도 저녁초대를 정중히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자유인이다. --J.R.

@ 아무도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한다면, 모든 사람이 읽는 책을 읽어라. 그러나 그들보다 딱 1년 뒤에.
--랠프 월도 에머슨
@ 남의 발을 밟고 서지 않은 자만이 굳건히 설 수 있다. --F.P.J.

@ 생존은 벌어들임으로써 가능하나, 삶은 베풂으로써 가능하다. --H.I.M.

@ 진보란 만족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법이 없다. --F.T.

@ 역경은 원칙을 시험하는 기회. 역경없이 자신이 정직한지 아닌지 알 수 없다. --헨리 필딩(英 소설가)

@ 사색없는 독서는 소화되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에드먼드 버크

@ 어떻게 하는지 아는 사람은 쉽게 일자리를 얻지만, 왜 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을 부리는
윗사람이 된다. --C.W.

@ 자기 의견을 바꿀 줄 모르는 사람은 괸 물과 같다. 마음 속에 독사만이 우글거리는 사람.
--윌리엄 블레이크(英 시인)

@ 올 여름에도 미국민의 ⅓은 초라한 집에서 옷도 제대로 못입고 밥도 제대로 못먹으며 살 것이다. 그
러면서 그것을 휴가라고 부를 것이다. --J.S.

@ 소문이 퍼지지 않게 하려는 것은 울리는 종을 멈추려는 것과 같다. --S.A.

@ 사랑할 만한 것은 사랑하고 미워해야 할 것은 미워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인간. 그리고 그 차이를
분간하는 데 쓰는 것은 두뇌. --로버트 프로스트(美 시인)

@ 치료되기를 바라는 것도 바로 치료의 일부. --세네카

@ 惡法은 최악의 폭군. --E.B.

@ 폭력은 무능한 자들의 마지막 피난처. --아이작 아시모프(美 공상과학소설가)

@ 태풍이나 폭풍우는 피해 갈 수 있어도 서두름이란 악마를 앞서 갈 수는 없다. --J.B.

@ 깨끗한 양심처럼 더없이 폭신한 베개는 이 세상에 없다. --프랑스 속담

@ 자기 자신에 대해 웃을 수 있는 사람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다. 매일 웃으면서 살테니.
--하비브 부르기바(튀니지 외교관)

@ 사람이 어릴 적에 보여 준 재주대로 자란다면 이 세상에 천재가 못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어린이가 어두움을 두려워하는 것은 용서하기 쉬우나, 어른이 광명을 두려워 한다면 그것은 인생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플라톤

@ 인류의 나이가 몇 살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지만, 인류가 철이 들 나이는 되었으리라는 것쯤 모
르는 사람은 없다. --가이드워드

@ 남에게 손가락질할 때마다 세 개의 손가락은 항상 자기 자신을 가리키고 있음을 잊지 말 것. --무명씨

@ 하나의 진실을 말살하려고 들 때마다 두 개의 진실이 생겨난다. --B.C.

@ 나의 취미는 독서, 음악감상, 그리고 침묵. --에디스 시트웰(英 시인)

@ 반대하는 것이 신성한 것은 아니다. 반대할 권리가 신성한 것이다. --T.아놀드

@ 회의주의자란 벽에 써놓은 뚜렷한 글씨를 보고도 가짜요, 僞書라고 우기는 사람. --M.B.

@ 심장이 오늘 깨달은 것, 머리는 내일쯤 가서야 이해한다. --제임스 스티븐슨

@ 아끼는 사람은 가난해 보이면서 알부자가 되고 헤픈 사람은 부자로 보이면서 가난해지는 사람. --N.W.

@ 나는 통계숫자로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다.--진실만 빼놓고는. --G.C.

@ 위인과 만나거든 너의 좋은 인상을 남기도록 하되, 소인과 만나거든 그 사람의 좋은 인상만을 남기
도록 하라. --사뮤엘 테일러 콜리지

@ 그 사람 하나만 보고는 사람 됨됨이를 모르는 법. 그 사람의 친구들을 살필 것. --H.E.F.

@ 친구와의 견해차이는 참으면서도 낯선 사람과의 견해차이는 異端이요 陰謀로 몰아붙이는 것이 인간.
--B.애트킨슨
@ 본능이란 마음의 코. --제라당 부인

@ 인기가 없어도 잡아가지 않는 사회. 나는 자유사회를 그렇게 정의한다. --애들라이 스티븐슨

@ 불로소득은 외상, 언젠가는 청구서가 날아오기 마련. --F.P.J.

@ 누구나 다 즐겁게 해주려면 결국 아무도 즐겁게 해줄 수 없다. --이솝

@ 친구를 고르는 데는 천천히, 친구를 바꾸는 데는 더욱더 천천히. --벤저민 프랭클린

@ 목마르기 전에 미리 우물을 파 두어라. --중국 속담

@ 과거 없는 聖人, 미래 없는 죄인은 없다. --고대 페르샤 속담

@ 새에겐 둥지가 있고, 거미에겐 거미줄이 있듯, 사람에겐 우정이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英 시인)

@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을 빼놓곤 이 나라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 세금이 매겨진다. --마크 트웨인

@ 남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자기가 앞으로 지나가야 할 다리를 파괴하는 사람. --G.H.

@ 철학이란 정장을 하고 나온 상식. --O.B.

@ 누구나 거의 다 역경을 견디어 낼 수는 있지만, 한 인간의 됨됨이를 정말 시험해 보려거든 그에게
권력을 줘 보라. --에이브러햄 링컨

@ 가장 아름다운 세 가지 광경: 꽃이 만발한 감자밭, 순풍을 받고 달리는 범선, 아기를 낳고 난 뒤의
여인. --에이레 속담

@ 비평가들의 말에 신경을 쓰지 마라. 비평가를 찬양하는 동상이 세워진 적은 없다. --장 시벨리우스

@ 시간이란 곡마단 같은 것. 늘 보따리를 싸서 다른 데로 옮겨 가버리니까. --B.H.

@ 고함을 질러 길들인 말이 속삭이는 소리에 복종할 것으로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 --F.P.

@ 당신 자신이 되어라. 그러면 당신보다 더 나은 적격자가 어디 있겠는가? --F.G.

@ 나의 관심은 주로 미래에 있다. 여생을 거기서 보낼 것이니. --C.K.

@ 어른은 누구나 가르칠 아이가 필요하다. 그래야 어른도 배우게 된다. --F.C.

@ 순간은 눈 깜짝할 사이지만 기억은 영원하다. --B.M.

@ 마음의 평화란 생의 갈등이 없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갈등을 이겨내는 능력에서 온다. --무명씨

@ 名望을 잃으면 숨쉬고 있지만 죽은 사람. --S.S.

@ 우리들 대부분은 초라한 옷차림과 엉터리 가구들을 부끄럽게 여기지만, 그보다는 초라한 생각과 엉
터리 철학을 부끄럽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앨버트 아인슈타인

@ 문제에 관해서 잘 알지 못할 때 해결책을 늘어놓기란 참 쉬운 법. --M.F.

@ 노력하지 않아도 그대로 굴러오는 것은 나이뿐. --G.P.

@ 말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얘기를 음악이 들려 준다. --H.C.

@ 비통에 젖어 본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남을 동정할 수 있다. --J.G.

@ 사람들은 비밀을 알려주기는 꺼리지만, 교환하자면 선뜻 응한다. --<선 샤인>誌

@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도 그걸 깨지지 않게 지키는 것은 인간의 의무. --J.G.

@ 기억이란 우리 모두가 지니고 다니는 일기장. --M.H.

@ 젊은이들은 밤중에 태어나서 이튿날 아침 해돋이를 처음 보는 갓난애들 같기 때문에, 어제란 으례
없었던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서머셋 모옴

@ 지옥에서 가장 끔찍한 자리는 인생의 중대한 문제에 중립을 취했던 사람들의 차지. --빌리 그라함

@ 신문이란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도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약을 올려 그 사태에 관해 어
떤 행동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어야 한다. --마크 트웨인

@ 나는 내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그보다는 그 분의 손자가 어떤 사람이 될지에 더 마
음을 쓴다. --에이브러햄 링컨

@ 민주주의는 사랑처럼 외면과 무관심을 제외한 어떠한 공격에도 살아 남을 수 있다. --P.S.

@ 병원침대란 정지해 있는데도 요금미터기가 마구 돌아가는 택시와 같은 것. --G.M.

@ 권력과 인내가 겨룰 때에는 인내 쪽에 내기 돈을 걸어라. --W.B.P.

@ 묻는 걸 겁내는 사람은 배우는 걸 부끄러이 여기는 사람. --덴마크 속담

@ 자유를 사랑함은 남을 사랑하는 것. 권력을 사랑함은 제 자신을 사랑하는 것. --윌리엄 해즐리트

@ 바쁘게 움직이는 정신은 굴러가는 눈덩이같이 자꾸 커진다. --E.G.

@ 위협해서 나쁜 짓을 막는 것보다는 구슬러서 착한 일을 시키기가 더 쉬운 법. --R.S.S.

@ 가진 것을 깡그리 빼앗아 버렸을 때는, 그 사람을 더 이상 다스릴 수가 없다. 그는 자유민이기 때
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 우리는 자유롭기 위해서 법에 묶여 사는 것이다. --키케로

@ 우리가 숨길 수 없는 두 가지 사실: 술에 취한 것과 사랑에 빠진 것. --안티파네스(희랍 극작가, 前 4--5세
기)

@ 성장을 위한 성장은 암세포의 논리에 불과하다. --H.A.

@ 남자들은 어리석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適時에 바보인 척할 줄 아는 여자를 좋아하는 것.
필요한 때 바보인 척할 줄 아는 것은 슬기로운 여자의 기본적 자질. --폴 엘드리지(美 작가 교육자)

@ 어린애가 하는 짓을 하기엔 너무 크고 어른들이 하는 일을 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가 10대. 10대들이
아무도 하지 않는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은 이 때문. --<리드>誌

@ 권태는 도덕가의 가장 큰 문제거리. 인류가 저지르는 범죄의 적어도 절반 이상이 권태에 대한 두려
움에서 빚어지기 때문. --버트런드 러셀

@ 세상에는 놀라는 사람도 많지만 반란을 만난 혁명가보다 더 놀라는 사람은 없다. --P.G.

@ 남에게 돈을 주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정신건강을 진단할 수 있다. 후한 사람 치고 정신질환이 있
는 사람은 드물다. --칼 메닝어 박사(美 정신의학자, 1893-- )

@ 과거의 연극은 인생이 송두리째 비쳐진 거울이지만, 오늘의 연극은 인생을 들여다보는 열쇠구멍. --A.H.G.

@ 미래란 다른 문을 통해 돌아오는 과거. --A.H.G.

@ 훌륭한 여행자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사람. 완벽한 여행자는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를 모
르는 사람. --L.Y.

@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표현할 권리가 있다. 물론 가끔 미치광이 같은 소리를 하는 사
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미치광이 같은 소리를 듣고도 그것을 분간할 줄 모른다면 똑같이 미치광
이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해리 S.트루먼

@ 모든 사람이 남보다 잘하는 일 한 가지.--자기 글씨를 알아보는 것. --J.A.

@ 자유는 정신을 숨쉬게 해주는 산소. --모세 다얀

@ 꿈을 현실로 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빨리 그 꿈에서 깨어나는 것. --J.M.P.

@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사람을 믿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알지 못하는 사람은 우리를 기만한
일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뮤엘 존슨

@ 내 인생은 나를 울화통 터지게 만드는 어떤 바보의 손에 달려 있다. --J.H.

@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찾는 가장 쉬운 길은, 지금 당장 그 바보상자(TV)를 끄는
것. --J.H.S.

@ 자신이 존재한다는 바로 그 사실에 한번도 놀라보지 못한 사람은 가장 위대한 사실을 놓치고 있는
사람. --J.F.

@ 겸손한 사람에 오만하지 말고, 오만한 자에게 겸손하지 말라. --제퍼슨 데이비스(19세기 美 정치가)

@ 신사로 태어나는 것은 우연이지만 신사로 죽는 것은 노력의 결정. --B.G.

@ 강을 다 건널 때까진 절대 악어를 집적대지 말라. --C.H.

@ 모범이란 남에게 영향을 주는 주된 일이 아니라, 유일한 일. --알베르트 슈바이처

@ 분노할 때는 천천히. 시간은 충분하니까. --랠프 월도 에머슨

@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항구에 묶어 두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존 A.셰드(美 교육자)

@ 자유를 지지한다면서도 선동을 두려워하는 자는, 천둥과 번개 없이 비가 내려 주기를 바라는 사람.
--프레드릭 더글러스(18세기 美 노예폐지운동가)

@ 거북은 아무도 몰래 수천 개의 알을 낳지만 암탉이 알을 낳을 때면 온 동네가 다 안다. --말레이지아 속담

@ 더 많이 알면 더 많이 용서하는 법. --캐서린 大帝

@ 남을 처벌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을 항상 경계할 것. --프리드리히 니체

@ 개인이나 국가 모두에 가장 두려운 일은 권력의 상실이 아니고 감각의 상실이다. --N.C.

@ 날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기어 가라는 말에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헬렌 켈러

@ 약속을 잘하는 사람은 잊기도 잘하는 법. --토마스 풀러(英 목사)

@ 전문가보다 더 고약한 사람은 제가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 --A.A.C.

@ 울지 않는 지혜, 웃지 않는 철학, 어린이들 앞에 고개 숙이지 않는 위대함을 멀리하게 해주소서. --K.G.

@ 교육의 비결은 학생들을 존중하는 데 있지요. --랠프 월도 에머슨

@ 안정이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메테르니히(19세기 오스트리아 정치가)

@ 명예롭지 못한 권력 다음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유머 없는 권력. --E.S.

@ 미국의 위대성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개명되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과오를 시정할
능력을 가졌다는 데 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19세기 프랑스 정치가)

@ 논쟁에서 무식한 사람한테 이기다니 어림없는 말씀. --W.G.M.

@ 임금을 주는 것은 고용주가 아니다. 고용주는 단지 돈을 관리할 따름이고 임금은 노동자들이 만든
생산품에서 나온다. --헨리 포드

@ 원칙보다 특권을 더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곧 둘 다 잃게 된다. --드와이트 D.아이젠하워

@ 젊은이들은 타산적일 만큼 많이 알지 못한다. 바로 그러니까 젊은 세대는 노상 불가능한 일에 도전
하며 그것을 이룩한다. --펄 벅

@ 컴퓨터는 인간이 어림잡아 상상하는 수고를 많이 덜어 주었다. 하지만 비키니수영복도 꼭같은 공헌
을 했다. --<내셔널 업저버>誌

@ 나는 현명한 외면보다는 열정적인 실책을 더 좋아한다. --아나톨 프랑스

@ 賞에 관해 누구나 알아둬야 할 한 가지 일은, 모차르트가 생전에 아무런 상도 타 본 적이 없다는 사실. --H.M.

@ 우리를 망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 만약 내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이 장님이라면, 나는
구태여 고래등 같은 집도 번쩍이는 가구도 바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

@ 젊은이들이 평생을 두고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준비해 주는 데 교육의 목적이 있다. --L.O.

@ 같은 책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맺은 우정처럼 빠르게 뭉치는 우정은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것. --어빙 스턴

@ 우리는 적어도 매일 한 곡의 노래를 듣고 한 편의 시를 읽고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해야 하며 가능하
면 몇 마디 도리에 맞는 말을 해야만 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거짓말을 하기는 쉽다. 그러나 단 한번만 거짓말을 하기는 어렵다. --<텍사스 뉴스>誌

@ 어떤 사람들은 휴가여행을 떠날 때 온갖 물건들을 다 갖고 가면서도 예절을 빼놓고 간다.
--<타임스 리퍼블릭>誌

@ 연설은 연애와 같다. 어떤 바보라도 시작할 수 있으나 끝마무리를 짓는 데는 꽤 기술이 필요하니까.
--맨로크프트卿

@ 진정으로 매력적인 여성은 젊은이에게 원숙을, 늙은이에게 젊음을 느끼게 하고, 중년남자를 완전히
자신감 있게 만들어 주는 여자. --B.T.

@ 혁명이란 낡은 사회가 새 사회를 잉태한 결과. --H.F.S.

@ 완벽한 아내란 완벽한 남편을 기대하지 않는 아내. --무명씨

@ 통계는 正義를 대신할 수 없다. --H.C.

@ 내일이란 오늘의 다른 이름일 뿐. --윌리엄 포크너

@ 복수를 하려고 벼르는 사람은 입는 상처의 치료를 않는 법. --프란시스 베이컨

@ 수천 그루의 나무로 울창해진 숲도 한 톨의 도토리로부터 비롯된 것. --랠프 월도 에머슨

@ 친절이란 귀먹은 사람이 들을 수 있고 눈먼 사람이 볼 수 있는 언어. --마크 트웨인

@ 사람에겐 친구와 고독이 아울러 필요하다. 여름과 겨울, 낮과 밤, 운동과 휴식이 필요하듯. --P.G.

@ 남몰래 하는 선행은 땅 속을 흐르며 대지를 푸르게 가꾸어 주는 지하수 줄기와 같은 것. --토머스 칼라일

@ 민주주의는 감정이 아니라 선견지명이 낳은 제도. 긴 안목으로 설계하지 않은 체제는 얼마 못 가 무
너질 것이다. --C.Y.

@ 贖罪羊을 찾는 것은 사냥 중에서 가장 쉬운 사냥. --드와이트 D.아이젠하워

@ 침묵은 대화의 안전지대. --A.H.G.

@ 이 세계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자손들한테 빌린 것임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자연보
호주의자다. --<오더븐>誌

@ 모든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다같이 진실에 귀기울이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할 필
요가 있다. --새뮤얼 존슨

@ 진심으로 기도를 올려 무언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랠프 월도 에머슨

@ 성공하는 사람이란 남들이 자기에게 던지는 벽돌로 든든한 기초를 쌓아가는 사람. --D.B.

@ 친구에게 돈을 꾸려거든 먼저 친구와 돈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필요한지 결정할 것. --A.H.H.

@ 우리는 두려움의 홍수에 버티기 위해서 끊임없이 용기의 둑을 쌓아야 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

@ 살아간다는 것은 변화함을 뜻하고, 변화한다는 것은 성숙함을 뜻하고, 성숙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새
로운 자기를 창조해 간다는 뜻. --H.B.

@ 상식은 본능이요, 그것이 많은 사람은 천재. --조지 버나드 쇼

@ 떡갈나무가 넘어질 때는 온 숲 속에 그 넘어지는 소리가 메아리치지만 수많은 도토리들은 미풍에 소
리없이 떨어져 새로운 씨앗이 된다. --토머스 칼라일

@ 조숙한 아이보다 더 지겨운 존재는 그 아이의 어머니. --J.W.M.

@ 아픔 없이 자기 자신을 다시 만들 수는 없는 법. 제 자신이 곧 대리석이자 그걸 쪼는 조각가가 돼야
하기 때문. --A.C.

@ 세상은 결과만을 알고 싶어 한다. 남에게 産苦를 말하지 말고 거기서 얻은 아기만 보여줘라. --A.H.G.

@ 때로 푹 쉬도록 하라. 한 해 놀린 밭에서 풍성한 수확이 나는 법. --오비드(고대 로마 시인)

@ 공직을 맡은 자는 스스로를 공공재산으로 생각해야 한다. --토머스 제퍼슨

@ 먹는 것에 대한 사랑보다 더 거짓 없는 사랑은 없다. --조지 버나드 쇼

@ 변혁에 저항하는 보수주의자도 변혁을 주창하는 진보주의자만큼 가치 있다. --W.D.

@ 오래오래 결실 있는 삶을 살아가는 한 가지 비결은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모든 사람의 모든
일을 용서해 주는 것. --A.L.

@ 詩란 즐거움으로 시작해서 지혜로 끝나는 것. --로버트 프로스트(美 시인)

@ 자기 이웃에서 자행되는 탄압과 차별을 외면하면서 세계의 다른 쪽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일에 더 분
노하기 쉬운 것이 인간. --칼 T.로완

@ 노동은 사람에게서 세 가지 큰 악--권태와 非行과 궁핍--을 덜어 준다. --볼테르

@ 영웅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용감한 것이 아니고 다만 5분 동안만 더 용감할 뿐이다. --랠프 월도 에머슨

@ 神은 움직씨[動詞]이지 이름씨[名詞]가 아니다. --R.B.F.

@ 읽지도 않은 사람들이 그것을 읽은 체할 때 그 책은 성공한 것.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면, 불만은 진보의 아버지. --데이비드 록펠러

@ 모든 사람이 영웅이 될 수는 없다. 영웅이 지나갈 때 박수쳐 줄 사람도 있어야 하니까. --W.R.

@ 무엇을 증명하려면 논리가 필요하지만 무언가를 발견하자면 직관이 필요한 것. --H.P.

@ 사람들은 자기 일이나 자기네 정치는 하찮게 여기지만 노름판은 결코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 --조지 버나드 쇼

@ 칭찬은 샴페인과 같다. 거품이 꺼지지 않았을 때 갖다 바쳐야 된다. --R.R.

@ 건강을 지닌 사람은 희망을 가지고 있지만 희망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아라비아 속담

@ 사람들은 모두 훌륭한 국회의원을 뽑고 싶다고 하면서도 결국 뛰어난 政商輩에게 표를 찍고 만다. --O.P.

@ 어떤 사람에게 이미 마음을 열어줬으면 그 사람에게 입을 다물고 있지 말라. --찰스 디킨스

@ 질투를 느껴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믿지 말 것. 결코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니까. --G.B.

@ 충고란 우리가 이미 대답을 알면서도 대답을 몰랐으면 싶을 때 요청하는 것. --E.M.J.

@ 명예롭지 못한 성공은 양념을 하지 않은 요리와 같은 것. 그건 배고픔을 면하게 해주지만 맛은 없을
것이다. --조 파테어노(美 풋볼코치)

@ 외교관계는 인간관계와 같이 끝이 없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니까. --제임
스 레스턴(美 시사평론가)

@ 독신으로 지내는 것보다 더 나쁜 게 있다. 독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 --B.S.

@ 칭찬하기를 포기하면 큰 잘못. 매력적인 것을 매력있다고 말하기를 포기할 때는 매력적이라고 생각
하는 것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 --오스카 와일드(英 시인)

@ 자기는 어떤 활동 분야에서나 자동적으로 대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바보인 사람은 없
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은 자기가 결혼생활에 자동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S.H.

@ 일들이 잘못될 경우 사람들은 대통령을 비난하기를 좋아한다. 그건 대통령이 치러야 하는 고역. --존 F.케네디

@ 한 여자의 이상적인 남성으로 남아 있으려면 독신으로 죽는 길밖에 없다. --P.P.

@ 우리는 구세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며 첫 반평생을 보내고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며 나머지 반
평생을 보낸다. --E.W.

@ 깊이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늙지 않는 법. 고령으로 죽더라도 젊음을 간직한 채 죽는다. --A.W.P

@ 기적은 가끔 일어난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나게 하자면 피눈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C.W.

@ 따분한 인간이 되는 비결은 모든 것을 하나에서 열까지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 --볼테르

@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가장 좋은 도구는 우리의 귀. 즉 상대편 말에 우선 귀를 기울여 듣는 것.
--딘 러스크(前 美국무장관)

@ 공산주의를 믿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라. 그 사람은 자기를 믿지 않는 그 무엇을 믿고 있으니까. --F.M.

@ 무엇이라도 좋으니 당장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 그것은 많은 엉터리 조치를 낳는 어머니. --대니얼 웹스터

@ 권태의 치료제는 호기심이지만 호기심을 고치는 약은 아무 것도 없다. --M.F.A.

@ 가장 좋은 선물은 모두가 서로를 감싸주는 행복한 가정. --M.M.

@ 황금시절을 헛되게 보내지 말라고들 경고하지만, 어떤 황금시절은 헛되이 지나갔기 때문에 황금시절
이라 한다. --J.R.

@ 영웅들이 없는 민족은 장래가 없는 민족. --M.M.

@ 일어서서 자기 주장을 펴는 데도, 앉아서 귀기울여 듣는 데도 꼭같이 용기가 필요한 법. --C.H.V.

@ 재능 가운데 가장 소중한 재능은 한 마디면 될 때 두 마디 말하지 않는 재주. --토머스 제퍼슨

@ 어느 정도의 반대를 받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연이 바람을 받아야 높이 뜨는 것처럼. --J.N.

@ 일을 배우는 길은 그 일을 하는 것. --에스토니아 속담

@ 요리법이 발달되고 나서 사람들은 필요한 것보다 두 배나 더 많은 음식을 먹는다. --벤저민 프랭클린

@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상대방이 스스로 알도록 하라. 그러면 그는 당신을 두고두고 잊지 않을 것이
다. --<월스트리트 저널>誌

@ 醫術이란 自然이 병을 고쳐 주는 동안 환자가 기분 좋도록 해주는 기술. --볼테르

@ 아버지가 자녀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아이들을 낳아 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 --J.H.

@ 그 사람이 함께 어울리기를 피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J.C.

@ 누구나 바보 같은 소리를 할 수 있다. 불행한 것은 그런 말을 어렵게 하는 것이다. --몽테뉴

@ 富의 재분배보다는 기회의 재분배가 더 중요하다. --A.H.V.

@ 발견을 위한 참다운 항해는 새 땅을 찾아내는 것보다도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데 의의가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프랑스 작가)
@ 위트는 대화의 양념이지 主食은 아니다. --윌리엄 해즐리트(英 수필가)

@ 유행은 빛이 바래지지만 멋은 영원한 것. --이브 생 로랭(프랑스 디자이너)

@ 오래 묵을 수록 좋은 것 네 가지: 오래 말린 땔나무, 오래 묵어 농익은 포도주, 믿을 수 있는 옛친
구, 읽을 만한 원로작가의 글. --프란시스 베이컨(英 작가)

@ 인생에 가장 성공적인 사람은 대체로 가장 훌륭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 --벤저민 리즈레일리

@ 가장 위대한 에너지源 가운데 하나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긍지. --스포크 박사(美 소아과의사)

@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은 공것을 주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관찰하는
것. --A.L.

@ 친구를 비판하는 것이 마음 아플 때는 비판해도 좋다. 그러나 거기서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느낄 때
는 입을 다무는 것이 상책. --J.R.

@ 나는 총칼을 든 10만 대군보다 한 장의 신문을 더 두려워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공손하기 때문에 잃는 단 한 가지는 만원 버스의 좌석. --에이레 속담

@ 역사란 피할 수 있었던 일들의 集大成. --콘라드 아데나워

@ 사춘기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바로 열병 같은 것. --R.A.

@ 강요된 것이 아닌 윤리가 진정한 윤리. --C.S.

@ 사람들은 한 잔 술에 귀여운 양이 되고, 두 잔에 질주하는 얼룩말이 되고, 석 잔에 포효하는 사자가
되고, 넉 잔에 어리석은 나귀로 되돌아간다. --터키 속담

@ 전쟁에서 상처받지 않는 군인은 없는 법. --J.N.

@ 논란이 분분한 문제에 관해 역성들지 않고 사리 바르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유머감각이 풍부
한 사람. --L.F.

@ 어떤 비밀을 남몰래 지키고 있을 때 그 비밀은 우리 머슴처럼 고분고분하지만, 일단 그것을 발설하
고 나면 상전이 되어 우리를 지배하려 드는 법. --T.P.

@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 주는 것. --아나톨 프랑스

@ 눈여겨 볼 때와 눈감아 줄 때를 아는 아내가 良妻. --A.H.

@ 겁쟁이도 고난을 이겨 낼 수 있지만 용기 있는 사람만이 불안을 이겨 낼 수 있다. --M.M.

@ 어떤 민족을 이해하고 싶거든 그들의 민속춤을 보고 민요를 들어라. 결코 그들의 정치인들이 떠드는
소리에 귀기울이지 말라. --아그네스 데 밀(美 무용가)

@ 앞으로 나아가는 데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마치 2루로 도루하면서 한 발을 1루에 둘 수는 없듯이. --F.B.W.

@ 우울증을 고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몸을 잊고 남의 몸에 관심을 갖는 것. --G.A.

@ 자존심은 수양의 결실. 사람의 위엄은 자기 자신에게 '노'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성장한다. --A.J.H.

@ 아이들을 너무 행복하게 해주어 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지 말라. 행복이야말로 모든 건전한 사람
이 성장하는 분위기이다. --토머스 브레이(英 목사)

@ 가장 위대한 기도는 인내. --석가모니

@ 섬세하고 친절한 마음씨, 섬세하지도 않고 친절하지도 않은 혀, 이 두 가지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배필. --L.P.S.

@ 우리 시대의 그 숱한 야만적 작태는 그것을 놀랍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더욱
놀라운 일이다. --M.M.

@ 利己主義는 인간의 천성이요, 無私는 후천적 교양. --J.G.

@ 긴 논쟁은 쌍방이 다 옳지 않다는 증거. --볼테르

@ 궂은 날씨는 창 안에서 볼 때 더 우울해 보인다. --J.K.

@ 전통이란 한 민족의 즐거운 추억. --J.F.C.

@ 고향이란 예전에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는 듯. --W.D.T.

@ 나무를 심는 사람은 자기 이외에 남들도 사랑하는 사람. --영국 속담

@ 독서가들은 책을 읽고서 기억하는 부류와 책을 읽고 잊어버리는 부류로 나눌 수 있다. --W.L.P.

@ 스포츠팬들이 이름없는 선수에게 야유하는 법은 없다. --R.J.

@ 음악은 감정의 速記法. --레프 톨스토이

@ 돈이 많고 건강하면서도 은퇴하는 것은 멋진 일. 그러나 돈이 많고 건강하면서 일을 계속하는 것은
더욱 멋진 일. --B.V.

@ 저 좋은 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말을 듣게 된다. --L.L.L.

@ 당신 자신의 부도덕성과 싸우고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라. 그리고 새해를 맞을 때마다 좀 더 나은 사
람이 되라. --벤저민 프랭클린

@ 자녀에게 관심깊은 부모가 있고 집에 읽을 만한 책이 많은 아이는 가엾은 아이가 아니다. --S.L.

@ 미리 계획을 세워라--노아가 方舟를 모을 때는 비가 오지 않았다. --G.F.C.

@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는 모두 사회에 기여한다. 낙관론자는 비행기를 만들고 비관론자는 낙하산을 만
들어 내니까. --G.S.

@ 증오는 질질 끌면서 하는 자살과 같은 것. --D.V.S.

@ 과학은 아무리 발달해도 지혜가 아니고 상식이다. 지혜란 지식과 판단력이 조화된 것. --R.C.

@ 현실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적을 믿어야 한다. --데이비드 벤구리온

@ 하느님은 우리가 일할 때는 우리를 존중해 주고 우리가 노래할 때는 우리를 사랑한다.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 훌륭한 모범은 거만한 법. 그 거만한 모범을 따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별로 없다. --마크 트웨인

@ 인내란 참을 수 없는 것을 숨기는 기술. --F.P.J.

@ 시간은 우리 각자가 가진 고유의 재산이요, 유일한 재산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뿐이다. 결코 그 재산을 남이 우리 대신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칼 샌드버그

@ 칭찬하면서도 부러워하지 않고, 뒤좇지만 모방하지 않고, 찬양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지도자로 앞장
서지만 남을 속이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에겐 축복이 내릴지어다. --W.A.W.

@ 아담이 외로울 때 하느님은 그를 위해 열 명의 친구를 만들어 주지 않고 한 아내를 만들어 주었다. --C.V.

@ 인간은 완전하게 될 순 없으나 점점 나아질 수는 있다. --E.S.

@ 환경오염문제에 대한 회의를 여는 것은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진 껌 포장지를 줍기보다 더 쉬운 일. --B.V.

@ 행복이란 손 닿는 데 있는 꽃들로 꽃다발을 만드는 솜씨. --B.G.

@ 이웃 없이 지낼 만큼 돈 많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덴마크 속담

@ 손해 본 일은 모래 위에 새겨 두고, 은혜 입은 일은 대리석 위에 새겨 두라. --벤저민 프랭클린

@ 문명이란 상황이 아니라 움직임이고, 항구가 아니라 항해이다. --아놀드 토인비

@ 진정으로 어떤 논쟁을 매듭짓고 싶으면 "당신 말이 옳은 것 같군요"라고 말하도록 노력할 것. --F.F.W.

@ 정의를 지향하는 인간의 자질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지만, 불의로 기울기 쉬운 인간의 경향은 민주
주의를 필수불가결하게 한다. --R.N.

@ 능력이 적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가장 큰 잘못.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칼 세이건

@ 창조적인 소수가 이끌어 주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는 존속할 수 없다. --H.F.S.

@ 아이를 성공적으로 다루는 비결은 그 부모가 되지 않는 것. --M.L.

@ 진정한 성공은 성공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P.S.

@ 남들이 당신 칭찬을 하게 하라. 당신이 제 자랑을 하는 것보다 두 배나 널리 퍼질 테니까. --W.R.

@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아이스크림을 숟갈에 듬뿍 뜨다 떨어뜨렸을 때 실망하긴 마찬가지. --J.F.

@ 결혼하기는 쉽지만 결혼생활을 계속하기는 조금 어렵다. 평생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다는 것은 단연
최고의 예술에 속한다. --R.F.

@ 서로 나눈 기쁨은 두 배나 더 기쁘고 서로 나눈 슬픔은 절반밖에 슬프지 않다. --스웨덴 속담

@ 현명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의문을 품고 어리석은 자는 남들만 의심한다. --H.A.

@ 조용한 군중들 편에 서면 십중팔구 옳은 쪽에 끼게 된다. --N.W.

@ 어떤 사람이든 당신이 선량한 사람이라고 해주면, 실제로는 그렇게 선량한 사람이 아닐지라도, 앞으
로는 선량한 사람이 되려고 한층 더 노력할 것이다. --C.V.M.

@ 인생에서 맨 처음 하는 악수, 아기가 고사리 손으로 부모의 손가락을 감아 쥐는 악수야말로 가장 뜻
깊고 훌륭한 악수. --M.B.

@ 펄펄 끓는 국을 마시다 혀를 데이고도 같이 국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국이 뜨겁다는 것을 알리지 않
는 사람은 정직하지 못한 사람. --유고슬라비아 속담

@ 사교적인 사람이 되려면 남이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가르쳐 주더라도 아무 소리 말고 배울 것. --T.

@ 믿음이란 아직 어두운 새벽에 노래하는 새와 같은 것. --라빈드라나드 타고르(1861--1941, 인도 시인)

@ 가을은 모든 잎이 꽃으로 변하는 제2의 봄. --알베르 까뮤(1913--1960, 프랑스 작가)

@ 가끔 실패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안이하게만 산다는 증거. --우디 알렌(美 유머작가)

@ 장기가 끝나면 將軍도 士卒도 다시 장기망태기로 들어간다. --이탈리아 속담

@ 아무도 보고 있는 사람이 없을 때의 당신이 당신의 참다운 모습. --앤 랜더스(美 칼럼니스트)

@ 사람은 누구나 돈이나 편견이 개재되지 않는 한 쉽사리 문제의 양면을 볼 수 있다. --C.C.P.

@ 연민이란 내 마음 속의 남의 괴로움. --J.L.

@ 내가 오늘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내 인생의 하루를 그것과 바꾸고 있으니까. --H.M.

@ 세상은 사람의 야심과 반드시 완전한 조화를 이루도록 돼 있지 않은 곳. --칼 세이건(美 천문학자)

@ 자신이 지닌 재주는 무엇이든 십분 발휘하라. 가장 아름답게 노래부르는 새들을 제외하고 다른 새들
이 노래하지 않는 숲이 있다 치자. 그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헨리 반 다이크

@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일찍 일어날 뿐. --P.P.

@ 같은 1달러라도 교회에 가져 갈 땐 커 보이고 가게에 가져갈 땐 작아 보인다. --F.C.

@ 사람들을 때려서 지도할 수는 없다. 그것은 폭력행사이지 지도력의 발휘는 아니다. --D.D.E.

@ 주체의식이 너무 강한 사람은 자기가 어떤 잘못도 저지를 수 없다고 느낀다. 주체의식이 너무 없어
도 마찬가지. --D.B.

@ 아이와 천재에게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으니 탐구심이 바로 그것. --E.G.B.

@ 언제나 신선한 달걀로 남을 수는 없다. 병아리로 부화되든지 곯든지 해야 한다. --C.S.L.

@ 역사라는 게임은 최선의 사람과 최악의 사람들이 중간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은 제쳐놓고 저희들끼리
하는 게임. --E.H.

@ 정반대가 된다는 것도 모방의 일종. --G.C.L.

@ 충돌했을 때 더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행자를 개조할 방법은 없는 듯. --B.V.

@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발전이 아니라 그 부작용. --D.F.

@ 이 세상은 돈만 많으면 남들이 보는 눈도 달라진다. 부자가 여러 가지 일에 관여하면 다양한 기업을 가
진 사람이라고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두 군데 직장에 다니면 부업을 가졌다고 눈총을 받는다. --K.M.

@ 요사이 젊은이들은 머리가 장발이라 해서 취직할 수 없다고 불평하지만, 머리칼이 거의 다 빠지고
허옇게 센 사람이 직장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어다. --빌 본(美 언론인 기고가)

@ 다른 사람들이 제각기 박사가 되려고 기를 쓴다고 초조해 하지 말 것. 사람들이 모조리 박사가 되면
마지막 남은 청소부는 재벌이 될 테니까. --월터 커넌(기자 뉴스해설자)

@ 사람들은 슬픈 일이 닥칠 때마다 "오, 하필이면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하고 질문을 하지만,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같은 질문을 하지 않는 한 그런 질문을 할 자격이 없다. --P.S.B.

@ 아이들의 버릇을 고치려면 남들에게 아이들 칭찬을 하되 아이들이 엿듣게 할 것. --H.G.

@ 학교는 재능을 녹여 능력으로 바꿔 주는 제련소. --R.L.S.

@ 우주여행을 하고 싶어들 하지만 조심할 것. 인구가 이대로 증가하다가는 우주여행에서 돌아와 보면
다른 사람한테 자리를 뺐겼을지도 모르니까. --K.M.

@ 눈 감고 무조건 따라오라는 소리를 듣고 눈을 살짝 뜨고 엿보지 않는 사람은 바보. --J.F.

@ 결혼생활은 한 가지 값진 교훈을 가르쳐 준다. 언제나 말하기에 앞서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생
각하면 결국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이 그것. --J.M.

@ 우리가 후세에게 물려줄 수 있는 한 가지 최선의 것은 우리의 후손들의 수를 대폭 줄여 주는 것. --O.M.

@ 아무런 장애도 없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은 틀림없이 아무 데로도 뚫리지 않은 길. --F.A.C.

@ 미래를 어느 정도 현실 속에 도입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 현명한 정부의 비결. --빅토르 위고

@ 예절이 바르다는 것은 자기의 마음 속에 있는 말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서 해야 할지 아는 기술. --M.D.S.

@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인간, 웃음을 참는 것은 인간적. --L.O.

@ 인간의 조상이 무엇이냐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오로지 인류를 욕되게 하는 짓을 안 하도록
조심하면 된다. --H.B.

@ 어제는 경험, 내일은 희망, 오늘은 경험을 희망으로 옮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순간. --B.S.

@ 나는 자기의 스케줄에서 나를 위해 시간을 찾아 주는 친구를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자기의 스케줄
을 보지도 않고 나를 위해 시간을 내 주는 친구를 더욱 소중히 여긴다. --R.B.

@ 수다쟁이란 다른 사람들이 불이 났다고 생각하게끔 연기를 피워 놓는 사람. --D.B.

@ 할 권리가 있다고 해서 하는 일이 꼭 옳은 것은 아니다. --F.A.C.

@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하는 말 뒤에 꼭 "그러나 " 하고 이어지는 이유는 무얼까? --M.J.

@ 우리 세대는 편할 때가 없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어른을 존경해야 한다더니 이제 와서는 젊은 세
대를 존중하라고 하니. --M.S.

@ 아침과 봄이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 되는가를 보면 당신의 건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H.D.T.

@ 제1급의 인간은 제1급의 인간을 고용한다. 제2급의 인간은 제3급의 인간을 고용한다. --L.R.

@ 개를 한번 쓰다듬어 주면 계속해서 내내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 --F.P.J.

@ 누구든지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류머티즘과 사랑을 믿지 않는다. --M.V.E.E.

@ 용기는 흔히 통찰력의 결핍에서 나오는 한편, 비겁은 대개의 경우 훌륭한 정보에 기초를 두고 있다.
--피터 유스티노프(英 배우)

@ 모든 논쟁에는 양면이 있고 논쟁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흔히 그 양면 때문이다. --M.M.

@ 마치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는 것이 칭찬인 경우도 있다. 그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의 생활 속에 편안
하고 신뢰감을 주는 요소로 자리잡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이스 브라더스(美 여류심리학자 1927년생)

@ 오랫동안 게을리한 의무야말로 나중에 무섭고 두려운 대상이 된다. --촌시 라이트

@ 당신이 먼저 등을 구부리지만 않으면 남이 당신 등에 올라타지 못할 것이다. --마틴 루터 킹

@ 코끼리가 싸우면 죽어나는 건 발밑의 풀. --아프리카 속담

@ "이 행동에 대해 나에게 책임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면 당신에게 책임이 있는 일.
--표드르 도스토예프스키

@ 우리는 흔히 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우리 뜻대로 되기를 바라서 기도를 한다.
--헬가 B.그로스

@ 모욕을 주는 사람은 모래 위에 글을 쓰는 것 같지만, 그 모욕을 받은 사람에게는 청동에 끌로 판 것
처럼 새겨진다. --조반니 과레스키

@ 아무리 좋고 알뜰히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때로는 그들이 옆에 없을 때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마음
의 평화를 느끼는 법. --앤 쇼

@ 가장 위대한 예술가도 한때는 초심자였다. --<파머스 다이제스트>

@ 滿潮에는 모든 배가 떠오른다. --존 F.케네디

@ 누구에게나 청춘이 지나가 버렸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후, 실
제로는 그것이 훨씬 뒤의 일이었음을 깨닫는다. --미니언 먹로클린

@ 누군가 말하기를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모두 건강한 사람이란 언제 "예스"라고 하고, 언제 "노"
라고 말하며, 언제 "히야!" 하고 소리질러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W.S.K.

@ 일단 무엇에 빠져 들었다 하면 감기처럼 나을 때가 되어야만 끝나는 법. --E.J.S.

@ 아직 이 세상에서 완전히 알려지지 않은 위험한 영역이 있다. 그것은 대륙이나 해양이 아닌 사람의
마음. --A.E.C.

@ 사람이 만약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게 될지 미리 알 수 있다면, 친지들과 작별인사를 할 때 우리는
더 다정하게 할 것이다. --Q.

@ 문화와 번지르르한 겉모양은 서로 다른 것. --랠프 월도 에머슨

@ 젊은이가 좀 젠체하더라도 비웃지 말 것. 어떤 얼굴이 자기에게 맞는가 찾기 위해서 이 얼굴 저 얼
굴을 시험해 보고 있을 따름이니까. --L.P.S.

@ 근심걱정은 대개는 재상연된 것. --C.M.

@ 세상은 사람들을 못 살게 구는 못된 심술장이. 그러나 대담한 사람이 이 심술장이에게 대들어 그 수
염을 움켜잡으면 놀랍게도 수염이 힘없이 뽑혀진다. 그것은 겁장이들을 쫓아 버리려고 살짝 붙여 놓
은 가짜수염이니까. --올리버 웬델 홈스(1809--94, 美 학자)

@ 누구나 그 가슴 속에는 한때 시인이었다 시들어 버린 혼이 깃들어 있는 법. --S.K.

@ 권력에 대한 탐욕은 힘이 아니라 약함에 뿌리박고 있다. --에리히 프롬

@ 환희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 단지 음악처럼 느끼는 것이니까. --마크 트웨인

@ 시간이라는 모래밭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은 좋은 일.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기왕이면 훌륭한 방
향의 발자취를 남기는 것. --제임스 B.캐블

@ 나는 단순히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겁다는 것을 잊어 본 적이 없다. --캐서린 햅번

@ 찾아갈 어머니가 있는 한, 결코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다. --사라 O.주이트

@ 요즘 흔히 우울증이라고 하는 것은 일을 적게 해 몸에 탈이 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로레인 핸스베리

@ 나는 매일 저녁 모든 근심걱정을 하느님께 넘겨 드린다. 어차피 하느님은 밤에도 안 주무실 테니까.
--메리 C.크라울리

@ 자존심 때문에 바보짓을 삼갈 따름인데, 신중하다거나 얌전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도 많다. --J.B.프리스틀리

@ 내 아버지가 누구였느냐는 문제가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버지를 어떤 사람이었다고 기억하느
냐는 점이다. --앤 섹스튼

@ 너무 열렬한 사람은 언제나 남들에게는 성가신 존재. --올번 구디어

@ 노아가 진정 지혜로웠다면 파리 두 마리는 찰싹 때려 잡았어야 할 것 아닌가. --헬렌 카슬

@ 전쟁을 악하다고 보는 한, 전쟁의 매력은 계속 남을 것이다. 전쟁을 만일 천박하다고 여긴다면 인기
가 없어질 테지만. --오스카 와일드

@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다면 당신은 어떤 위대한 일을 해보시겠는가? --로버트 H.슐러

@ 춤출 줄 아는 사람이 제일 유연하게 움직이기 마련. --알렉산더 포프

@ 언론이 자유롭고 국민 모두가 글 읽을 줄 아는 나라에서라면 만사가 안전할 것이다. --토마스 제퍼슨

@ 솔직한 것이 동정보다 낫다. 동정이란 위로를 하면서도 무언가 숨기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레텔 에를리히

@ 나는 사람이 지나치게 유능해지는 것이 싫다. 그런 사람은 대부분 인간미가 없기 때문에. --펠릭스 프랭크퍼터

@ 우리가 사랑을 하는 것은 사랑이야말로 유일하게 진정한 모험이기 때문이다. --니키 조반니

@ 당신이 하는 거의 모든 일이 별로 의미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런 일들을 한다는 그 자
체가 중요하다. --모한다스 K.간디

@ 때때로 낭비해 보는 것은 대단히 유쾌한 일. 그것은 습관이라는 무감각한 타성에 의해 절제하는 것
을 막아 준다. --서머셋 모옴

@ 사람의 표정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표정은 연륜이 우리 얼굴에 남기는 서명일 뿐. --도로시 C.피셔

@ 남에게 호감을 주려면 많은 생각과 노력과 철두철미한 결단력이 필요하다. --레이 D.에버슨

@ 들은 대로만 옮기고 그 이상 보태서 꾸밀 줄 모르는 앵무새에게서 우리 누구나 배울 점이 많다.
--<조크와 수수께끼 책>

@ 언제나 자기는 속기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로 속고 있다--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신뢰한다는
그 흐뭇한 기쁨을 깜빡 모르며 지내니까. --앤드루 V.메이슨

@ 평범한 날이여, 그대의 귀한 가치를 깨닫게 하여라. --매리 J.아이리언

@ 아이들이 자라면, "우리는 왜 태어났어요?"라고 묻는 때가 닥쳐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부모 자신이
그때까지 그 이유를 알고 있다면 정말 놀라운 일일 것이다. --헤이즐 스코트

@ 설사 어리석은 짓을 하더라도 열의를 가지고 하라. --끌로딘느 꼴레뜨

@ 나는 사나운 폭풍우에 미쳐 날뛰는 바다를 보았고, 조용하고 잔잔한 바다, 그리고 어둡고 침울한 바
다도 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변덕 속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마틴 벅스봄

@ 중년이란 한두 주일 뒤면 기분이 전처럼 좋아지겠지 하는 생각을 언제나 하면서 지내는 때. --돈 마키스

@ 자기 사상의 밑바탕을 바꿀 수 없는 사람은 결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안와르 엘 사다트

@ 중대한 위기에 처한 경우엔, 고비를 넘길 때까지만은 악마와 함께 가도 좋다. --불가리아 속담

@ 행복 가운데는 두려운 행복도 있다. --토마스 후드

@ 품위가 깃든 주름살 앞에서는 고개가 숙여진다. 행복한 노년에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새벽의 신선
함이 있는 법. --빅토르 위고

@ 낙관적이어서 해로울 것은 없다. 나중에도 얼마든지 울 수 있으니까. --L.S.L.

@ 자녀에게 물려 줄 최상의 유산은 자립해서 제 길을 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 것. --이사도라 덩컨

@ 친구에게서 나는 제2의 나를 본다. --I.N.

@ 별로 거론되지 않지만, 인간에게는 간섭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하다. 즉 이해나 비타민, 또는 운동
이나 칭찬과 마찬가지로 혼자서 즐길 수 있는 私的인 세계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필리스 먹긴리

@ 참다운 자선은 그것이 면세가 되건 말건 상관하지 않는다. --댄 베네트

@ 점자를 읽는 데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로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경이, 즉 낱말을 만지면 그
말도 사람을 만지듯 감동시키는 경이로움이 있다. --짐 피빅

@ 권리는 그것을 지킬 용기가 있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로저 볼드윈

@ 마음은 극히 주관적인 장소이므로, 그 안에서는 지옥도 천국이 될 수 있고 천국이 지옥으로 될 수도
있다. --존 밀튼

@ 장미의 향기는 그 꽃을 준 손에 항상 머물러 있다. --아다 베야르

@ 사람은 자기의 꿈--과거에 대한 추억의 꿈과 미래를 향한 열렬한 꿈--을 가져야 한다. 나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를 결코 멈추지 않으련다. --모리스 슈발리에

@ 지극한 사랑 앞에서는 그 무엇이나 제 비밀을 털어놓는다. --조지 W.카버

@ 성난 말에 성난 말로 대꾸하지 말 것. 말다툼은 언제나 두번째의 성난 말 때문에 비롯되니까. --H.I.M

@ 지혜는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경험은 어리석음 속에서 얻어진다. --사샤 기트리

@ 언제나 문제 해결의 최선책은 남의 돈을 들이는 것인 듯. --밀튼 프리드먼

@ 다른 운전자들에게서 정중한 대접을 받으려면 경찰차를 모는 수밖에 없다. --H.C.

@ 건전한 판단력은 정신의 경비원. 수상쩍은 생각이 머리 속으로 들어가는가 나가는가 감시하는 일이
그 임무. --대니얼 스턴

@ 자수성가한 사람 중 가장 솔직한 이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정말 힘들게 정상에 도달했지요. 한 걸
음마다 게을러지려는 자신과 싸웠고, 나의 무지를 깨우쳐야 했거든요." --J.T.

@ 문제를 직면한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직면하지 않고서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제임스 볼드윈
@ 시대를 변화시킬 만큼 큰 인물이 아니거든 시대를 따라 변하라. --G.T.

@ 생태계 보호라는 것에도 一長一短이 있다. 마치 공기 중에 어느 정도 불순물이 있어야 더욱 아름다
운 노을이 생기듯이. --B.V.

@ 자기의 말을 그저 들어 주기만 해도 즐거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B.E.

@ "단 한 번의 인생"이니까 함부로 산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변명. --빌 코플랜드

@ 임금과 물가가 맞물고 반복 인상되는 과정에서 정말 문제는 모두들 올라가려고만 들지 내려서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 --H.C.

@ 친구나 매일 대하는 여러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에 맞서기란 가장 힘든 영웅적 행위 가운데 하나. --T.H.W.

@ 자기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을 "태만"이라고 한다면, 어느 회사, 정부 관청, 골프클럽, 대학교수진
치고 어느 정도씩 "태만"이 없는 데가 없을 것. --J.W.G.

@ 아이들이 잘 참는 것은 그 외에 딴 방법도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 --마야 안젤루

@ 다수란 때로 바보들이 한쪽에 많이 몰려 있기 때문에 형성되는 것. --클로드 맥도널드

@ 나는 누구나 다 나를 좋아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개중에는 만일 그들이 나를 좋아하면 지금보다 나
자신이 더 못나게 느껴질 사람들도 있기 때문. --헨리 제임스

@ 자녀가 태어나기 전부터 자녀를 갖기에 족할 만큼 성숙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결혼의 가치는 어른들이
자식을 만들어 내는 데 있지 않고 아이들이 어른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 --피터 드브리스(美 작가 언론인)

@ 거울은 사실을 보여 주지 詩를 보여 주지는 않는다. --메이 사튼(美 시인)

@ 큰 거짓말은 마른 땅 위에 오른 큰 물고기와 마찬가지. 그것은 안달을 하며 날뛰어 몹시 성가시지만
당신을 해칠 수는 없다. 가만히 놓아 두면 제풀에 죽고 마는 법. --조지 크랩(英 시인)

@ 이제는 세계의 문제들을 피해서 달아날 수 있는 곳이라곤 없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思考도 세계적인
것으로 되어야만 한다. --시어도 로스잭(美 작가)

@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만 목발을 빼앗기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도 없다.
--제임스 볼드윈(美 흑인작가)

@ 용서하는 것과 용서 받는 것은 같은 일을 달리 말한 것. 중요한 것은 불화가 해소되었다는 것.
--C.S.루이스(英 작가)

@ 인간은 결코 산을 정복하지 못한다. 우리는 잠시 그 정상에 서 있을 수는 있지만 바람이 이내 우리
의 발자국을 지워 버린다. --알린 블럼

@ 모이가 풍족하면 병아리들은 모이를 놓고 서로 싸우지 않는다. 우리 인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돈 마키스(美 언론인)
@ 모든 것이 허용된다면 나는 끝없는 자유의 심연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소련 작곡가)

@ 새로운 사상을 대했을 때 느끼는 고통의 정도를 가지고 자신의 나이를 판단할 수도 있다. --존 누빈

@ 어머니가 될 것인지 안될 것인지를 뚜렷한 의식으로 선택할 수 있기 전에 어떤 여성도 스스로 자유
로운 여자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마가레트 생거(美 산아제한운동가)

@ 두렵거나 당황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는다면 결코 모험을 할 수 없다. --줄리어 소렐
" 名 言 錄"(리더스다이제스트 1983.3--1988.1)


@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다고 느낄 때 오는 고독감은 가난 중의 가난. --테레사 수녀

@ 어떤 사람이 자기는 원칙적으로 그 일에 찬성한다고 말할 경우, 그 사람은 그것을 실천에 옮길 의향
이 전혀 없음을 뜻한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프러시아 정치가)

@ 동정과 이해가 따르지 않는 "정직"은 정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敵意이다. --로즈 N.프랜즈블로

@ 무질서하게 사는 이점의 하나는 끊임없이 멋진 발견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A.A.밀른(英 시인)

@ 비눗물 맛을 모르는 사람은 개를 목욕시킨 적이 없는 사람. --프랭클린 P.존스

@ 오래된 규범의 가치에 의심을 품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파기하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
야 한다. --엘리자베드 제인웨이

@ 재능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재능을 실현하기 위해 걸어야 할 어려운 과정을 밟을 용기를 지닌 사
람은 드물다. --에리카 종

@ 아무리 높은 왕좌에 앉아 있을망정, 사람은 궁둥이로 앉게 마련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 유머. --타키

@ 이른 아침의 산책은 그날 하루를 위한 축복. --헨리 데이비드 도로(美 작가, 1817--1862)

@ 산책은 위대한 예술이다. --헨리 도로(美 작가)

@ 아기가 태어날 때 삼신할머니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호기심이다. --엘리노어 루스벨트

@ 부자가 되는 지름길은, 값이 싸고 습관적으로 쓸 수 있는 데다가 세금이 공제될 수 있는 물건을 만
들어 내는 것. --[선샤인 매거진]

@ 인간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남을 속이는 것은 전적으로 신만이 져야 할 책임. --헨리 해스킨스

@ 인간이 추위와 굶주림, 갈증에 대비하는 이외의 모든 것은 오직 허식이며 낭비일 뿐이다. --세네카

@ 전쟁에서 이등상이란 없다. --오마 브레들리

@ 무엇이 이 세상을 움직여 가는지 이해할 나이가 되면 당신은 현기증이 심해서 그것에 대해 신경쓸
겨를이 없게 된다. --C.R.깁슨

@ 무지개는 하늘이 성낸 것을 사과하는 것. --실비아 A.보이롤

@ 자녀들의 교육 내용에 지나치게 간섭한 대가는 부모보다 우둔한 자손이 생겨나는 것. --프랭크 A.클라크

@ 짐스럽다고 육봉을 떼어낸 낙타는 이미 낙타가 아니다. --G.K.체스터튼

@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한 첫 네 시간 동안만큼 헛된 희망을 품는 때도 아마 이 세상에 없
으리라. --댄 베네트

@ 천둥도 그럴싸하고 인상적이지만 정작 그 일을 해내는 것은 번개. --마크 트웨인

@ 한겨울에도 움트는 봄이 있는가 하면 밤의 장막 뒤에는 미소짓는 새벽이 있다. --칼릴 지브란

@ 첫눈에 반하기란 쉽지만 기적이 이루어지는 것은 두 사람이 여러 해 동안 마주 보고난 뒤의 일. --샘 레번슨

@ 30세가 넘으면 사람은 자기 주관을 갖게 된다. --베터 미들러(美 가수)

@ 우리는 자명종 소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새벽에의 무한한 기대감으로 깨어나는 법을 익혀야 하고 또
한 스스로 늘 깨어 있어야만 한다. --헨리 데이비드 도로(美 작가)

@ 예술은 창조자와 감상하는 사람이 서로 만나는 환희의 광장. --도미다 고지로(일본 작가)

@ 생명력은 살아 남는 능력뿐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능력에서도 드러난다. --F.스코트 피츠제럴드(美 소설가)

@ 힘과 인내를 알고자 한다면 나무를 벗으로 삼으라. --할 보런드(美 자연주의자)

@ 봄이란 구두가 온통 진창에 푹푹 빠지더라도 휘파람을 불고 싶은 기분이 저절로 샘솟는 계절. --D.L.

@ 상냥함은 차분한 열정. --J.J.

@ 우리는 정부를 가져야 하지만 매처럼 이를 감시해야만 한다. --M.F.

@ 세상 일로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고 신뢰감 넘치는 어린아이의 눈빛을 바라봄으로써 새
로운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H.H.

@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선택하려 들지 말라. 또는 언제 죽을 것인가도.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을 따름이니까. --존 바에즈(美 가수)

@ 예술 작품 그 자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슨 씨앗을 뿌리게 될까 하는 사실이다. 예술은
죽고 한 장의 그림은 사라질 수 있다. 남는 것은 오직 그것이 뿌린 씨앗. --호안 미로(스페인 화가)

@ 행복한 가정이란 빨리 온 천국과 다름없다. --J.B.

@ 아무 것도 시도할 용기를 갖지 못한다면 인생은 대체 무엇이겠는가? --빈센트 반 고호(네덜란드 화가)

@ 세상의 천재적 작품 속에는 우리의 머리 속에도 한번은 떠올랐으나 우리 스스로 버린 사상이 깃들여
져 있다. 우리 스스로 생각했다가 내버린 생각들이 새삼 위엄을 갖추고 되돌아왔음을 발견한다.
--랠프 월도 에머슨

@ 남을 밑으로 끌어내리려면 자기 자신도 불가불 그와 함께 끌어내려야만 한다. 그러니 남을 끌어내림
으로써 자기 자신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도 놓치고 만다. --매리언 앤더슨(美 흑인 여가수)

@ 과학의 임무는 지구를 떠맡는 노릇이 아니라 도덕적 상상력을 물려받는 일이다. 왜냐하면 도덕적 상상
력이 없으면 인간과 믿음 그리고 과학이 함께 멸망해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 --제이컵 브러노프스키

@ 우습지 않은가? 집시점장이를 비웃는 사람이 경제학자의 말은 진지하게 받아들이니.
--[신시내티 인콰이어러]

@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표정을 나는 미워한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탐구하고, 더 많이 보고,
더 큰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없는 얼굴은 싫다! --마리아 톨치프

@ 땅은 봉사해 준 대가로 나무를 붙들어 두지만 하늘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나무를 자유롭게 내버
려 둔다.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 인생살이를 서로 덜 힘드는 것으로 만들려 애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조지 엘리어트

@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할 일이 없는 것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권태. --헨리 하스킨스

@ 사람을 침묵시켰다고 해서 그의 마음을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존 모리

@ 독창성이란 탐험되지 않은 땅. 카누를 타고는 갈 수 있지만 택시를 타고는 도달할 수 없는 곳. --앨런 앨더

@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이어야 사람이다. --최현배(한글학자)

@ 위대한 사상은 날개와 아울러 착륙장치도 필요로 한다. --C.D.잭슨

@ 만약에 개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사람들과 사귀는 노릇만큼이나 개들과 친하게 지내는 일도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카렐 차펙(체코 극작가)

@ 사람들은 남을 증오하는 데 왜 그렇게도 고집스럽게 집착하는가? 증오를 떨쳐버릴 경우 그들은 고통
과 씨름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제임스 볼드윈(美 흑인작가)

@ 글이란 한번 인쇄되면 스스로의 생명을 지니게 되는 법. --캐롤 버넷(美 배우)

@ 자기가 생전에는 결코 그 밑에 앉아 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늘을 드리워 주는 나무를
심을 때에 그 사람은 적어도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D.E.트루블라드

@ 우리가 지금 당장에 의견의 차이를 해소시킬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 세상이 다양성을 누리도록 함께
노력할 수는 있을 것이다. --존 F.케네디

@ 결정을 내리기 전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고자 고집하는 사람은 결코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앙리 F.아미엘(스위스 시인)

@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을 내걸고 정당한 절차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효율적"인 정부라면 독재정
치를 해도 된단 말인가? --투어굿 마설(美 흑인대법관)

@ 문학을 좋아하고 시를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 속에 사랑이 있다는 증거다. --박목월(시인)

@ 오늘이란 신어야 할 신발과 같은 것. --스티브 올렌

@ 신이 진실로 인간이 날기를 바랐다면 공항까지 가는 일을 더 쉽게 해주었을 것이다. --조지 원터스

@ 그림자를 두려워 말라. 그림자란 빛이 어딘가 가까운 곳에서 비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루스 E.렌컬

@ 나이란 성숙해지기 위해서 치르는 비싼 대가. --톰 스토파드(현대 영국 극작가)

@ 무덤 앞에서 흘리는 가장 가슴 아픈 눈물은 고인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말과 행하지 못한 행위 때문
에 나오는 것. --해리엇 비처 스토우(美 작가, 1811--1896)

@ 한 민족을 가장 진실되게 표현하는 것은 그 민족의 춤과 음악이다. 사람의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다. --애그니스 도 밀(美 무용가, 1906--)

@ 죄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선고하기보다는 차라리 죄인을 풀어주는 위험을 무릅쓰는 편이 낫다. --볼테르

@ 교육이란 이 세상 여기저기에 흔하게 널려 있는 유일한 것이며, 아무나 가지고 싶은 만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조지 호레이스 로리머

@ 낡았으나 편안한 의자가 하나도 없는 집은 혼이 없는 곳. --메이 사턴

@ 아무리 편협한 고집장이라도 한때는 편견에 얽매이지 않았던 어린아이였다. --메어리 드 루르드 修女

@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날이 있다. --도산 안창호

@ 신용카드보다 부모를 더 존경하던 시절의 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간편했다. --로버트 오벤

@ 우리 모두의 심성에는 어린 카우보이, 어린 개척자가 뛰놀고 있다. --루이스 라무어(美 작가)

@ 한 곳의 불의는 모든 곳에서 정의를 위협한다. --마틴 루터 킹(1929--1968)

@ 대체로 인간은 선한 사람이 되고자 하지만 너무 선하거나 언제나 선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조지 오웰(英 작자)
@ 당신이 잠자리에서 일어나든 안 일어나든 하루는 시작된다. --존 차디(美 시인)

@ 우주의 대변동이라도 어린아이가 헛간 한 구석에 죽어 있는 참새의 주검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
는 광경만큼이나 감동스럽지는 못하다. --토마스 새비지

@ 영원이란 생각해 보면 무서운 것이다. 어디에서 끝이 날지 알 수 없으니. --톰 스토파드(체코 태생 英 작가, 1937--)

@ 인생이란 용기에 따라서 펴질 수도 있고 움츠러들 수도 있다. --어네이스 닌(프랑스 태생 美 작가, 1903--1977)

@ 우리는 목구멍을 틔우기 위해서 기침을 하고 가슴을 틔우기 위해서 한숨을 쉰다. --T.S.매슈스

@ 이 급변하는 시대에 한가지만은 변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용서를 비는 일이 유혹을 물리치는 일보
다 더 쉽다는 사실이다. --솔 켄던

@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한용운

@ 정치란 워낙 비싸게 먹히는 것이라서 오늘날엔 선거에서 지는 데도 막대한 돈이 든다.
--윌 로저스(美 배우, 1879--1935)

@ 첫눈이 내려도 가슴이 떨리지 않는 것은 늙어간다는 징조. --버드 존슨 女史(故 린든 B.존슨 美 대통령 미망인, 1912--)

@ 진보란 필요한 것은 가능하다는 신념과 더불어 시작된다. --노만 카즌스

@ 최상의 거울은 친구의 눈이다. --게일족 속담

@ 훌륭한 예술이란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로이 아자크

@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내 일이 바로 나의 왕국이다. --토마스 칼라일(스코틀랜드 수필가, 1795--1881)

@ 꽃을 받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당신이 아직 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동안에는. --리너 혼(美 흑인가수, 1917--)

@ 애정을 낭비했다고 말하지 말라. 애정이란 절대로 낭비되지 않는 것이다. --헨리 W.롱펠로우(美 시인, 1807--1882)

@ 선물을 품위있고 정중하게 받는 것은 보답할 것이 없더라도 보답하는 셈이 된다. --리 헌트(英 수필가, 1784--1859)

@ 행복이 진정 육신의 편안함과 근심으로부터의 해방에 있는 것이라면, 가장 행복한 존재는 어떤 남자
나 어떤 여자가 아니고 미국의 암소일 것이다. --윌리엄 L.펠프스(美 교육자, 1865--1943)

@ 어느 누구의 인생에도 대수롭지 않은 날이란 없다. --알렉산더 울커트(美 저널리스트, 1887--1943)

@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
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고. --마틴 루터 킹

@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의 존재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는 나의 존재를 위해서도.
--로이 크로프트

@ 만일 당신이 비밀을 바람에게 털어 놓았다면 바람이 그것을 나무들에게 털어 놓는다고 원망해서는
안 된다. --칼릴 지브란

@ 누구든지 전에는 젊었을 때가 있지만 누구나 전부터 나이가 든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속담

@ 나의 길을 밝혀 주고, 항상 인생을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하도록 내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친절
과 미, 그리고 진리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집을 사지 말고 이웃을 사라. --유럽 속담

@ 시골 풍경을 감상하면서 걷는 일에 견줄 만한 것은 없다. 멋진 경치는 한 곡의 음악과 같다. 그것은
적절한 박자로 감상되어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도 속도가 너무 빠르다. --폴 스코트 모우러

@ 진보란 단순성을 복잡하게 만드는 인간의 능력. --투르 하이에르달(노르웨이 인류학자, 1914--)

@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라. 그것은 가장 파괴적인 감정이다. 자아라는 다람쥐 쳇바퀴 속에 갇힌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밀리슨트 펜위크(前 美 하원의원, 1910--)

@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매일 무엇인가 하도록 하라. 이것이 당신의 의무를 고통없이 행하는 습관을 얻
는 황금률이다. --마크 트웨인

@ 나는 음악을 메뉴처럼 생각하고 있다. 매일 똑같은 것을 먹을 수는 없다.
--카를로스 산타나(멕시코 출신 기타연주가, 1947--)
@ 역사는 我와 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다. --신채호

@ 남을 심판하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시간이 없다. --테레사 수녀

@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성공이란 사다리를 올라갈 수는 없다. --美 속담

@ 어떤 교향악단도 강아지를 보고 웃는 2살짜리 계집애의 웃음소리와 같은 음악을 연주해내지는 못했
다. --번 윌리엄스

@ 삶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 여자의 최고급 화장품. --로살린드 러셀(美 여배우, 1913--1976)

@ 자녀들에게 독립해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부모들의 가장 중요한 과업. --프랑크 클라크

@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권하지 말라. --스페인 격언

@ 타협은 훌륭한 우산이지만 허술한 지붕. --제임스 러셀 로웰(美 외교관, 1819--1891)

@ "눈에는 눈으로"란 옛 법을 따르면 우리는 모두 장님이 되고 말 것이다. --마틴 루터 킹

@ 행복은 때때로 열어놓은 줄 몰랐던 문으로 몰래 들어온다. --존 배리모어(美 배우, 1882--1942)

@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배운 것과 똑같은 사실을 나는 우리 집 정원에서 배우게 되었다. 하느
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최선이다. --오벤스 코미디 필러스

@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여인은 함께 울 수 있는 여인. --엔조 비아그

@ 어린이는 의문부호의 바다로 둘러싸인 호기심의 섬. --셸 석유회사 광고

@ 지구와 대륙과 대양의 형태를 발견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무지가 아니라 지식의 망상이었
다. --다니엘 J.부어스틴

@ 우정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가끔 계획된 활동 사이의 예상치 못했던 공간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공간이 생기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중요하다. --크리스틴 리펠트와 어니스트 칼렌바흐

@ 버릴 수 있는 조국이 있다면 그것은 애당초 지니지 않았던 조국이다. --김소운

@ 고기를 낚으러 가는 노인의 가슴 속엔 언제나 어린 소년이 들어 있다. --J.콜더 조셉

@ 메아리를 들으며 본디의 소리를 기대하진 말라. --[365개의 인용구가 담긴 달력]에서

@ 건축물에서 가장 견실한 돌은 토대의 맨 밑에 놓인 돌. --칼릴 지브란(시리아 시인, 1883--1931)

@ 이상이란 별과 같아 아무도 거기 이르지 못한다. 하지만 바다의 수부들처럼 우리는 그걸 보고 항해
코스를 그린다. --칼 슈츠(독일 태생 美 정치가, 1829--1906)

@ 한 여자를 자유롭게 할 때마다 우리는 한 남자를 해방시킨다. --마거리트 미드(美 여류 인류학자,
1901--1978)

@ 유머는 한 줄기 시원한 여름 소나기처럼 대지와 대기, 그리고 당신을 모르는 사이에 정화시켜 준다.
--랭스턴 휴스(美 흑인작가, 1902--1967)

@ 하나의 아이디어는 티끌이 될 수도 있고 마법으로 변할 수도 있다. 거기에 적용하는 재능에 따라.
--윌리엄 번배크

@ 여자들의 힘이 점차 증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두뇌의 힘이지 팔뚝의 힘은 아니다.
--비벌리 실스(美 소프라노 가수, 1929--)

@ 우리가 눈감아 버리면 점점 크게 번져가는 것이 범죄의 속성. --배리 파버

@ 행복한 결혼생활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헬렌 거헤이건 더글러스(美 여배우,
1900--1980)

@ 우리가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정부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앤슬 애덤스(美 사진작가, 1902--)

@ 식사 후 식탁에 손을 짚고 일어서려 할 때 테이블이 먼저 밀려나가면 식사조절을 시작해야 할 때.
--[조가비]에서

@ 인생행로에 삼진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들이는 것은 절대 금물. --베이브 루스(美 야구선수, 1894--1948)

@ 애국심이란 선조의 땅을 지키는 마음이라기보다 후손의 땅을 보존하는 마음이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스페인 철학자, 1883--1955)

@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둬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휴 프래더

@ 우리의 마음 속에는 발견되지 않은 성격의 대륙이 있다. 자신의 영혼을 탐험하는 콜룸부스가 되는
사람은 복되도다. --[생명의 말씀]에서

@ 문명이란 개인과 개인을 결합시키고, 그 다음에 가족과 가족, 인종과 인종, 국민과 국민, 국가와 국가
를 결합시켜 하나의 커다란 통일체로, 즉 인류의 통일체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지그문트 프로이드

@ 고위직의 입후보자를 조반용 시리얼을 사고 팔 듯 사고 팔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에 대한 모욕이다. --애들레이 스티븐슨(美 정치가, 1900--1965)

@ 호기심이란 기꺼이, 자랑스럽게, 열심히 자기의 무지를 실토하는 행위. --S.레오나드 루빈슈타인

@ 꿈을 단단히 붙들어라. 꿈을 놓치면 인생은 날개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새.
--랭스턴 휴즈(美 흑인 시인, 1902--1967)

@ 문제란 사람이 최선을 다할 기회. --듀크 엘링턴(美 흑인 작곡가, 1899--1974)

@ 10월의 미류나무는 겨울로 가는 길을 밝히는 횃불. --노바 S.베어

@ 입으로 말하는 사랑은 외면하기 쉬우나, 행동으로 증명하는 사랑은 저항하기 어렵다. --W.스탠리 무니햄

@ 민주주의의 바탕에는 평범한 사람에게 비범한 가능성이 있다는 신념이 깔려 있다.
--해리 에머슨 포스딕(美 성직자, 1878--1969)

@ 빈들빈들 노는 것이 좋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일을 하면 마음이 흡족해진다. --안네 프랑크(1929--1945)

@ 개울 바닥에 돌이 없다면 시냇물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칼 퍼킨스

@ 행운이 들어오거든 의자를 권하라! --유태 격언

@ "무슨 어려운 일을 겪고 계신가요?"하고 물어보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시몬 베유(프랑스 철학가, 1909--1943)

@ 자기 연민은 처음에는 깃털요처럼 따스하고 아늑하지만 딱딱하게 굳으면 거북살스러워진다.
--마여 안젤루(美 흑인 작가, 1928--)

@ 당신도 가끔 속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로렌스 J.피터

@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두 사람 사이에 한순간이라도 시간이 끼어들게 내버려두면, 그것은 자라서 한
달이 되고, 일년이 되고, 한 세기가 된다. 그러면 너무 늦어진다. --장 지로두(프랑스 극작가, 1882--1944)

@ 자유의 기능은 다른 사람을 해방시키는 일. --토니 모리슨(美 흑인 소설가, 1931--)

@ 결혼은 뚜껑을 덮어 놓은 음식. --스위스 속담

@ 나는 여성이 어리석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남자와 어울리게 만드셨기 때문
에. --조지 엘리어트(英 소설가, 1819--1880)

@ 신발이 어디가 끼는지는 신고 있는 사람만이 안다. --서양 속담

@ 소문은 빨리 퍼지지만 진실만큼 오래 가지는 않는다. --윌 로저스(美 배우, 1879--1935)

@ 남을 시궁창에 붙잡아 두려면 자기도 시궁창 속에 있어야 한다. --부커 T.워싱턴(美 흑인 작가, 1856--1915)

@ 가정의 난로가가 가장 좋은 학교. --아놀드 H.글래소

@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가를 말하지 않고, 얼마나 많이 해냈는가를 이야기하라. --제임스 링

@ 사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안다는 것과 크게 다르다. --찰스 케터링(美 실업인, 1876--1958)

@ 인내는 한 번 뛰는 장거리 경주가 아니라, 숱한 단거리 경주의 연속이다. --월터 엘리어트

@ 인생이란 더러 끔찍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매혹적이고 활기에 찬 경험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삶
을 철저하게 누렸다. 한쪽 귀에는 탄식소리가 들려 오더라도, 다른 쪽 귀에는 언제나 노랫소리가 들
렸다. --숀 오케이시(아일랜드 극작가, 1880--1964)

@ 한 사회의 자유는 그 사회의 웃음의 양과 정비례한다. --제로 모스텔(美 코메디언, 1915--1977)

@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배운다는 것. 돈이란 잃거나 도둑맞을 수가 있고 건강과 정력은 약해질
수가 있다. 그러나 머리 속에 넣어둔 것은 영원히 당신의 것. --루이 라무르(美 작가)

@ 이 세상에 친절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 --한 수인

@ 아무도 뒷걸음질을 해서 미래로 갈 수는 없다. --조셉 허거샤이머

@ 사람들은 자아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을 흔히 한다. 그러나 자아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스
스로 창조하는 것. --토마스 사스

@ 일인자가 된다는 것은 일인자의 자리를 지키는 일보다는 쉽다. --빌 브래들리(美 상원의원)

@ 눈을 보고 눈싸움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늙어간다는 증거. --두그 라슨

@ 유머란 깊이있는 관찰 결과를 다정하게 전달하는 방법. --리오 로스튼

@ 사랑이란 두 사람이 놀고 둘이 다 이기는 게임. --에바 가보(여배우)

@ 인내의 참된 비결은 참는 동안 다른 할 일을 찾는 데 있다. --[델 펜슬 퍼즐스 앤드 워드 게임스]에서

@ 실패의 99%는 항상 핑계를 대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조지 W.카버

@ 예의범절이란 마치 수학의 0과 같은 것.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는 것이지만 다른 것에 붙여지면 가
치를 크게 더해 주니까. --프레이어 스타크

@ 말수가 적을수록 남들이 더 귀를 기울이는 법. --애비게일 밴 뷰렌

@ 에티켓이란 졸리는데도 좌중에서 겉으로 나타내지 않는 것. --하이먼 버스튼

@ 사람들은 삶이란 작은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무언가 큰 것만을 성취해
보려고 한다. --프랭크 클라크

@ 민주주의는 투표가 아니라 공정한 개표로 가늠하는 것이다. --톰 스토파드(英 극작가)

@ 한가함이란 아무 것도 할 일이 없게 되었다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여가가 생겼다는 뜻
이다. --플로이드 델

@ 행복한 결혼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계약이다. --O.A.바티스타

@ 지식은 도서관에서 잠을 자고 있지만 지혜는 도처에서 눈을 크게 뜨고 조심스럽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조시 빌링스

@ 웃음소리는 울음소리보다 멀리 간다. --히브리 격언

@ 타고난 성격 탓으로 화를 자초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남까지 못살게 할 필요는 없는 법이다.
--루드야드 키플링(인도 태생의 英 작가)

@ 윙윙거리는 모기의 소리만큼 심술과 적의를 그토록 작은 부피에 응집시킨 것은 없다. --엘스페스 헉슬리

@ 도와달라는 말을 듣고 도와주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도움을 청하기 전에 미리 알아서 도와주는 것
은 더욱 좋은 일이다. --칼릴 지브란(레바논 시인)

@ 사랑하고 일하며, 때로는 쉬면서 별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인생, 그 인생에 감사하자.
--헨리 밴 다이크(美 교역자-작가)
“名 言 錄”(리더스다이제스트 1983.3 1988.1)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없다고 느낄 때 오는
고독감은 가난 중의 가난. ―테레사 수녀

어떤 사람이 자기는 원칙적으로 그 일에 찬성한다고 말할 경우, 그
사람은 그것을 실천에 옮길 의향이 전혀 없음을 뜻한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프러시아 정치가)

동정과 이해가 따르지 않는 정직 은 정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敵意이다. ―로즈 N.프랜즈블로

무질서하게 사는 이점의 하나는 끊임없이 멋진 발견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A.A.밀른(英 시인)

비눗물 맛을 모르는 사람은 개를 목욕시킨 적이 없는 사람. ―프랭클린
P.존스

오래된 규범의 가치에 의심을 품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파기하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엘리자베드 제인웨이

재능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재능을 실현하기 위해 걸어야 할 어려운
과정을 밟을 용기를 지닌 사람은 드물다. ―에리카 종

아무리 높은 왕좌에 앉아 있을망정, 사람은 궁둥이로 앉게 마련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 유머. ―타키

이른 아침의 산책은 그날 하루를 위한 축복. ―헨리 데이비드 도로(美
작가, 1817 1862)

산책은 위대한 예술이다. ―헨리 도로(美 작가)

아기가 태어날 때 삼신할머니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호기심이다. ―엘리노어 루스벨트

부자가 되는 지름길은, 값이 싸고 습관적으로 쓸 수 있는 데다가 세금이
공제될 수 있는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 ―「선샤인 매거진」

인간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남을 속이는 것은 전적으로 신만이 져야 할
책임. ―헨리 해스킨스

인간이 추위와 굶주림, 갈증에 대비하는 이외의 모든 것은 오직 허식이며
낭비일 뿐이다. ―세네카

전쟁에서 이등상이란 없다. ―오마 브레들리

무엇이 이 세상을 움직여 가는지 이해할 나이가 되면 당신은 현기증이
심해서 그것에 대해 신경쓸 겨를이 없게 된다. ―C.R.깁슨

무지개는 하늘이 성낸 것을 사과하는 것. ―실비아 A.보이롤

자녀들의 교육 내용에 지나치게 간섭한 대가는 부모보다 우둔한 자손이
생겨나는 것. ―프랭크 A.클라크

짐스럽다고 육봉을 떼어낸 낙타는 이미 낙타가 아니다. ―G.K.체스터튼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한 첫 네 시간 동안만큼 헛된 희망을
품는 때도 아마 이 세상에 없으리라. ―댄 베네트

천둥도 그럴싸하고 인상적이지만 정작 그 일을 해내는 것은 번개. ―마크
트웨인

한겨울에도 움트는 봄이 있는가 하면 밤의 장막 뒤에는 미소짓는 새벽이
있다. ―칼릴 지브란

첫눈에 반하기란 쉽지만 기적이 이루어지는 것은 두 사람이 여러 해 동안
마주 보고난 뒤의 일. ―샘 레번슨

30세가 넘으면 사람은 자기 주관을 갖게 된다. ―베터 미들러(美 가수)

우리는 자명종 소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새벽에의 무한한 기대감으로
깨어나는 법을 익혀야 하고 또한 스스로 늘 깨어 있어야만 한다. ―헨리
데이비드 도로(美 작가)

예술은 창조자와 감상하는 사람이 서로 만나는 환희의 광장. ―도미다
고지로(일본 작가)

생명력은 살아 남는 능력뿐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능력에서도 드러난다.
―F.스코트 피츠제럴드(美 소설가)

힘과 인내를 알고자 한다면 나무를 벗으로 삼으라. ―할 보런드(美
자연주의자)

봄이란 구두가 온통 진창에 푹푹 빠지더라도 휘파람을 불고 싶은 기분이
저절로 샘솟는 계절. ―D.L.

상냥함은 차분한 열정. ―J.J.

우리는 정부를 가져야 하지만 매처럼 이를 감시해야만 한다. ―M.F.

세상 일로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고 신뢰감 넘치는
어린아이의 눈빛을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H.H.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선택하려 들지 말라. 또는 언제 죽을 것인가도.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을 따름이니까.
―존 바에즈(美 가수)

예술 작품 그 자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슨 씨앗을 뿌리게
될까 하는 사실이다. 예술은 죽고 한 장의 그림은 사라질 수 있다. 남는
것은 오직 그것이 뿌린 씨앗. ―호안 미로(스페인 화가)

행복한 가정이란 빨리 온 천국과 다름없다. ―J.B.

아무 것도 시도할 용기를 갖지 못한다면 인생은 대체 무엇이겠는가?
―빈센트 반 고호(네덜란드 화가)

세상의 천재적 작품 속에는 우리의 머리 속에도 한번은 떠올랐으나 우리
스스로 버린 사상이 깃들여져 있다. 우리 스스로 생각했다가 내버린
생각들이 새삼 위엄을 갖추고 되돌아왔음을 발견한다.

―랠프 월도 에머슨

남을 밑으로 끌어내리려면 자기 자신도 불가불 그와 함께 끌어내려야만
한다. 그러니 남을 끌어내림으로써 자기 자신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도
놓치고 만다. ―매리언 앤더슨(美 흑인 여가수)

과학의 임무는 지구를 떠맡는 노릇이 아니라 도덕적 상상력을 물려받는
일이다. 왜냐하면 도덕적 상상력이 없으면 인간과 믿음 그리고 과학이
함께 멸망해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 ―제이컵 브러노프스키

우습지 않은가? 집시점장이를 비웃는 사람이 경제학자의 말은 진지하게
받아들이니.

―「신시내티 인콰이어러」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표정을 나는 미워한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탐구하고, 더 많이 보고, 더 큰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없는 얼굴은
싫다! ―마리아 톨치프

땅은 봉사해 준 대가로 나무를 붙들어 두지만 하늘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나무를 자유롭게 내버려 둔다.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인생살이를 서로 덜 힘드는 것으로 만들려 애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조지 엘리어트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할 일이 없는 것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권태.
―헨리 하스킨스

사람을 침묵시켰다고 해서 그의 마음을 변화시킨 것은 아니다. ―존 모리

독창성이란 탐험되지 않은 땅. 카누를 타고는 갈 수 있지만 택시를
타고는 도달할 수 없는 곳. ―앨런 앨더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이어야 사람이다. ―최현배(한글학자)

위대한 사상은 날개와 아울러 착륙장치도 필요로 한다. ―C.D.잭슨

만약에 개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사람들과 사귀는 노릇만큼이나
개들과 친하게 지내는 일도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카렐
차펙(체코 극작가)

사람들은 남을 증오하는 데 왜 그렇게도 고집스럽게 집착하는가? 증오를
떨쳐버릴 경우 그들은 고통과 씨름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제임스
볼드윈(美 흑인작가)

글이란 한번 인쇄되면 스스로의 생명을 지니게 되는 법. ―캐롤 버넷(美
배우)

자기가 생전에는 결코 그 밑에 앉아 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늘을 드리워 주는 나무를 심을 때에 그 사람은 적어도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D.E.트루블라드

우리가 지금 당장에 의견의 차이를 해소시킬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
세상이 다양성을 누리도록 함께 노력할 수는 있을 것이다. ―존 F.케네디

결정을 내리기 전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고자 고집하는 사람은 결코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앙리 F.아미엘(스위스 시인)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을 내걸고 정당한 절차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효율적 인 정부라면 독재정치를 해도 된단 말인가? ―투어굿 마설(美
흑인대법관)

문학을 좋아하고 시를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 속에 사랑이 있다는 증거다.
―박목월(시인)

오늘이란 신어야 할 신발과 같은 것. ―스티브 올렌

신이 진실로 인간이 날기를 바랐다면 공항까지 가는 일을 더 쉽게
해주었을 것이다. ―조지 원터스

그림자를 두려워 말라. 그림자란 빛이 어딘가 가까운 곳에서 비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루스 E.렌컬

나이란 성숙해지기 위해서 치르는 비싼 대가. ―톰 스토파드(현대 영국
극작가)

무덤 앞에서 흘리는 가장 가슴 아픈 눈물은 고인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말과 행하지 못한 행위 때문에 나오는 것. ―해리엇 비처 스토우(美 작가,
1811 1896)

한 민족을 가장 진실되게 표현하는 것은 그 민족의 춤과 음악이다.
사람의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애그니스 도 밀(美 무용가, 1906 )

죄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선고하기보다는 차라리 죄인을 풀어주는 위험을
무릅쓰는 편이 낫다. ―볼테르

교육이란 이 세상 여기저기에 흔하게 널려 있는 유일한 것이며, 아무나
가지고 싶은 만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조지 호레이스
로리머

낡았으나 편안한 의자가 하나도 없는 집은 혼이 없는 곳. ―메이 사턴

아무리 편협한 고집장이라도 한때는 편견에 얽매이지 않았던
어린아이였다. ―메어리 드 루르드 修女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날이 있다.
―도산 안창호

신용카드보다 부모를 더 존경하던 시절의 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간편했다. ―로버트 오벤

우리 모두의 심성에는 어린 카우보이, 어린 개척자가 뛰놀고 있다.
―루이스 라무어(美 작가)

한 곳의 불의는 모든 곳에서 정의를 위협한다. ―마틴 루터 킹(1929
1968)

대체로 인간은 선한 사람이 되고자 하지만 너무 선하거나 언제나
선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조지 오웰(英 작자)
당신이 잠자리에서 일어나든 안 일어나든 하루는 시작된다. ―존 차디(美
시인)

우주의 대변동이라도 어린아이가 헛간 한 구석에 죽어 있는 참새의
주검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광경만큼이나 감동스럽지는 못하다.
―토마스 새비지

영원이란 생각해 보면 무서운 것이다. 어디에서 끝이 날지 알 수 없으니.
―톰 스토파드(체코 태생 英 작가, 1937 )

인생이란 용기에 따라서 펴질 수도 있고 움츠러들 수도 있다. ―어네이스
닌(프랑스 태생 美 작가, 1903 1977)

우리는 목구멍을 틔우기 위해서 기침을 하고 가슴을 틔우기 위해서
한숨을 쉰다. ―T.S.매슈스

이 급변하는 시대에 한가지만은 변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용서를 비는
일이 유혹을 물리치는 일보다 더 쉽다는 사실이다. ―솔 켄던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한용운

정치란 워낙 비싸게 먹히는 것이라서 오늘날엔 선거에서 지는 데도
막대한 돈이 든다.

―윌 로저스(美 배우, 1879 1935)

첫눈이 내려도 가슴이 떨리지 않는 것은 늙어간다는 징조. ―버드 존슨
女史(故 린든 B.존슨 美 대통령 미망인, 1912 )

진보란 필요한 것은 가능하다는 신념과 더불어 시작된다. ―노만 카즌스

최상의 거울은 친구의 눈이다. ―게일족 속담

훌륭한 예술이란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로이 아자크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내 일이 바로 나의 왕국이다. ―토마스
칼라일(스코틀랜드 수필가, 1795 1881)

꽃을 받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당신이 아직 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동안에는. ―리너 혼(美 흑인가수, 1917 )

애정을 낭비했다고 말하지 말라. 애정이란 절대로 낭비되지 않는 것이다.
―헨리 W.롱펠로우(美 시인, 1807 1882)

선물을 품위있고 정중하게 받는 것은 보답할 것이 없더라도 보답하는
셈이 된다. ―리 헌트(英 수필가, 1784 1859)

행복이 진정 육신의 편안함과 근심으로부터의 해방에 있는 것이라면,
가장 행복한 존재는 어떤 남자나 어떤 여자가 아니고 미국의 암소일
것이다. ―윌리엄 L.펠프스(美 교육자, 1865 1943)

어느 누구의 인생에도 대수롭지 않은 날이란 없다. ―알렉산더 울커트(美
저널리스트, 1887 1943)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다고.
―마틴 루터 킹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의 존재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는 나의 존재를 위해서도.

―로이 크로프트

만일 당신이 비밀을 바람에게 털어 놓았다면 바람이 그것을 나무들에게
털어 놓는다고 원망해서는 안 된다. ―칼릴 지브란

누구든지 전에는 젊었을 때가 있지만 누구나 전부터 나이가 든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속담

나의 길을 밝혀 주고, 항상 인생을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하도록 내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친절과 미, 그리고 진리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집을 사지 말고 이웃을 사라. ―유럽 속담

시골 풍경을 감상하면서 걷는 일에 견줄 만한 것은 없다. 멋진 경치는 한
곡의 음악과 같다. 그것은 적절한 박자로 감상되어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도 속도가 너무 빠르다. ―폴 스코트 모우러

진보란 단순성을 복잡하게 만드는 인간의 능력. ―투르
하이에르달(노르웨이 인류학자, 1914 )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라. 그것은 가장 파괴적인 감정이다. 자아라는
다람쥐 쳇바퀴 속에 갇힌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밀리슨트
펜위크(前 美 하원의원, 1910 )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매일 무엇인가 하도록 하라. 이것이 당신의 의무를
고통없이 행하는 습관을 얻는 황금률이다. ―마크 트웨인

나는 음악을 메뉴처럼 생각하고 있다. 매일 똑같은 것을 먹을 수는 없다.
―카를로스
산타나(멕시코 출신 기타연주가, 1947 )
역사는 我와 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다. ―신채호

남을 심판하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시간이 없다. ―테레사 수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성공이란 사다리를 올라갈 수는 없다. ―美 속담

어떤 교향악단도 강아지를 보고 웃는 2살짜리 계집애의 웃음소리와 같은
음악을 연주해내지는 못했다. ―번 윌리엄스

삶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 여자의 최고급 화장품. ―로살린드 러셀(美
여배우, 1913 1976)

자녀들에게 독립해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부모들의 가장
중요한 과업. ―프랑크 클라크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권하지 말라. ―스페인 격언

타협은 훌륭한 우산이지만 허술한 지붕. ―제임스 러셀 로웰(美 외교관,
1819 1891)

눈에는 눈으로 란 옛 법을 따르면 우리는 모두 장님이 되고 말 것이다.
―마틴 루터 킹

행복은 때때로 열어놓은 줄 몰랐던 문으로 몰래 들어온다. ―존
배리모어(美 배우, 1882 1942)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배운 것과 똑같은 사실을 나는 우리 집
정원에서 배우게 되었다. 하느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최선이다.
―오벤스 코미디 필러스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여인은 함께 울 수 있는 여인. ―엔조 비아그

어린이는 의문부호의 바다로 둘러싸인 호기심의 섬. ―셸 석유회사 광고

지구와 대륙과 대양의 형태를 발견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무지가
아니라 지식의 망상이었다. ―다니엘 J.부어스틴

우정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가끔 계획된 활동 사이의 예상치 못했던
공간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공간이 생기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중요하다.
―크리스틴 리펠트와 어니스트 칼렌바흐

버릴 수 있는 조국이 있다면 그것은 애당초 지니지 않았던 조국이다.
―김소운

고기를 낚으러 가는 노인의 가슴 속엔 언제나 어린 소년이 들어 있다.
―J.콜더 조셉

메아리를 들으며 본디의 소리를 기대하진 말라. ―「365개의 인용구가
담긴 달력」에서

건축물에서 가장 견실한 돌은 토대의 맨 밑에 놓인 돌. ―칼릴
지브란(시리아 시인, 1883 1931)

이상이란 별과 같아 아무도 거기 이르지 못한다. 하지만 바다의
수부들처럼 우리는 그걸 보고 항해코스를 그린다. ―칼 슈츠(독일 태생 美
정치가, 1829 1906)

한 여자를 자유롭게 할 때마다 우리는 한 남자를 해방시킨다. ―마거리트
미드(美 여류 인류학자, 1901 1978)

유머는 한 줄기 시원한 여름 소나기처럼 대지와 대기, 그리고 당신을
모르는 사이에 정화시켜 준다.

―랭스턴 휴스(美 흑인작가, 1902 1967)

하나의 아이디어는 티끌이 될 수도 있고 마법으로 변할 수도 있다.
거기에 적용하는 재능에 따라.

―윌리엄 번배크

여자들의 힘이 점차 증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두뇌의 힘이지 팔뚝의
힘은 아니다.

―비벌리 실스(美 소프라노 가수, 1929 )

우리가 눈감아 버리면 점점 크게 번져가는 것이 범죄의 속성. ―배리
파버

행복한 결혼생활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헬렌
거헤이건 더글러스(美 여배우, 1900 1980)

우리가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정부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앤슬 애덤스(美 사진작가, 1902 )

식사 후 식탁에 손을 짚고 일어서려 할 때 테이블이 먼저 밀려나가면
식사조절을 시작해야 할 때.

―「조가비」에서

인생행로에 삼진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들이는 것은 절대 금물. ―베이브
루스(美 야구선수, 1894 1948)

애국심이란 선조의 땅을 지키는 마음이라기보다 후손의 땅을 보존하는
마음이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스페인 철학자, 1883 1955)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둬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휴 프래더

우리의 마음 속에는 발견되지 않은 성격의 대륙이 있다. 자신의 영혼을
탐험하는 콜룸부스가 되는 사람은 복되도다. ―「생명의 말씀」에서

문명이란 개인과 개인을 결합시키고, 그 다음에 가족과 가족, 인종과
인종, 국민과 국민, 국가와 국가를 결합시켜 하나의 커다란 통일체로, 즉
인류의 통일체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지그문트 프로이드

고위직의 입후보자를 조반용 시리얼을 사고 팔 듯 사고 팔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다. ―애들레이 스티븐슨(美
정치가, 1900 1965)

호기심이란 기꺼이, 자랑스럽게, 열심히 자기의 무지를 실토하는 행위.
―S.레오나드 루빈슈타인

꿈을 단단히 붙들어라. 꿈을 놓치면 인생은 날개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새.

―랭스턴 휴즈(美 흑인 시인, 1902 1967)

문제란 사람이 최선을 다할 기회. ―듀크 엘링턴(美 흑인 작곡가, 1899
1974)

10월의 미류나무는 겨울로 가는 길을 밝히는 횃불. ―노바 S.베어

입으로 말하는 사랑은 외면하기 쉬우나, 행동으로 증명하는 사랑은
저항하기 어렵다. ―W.스탠리 무니햄

민주주의의 바탕에는 평범한 사람에게 비범한 가능성이 있다는 신념이
깔려 있다.
―해리
에머슨 포스딕(美 성직자, 1878 1969)

빈들빈들 노는 것이 좋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일을 하면 마음이
흡족해진다. ―안네 프랑크(1929 1945)

개울 바닥에 돌이 없다면 시냇물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칼
퍼킨스

행운이 들어오거든 의자를 권하라! ―유태 격언

무슨 어려운 일을 겪고 계신가요? 하고 물어보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시몬
베유(프랑스 철학가, 1909 1943)

자기 연민은 처음에는 깃털요처럼 따스하고 아늑하지만 딱딱하게 굳으면
거북살스러워진다.

―마여 안젤루(美 흑인 작가, 1928 )

당신도 가끔 속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로렌스 J.피터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두 사람 사이에 한순간이라도 시간이 끼어들게
내버려두면, 그것은 자라서 한 달이 되고, 일년이 되고, 한 세기가 된다.
그러면 너무 늦어진다. ―장 지로두(프랑스 극작가, 1882 1944)

자유의 기능은 다른 사람을 해방시키는 일. ―토니 모리슨(美 흑인
소설가, 1931 )

결혼은 뚜껑을 덮어 놓은 음식. ―스위스 속담

나는 여성이 어리석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남자와 어울리게 만드셨기 때문에. ―조지 엘리어트(英 소설가, 1819
1880)

신발이 어디가 끼는지는 신고 있는 사람만이 안다. ―서양 속담

소문은 빨리 퍼지지만 진실만큼 오래 가지는 않는다. ―윌 로저스(美
배우, 1879 1935)

남을 시궁창에 붙잡아 두려면 자기도 시궁창 속에 있어야 한다. ―부커
T.워싱턴(美 흑인 작가, 1856 1915)

가정의 난로가가 가장 좋은 학교. ―아놀드 H.글래소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가를 말하지 않고, 얼마나 많이 해냈는가를
이야기하라. ―제임스 링

사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안다는 것과 크게 다르다. ―찰스
케터링(美 실업인, 1876 1958)

인내는 한 번 뛰는 장거리 경주가 아니라, 숱한 단거리 경주의 연속이다.
―월터 엘리어트

인생이란 더러 끔찍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매혹적이고 활기에 찬
경험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삶을 철저하게 누렸다. 한쪽 귀에는
탄식소리가 들려 오더라도, 다른 쪽 귀에는 언제나 노랫소리가 들렸다.
―숀 오케이시(아일랜드 극작가, 1880 1964)

한 사회의 자유는 그 사회의 웃음의 양과 정비례한다. ―제로 모스텔(美
코메디언, 1915 1977)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배운다는 것. 돈이란 잃거나 도둑맞을 수가
있고 건강과 정력은 약해질 수가 있다. 그러나 머리 속에 넣어둔 것은
영원히 당신의 것. ―루이 라무르(美 작가)

이 세상에 친절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 ―한 수인

아무도 뒷걸음질을 해서 미래로 갈 수는 없다. ―조셉 허거샤이머

사람들은 자아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을 흔히 한다. 그러나 자아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하는 것. ―토마스 사스

일인자가 된다는 것은 일인자의 자리를 지키는 일보다는 쉽다. ―빌
브래들리(美 상원의원)

눈을 보고 눈싸움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늙어간다는
증거. ―두그 라슨

유머란 깊이있는 관찰 결과를 다정하게 전달하는 방법. ―리오 로스튼

사랑이란 두 사람이 놀고 둘이 다 이기는 게임. ―에바 가보(여배우)

인내의 참된 비결은 참는 동안 다른 할 일을 찾는 데 있다. ―「델 펜슬
퍼즐스 앤드 워드 게임스」에서

실패의 99%는 항상 핑계를 대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조지
W.카버

예의범절이란 마치 수학의 0과 같은 것.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는
것이지만 다른 것에 붙여지면 가치를 크게 더해 주니까. ―프레이어
스타크

말수가 적을수록 남들이 더 귀를 기울이는 법. ―애비게일 밴 뷰렌

에티켓이란 졸리는데도 좌중에서 겉으로 나타내지 않는 것. ―하이먼
버스튼

사람들은 삶이란 작은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무언가 큰 것만을 성취해 보려고 한다. ―프랭크 클라크

민주주의는 투표가 아니라 공정한 개표로 가늠하는 것이다. ―톰
스토파드(英 극작가)

한가함이란 아무 것도 할 일이 없게 되었다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여가가 생겼다는 뜻이다. ―플로이드 델

행복한 결혼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계약이다. ―O.A.바티스타

지식은 도서관에서 잠을 자고 있지만 지혜는 도처에서 눈을 크게 뜨고
조심스럽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조시 빌링스

웃음소리는 울음소리보다 멀리 간다. ―히브리 격언

타고난 성격 탓으로 화를 자초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남까지 못살게
할 필요는 없는 법이다.

―루드야드 키플링(인도 태생의 英 작가)

윙윙거리는 모기의 소리만큼 심술과 적의를 그토록 작은 부피에 응집시킨
것은 없다. ―엘스페스 헉슬리

도와달라는 말을 듣고 도와주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도움을 청하기 전에
미리 알아서 도와주는 것은 더욱 좋은 일이다. ―칼릴 지브란(레바논
시인)

사랑하고 일하며, 때로는 쉬면서 별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인생,
그 인생에 감사하자.

―헨리 밴 다이크(美 교역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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